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
1화 1. 인생 10회 차는 세상을 구할 생각이 없다 (1)
“하.”
바닥에 박아 넣은 검으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계절 중 가장 풍요로운 가을.
하지만 황금빛으로 물들어야 했을 대지가 검붉게 물들었고, 추수해야 할 곡식 대신 시체들이 가득했다.
“진짜 지겹지도 않냐?”
지옥도의 한복판, 남자는 검을 뽑아내며 한 곳을 바라보았다.
“시간만 되면 딱딱 쳐들어오고. 내가 너희처럼 근면 성실한 놈들을 본 적이 없어요.”
망할 왕국 공무원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면서 이를 가는 그 모습에, 그의 맞은편에 선 존재는 어이가 없었다.
“네놈은 이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나?”
대륙의 운명이 걸린 대결이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나라를 위해, 혹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강제로 끌려온 이들도 있었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훗날, 이 또한 역사가 될 것이다.
다만 그들 중 이름이 기록되는 자들은 매우 소수일 뿐.
대부분의 이들이 그저 수많은 병사와 기사, 마법사 등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었으니.
“그러고도 네놈이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란 말이냐!”
피로 물든 대지 위에 서 있는 이 두 명의 존재.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와 대마왕 아펠리오스의 이름은 역사의 첫 줄에 기록된다는 사실이었다.
“어, 맞아.”
“…….”
인류의 운명을 건, 역사적으로도 큰 분기점의 한복판.
죽은 눈을 한 용사는 대마왕 아펠리오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아펠리오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참혹한 전쟁에 모든 것을 잃은 자들이 저런 눈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빛의 여신, 인류에게는 창조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인류 최고신이 빚어낸 최강의 검이었다.
늘 마왕의 앞을 가로막는 벽.
자신의 목숨조차 버려 가며, 인류를 지키려 한 방패.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한없이 날카로운 검.
‘그게 용사인데.’
분명 눈앞에 있는 데르덴 델 블레이드라는 자는 강했다.
마신의 제단에서, 그간 모여 있던 모든 마족의 모든 힘을 끌어모았음에도 끝내 이기지 못할 정도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상적인 용사가 맞았는데.’
신탁이 내려오기 전부터 마족과의 싸움을 준비하듯 인재를 키웠다.
신탁을 받은 이후로는 자신을 구심점으로 인류를 하나로 통합했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종족마저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렇기에 역대 최강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마족의 군세를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았고, 대륙 각지에서 모은 온갖 보물들로 군세를 장비하니 오히려 마왕군이 위험해질 정도였다.
이길 수 있다.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전선의 선두에서, 그렇게 외치듯 움직이는 용사의 모습을 마왕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빛나던 용사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 세상 좀 망하면 어떠냐는 아우라를 풀풀 풍기는 인간 하나.
자신의 유일한 적수로 약간의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던 아펠리오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용사여, 인류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이냐?”
그렇기에 최후의 결전을 치르고 있음에도 아펠리오스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던진 농담이었으나.
“뭐, 대충.”
“…….”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가 여실히 느껴지는 대답이기도 했다.
‘인류가 미친 건가?’
용사라는 존재가 평범한 인간에게는 두려운 존재일 수 있었다.
당장 역대 마왕 중 최강이라 불리는 아펠리오스조차 용사라는 존재가 두려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냥개를 버리는 것은 사냥이 끝난 뒤여야 정상이다.
인류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인 상황에서, 용사의 뒤통수를 치다니!
“용사여.”
하지만 나쁘지 않다.
아니, 기회였다.
마왕은 눈앞에 살기를 숨기지 않는 용사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대를 배신한 인류를, 굳이 지킬 필요가 있겠는가?”
단순, 힘의 총량만 놓고 본다면 마왕은 용사보다 강했다.
역대 마왕 중 최강.
모든 굴레를 끊기 위해, 마신의 제단에서 모든 마기를 집어삼킨 그의 힘은 마족의 신인 마신에 근접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하지 않으면 인류를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했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까.
“내게로 와라.”
하지만 그 강한 힘으로도 용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눈앞의 용사와 싸운다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는 없었다.
이긴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아펠리오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니까!’
아펠리오스는 살고 싶었다.
애초에 마신을 모시는 사제들과 마계를 지배하는 기존 세력인 대공들의 말을 무시하며, 목숨을 걸고 마신의 제단을 취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용사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매번, 용사가 자신의 목숨을 불태워 마왕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너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인류는 너를 배신했다. 너와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네놈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킬 이유는 없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마족에 강력한 지도자, 마왕이 탄생하면 마신의 뜻에 따라 마족들은 인류를 정복하기 위해 움직였다.
인류는 늘 위태로웠지만, 용사라는 구심점을 얻어 반격했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
용사와 마왕은 동귀어진했다.
마왕이 얼마나 강했든, 마족의 군세가 얼마나 막강했든, 그 역사는 변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류의 몰살도 아니다. 그저 지배자만 바뀔 뿐,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용사와 마왕이라는 구도는 이미 수차례 있었던 역사였다.
그렇기에 아펠리오스는 그 구도를 깨고 싶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역대 최강의 마왕 앞에는 역대 최강의 용사가 나타났다.
역사는 변하지 않았고, 되풀이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아펠리오스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매우 간절한 목소리로, 그러면서 매우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었다.
“원한다면, 이 세계의 절반을 네놈에게 주마!”
세계의 절반.
따지고 보면 마족에게는 손해인 결과였다.
어차피 세상의 반은 인류가 살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마족이 살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싸움에서 이겨 놓고 반을 다시 인간에게 되돌려 준다는 말.
“…….”
“혀, 협상을 원한다면 조금 더 줄 수도…….”
아니, 오히려 원래 가지고 있던 것도 주려고 하는 호구 기질까지 보여 주고 마는 아펠리오스였다.
하지만.
“야.”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는 마왕의 유혹을 뿌리쳤다.
그가 아무리 배신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용사는 용사.
그가 인류를 수호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은 마왕의 달콤한 유혹 따위에 지지 않는다……!
“최근에 열받는 일이 좀 많았거든?”
같은 숭고한 마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닥치고 덤벼.”
그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분노를 풀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아니, 그건 좀…….”
아펠리오스는 당황했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여신의 뜻이라든가, 아니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든가.
하다못해 부모의 원수나 여태까지 쓰러진 동료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풀이라니.
인류와 마족의 역사적인 결투의 마지막 이유가 화풀이라니!
“애초에 인류에게 배신당한 게 아닌가, 용사여!”
하지만 아펠리오스가 가장 분노한 점은 인류에게 해야 할 화풀이를 자신에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용사의 사명을 완수하려고.”
딱히 사명감이 있어 보이는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귀찮다는 티를 풀풀 풍기고 있는 용사의 모습에 아펠리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툭 내뱉어졌다.
“굳이?”
그렇게 싫어하면서, 용사로서의 사명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그냥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일 텐데.
‘빌어먹을 인간 놈들.’
아펠리오스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균적으로 마족의 10분의 1의 기간도 살지 못하면서 대륙을 지배하는 종족이 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매번 전쟁 때마다 뚫릴 것 같으면서도 결국 마족의 공세를 막아 내는 것도 그랬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존재는 바로 눈앞의 용사라는 존재였다.
반복되는 역사에서 늘 마왕을 가로막았던 존재.
반복되는 역사를 끊기 위해, 마신의 제단까지 털었음에도 기어코 마왕의 앞까지 도달한 괴물.
“하.”
용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세상 귀찮다는 표정이 사라지고 시리도록 차가운, 마를 도륙하던 도살자의 표정이 나타났다.
“그렇지.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 싶기도 했는데.”
바뀐 것은 표정만이 아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마력과 그 안에 담긴 진득한 살기가 아펠리오스의 목을 졸라 오기 시작했다.
싸늘하다.
이미 검에 목이 베인 것만 같은 감각에 아펠리오스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목으로 손이 갈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다 너희 탓이더라고.”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는 생각했다.
굳이 세상을 구할 필요가 있을까.
한 번쯤은 있었다.
여신에 대한 신앙 때문은 아니었고, 용사로서의 사명감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의 노력이.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던 시간이.
그리고 그 노력과 시간을 함께하며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이 눈에 밟혔을 뿐.
그렇기에 데르덴은 분노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심심하면, 매번 군사를 끌고 와서 깽판을 치고.”
마족이 인류를 침공한 횟수가 벌써 다섯 번.
“여력이 안 된다 싶으면, 첩자를 보내서 분탕을 치고.”
마신을 추종하는 사교도들과 마족의 꾐에 넘어간 흑마법사들이 분탕 친 횟수가 세 번.
“그것도 안 되니까, 이제는 자기들 밑천까지 다 털고 왔잖아?”
데르덴 역시 할 말은 많았다.
그 역시 아펠리오스처럼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류고 마족이고, 여력만 되면 전쟁을 일으킬 생각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 보면, 뒤통수 맞은 이유도 너희 탓이고.”
그렇기에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는 검을 들어 올렸다.
이미 밑바닥을 드러낸 여신에 대한 신앙과 용사의 사명감을 억지로 끌어올리고.
새롭게 생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연료 삼아.
“그러니까, 마무리 짓자고.”
“이런 미친…….”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아펠리오스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데르덴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여신도 양심이 있다면 더는 개수작을 부리지는 않겠지.
‘부리기만 해 봐.’
제대로 삐뚤어질 테다.
그렇게 생각한 용사는 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죽어.”
“빌어먹을 용사 놈이!”
그렇게 자신을 불태운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가 아펠리오스와 함께 동귀어진하는 것으로 마지막 전투가 끝났다.
아펠리오스라는 구심점을 잃은 마족들은 결국 후퇴했고, 그렇게 인류와 마족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수백 년 후.
“응애!”
이제 막 태어난 아이는 생각했다.
‘개 같은 여신 같으니라고.’
데르덴 델 블레이드.
아니, 인생 10회 차의 용사는 그렇게 여신에 대한 욕을 곱씹으며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