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치킨.
제퍼슨 단장의 기백과 각오는 대단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실력이 미치지 못했다.
장기를 그다지 즐기지도 않은 듯, 말이 가는 길 정도만을 아는 상황이었다.
이 솜씨라면 레몽드의 대여섯 살짜리도 이길 수 없다.
레몽드에선 이미 지구에서 넘어온 수많은 장기 관련 책과 기보들이 연구되고 있었다.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교류전에서 제국을 눌러주기 위한 준비 과정도 있지만, 정말로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이 장기를 즐기고 있어서였다.
져주기도 어려웠다.
난 장기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레몽드에서도 하위권의 실력이었지만, 제퍼슨 경의 실력이 너무 모자랐다.
정말 순식간에 난 장기판의 전장을 쓸어버렸다.
제퍼슨 경의 얼굴이 땀에 젖었고, 황제는 눈을 감았다.
승부에서 진 사람이 누구나 말하는 ‘한 판만 더’도 말하지 못할 정도의 참담한 패배였다.
“사이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폐하. 단장님의 지금 패배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옵니다.”
황제가 보는 앞에서 마수들에게 황제의 말을 잃은 제퍼슨 경의 땀이 이마로 번들거렸다. 그러다 패배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누구나 처음이 있는 것이옵니다. 검사도 패배와 실패를 양분으로 실력을 키웁니다. 제가 이 게임을 만든 것은 여흥을 위한 것도 있으나, 다치지 않고 승부욕과 향상심을 기르기 위해서이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황제와 기사 단장이 빠져들었다.
“전 검이라곤 들어본 적도 없는 촌뜨기지만, 성실히 무예를 닦고 무용을 뽐내며 전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명예와 소중한 대상을 지키는 각오가 기사도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뜬금없이 기사도를 말하는 내게 두 사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승패는 무를 다루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있는 것이옵니다. 최선을 다하고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옵니다. 제퍼슨 경, 고개를 드세요. 이번에 져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 다음에 승리하면 됩니다. 단장님은 그저 폐하의 말을 지키지 못한 지금의 참담함과 분함을 잊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농장의 일이 바빠 자주 찾지는 못하겠지만, 사흘에 한 번씩은 황궁에 꼭 들르겠습니다. 힘을 내세요.”
길게 이어진 내 위로에 초로의 기사단장은 눈물을 쏟았다.
황제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역시 넌 대단하구나. 사이먼. 안젤리나와 혼약한 후에 내게 오지 않겠느냐?”
“네?”
“외롭고 쓸쓸하구나. 짐에게 진심을 다하는 너와 안토니를 볼 때마다 욕심이 나는구나.”
황제는 간절했다.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폐하.”
“그래. 사이먼.”
“전 안젤리나 공주와 혼약을 결정하며 안토니 왕자와 약속한 게 있사옵니다.”
“그래? 그것이 무엇이냐?”
“혼약하면 저흰 제 영지로 돌아가서 왕실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겠다는 약속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처음엔 몰랐지만, 지금 전 제 능력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능력이 뛰어난 외척이 힘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옵니다. 전 욕심이 많은 사람이옵니다. 욕심과 능력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옵니다. 제 입조는 황태자 전하께 위협이 될 것이옵니다. 전 폐하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이제까지 겸손하기만 하던 내가 아니었다.
황제와 기사단장은 감히 황태자의 아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무도한 말을 거침없이 말하는 나를 입을 떡 벌리고 노려봤고, 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안토니는, 안토니는 네 생각을 받아들였느냐?”
“그러하옵니다. 안토니 왕자는 이미 안토니 왕자만의 꿈을 꾸고 있사옵니다.”
“다른 꿈이라니. 친우인 널 제쳐둔 안토니의 꿈이 무엇이냐?”
“궁방토를 경작하는 소작농도, 영주의 땅을 소작하는 소작농도 모두 레몽드의 백성이옵니다. 왕실이 개발한 마수의 숲을 경작하는 백성이 받는 대우를 영지민들은 받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요.”
왕실직할령이야 왕의 명을 따르지만.
귀족의 영지는 작은 왕국이나 마찬가지. 왕조차도, 황제조차도 ‘권할’ 뿐 간섭하기 어렵다.
이를 타파하여 봉토를 다스리는 영주 대신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받고, 왕의 말을 손과 발처럼 실행하는 중앙집권을 이뤄서 레몽드 백성 모두가 좀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 한다는 안토니 왕자의 계획에 황제와 기사 단장은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그런 나라가 어찌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없는 나라기에 꿈꾸는 것이옵니다. 안토니 왕자가 레몽드의 왕이 되면, 전 공주와 함께 낙향하여 영지를 반납하고 레몽드의 지방행정관이 될 작정이옵니다.”
황제는 안토니 왕자의 계획에 압도됐다.
왕이 명령하는 대로 온 나라가 움직이는 일원화되고 빠른 조직체계는 황제가 꿈꿔 마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 황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래서인 것이냐?”
“네?”
“네가 도로를 닦으라 한 것이 그 이유인 게냐?”
“맞사옵니다. 왕의 말이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빠르게 전해지고, 왕의 은혜가 직접 백성에게 닿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길이기 때문이옵니다.”
“왜 진작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옵니다. 제국은 너무 거대한 강역인데다, 귀족들의 힘 역시 너무나 강하옵니다. 길을 닦는 것만으로도 이미 수도 없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사옵니까?”
혼이 반쯤 나간 황제는 레몽드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겠느냐 물었다.
나는 공손히 답했다.
“그래서 시작하지 않은 것이옵니다. 레몽드가 폐하께 기대 군사력을 포기한 것은 수십 년이 걸릴 대계를 이루기 위한 시작이며 준비이옵니다.”
난 마수의 숲을 개간하는 영지에 급식소를 만들어 영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귀족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 한다는 계획도 털어놓았다.
모든 것이 연결됐다.
단순히 충성심으로 포장됐던 레몽드의 행보에 이런 말도 안되는 큰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사단장이 소름이 돋는 듯 팔을 쓸었다.
황제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렇지. 제국의 만민은 모두 짐의 백성이지. 맞는 소리야.”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황제는 무엇인가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작은 불씨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듯 했다.
* * *
“상민아.”
“네. 엄마.”
“식당 말이야. 뭔가 수를 내야 해.”
“네?”
“동네 할머니들이 이틀째 들어오지 못하고 있어.”
“아······.”
대기실에 입장하기 위한 대기줄이 생길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시기가 빨랐다.
맛이 좋고, 가격이 쌌다.
치료수를 조금씩 넣은 물병을 제공하고 있어서 식당에 왔다가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생겼다.
거기에 안젤리나 공주의 너튜브로 식당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며 화제성까지 더해졌다.
대기용 키오스크를 켜기도 전부터 줄을 서니, 할머니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식당을 확장하긴 그렇죠?”
“그렇지. 지금도 바빠죽겠는데, 식당을 하나 더 하라고? 프랜차이즈를 하라는 소리도 많은데, 그러면 닭을 어디서 가져오는지 알려야 하잖아.”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래도 지금처럼은 무리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식당을 하엔에게 맡기고 난 새로 식당을 하나 할까 봐.”
“네?”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동네 사람들이랑 너랑 작가님들 정도만 따로 받는 거지. 그럼 일도 쉬울 것 같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문제가 없으니까.”
좋은 아이디어다.
장사가 폭발적으로 잘 되면서, 일이 너무 늘었다.
엄마는 장사가 잘되는 건 좋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돈에 구애받지 않게 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엄마는 식당을 하는 것 자체는 좋아하셨지만, 돈 보다는 사람을 챙기고 싶으셨다.
다음 날부터 조금씩 준비를 시작했다.
빈 식당 건물을 임대하고, 주방설비를 채웠다.
하엔 누나의 한국인 남편을 기존 식당의 점장으로 고용했다.
손님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비밀식당이었다.
우린 간판을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일반 손님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자연히 손님 선별도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동네 사람들만 받자니까요.”
“그래도 하누아나네 친구놈들은 받아줘야지.”
“걔들은 젊은데, 그냥 줄 서서 원래 식당에 가면 되잖아요.”
“그래도 그건 아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누아난데.”
“그럴까? 하긴 하누아나는 식구니까.”
하누아나는 거의 매일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엄마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었다.
동네 어르신 15분과 하누아나의 친구들 셋, 우리 식당에 매일 오는 가난한 대학생 다섯이 비밀식당의 멤버가 됐다.
새 식당에 대한 만족감은 높았다.
할머니들도 이젠 살았다는 표정이셨고, 카운터만 보시던 엄마도 다시 요리를 시작했지만 하루 40끼 정도여서 한결 더 재미있어하셨다.
식당의 스타일도 다시 고정된 반찬이 아니라, 완전한 가정식 백반을 하셨다.
몸이 피곤하시거나, 귀찮을 때는 라면이나 시판 칼국수 같은 것을 하기도 하셨는데, 손님들 중 누구도 그걸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 작가님과 보조 작가님들은 엄마의 새 식당에 푹 빠져 있었다.
“희정아. 어머님, 오늘 점심 반찬은 뭐 하신대?”
“잠깐만요. 안젤리나에게 전화해볼게요.”
“어.”
“작가님. 카레 하신다는데요?”
“카레? 나 카레 좋아하는데. 오늘은 두 그릇 먹고 먹고 와야지.”
나도 엄마 카레를 좋아했다. 우린 식자재 수입이 자유로웠다. 말리산 소고기에 레몽드산 감자와 당근이 들어간 카레는 맛있었다.
맛있게 먹고 가게를 나왔는데, 밖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얼굴이 익숙한 식당의 단골들이었다.
다들 뭔가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를 따져 묻는 손님들에게 난 엄마가 너무 피곤하기도 하시고, 동네 어르신들이 식당을 이용할 수 없게 돼서 장사를 위한 가게가 아니라 그냥 따로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지만, 내 설명은 손님들의 화를 돋웠을 뿐이었다.
“이건 특혜 아닌가요?”
“네?”
“차별이고 특혜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식당이 닫았나요? 아니면, 가격이 오르거나 서비스가 떨어졌나요? 주방장도 바뀌지 않았고 모든 게 똑같은데요.”
“저희도 이 식당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난 거절했고, 엄마의 새로운 식당은 바로 공론화됐다.
찬반논란이 거셌다.
기회의 평등을 무시한 불공정한 행태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새 식당 멤버의 면면이 밝혀지자, 돈과 상관없는 부득이한 선택이라며 엄마의 선택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도 많았다.
세상엔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갑자기 기존 식당과 새 식당의 법률적 위반사항을 찾거나, 흠결을 신고하는 사람이 생겼다.
전부터 모두가 궁금해하던 우리 식자재가 어디에서 들어오느냐에 대한 해명요구도 빗발쳤다.
좀 짜증이 났다.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엄청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렇게 욕먹으면서 할 일도 아니고, 그만두자.”
“네?”
“안 팔면 그만 아니냐?”
“그럼 욕을 엄청 먹을 텐데요.”
“아니. 식당은 계속하는데, 팔지는 말자고. 동네 사람들이랑 결식아동들, 기존 손님이었던 C대 학생들만 받자고. 메뉴판 떼고, 돈은 낼 만큼만 내라고 하고.”
당장 기존 식당의 키오스크부터 없앴다.
문 앞에도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판을 붙였다. 들어오려 해도 막았다.
아예 휴업 표지판까지 걸어놓고, 포스기 대신 모금통을 가져다두었다.
아버지의 선택이 다시 찬반 논란을 불렀다.
괜히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들쑤셔서, 멀쩡한 식당을 폐업하게 만들었다며 우리의 뒤를 캔 네티즌이 욕을 먹었지만, 뭔가 캥기는 것이 있어 우리가 그런 선택을 했다며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 식당을 하던 자리에 설비를 들여, 치킨집을 개업하셨다.
레몽드산 닭을 튀겨 무료로 보육원이나 양로원, 관공서나 사회 취약계층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짜냥이와 적양파 등 친분이 있는 너튜버들을 불러서 치킨의 맛이 엄청나다는 것을 자랑했지만, 일반에 팔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격이 수그러들지 않고 동네 치킨집이 반발하자, 아버지는 관공서를 제외했다.
‘어차피 우리가 닭을 보내는 곳에선 돈을 내고 닭을 시켜먹지 않는다.’는 말에 동네 치킨집 사장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욕심 때문에 비난한 못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통쾌했다.
원래도 식당에서 꼭 찜닭을 해야겠느냐며 동네에서도 유독 말 많은 사람들이었다.
일반 판매 요청이 매우 거셌다.
돈을 주고도 사 먹지 못하는 치킨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