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심장.
난 꽤 오랫동안 황제와 신료들의 사이를 벌리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 일에 책임감이 있지도, 그렇다고 뛰어난 성과를 내지도 못하는 제국의 신하들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힐 수 있었던 것도 황제 역시 자국의 신하들보다 나나 안토니 왕자를 믿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물론 제국의 신료들에게 난, 보이지도 않는 소국의, 귀족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촌뜨기일 뿐이다.
그런 내가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것인 만큼 당연히 발끈하는 신하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말은 우리가 우리 일을 게으르게 하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 전 계속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폐하께서는 저희가 가져오는 음식을 그리 반기셨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내가 걸고 나온 음식이라는 말에 다들 왜 뜬금없는 말을 하나 했지만, 난 곧 핵심을 찔렀다.
“제국은 레몽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강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국의 억조창생은 모두 폐하의 성덕 안에 살아갑니다. 손톱만큼이라도 자존심이 있었다면, 레몽드라는 보이지도 않는 소국의 왕자와 부마가 올린 음식에 기꺼워하시는 폐하를 보며 속이 터졌을 것입니다.”
이어질 말을 짐작한 행정관들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으로 질렸다.
이를 본 황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찬란한 제국의 태양께는 제국의 가장 귀한 것이 바쳐져도 모자란데, 어찌 소국의 것을 드시게 한다 말입니까? 더 맛있는 것을 만들 생각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사이먼, 넌 왜 그런 사정을 모두 알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
“레몽드는 폐하의 성덕에 기대어 살고 있사옵니다. 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더 잘하고 싶었사옵니다. 부족하오나, 폐하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사옵니다.”
난 그 뒤로 미리 준비해놓았던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됐다.
황제가 황상에서 내려와 나와 안토니 왕자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난 황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폐하, 청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슨 말이든 하라.”
“새롭게 짓고 있는 황성의 근처에 별궁 하나를 저희 레몽드가 맡아서 건설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별궁을?”
“네. 폐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료로서,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신민으로서 폐하께 건물을 지어 바치고 싶사옵니다.”
황제는 곧바로 허락하면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역시, 내겐 레몽드 밖엔 없다. 시종장.”
“네. 폐하.”
“이들의 마음이 귀하구나. 안토니와 사이먼에게 보고에 들어갈 기회를 주어라.”
보고?
보물창고 같은 건가?
슬쩍 눈치를 살폈더니 대신들이 경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토니 왕자마저 놀라고 흥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는 동시에 분노한 황제를 막지 못했다.
대전에서의 충격적인 회의가 끝이 난 후, 나와 안토니 왕자는 시종장의 안내에 따라 황실의 보고 앞에 섰다.
“제한 시간은 30분이고, 하나의 보물만을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다.”
“네.”
“왕자님부터 들어가시죠.”
“네. 다녀오겠습니다.”
딱히 필요한 것은 없다.
황제의 하사품이니 팔아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기같은 건 더더욱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안토니 왕자의 선택이 궁금했다.
난 무조건 황제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하리라 마음먹었다.
안토니 왕자는 비교적 빠르게 보고를 나왔다.
“무엇을 선택하셨습니까?”
“이것입니다.”
안토니 왕자가 선택한 것은 여인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루비가 박힌 브로치였다.
매우 화려하고 세공이 아름다워서 비쌀 것 같긴 했지만, 왕자가 왜 저런 브로치를 선택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왕자의 눈빛으로 저 브로치가 나란 황녀에게 줄 선물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썩 괜찮은 선택이다.
아니, 더할나위 없는 선택같기도 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순정을 위해 버리는 사내를 사랑하지 않을 여인은 없다.
이는 나란 황녀의 아버지인 황제도 흡족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리로 따라오시죠.”
“네.”
안내를 받아 보고 안에 들어섰다.
엄청나게 두꺼운 강철문을 통과해야 했지만, 보고의 내부는 마치 형광등이라도 켠 것처럼 밝았다.
빛이 나는 곳을 봤더니, 천장에 박힌 여섯 개의 빛을 내는 구슬이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야광주 같은 것일까?
은은한 빛이 아름다웠지만, 방을 밝히는 기능성을 생각한다면 내 방 천장의 2만원짜리 led등보다 못했다.
“자유롭게 고르십시오.”
보고는 섹션이 구별돼 있었다.
예상한 것처럼 보석류와 마법 아티팩트, 보검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박물관처럼 보물들마다 연원이나 효능 같은 게 쓰인 판넬 비슷한 것이 붙어있었다. 다만 전시품들이 눈부시게 호화롭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볼품없고 가치 없어 보이는 것을 찾으려 했다.
내가 황제에게 바치는 충성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향했다.
내가 마치 사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주변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자 나를 따라 보고에 들어온 근위기사가 작게 감탄했다.
그때였다.
노움과 살라만더, 실프와 뼈다귀 아드바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리고 일제히 푸른 색 돌 앞에 서더니 나를 올려봤다.
뭐지? 중요한 물건일까?
빠르게 판넬에 적힌 설명을 읽었다.
가지고 있으면 비를 불렀던 돌이지만,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끌렸다.
비는 말리와 아자와드에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와 계약한 세 정령들이 모두 튀어나온 것이 심상치 않았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네?”
방금의 감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근위기사의 눈빛은 웬 미친 놈이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놀라든 말든 난 바로 몸을 돌려 보고를 빠져나왔다.
왕자도 나도 선택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린 다시 시종장을 따라 황제를 알현했다.
황제는 우리가 무엇을 골랐는지 궁금해했다.
“안토니, 넌 브쿨렌의 펜던트를 골랐다고?”
“네. 나란 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싶었는데, 마침 실드마법이 내장돼 있는 것을 보고 고민없이 골랐사옵니다.”
“훌륭하다. 그래, 자기 가정부터 챙길 줄 아는 마음이 나라를 이끄는 왕으로서의 첫 번째 준비가 아니겠느냐? 사이먼 넌?”
“전 ‘비를 부르는 돌’을 골랐습니다.”
“그런 것이 있었느냐?”
근위 기사가 황제의 옆으로 다가가 내가 보물을 고른 정황을 말했다.
“그것은 효능이 다한 물건이 아니냐?”
“네. 그러기에 이걸 골랐사옵니다.”
“이유가 있더냐?”
“선물은 주고 싶은 마음을 받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허나 폐하께서 하사하시는 것인 만큼 탐내는 사람도 많겠지요. 저는 무력이 약하여 이를 지킬 재주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늘 휴대할 수 있는 작고 가치가 없는 것을 고르려 했사옵니다. 효능이 다한 돌이니 누군가 훔쳐갈 염려가 없으니까요.”
내 대답에 몇몇의 중신이 한숨을 쉬었다.
흔들리는 눈빛이었다.
당연히 거짓이라 생각했던 내 충성심이 진짜일까를 의심하고 있었다.
황제는 더욱 크게 웃었다.
“보거라. 저 마음이 진짜 충성심이라는 것이다.”
우릴 보는 황제의 눈은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와 같았다.
고대 중국을 뒤흔들었다는 포사나 양귀비가 된 듯한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 * *
펠리페 2세는 나와 안토니 왕자의 보고를 듣고는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빠졌다.
“상민아. 너무 심한 것 아니냐?”
“네?”
“거짓으로 하는 충성이 아니냐? 그렇게까지 진심을 보일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질투인가?
“그게 제일 효과가 좋을 것 같아 그냥 그걸 선택했습니다. 황제가 주는 걸 팔 수도 없고, 가지고 있어도 딱히 광영이다 그런 마음도 없었거든요.”
“별궁 이야기는 또 무엇이냐?”
“언제까지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실 순 없지 않습니까? 레몽드랜드가 개장하면, 수도 없는 제국 귀족들이 궁을 찾을 것인데요.”
난 현대식 설비를 갖춘 별궁을 만들어서 바치면서, 이를 빌미로 레몽드 왕궁의 편의성을 리모델링 하자고 말했다.
“황제에게 별궁을 바치고, 왕실에서 지구의 물건들을 쓰자는 겐가?”
“네. 물론 핵심적인 것들은 보내지 말아야 하지만, 전기등만 설치해도 제국 놈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겁니다.”
“그렇지! 역시 상민이다. 그래. 언제까지 제국 놈들 눈치를 보느라 등도 켜지 못하고 살아.”
“드워프들도 있으니, 황성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현대식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별궁을 보고 나면, 화려하게 새로 짓는 황궁도 전혀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에 펠리페 2세가 즐거워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비를 내리는 돌을 꺼냈다.
무엇인가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크앙.
내가 돌을 꺼내자마자 나비가 털을 부풀리며 거칠게 울었다.
그리고 나비의 울음에 푸른색 돌이 깨어나듯 엷은 빛을 내뿜었다.
[청룡의 심장]지금은 세상에 없는 동청룡의 심장. 취하는 자는 물을 다룰 수 있다.
‘동청룡?’
파팟.
뼈다귀로 만들어진 아드바크, 불새 모양의 살라만더, 작은 흙고양이 모양의 노움과 반투명한 파란색 고양이 실프 옆에 물빛의 매우 작은 용이 나타났다.
[물의 정령, 운디네]드디어 물의 정령을 얻은 것인가?
감격은 대단했지만, 의외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태까지 정령이 나타나면 항상 뭔가 기술을 알려줬던 것과는 달랐다.
비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운디네는 그저 허공에 존재할 뿐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노움과 실프, 살라만더와 아드바크가 차례로 사라지더니, 혼자 남아있던 운디네가 청룡의 심장으로 뛰어들 듯 스며들었다.
손에 쥔 청룡의 심장은 엷게 빛나던 빛을 잃고 다시 칙칙하고 바랜 원래 모습을 찾았다.
거의 10여 분을 더 관찰했지만 역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일단 아공간 목걸이에 청룡의 심장을 넣어두려고 했다.
그런데 청룡의 심장은 아공간 가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신기했다.
여태까지 아공간 가방에 넣을 수 없었던 물건은 처음이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는데, 청룡의 심장이 흐물거리더니 녹아서 내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었다.
거짓말처럼 청룡의 심장이 사라졌다.
[운디네의 보혈]물과 피는 생명의 원천. 당신의 피엔 강력한 회복력이 있습니다.
뭐지?
보혈이라.
매우 자연스럽게 보생환이 떠올랐다.
비밀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피는 숨길 수도 없다. 들키는 순간 난 연구소 같은 곳으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 * *
오랜만에 강영식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가님. 강영식입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중요한 일입니다.”
“말씀하시죠. 듣겠습니다.”
“작가님, 프랑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랑스요? 프랑스가 프랑스지 뭐 별다른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요.”
“프랑스가 작가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말리 때문인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말리는 한국과 손을 잡으면서, 정부 내에서 프랑스색을 지우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말리는 쓸모없는 땅 중 하나였지만, 프랑스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던 서아프리카 경제회의 소속 국가들이 하나둘 말리의 정책을 따르려 하고 있었다.
특히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니제르와 가봉의 새로운 권력자들이 프랑스 대신 친러시아 정부를 표방했으니, 안그래도 프랑스의 영향력이 나날이 좁아지고 있던 차에 또 하나의 일이 터진 것이다.
“혹시 말리 때문입니까?”
“네. 프랑스에서는 일방적인 프랑스 배척 분위기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서아프리카 국가들마다 공공연하게 쿠데타, 경제적 독립을 거론하고 있다더군요.”
“그래서요?”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배척운동를 암중지휘하는 사람이 모토바 대통령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토바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는 인물이 작가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어이없었지만, 프랑스는 진심이었다.
프랑스는 이미 나에 대해서 엄청난 조사를 마친 듯했다.
“작가님.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네.”
“그 금 말입니다. 그 금은 어디서 가져오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