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225
225. 종장(終章)
중원표국은 오래전부터 명성을 날리던 손꼽히는 거대 표국이었다.
“저 산만 넘으면 이번 표행은 끝이군.”
중원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이자 일급 표두인 양무석은 멀리 보이는 림고산(林姑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표사들과 쟁자수를 쉬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림고산을 장악한 녹림의 위세가 높아, 여차하면 무력시위를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이용하는 길이기에 한차례 무력 과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종의 신고식이다.
중원표국의 무력은 이런 수준이니, 그에 걸맞게 적정선에서 통행세를 책정하라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다.
그래야 표국도 추후 림고산을 넘는 표행이 있을 때 예산을 얼마로 책정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양 표두님, 이제 슬슬 출발하실 때가… 으응? 대주님, 저기를 보십시오. 우리 말고 또 다른 표행이 있는 모양입니다.”
“호오! 잘 되었군. 함께 림고산을 넘으면 녹림의 무리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테지. 저 치들도 우리 덕분에 통행세를 덜 낼 테니 이득일 테고. 좋군.”
양무석이 기꺼워했다.
비록 다른 표국일망정 함께 이동하는 편이 좋다.
일단 덩치를 부풀려 보이면, 그만큼 녹림과의 협상에서 유리해지는 법이니까.
“저 표기는….”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려던 양무석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근래에 가장 주목받는 표국.
앞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표국이자, 녹림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는 초씨표국의 깃발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 술상부터 펴!”
비장한 음성으로 양무석이 소리쳤다.
무조건 연줄로 붙잡아야 하는 중요한 표국이 등장한 것이다.
***
혈교의 공격으로 화마가 휩쓸고 갔던 종남파는 예전의 위세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끝까지 초씨세가와 함께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서 대륙 전장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덕분이었다.
자재를 산 위로 옮겨 건물을 짓는다는 건 품삯이 보통 많이 드는 일이 아님에도, 대륙 전장이 화끈하게 지원해 주었다.
“제가 친구 하나는 잘 뒀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아니 그렇습니까, 방 장로님?”
종남의 장문인 표모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종남파를 훑어보았다.
공사가 끝난 곳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아무렴, 장문인이 아니었다면 우리 종남은 벌써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을 것이오. 허허허.”
방진석이 푸근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흘렸다.
초씨세가에 입은 은혜가 그야말로 하늘에 닿을 만큼이나 높고 크다.
“공사비용 정도는 우리가 낼 수 있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지 뭐겠습니까. 이왕에 이렇게 된 것, 종남산을 샅샅이 뒤져서 영물이라도 좀 구해다 줘야지, 미안해서 아니 되겠습니다.”
표모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서 초씨세가에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방진석은 그의 얘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문인, 편히 생각하시게. 그 사천당가가 초씨세가를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무리 좋은 영물을 구한다고 해도, 당가의 것을 따를 수는 없지.”
“그렇겠지요? 하긴 이제 초씨세가의 첫째와 당가가 혼인으로 맺어지니… 그건 그렇고, 둘째 공자가 대륙 전장의 주인이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표모성이 허탈하게 웃었다.
천하제일인에 천하제일 갑부이기까지 하다니, 초무성을 생각하면 그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
정주를 본거지로 둔 대륙 전장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천마신교를 털어온 자금이 모조리 대륙 전장에 흘러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마신교가 오랜 세월 끈질기게 버텨온 힘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바로, 막대한 자금력이었다.
수백 년을 쌓아온 천마신교의 자금이 대륙 전장에 흡수되는 바람에 일이 줄어들지가 않았다.
“휘휴!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실무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학아,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느냐?”
오래전에 일선에서 물러나 감사의 자격으로 대륙 전장에 소속된 백명술이, 뱁새눈을 하고서 백중학을 노려보았다.
“아버지, 엄살 피우지 마십시오. 저는 벌써 보름째 밤을 새우고 있지 않습니까.”
“뭐라? 천마신교의 자금은 모두 용처를 정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 수익만 관리하면 된다더니, 뭐가 그리 바쁘다는 게야?”
백명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맹주, 그 인간이 또 백만 냥을 맡겼습니다. 새 사업을 벌일 테니 계획을 짜 달라면서요.”
“그 친구가 요즘 잘나가는 모양이구나. 까짓거, 적당히 여기저기 투자하면 되지 않느냐. 난 또 뭐라고….”
“은자 말고, 금자로 백만 냥입니다.”
백중학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금자라고? 그래, 고생하거라.”
“아버지, 도와주시지요.”
“어째 허리가 이리 말썽인고… 비가 오려나….”
자신의 허리를 톡톡 두들기면서 아들의 얘기를 듣지 못한 척 슬그머니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백명술이었다.
***
무림맹은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사도맹과 천마신교를 평정한 최초의 무림맹이었으며, 민생과 치안에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에 일반인들마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초무성의 초기 투자로 창설된 특무대의 존재 덕분이었다.
천마신교와 전쟁이 끝난 뒤에 초무성이 약속대로 삼백만 냥의 자금을 더 투입해 주었다.
현재는 규모가 커져, 특무대에 소속된 무인들만 해도 이천 명이나 되었다.
삼백 명일 당시에는 기본이 절정 수준이었던 특무대였다.
하지만 절정 무인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정마 대전 당시에야 초무성 덕분에 당가에서 영약을 지원받아 쑥쑥 성장했으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천이나 되는 인원에게 어떻게 다 영약을 지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이천 명으로 늘어난 특무대는 중원 각지로 파견을 내보내 악인들의 씨를 말렸다.
관(官)에서도 고마움을 표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세금마저 거두지 않으니, 맹주인 송비응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제 노후 대책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벌어들인 수익을 전부 대륙 전장에 맡겨 새로운 사업에 굴려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내가 참 바보 같았지. 사업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한 것을, 내가 무슨 깡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추태를 부렸는지 모르겠군.’
이전에 자신이 벌였던 사업들을 되짚어 보면서 피식 웃고 마는 송비응이었다.
당시에는 뭐에 씌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쉬운 것을, 그때는 왜 그리 아등바등 혼자 해결하려고 했단 말인가!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싸매가면서 쓸데없이….
“군사, 내 임기가 얼마나 남았지?”
송비응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제갈군성을 쳐다보았다.
“아직 일 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재임하시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미쳤나? 박수 칠 때 떠나라지 않던가. 이만한 업적을 세웠으면 되었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계속 맹주질을 하겠나.”
송비응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맹주직을 맡을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특히 칠 전대 녀석들 아시잖습니까? 특무대를 따라다니면서 명성을 쌓고 있는데, 어정쩡한 인물이 맹주직을 맡으면 녀석들이 반발할 겁니다.”
제갈군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칠 전대의 구성원들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다.
특히나 상위 정예 다섯 명… 그러니까 송여영, 당은철, 원광, 영충운, 팽우걸은 괴물이다.
대체 얼마나 영약을 퍼먹어 대었는지, 다들 백 년 내공은 기본에 초절정 이상의 무력을 지녔다.
초씨세가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칠 전대를 건드리지 못했을 터다.
송여영이 맹주의 딸이었기에 겨우 어찌어찌 제어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비응이 빠져나간다?
‘끔찍하군.’
제갈군성은 송비응이 맹주직을 내려놓고 나갔을 경우를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빠개지는 느낌이었다.
“그거야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가 아닌가. 누가 맹주가 되든 상관없지 않겠나?”
“뭐, 그야….”
“정히 사람이 없다면 뇌황(雷皇), 그 친구에게 맹주를 맡기면 되겠군.”
“너무 젊지 않습니까….”
제갈군성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인 군자도(君子刀) 초규원은 어떠한가? 뒤에 뇌황이 버티고 있는 걸 알 테니,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걸세. 얼마 전에 화경의 경지를 개척했다고 하니, 무력도 그만하면 어디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보네만?”
“아! 그렇군요. 묘안이십니다!”
제갈군성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그나저나 초씨세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송비응이 이제는 ‘뇌황(雷皇)’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초무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놀라울 따름이지요.”
제갈군성이 맞장구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원에서 초씨세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산골 벽지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
‘빌어먹을!’
초무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잔뜩 긴장하고서 전신에 호신강기를 두르고 기감을 넓혔다.
“!”
시퍼런 비수가 기척도 없이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광경에 명혼도를 뽑아 후려쳤다.
카가강!
시퍼런 불똥과 함께 세 자루의 비수가 튕겨 났다.
“칫!”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곧장 전력으로 내공을 일으켰다.
어금니를 으스러지도록 깨문 초무성이 명혼도를 움켜쥐고서 사방을 경계했다.
‘대체….’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기감을 속이고 날아드는 공격은 엄청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조금 전 비수가 날아왔던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또다시 일곱 자루의 비수가 제각각으로 날아왔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비수였으나, 비수 내부에 강기가 응축되었음은 생각해 보나 마나다.
평범한 비수였다면 명혼도에 맞아서 동강 났을 터다.
“차앗!”
기합성과 함께 초무성이 명혼도에서 솟구치는 뇌정지기를 주먹으로 옮겨 일권을 내질렀다.
지난날 임철극과 싸움에서 가까스로 펼쳐 보였던 결전기, 뇌혼참(雷魂斬)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콰응!
일곱 자루의 비수는 뇌혼참의 수법으로 만들어진 방어를 뚫지 못하고 소멸하듯 사라졌다.
방어에 성공했음에도 초무성은 긴장을 내려놓지 못하고 사방을 경계했다.
심상치 않은 폭음과 기의 파동을 감지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초무성이 힐끔 뒤를 쳐다보고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기운을 품은 존재가 자신을 구원하러 다가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주군!”
“한 호위! 도와줘!”
초무성이 간절한 음성으로 소리치고는 소리 없이 날아드는 네 자루의 비도를 쳐냈다.
투가가강!
“주군, 다시 시작된 겁니까?”
한영중이 잔뜩 굳은 얼굴로 말하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래.”
초무성이 굳은 얼굴을 하고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영중이 서둘러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군.”
“야….”
꾸벅 인사하고서 경공을 발휘해 도망치는 한영중의 모습에 초무성이 배신감을 느끼고서 치를 떨었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번엔 십여 자루의 시퍼런 비수가 초무성이 움직일 방위를 전부 점하고서 일제히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꽉 문 초무성이 허리춤의 비수를 던지고는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조종해 후방에서 날아오는 비수를 쳐냈다.
그러고는 곧장 멸신난무(滅身亂舞)의 초식을 사용해 전방에서 날아오는 비수들을 모조리 쳐냈다.
“그, 그만! 그만해!”
비수를 모조리 처리한 초무성이 와락 인상을 쓰고는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오 장여 거리의 담장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미녀.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녀의 정체는 천미령이었다.
한기(寒氣)를 풀풀 날리면서 나타난 그녀는 예(乂) 자 형태로 상체에 빗겨 두른 요대에서 다시금 비수를 뽑았다.
“주인, 편식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지?”
천미령은 당장에라도 비수를 던질 것 같은 태세를 하고서 나직하게 말했다.
“후우! 혼인하기 전에는 내 명령이라면 칼같이 들어주더니….”
“편식은 나쁜 거야, 주인.”
초무성이 한숨을 내쉬거나 말거나, 천미령이 비수를 손에 쥐고서 내공을 돋웠다.
순간적으로 순백의 강기가 생성되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비수 내부에 강기를 잔뜩 응축해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거였다.
초무성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리며 긴장했다.
비장한 얼굴로 비수를 손에 쥔 천미령의 태도로 봤을 때,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채소볶음 다 먹을게. 그럼 되지?”
초무성이 세상을 다 살아버린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믿겠어, 주인.”
천미령이 그제야 가느다란 미소를 흘리고는 비수를 요대에 다시 끼워 넣었다.
‘시발, 이래서 평범한 여자랑 살아야 했던 건데. 내가 미쳤지!’
울고 싶어지는 초무성이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