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연결 2
와이파이 신호는 네 칸이 꽉 차 있었다.
되는구나!
마음이 붕 뜨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수없이 떠오르며 폭죽처럼 영감이 쏟아졌다.
그러다가 레몽드에 인터넷이 연결된 것이 왜 이렇게도 기분이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순간 멍해졌다.
인터넷이 연결된 것이 좋은 건, 내가 레몽드에 무엇인가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터넷이 연결된 레몽드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해주고 싶은 일이 많아서라는 걸 깨달았다.
난 더 이상 갑자기 열린 게이트로 판타지 세계의 왕실과 교류하는 사람이 아니다.
레몽드의 일도, 말리의 일도 모두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손톱 아래 작은 가시가 박히거나, 면도하다가 입가가 조금 베어도 온 몸이 아프다.
와이파이처럼, 레몽드와 내가 완벽히 연결된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로 펠리페 2세를 찾았다.
인터넷 연결은 중요한 일이고, 나는 펠리페 2세와 레몽드의 미래를 함께 여는 사람이다.
너무 늦었을까 하는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다행히 펠리페 2세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갔던 일은 잘하고 왔나?”
“네.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가? 얼마나 벌었기에 자네같은 사람이 엄청나다고 하는 겐가?”
“밀 4만 포대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을 벌었습니다.”
“4만! 4만 포대라 했나?”
펠리페 2세는 내가 받은 돈의 액수에 놀랐다.
그저 고대 유물에 쓰여있는 글자를 해독하는 답례라기엔,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라 여기는 듯했다.
“그 정도라면, 저번에 말리에 줬던 금괴의 몇 배 값이 아닌가?”
“예?”
뭔가 계산이 맞지 않았다.
곧 이유를 깨달았다. 모든 작업에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판게모니아와 지구는 밀의 가치가 전혀 달랐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번에 번 돈은 저번에 주셨던 금괴 값의 1/40 정도입니다.”
“아니. 밀이 그렇게 싸단 말인가?”
“네. 지금의 지구는 기술개발을 통해서 작물의 생산량이 몹시 늘어났습니다. 금은 레몽드나 지구나 희귀하고 귀한 금속이라 가치를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펠리페 2세의 눈에 화색이 돌았다.
이어 나는 인터넷이 연결됐다고 말했지만, 펠리페 2세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제국을 통해 금이나 보석을 구할 테니 밀이나 쌀을 더 들여올 수 없는지를 물었다.
펠리페 2세의 진심이 전해졌다.
백성의 삶보다 내가 건네는 현대의 먹거리나 제국을 향한 원한만이 중요했던 왕이 변했다.
펠리페 2세가 나와의 교류 이후 시행한 정책들은 모두 뚜렷한 방향성이 있었다.
마수의 숲을 개간하거나, 소작농들에게 소출을 나눠주는 일, 종이나 총을 만드는 일까지 펠리페 2세가 시도하는 일들은 모두 국력을 길러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가능합니다. 금이 있으면, 식량을 구하는 건 이제 어렵지 않게 됐습니다. 말리에서 수입해서 레몽드로 들여오면 되니까요.”
“기가 막히군. 역시 자넨 모두 계획이 있었어. 자네를 믿었기에 말리라는 나라를 돕는 걸 반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네.”
“모두 전하의 현명한 용단 덕분입니다. 아, 아버지가 말리 백성들을 500명 정도 하와이로 이주 시킬 생각이라고 합니다.”
“나도 들었네. 우리도 500명 정도를 상주시킬 생각이야. 자네 아버님이 집을 순식간에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우리 백성들의 집도 부탁했다네.”
펠리페 2세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와이가 모든 걸 바꿀 걸세. 자네도 안토니에게 하와이에서 키우는 감자와 고구마 농사가 엄청나게 잘 되고 있다는 걸 들었지?”
“전 이틀 전에도 하와이에 다녀왔습니다. 살라만더의 번영 때문인지 닭의 개체수가 엄청 늘었더라고요.”
도곤족 마을의 닭도 많이 늘었지만, 하와이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와이의 닭 농장은 네 곳으로 늘었고, 닭의 사육 개체수도 2만 마리가 넘었다.
달걀이 쏟아지고 있었다.
펠리페 2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제국에 공출할 닭 말일세. 손질한 닭 200마리에 더해서 천 마리 정도의 병아리를 보내려 하네.”
“천 마리나 말입니까?”
펠리페 2세의 표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변했다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펠리페 2세가 다른 곳도 아닌 제국에 닭을 천 마리나 보내면서도 웃을 수 있다니.
원래 제국에 대한 포한(마음에 품은 원한)이 있는 펠리페 2세는 공출에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가짜 충성심으로 황제를 속여 레몽드가 발전할 시간을 번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펠리페 2세에겐 힘없는 왕국 때문에 자국의 백성도 먹이지 못하는 닭을 적국의 원수에게 보내야 한다는 설움이 항상 존재했다.
변심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닭을 그렇게나 보내도 괜찮으신 겁니까?”
“금을 좀 뜯어내야지. 자네 말대로라면 제국의 금을 뜯어내 지구의 식량을 사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나. 그리고 황제도 제 놈이 다스리는 나라가 제국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뿐이라는 걸 알아야 할 때도 오지 않았나.”
펠리페 2세는 제국에 보낸 닭의 품질이 레몽드 산 닭보다 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린 충성을 다하고 있어. 그 어느 나라도 우리 레몽드만큼 충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 황제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우리에게 칼 끝을 들이밀지 않을 게야.”
“맞습니다. 안토니 왕자를 아껴서 귀애하는 막내딸까지 주려하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강한 기사단이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황제는 아직도 밤만 되면 어두컴컴한 방에서 맛도 없는 밥을 자랑스레 먹고 있을 거야. 그 꼴을 상상하면 속이 풀려.”
이제 이해가 됐다.
문화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힘이다.
에어컨이 없었을 때는 부채에 만족할 수 있지만, 에어컨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는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없다.
펠리페 2세가 그런 식으로라도 제국에 대한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 * *
펠리페 2세를 알현하고 집으로 돌아오려 게이트 쪽으로 다가가다가, 실제로 인터넷 연결을 몹시 반길 존재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가 본 적 있는 드워프들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사람과 마주쳤다.
안토니 왕자가 드워프들과 치킨과 맥주를 나눠먹고 있었다.
“형! 이 밤에 어쩐 일이에요?”
“폐하께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런데, 왕자님이야말로 왜 이곳에 계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내일 날이 밝으면, 형에게 전화하려고 했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안토니 왕자가 모루의 아들들의 친구가 됐다네.”
이미 거나하게 맥주에 취한 드워프들이 두서없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모루의 아들들은 마수의 숲에 자리잡고 있는 드워프 부족의 이름이었다. 안토니 왕자의 정성과 진심이 단단했던 드워프들의 벽을 뚫어낸 것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치킨과 맥주, 그리고 편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와이가 발견되고 나서도 말입니까?”
“네. 처음엔 닭을 키울 온천이 필요했지만, 온천이 필요없게 된 뒤에도 어쩐지 포기가 되지 않더라고요.”
안토니 왕자는 교류와 화합이 얼마나 삶을 바꾸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형을 만나 레몽드가 구원을 얻었어요. 스승님(우리 아버지)이 하와이로 오시게 되면서부터 레몽드의 백성들도 더 큰 희망을 갖게 됐죠. 하와이에선 우리 백성들과 도곤족의 사람들이 함께 일해요. 지금은 우리가 돕고 있지만, 말리의 사람들이 일어설수록 레몽드도 도움을 받을 거예요.”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왜 드워프 부족을 설득하는데 효과적이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앉은 드워프가 조용히 말했다.
“안토니 왕자가 부탁하더군. 자기 힘만으로는 모자라다고 말이야. 우린 사실 어정쩡한 존재들이지. 우리는 드워프지만, 인간의 손에서 자라 인간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네.”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눈에 초점이 돌아온 드워프는 자신들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진지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맥주를 크게 들이킨 드워프는 ‘어쨌거나 요즘처럼 즐겁게 살았을 때가 없으니, 우리 모루의 형제들도 이 즐거움을 함께 누려야 하지 않겠나’ 하며 캔디스 뮤직비디오에 시선을 돌렸다.
안토니 왕자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절 관찰해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낸 편지도 모두 읽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자신들을 꾀려는 새로운 방법인가 했지만, 제가 계속해서 농노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요?”
“제 모습을 지켜보다 처음으로 두고 간 치킨과 맥주를 먹었는데 맛있더랍니다. 드워프 아저씨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밝힌 편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안토니 왕자는 대답 없는 드워프들에게 계속해서 마음을 보냈고, 결국 답을 듣게 됐던 것이다.
왕성의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곤 하나 그의 오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우직하고 성실한 안토니 왕자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럼 드워프들과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겁니까?”
“네. 사흘 뒤 첫 거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거래요?”
“네. 치킨 300마리와 맥주 4만 리터를 가져다주기로 했어요.”
교류라는 건 주고 받는 것이다.
치킨과 맥주를 가져다주고, 뭘 받아올지가 궁금했다.
“드워프 쪽에서는 뭘 받기로 한 겁니까?”
“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거든요.”
드워프들은 타고난 기술자이자 광부들이다.
드워프들이 캐낸 금이라니.
말리를 회생시킬 마중물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았다.
나의 세계가 점점 확장되고 있었다.
레몽드와 말리에 이어, 드워프들까지.
공동의 번영을 누려야 할 대상이 늘고 있었다.
* * *
안젤리나 공주의 먹방 영상은 모토바 대통령의 방한 영상과 함께 말리의 중앙 방송을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말리 국민들의 모토바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인기는 굉장했다.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밤바라족의 일부 계층에선 투아레그족과의 전쟁을 멈춘 정부에 대해 불만이 여전했지만, 90% 이상의 국민은 총소리가 사라지고, 봉쇄됐던 국제 경제 제재를 풀어낸 현 정부에 강한 지지를 보냈다.
그 와중, 중앙방송에서 소개한 영상들은 대단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놀랍도록 발전한 한국의 현대적인 모습에 눈을 빼앗긴 말리 국민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대통령 일행을 매우 환대하고 있다는 것을 표정과 분위기로 읽어냈다.
그리고 대통령의 방한 영상에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안젤리나 공주의 영상은 모토바 대통령보다도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백인 소녀, 인기 좋은 대통령의 수양딸인 데다 한국어를 잘 알아서 서울에서 큰 사랑을 받는 자국의 소녀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특히, 맛있어 보이는 한국의 음식을 두고도 말리의 닭과 달걀, 빵이 더 맛있다며 말리에 초대해 말리의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안젤리나 공주의 말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이 알려졌다.
도곤족에게 놈모의 전승자로 인정받은 난, 전설의 놈모처럼 모든 부족의 언어를 현지인처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역사 속에서도 주로 종교에 빠지는 것은 힘든 사람들이다.
마음에 의지할 것이 필요해, 종교라는 대상에 의탁해서라도 평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 구원을 기다리던 말리 국민들에게 나와 한국은 희망의 증표가 됐다.
연일 말리의 여론과 SNS는 한국에 대한 것으로 가득 채워졌다.
닭을 네 마리나 해치우는 무시무시한 식성의 적양파, 귀여운 얼굴로 먹성을 부리는 짜냥이의 영상들이 계속 뉴스에 소개됐다.
우리 일행은 입국하기 전부터 주목받았고, 말리의 각 부족들은 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절대로 실망을 줘선 안된다는 여론에 각 부족 최고의 요리사들과 함께 명물 요리를 준비했다.
뭔가 일이 잘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상민아. 준비 다 됐냐?”
“어. 지금 어딘데?”
“가고 있어. 5분쯤 있으면 도착이야.”
“어. 적양파 씨랑 짜냥이 씨 팀은 준비가 됐대?”
“어.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어.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더라.”
미리 싸둔 캐리어를 들고 방을 나서려 할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국제전화가 왔다.
중국 쪽인가 해서 전화를 받지 않을까 하다가, 말리 쪽일 수도 있어서 전화를 받았다.
“김상민 작가님이십니까?”
“네. 누구시죠?”
세련된 프랑스어였다.
역시 말리 쪽인가 했더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자와드 공화국의 알리 다함입니다. 잠시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알리 다함은 독립한 투아레그 족이 만든, 아자와드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