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ridge line, but it was a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68)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68)
은은한 검은 빛이 전신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랫배이다.
한 놈은 수놈인 듯 덜렁거리는 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암컷인 듯 젖 주머니가 달려 있다.
그 부분마저도 검은 가죽에 덮여 있으나 군데군데 불그레한 살결이 보인다.
항문을 보호하느라 상체가 약간은 들린 상태로 싸우니 그 부분이 자주 노출된다.
‘저기다!’
번천은 그리 생각했고, 집중하니 그것들이 점점 크게 보였다.
번천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방어 후 반격을 하는 움직임에서, 놈들의 발톱만 막는 것으로 바뀌었다. 놈들의 방심을 유도하고 이번엔 놈들의 몸통에 정말 구멍을 낼 생각이었다.
‘응?’
어느 순간 몸에 힘이 불어 가더니 검에 붉은 빛이 은은하게 어리기 시작했다.
에르자일이 번천의 움직임을 보고 눈치 빠르게 그에게 강화 마법을 건 것이다.
더더욱 자신감이 붙은 번천이 과감하게 한 마리에게 달려들어 뒤를 노출시켰다.
크어어엉!
괴수들도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건지, 무모해 보이는 번천에게 두 앞발을 들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됐다!’
번천은 확신했다.
절반의 확률로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발톱에 베이겠지만, 전부의 확률로 놈의 복부에 자신의 검을 완벽하게 박아 넣을 틈이 생겼음을 말이다.
“으아아아아!”
검을 길게 뒤로 빼며 번천은 고함을 질렀다.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움직임!
발톱이 머리 위를 가려 어두워짐과 동시에 번천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는 그 순간이었다.
“돌아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음량이었으나 머릿속을 전부 헤집는 듯한 또렷한 목소리!
발톱에 가려졌던 자신의 그림자가 보였다.
놀랍게도 뒤로 몸을 물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출검(出劍)한 상태.
내력까지 담겼으니 억지로 거둬들이려다가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자신이 받아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그 말에 괴수가 물러났다.
여기서 자신은 부상을 입고, 나타난 이는 적이라면!
그래서 번천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일말의 망설임이 그의 검로를 살짝 바꿔 놓았으니.
타아아앙!
뭔가 검에 부딪치며 복부에서 완전히 비켜나게 되었다.
크아앙!
복부가 아닌 옆구리에 긴 자상이 만들어졌고, 괴수는 고통에 찬 괴성과 함께 시선을 다시 번천에게 돌렸다.
그 모습에 번천이 역시 검로를 바꾸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하며 검을 빠르게 들어 올릴 때였다.
“흑아! 물러나!”
번천과 괴수가 다시 격돌하기 전에 먼저 그 사이를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번천은 검을 들어 올리다 말고 순간 멍해졌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푸른색의 머리카락. ‘눈이 시릴 정도로 맑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두 눈을 가진 청년이 번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물러나라고 했잖아!”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 하지만 자연스러운 하대.
순간 그가 지체 높은 집안의 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간다. 흥분시키지 말고.”
그 맑디맑은 목소리와 다르게 말투 자체는 어눌했다. 마치 아기가 웅얼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는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번천은 그제야 자신이 거의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또 그랬다는 자책 탓인 듯 뾰족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건 반문이었다.
“너는 누구지? 여기는 인간이 오면 안 되는데.”
번천이 순간 당황할 때, 그의 옆에 나란히 서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매지스터 에르자일.”
에르자일은 청년을 뚫어지게 보며 말을 이었다.
“푸른 머리카락에 청안. 거기다 명령을 따르는 괴수.”
“…….”
“프라일 사일런스. 혹시 네 이름이 맞나?”
* * *
‘뭐지, 이것들은?’
주변에 둘러싸인 시체들.
인간처럼 보이나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종족인 것 같은데, 마치…….
그래, 인간의 몸에 문어 몸통을 올리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이종족이라면 괜히 손을 썼나?’
놈들은 분명 자신에게 살기를 보였고, 자신에게 무기를 들이밀었다. 게다가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놈을 두고 손에 인정을 둘 정도로 착하지도 않다.
꿈틀거리는…… 문어 대가리에게 다가갔다.
“너 어디 놈이냐?”
사실 오크니, 엘프니 하는 종족들은 인간세계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다.
책에서 봤을 때는 사는 지역마다 인간과 적대, 우호 관계가 제각기라 했다. 하지만 수십여 종의 이종족들 중 이런 이종족은 본 적이 없다.
“입이 없으니 말하라 할 수도 없고.”
대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놈들에게는 입이 없다. 정말 문어다.
갑주를 입고 있었지만 그것을 벗겨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놈들을 벨 때마다 손에서 느껴졌던 건 연체동물을 베는 듯한 그런 감각이었으니까.
문어 대가리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꾸물럭하는 것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듯하다. 인간으로 치면 급소는 피했는데, 놈에게 어찌 적용할지는 알 수가 없다.
놈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놈 봐라?’
괴이한 감각과 동시에 놈의 눈에서 다른 뭔가를 보았다.
괴이한 감각은 처음 가문의 시험에서 헤르메스가 날 시험했던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으며, 놈의 눈동자에서는 하얀빛이 새어 나왔다.
그대로 검으로 놈의 머리를 잘랐다.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를 했고, 아니 했었을 것이고 그것이 내게 조금의 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말만 할 수 있는 놈이라면 놈의 입을 열 수십여 개의 방법을 알지만 말을 못하는 놈이다.
진작 죽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후우우!”
그나저나 몸에서 미친 듯이 열이 난다. 그 정도로 격하게 움직였다는 뜻이고.
‘아직은 아니라는 건가?’
놈들의 움직임은 확연하게 보였으나 몸이, 그리고 내력이 받쳐 주지 못했다.
사실 납득은 되지 않는다.
환골탈태한 몸이고 내력 역시 담겨 있었다. 다만 기억이 봉인되어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로 인해 모든 내력이 소진되었을지도.’
결국에는 시간문제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길이다. 실제로 나이 스물에 촉천이다.
‘조급해할 건 없지만…….’
조금 아쉬울 뿐이다.
이런 문어 대가리들을 처리하는 것도 이리 몸에 열이 나는 수준이니 말이다.
‘여하간 이것들이 마물은 아니라는 거지.’
마물이라면, 그리고 이 정도로 강하다면 마정석이 있어야 하는데, 놈들은 그것을 품고 있지 않다.
이래저래 재수만 없다.
코르보르가 대규모로 이동한 탓에, 원래 쫓던 목표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을 터. 더 이상의 추적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그때 새끼 코르보르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문어 대가리를 보더니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떨며 난리를 친다.
한 가지 더 확실해졌다.
이놈들이 코르보를 몰이했다.
끼이이이이이잉!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다리에 찰싹 달라붙는 코르보르.
“그래, 뭐라도 하나 건졌으면 됐지.”
코르보를 안아 들었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품을 파고들며 안기는 녀석.
“겁먹지 않아도 돼. 다 끝났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하지만 놈의 울음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놈이 품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왜? 뭔가 더 있는 거냐?”
녀석은 계속 산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소리를 낸다.
산을 올랐다.
단순하게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렇게 산을 올랐다.
멀리서 희끗거리는 것들이 보인다.
‘도깨비불인가?’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숫자가 좀 많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난 잘못 보았음을 깨달았다.
그건 도깨비불 따위가 아니었다.
저 멀리 산 너머 불의 길이 이어져 있었다.
산마다 공간을 왜곡시키는 하늘 산맥의 특성상 대체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지는 모르나 그건 분명 군대였다.
인간은 당연히 아닐 터이니 이종족 또는 마물들의 군대.
‘이게 대체…….’
하늘 산맥에 여러 이종족이 산다는 건 알지만 저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물들이라 생각하는 것도 말이 안 됐다.
마물들을 통제하여 군대를 꾸린다?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을 확장했다.
‘내가 못하고 모른다고, 남들도 못하고 모르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번천에게 해 줬던 말 아닌가?
흔적이고 뭐고, 당장 번천과 에르자일을 찾아 마을로 내려가야 할 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