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21. 인생 10회 차는 황성에 간다 (7)
“튀어!”
그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이는 덜덜 떨고 있던 카벨이었다.
“으아악!”
실전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나, 그래도 마탑주는 마탑주였다.
미리 준비해 둔 마법이 발현되자, 주변에 눈부신 섬광과 함께 작은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계획이랑 다르잖아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데이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지만, 루테스는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단 후퇴다!”
‘저년이 왜 저기서 나와.’
루테스의 시선이 가장 먼 곳에 있는 소녀에게 닿았다.
백발에 붉은 눈.
자신과 비슷한 외모.
그리고 자신의 핏줄이기도 한 이.
레일라 디 바벨리안.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함정인가?’
뭔지 몰라도 일단 안 좋다.
그렇게 판단한 루테스가 멈춰 있는 데이지의 손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며 예리엘과 하인스, 그리고 칸나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마탑주, 막아!”
“네, 네?”
졸지에 혼자서 제국의 공무원들을 막아야 하는 카벨이 울상을 지었으나, 도주하기에는 늦은 상황.
“황녀 전하, 괜찮으십니까?”
부장들은 부장들대로 갑작스럽게 나타난 황녀 때문에 바로 루테스를 쫓지 못하고 있었다.
“네, 괜찮아요.”
“여긴 어찌한 일로…….”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네요?”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어린아이의 미소였다.
평범한 어린아이였다면 그 장난감을 사 달라고 부모에게 떼를 쓰겠으나.
“잡아야겠죠?”
황족과 황족 사이에 낀 공무원으로서는 죽을 맛일 뿐이었다.
“그렇겠죠.”
에르문은 자신들을 가로막은 남성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마법사.
그리고 루테스의 말에 따르면, 마탑주라는 직위를 가진 이.
‘황탑주, 카벨.’
마탑주 중에서도 괴짜로 유명한 존재 중 하나였기에 그에 대한 정보는 많은 편이었다.
“일단 쓰러트리면 되지?”
“그럴 필요 없다.”
“응?”
앞으로 나서려는 감찰부장을 제지한 에르문은 품속에 손을 넣으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오, 오지 마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에르문을 보며 오브에 마력을 담아 위협하는 카벨이었지만, 에르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 오지 말라니까?”
“나는 제국 정보성 소속, 정보부장 에르문 나룸이라 한다.”
“저, 정보부장?”
그 말 한마디에 카벨의 기세가 꺾였다.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공무를 집행하는 중이었고.”
“그, 그렇군요.”
“자네는 그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네.”
“네?”
“그러니 공무 집행 방해죄로 자네를 체포하겠네.”
“아, 아니, 선생님, 저는 그럴 의도로…….”
“자세한 이야기는 감찰부에 가서 하도록 하게.”
“아, 아니, 그게!”
한껏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끌려가는 카벨을 보며 감찰부장 헤직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 해결이 된다고?”
“그럴 사람이다.”
사람의 성격과 됨됨이가 그러했고, 어차피 잡혀가도 황금 공이 빼내 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반항을 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 그렇지.”
도망쳤다고 하나, 베르크의 왕세자를 제외하면 아직 어린 나이.
그런 이들이 도망을 쳐 봤자 얼마나 쳤겠는가.
“뛰어라.”
“이런 건 우리만 시키지!”
소드마스터가 이끄는 감찰부와 재무부를 상대로 도망을 칠 수는 없을 터.
“미안, 아저씨.”
“놓쳤습니다.”
“…….”
그러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는 하루라는 점은 에르문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데이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곧 루테스를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전하, 이야기를 나누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대화는 말이 통하는 상대여야 가능한 일이지.”
루테스는 자신을 바라보던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절로 떨려 왔다.
왜 그 녀석이 여기 있는 걸까.
다른 형제들에게까지 이번 사건이 들어간 것일까?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나 왕따시켜요?”
“으악!”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그림자에 루테스가 기겁했다.
“도련님?”
“언제 오셨어요?”
그리고 그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예리엘과 하인스가 당황한 얼굴로 르윈에게 다가갔다.
“너희가 숨을 때부터.”
사람을 찾는 데 도가 튼 감찰부와 재무부를 상대로 이들이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르윈을 상대로 수년간 숨바꼭질을 강제로 하게 된 데이지들 덕분이었다.
숨쉬기 운동을 기반으로 한 은신 방법과 기척을 죽이고 다가오는 이들을 감지하는 방법.
본의 아니게 그 두 가지를 오랜 시간 동안 훈련하게 된 시종들의 은신 능력은 제국의 감찰부와 내무부의 눈을 피할 정도였고, 그 독특한 마력 운용 덕분에 르윈은 이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진짜, 누구는 열심히 일하는데. 다들 왕따나 시키고.”
기분 상했다는 티를 풀풀 내는 르윈의 모습에 루테스는 이를 갈았다.
“네놈이 왕따를 시킨다고 당해 줄 사람이냐?”
“네. 여리고 여린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고요.”
“개소리는.”
“그런데 무슨 일인데요?”
“하.”
상황과 맞지 않게 초롱초롱 빛나는 르윈의 눈을 보며 루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카벨이 리타이어된 이야기까지 전하자.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네요.”
“있다고?”
“네. 잠시만 기다려 봐요.”
그러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더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어깨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등장했다.
“…그건 뭐냐?”
어깨에 짊어졌다고 하나, 르윈의 두 배에 가까운 덩치에 하체가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축 늘어진 채 기절한 중년 남성.
“인질이요.”
르윈은 방긋 웃으며 정보부장을 루테스 앞으로 던져 주었다.
***
“여긴 어디…….”
아픈 머리를 붙잡으며 정보부장 에르문이 중얼거렸다.
“너, 납치된…….”
“일 더 크게 만들지 말고, 닥쳐!”
“루테스 전하?”
에르문의 두 눈이 크게 떠지고, 곧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대화 좀 나누자.”
루테스의 간절한 대화 요청으로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된 것이군요.”
결국 오해가 풀렸다.
“진짜 역모 아닙니까?”
아니, 아직은 조금 의심은 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니라니까!”
도대체 내 이미지는 어디까지 떨어진 것일까.
루테스는 울상을 지으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는 그러면 안 되지.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건가?”
“칸나 왕세자는 알고 있습니다. 베르크 왕국에 내전이 일어났다는 소식도요.”
“그런데 왜 내가 역모가 되는 건데?”
“전하께서 인질로 잡히셨을 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위치 추적과 도청 마법을 부여한 도구를 붙여 두었습니다.”
“어느 틈에?”
역시 정보부라고 해야 하나.
그런 낌새를 느끼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도청되고 있었다니.
“아니, 도청하고 있었으면 더 말이 안 되잖아.”
정보부장의 말에 루테스가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자신의 말들이 모두 도청이 되고 있었다면, 오히려 더 의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도청하자마자 역모 이야기가 나와서 껐습니다.”
“뭐?”
세상이 억까하는 것은 칸나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 내가 기억하기로는 딱 한 번 나온 이야기였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이 사달이 났단 말인가?
‘망할 드라이르프.’
르윈도 그렇고, 그 형도 그렇고.
드라이르프의 핏줄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게 사실입니까?”
“내 이름은 물론, 성까지 걸고.”
바벨리안이라는 성까지 건 이상 진실이라고 봐야 했다.
그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정보부장은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긴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왜 도망치셨습니까?”
“제국 정보부장과 감찰부장, 재무부장이 사람 끌고 쫓아오는데, 안 도망치는 사람이 있을까?”
“…….”
맞는 말이었다.
제국의 정보부와 감찰부가 손을 잡고 달려들면 도망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 같아도 도망치긴 하겠지.’
만약 기적적으로 은퇴했는데, 후임 정보부장이 감찰부장과 함께 달려든다?
자신조차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정말로 이 모든 게 우연과 오해가 겹친 결과란 말인가.
‘그렇다면, 재무부장은.’
정보부장은 이곳에 없는 재무부장을 떠올리자 닦아 내렸던 식은땀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먼저 상대를 포위하기 위해, 마력 사용도 억제하고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죽어라 달리고 있을 터.
‘미안하게 되었군.’
오늘도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재무부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에르문은 루테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뭘?”
“베르크 왕국 일 말입니다.”
“그보다는 내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역모를 꾸민다고 어디까지 정보가 흘러들어 간 것일까.
“너희만 알고 있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장관들에게는 알려졌습니다.”
“X발.”
장관이 알고 있다면 자신의 아버지인 황제 폐하도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 루테스가 안색을 하얗게 물들이며 에르문의 팔목을 붙잡았다.
“일단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안 그랬다가는 베르크보다 먼저 자신의 목이 날아갈 판이다.
“일단, 돌아가시죠.”
“안 돼.”
짧고 강렬한 말에 에르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희를 믿지 못하십니까?”
“너희 뒤에 있던 레일라를 믿지 못한다.”
사실 부장 트리오가 쫓아온다고 해서 도망갔다고 하지만, 루테스가 도망친 진짜 이유는 레일라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분이라면 오히려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황제의 핏줄 중에서도 루테스에게 가장 많은 호의를 보이는 것이 레일라라는 사실을 에르문은 알고 있었다.
“X발,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호의라는 것을, 그 호의를 받는 사람은 죽을 맛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 녀석한테 붙느니, 차라리 드라이르프 쪽에 붙지.”
“어? 우리는 이미 한편 아니었어요, 선배님?”
“개소리하지 마라.”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이 드라이르프 때문에 일어났는데.
왜 내가 그곳과 한편인가!
“맞아요. 오라버니는 제 편이라고요.”
“그건 또 무슨 개소…….”
자기편 운운하는 소리에 욕설을 내뱉던 루테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매우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왔는데, 정말로 있었네요?”
둘 다.
루테스와 르윈을 번갈아 보며 싱긋 웃는 레일라의 모습에 루테스와 르윈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저년이 왜 여기에.’
루테스는 레일라가 이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불만을 표출했지만.
‘저건 또 언제 훔쳤대.’
르윈은 숨쉬기 운동을 기반으로 한 은신 기술을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는 레일라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베르크에 도움이 될 텐데요.”
그 말에 칸나가 움찔했지만, 여태까지 도와준 루테스의 반응이 안 좋았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맞아. 그리고 우리에게는 훌륭한 책사가 준비한 완벽한 계획이 존재하니까.”
“훌륭한 책사라. 본인을 그렇게 자화자찬하는 건 부끄럽지 않나요?”
르윈을 흘겨보며 웃는 레일라였지만, 르윈은 당당했다.
“나라고는 안 했는데?”
“호오?”
그럼 누군데요.
그렇게 묻는 레일라의 시선에 대답한 것은, 르윈이 아닌 루테스였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비밀 병기, 데이지.”
“네……?”
갑작스러운 말에 데이지의 두 눈이 깜빡였다.
“맞아. 우리 데이지의 계략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니까!”
“호오?”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그 깜빡임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