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아프리카의 원조를 받다.
펠리페 2세는 다운받아준 너튜브 영상에 안젤리나 공주가 나오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뭔가에 흠칫 놀랐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 있는 구독자라는 말 말이야. 932만 명이면, 이 영상을 보는 사람이 932만 명이나 된단 말인가?”
“맞습니다. 이 영상을 전부 다 본 건 아니고. 여기 보시면, 조회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138만 명이 이 영상을 봤죠. 다들 칭찬 일색이에요.”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이 방송을 지켜본 것인가? 자네의 나라는 지구에서 소국이라 하지 않았나?”
그제야 펠리페 2세가 뭐에 놀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많은 인구에 놀란 것이다.
중세 이후, 위생 및 의학과 식량 생산 기술이 발전하며 지구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펠리페 2세는 소국이라는 한국의 인구가 5천만 명을 넘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럼 제국의 후신인 그 야만인들의 나라는 얼마나 인구가 많다는 말인가?”
“14억 명이 넘습니다.”
“후우. 자네의 세상은 정말 그 인구들을 다 먹여살릴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그곳의 왕이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군.”
펠리페 2세는 왕의 책임감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발전과 사유재산제가 이뤄진 이후였다.
자기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안토니 왕자가 꿈꾸는 민주 정부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다가, 심란하기 짝이 없는 펠리페 2세의 얼굴을 보고 채근 대신 위로를 건넸다.
“하와이의 작물들이 엄청 잘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바다를 건너 신대륙을 탐사하고 있기도 하고요. 신대륙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레몽드 왕국이 레몽드 제국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닙니다.”
“레몽드 제국이라. 두근거리는 말이긴 하군.”
그래도 풀죽은 펠리페 2세에게 보생환 제작일지에서 본 레몽드 제국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안토니 왕자와는 다르게 펠리페 2세는 제국에 대한 원한이 가득하다.
섣불리 자신감을 심어줬다가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는 건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위로할 수 있는 말은 많았다.
난 말리와의 수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 펠리페 2세를 한국으로 초대할 생각이라는 말을 꺼냈다.
“날 더러 한국에 가자는 말인가?”
“네. 당장은 전하께서 궁을 비우는 일이 어렵겠지만, 말리와 한국의 수교가 이뤄지고 통행이 자유로워지면 전하께서도 새로운 세상을 보셔야지요.”
“고마운 마음이지만, 거절하겠네.”
“네?”
“왕은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이네. 나를 보는 40만 명의 백성이 있네. 자네의 세상은 그냥 자네가 이렇게 찍어오는 영상으로 보면 되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펠리페 2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비쳤다.
흔들리는 펠리페 2세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코팡에 무선 공유기부터 주문했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펠리페 2세에게 로드뷰라도 한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너튜브와 SNS 등, 인터넷만 되어도 간접 경험할 콘텐츠가 흘러넘친다.
보지 않고 들어서는 알 수 없는 세상이 있다.
치킨이나 전기제품, 오토바이가 아니라 압도적인 현대의 문명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선별해서 고르고 고른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그의 눈으로 직접 보고 선택한 콘텐츠들을 보며 성장하길 바랐다.
물론 중세의 가치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만큼 어쩔 수 없이 혼란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펠리페 2세의 등을 40만 명의 백성들이 떠받치고 있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만, 무너지진 않는다.
* * *
-이집트 정부랑 계약 조율됐어.
“그래?”
-어. 외교부에서 많이 신경써 줘서, 합의가 어렵지 않더라. 내일 올라가서 사인만 하면 돼.
“내일 몇 시?”
-오후 4시. 계약 마치고 저녁 먹기로 했어. 괜찮지?
“어.”
-이집트 대사관에서도 이번 말리 대통령님 방한을 주의깊게 봤나 보더라.
“그래?”
-잠깐 갈게. 할 이야기가 많아.
“식당으로 와. 점심도 먹어야 하고. 안마 서비스도 나가야 해.”
-어. 식당서 보자.
희택이와의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의 식당은 매우 성업중이었다. 대기실을 만들었는데도 대기실에 입장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모토바 대통령의 방한은 미디어와 커뮤니티 모두에서 주목하는 일이었다.
모처럼만의 외교적 성과에 뉴스를 틀 때마다 말리 이야기가 나왔고, 인터넷과 너튜브에서는 안젤리나 공주와 내가 트렌드를 장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식당이 주목받은 것은 필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기가 많았던 엄마의 식당은 이제 완전히 유명세를 탔다.
가격에 비해 맛이 너무 뛰어난 미친 가성비, 거기다 외국인과 할머니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힙한 분위기에 말리에서 공수해 오는 뛰어난 품질의 닭과 달걀이 정점을 찍었다.
“어이구. 우리 작가님 오셨네.”
“어깨는 괜찮으시죠?”
“정말 이 집 음식이 보약이라니까. 기분 탓인지 먹고 가면 땅으로 푹 꺼질 것 같던 어깨가 한결 부드러워.”
“잠시 주물러 드릴게요.”
“아이구. 우리 작가님이 바쁠 텐데. 그렇지 않아도 하누아나 청년이 5분 넘게 주물러주고 갔는데.”
“아니에요. 하누아나는 하누아나고 저는 저죠.”
대기실을 돌며 할머니들 안마를 해드리고 있는데, 희택이가 미정이와 함께 올라왔다.
종종 희택이는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원래 허우대가 멀쩡해서 정장 차림이 잘 어울렸다.
그러다 희택이가 본격적으로 정장을 입기 시작한 것은 1주일 전 휴학을 결정하면서부터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난 비공식적인 일이었던 중국 관련 수입을 제외하곤 희택이와 미정이에게 3할의 월급을 성실히 지불하고 있었고.
희택이와 미정이는 그 3할에서 사무실 경비를 쓰고 남은 돈을 5대 5로 나눴다.
난 사무실 관련 비용도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희택이는 월급이 아니라 수익을 나눠갖는 매니지먼트 담당이면, 사무실 운영비를 자신이 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기도 했고 두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한 만큼 난 수긍했다.
그리고 지금.
내 일을 맡은 지 겨우 3달 가량이 지났을 뿐이지만, 두 사람은 각자 4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3달에 4천만원이라니, 대기업조차도 이런 연봉은 쉽지 않다.
거기다 나 또한 희택이와 미정이의 지원에 매우 만족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이집트 건으로 다시 억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으니, 희택이와 미정이가 학교에 연연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희택이와 미정이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휴학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내 경우는 희택이와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나 역시 막대한 수익이 보장된 만큼 학교를 그만둬도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내 경우엔 휴학을 진행하는데도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난 학위 따위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야 할 인재가 돈과 명성에 취해 학문을 버리려 한다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 지금도 종종 연락이 오는 터라 자퇴까지 한다고 하면 엄청나게 귀찮아질 듯 했다.
“이집트 정부에서 너랑 촬영팀을 공식 초청했어.”
“그게 뭔 소리냐?”
유적에 대한 탐사야 들은 바 있지만.
정부에서의 공식 초청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오빠가 촬영팀 데리고 말리에 들어가잖아요. 돌아오는 길에 이집트에 들러서 이번 의뢰 건의 협의를 하고 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집트 정부에서 민주정에 도전하는 말리 정부를 엄청 주시하고 있더라고요.”
아프리카의 정치 관계는 복잡했다.
그중에서도 강국에 속하는 이집트는 내전이 없었지만, 국경을 맞댄 수단의 내전이 장기화되고, 에티오피아가 내전 끝에 에레트라아와 분국한 것에 긴장하고 있었다.
희망이 없는 아프리카는 명백히 분열하고 있었고, 수단의 난민이 이집트로 몰려들면서 이집트 내부도 심각한 폭탄을 떠안은 셈이 됐다.
주변 어느 나라를 봐도 모두가 위기인 상황에서 희망의 불꽃을 피워올린 말리는 반복되는 아프리카 국가의 쿠데타와 내전을 극복할 하나의 희망처럼 보였다.
“사실 이집트 경기가 조금씩 더 나빠지고 있대.”
“그래?”
“어디든 다들 문제야. 대사님 말씀인데 이집트에선 자국의 경제가 어렵지만, 그런데도 말리에 원조를 진행할 생각인가 봐.”
서방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니.
좀 의외였다. 심지어 어려운 형편인데도 말리를 도우려 한다는 게 의아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보는 말리는 한국에서 보는 말리와 전혀 달랐다.
희택이가 그 이유를 부연했다.
“말리도 내전을 겪었지만, 내전에서 승리한 쪽이 평화를 위해 부족을 독립시켜 준 것을 주목하고 있어.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언제든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형편이니까. 세네갈에서도 아주 반응이 좋다더라.”
“세네갈도?”
“응. 모토바 대통령님이 말리는 아직 관광이 어렵다면서, 세네갈을 찾을 때 덤으로 말리를 찾아달라고 했잖아. 유학생들 밥도 사주고. 이번 방한으로 말리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도가 높아져서 실제로 자국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보더라. 세네갈에서도 일정부분 원조가 있을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얻어 걸린 떡이다.
듣다보니 점점 이해가 됐다.
이집트 대사님은 이번 방한 때의 너튜브 영상의 조회수를 보고는 세네갈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충분히 자국에도 분명한 수요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집트에서도 먹방을 찍어 달래.”
“이집트에서도?”
“어. 이건 별도 계약인데, 네가 이집트 유물의 해석을 새롭게 하는 책을 쓰는 일과 별개로 이집트라는 나라를 말리처럼 한국에 긍정적으로 소개해주기를 바라고 있나 봐.”
“그래? 그게 잘 될까?”
“이집트에서도 한류가 꽤 인기를 끌고 있대. 대사님 말씀으로는 이집트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만큼 먹는 것에 진심이라서, 잘 알려지기만 하면 이집트 국내에서도 먹방이 반드시 유행할 거라고 믿으시던데.”
다음날 난 적양파, 짜냥이 두 명의 너튜버와 함께 이집트 대사관을 찾았다. 유물 관련 책 출판 계약에 더해 먹방 콘텐츠에 대한 업무협약에 서명하기 위함이었다.
계약을 맺는 자리엔 강영식 과장이 함께 했는데, 강 과장은 이번의 계약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말 작가님은 아프리카중동국의 보물입니다. 아니, 대한민국의 보물이에요.”
“다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인데요. 이집트 철도 건이 잘 되면, 말리에 식량 지원이나 넉넉히 부탁드립니다.”
“그건 그래야죠.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도, 대현 쪽에서도 약속드릴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럼, 나흘 뒤에 출국하시나요?”
“네. 말리 쪽도 진심이더라고요. 저희 뿐만 아니라, 너튜버 분들이랑 촬영팀들까지 모두 말리 쪽에서 항공권과 체류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잘 돼야 할 텐데요.”
“잘 될 겁니다. 진짜로 말리의 달걀이랑 닭은 훌륭하니까요.”
* * *
“잘 다녀왔니? 희택이는?”
“여기 앞에까지 태워다주고 돌아갔어요.”
“들어왔다 가라고 하지?”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요.”
“네 방에 가서 이야기를 좀 하자. 할 이야기가 있어.”
아버지는 오늘 있었던 도곤족 마을에서의 회의 결과를 설명해주셨다.
평소처럼 개발이나 학교 건설 관련 이야기를 해주시겠거니 했는데, 눈이 번뜩 떠지는 말을 들었다.
“하와이에다 마을을 만들기로 했어.”
“네?”
“하누아나네 아버지(도곤족 족장님)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금처럼 출퇴근하는 게 더 불안하다는 거야. 왜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 그런 것들도 있잖냐. 매일 같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금역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 반복하다가는 오히려 눈에 띈다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지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다분했다.
도곤족은 모토바 대통령의 출신 부족인데다, 나와도 매우 가깝다.
투어가 진행되면, 반드시 중요 여행 포스트가 될 것이 뻔했다.
평화로운 도곤족의 분위기에 더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특히나 볼만한 곳이었는데, 그곳엔 금역의 출입구가 있다.
금역이라는 말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상엔 궁금한 게 많고, 그걸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출퇴근은 확실히 위험했다.
“그렇긴 하겠네요.”
“일단 500명 정도를 빼기로 했어.”
“집은요?”
“그건 대통령이 알아서 해준다던데? 세네갈이라던가 이웃나라에서 조립식 건물을 잔뜩 사올건가 봐.”
“비용은요?”
“비용도 문제될 게 없대. 세네갈에서도 일정부분 도움을 준다고 하고. 보크사이트인가 하는 광산 수입이 엄청 늘었다더라.”
“갑자기 500명을 빼도 된대요?”
“뭐, 거긴 우리만큼 세세하지는 않으니까. 잘 됐어. 그렇지 않아도 감자랑 고구마가 무섭게 크는 바람에 일손이 모자랐거든.”
“전하께도 알려야겠죠?”
“그래야지. 아까 내가 운은 떼 놨거든. 전화 기다린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1층으로 내려가시면서 내게 택배와서 책상에 올려뒀다는 말을 하셨다.
벌써 도착한 건가?
재빨리 공유기를 설치했다.
와이파이가 핸드폰에 정상 연결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바로 레몽드로 넘어가서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와이파이의 동심원 표시가 뜰지 너무나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