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22. 인생 10회 차의 시종은 나라를 구한다 (1)
“드라이르프 가문의 비밀 병기, 데이지.”
“네……?”
루테스 전하께서 내뱉는 이름에 처음에는 크게 놀랐으나, 곧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데이지라는 병기가 존재했나?’
그럴 수 있었다.
데이지라는 이름이 그리 특별한 이름은 아니었으니까.
베르샤 아카데미만 뒤져 보아도 같은 이름이 열 명 정도는 존재하지 않을까.
그만큼 흔한 이름이었기에, 루테스 전하의 말을 흘려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오싹할까.
등줄기로 줄줄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축축한 느낌이 불쾌했지만, 괜찮다.
“맞아. 우리 데이지의 계략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니까!”
우리 데이지라.
드라이르프 가문의 데이지란 비밀 병기와 도련님이 친하신가 보네.
그럴 수 있지.
도련님은 가문의 이곳저곳을 잘 돌아다니시는 편이니까.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르는 장소도 없지.
그러니까 비밀 병기라는 데이지하고 친할 수 있다.
“호오?”
그런데 왜 저기 계신 황녀님께서는 나를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나에게 그런 시선을 보낼 타이밍이 아닌데.
“후우.”
이럴 때는 도련님이 가르쳐 주신 숨쉬기 운동이 좋다.
정신을 맑게 하고, 흐트러진 생각들을 정리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정말 밉고,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도련님이지만, 그래도 도련님에게 배운 것들에는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숨쉬기 운동도 그렇고, 제국 감찰부의 눈조차 피하는 은신 능력도 그렇고.
정말 쓸모가 많은 기술이다.
“후우.”
호흡을 통제한다.
숨을 들이쉬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흡수하고, 그 숨을 내쉬는 것으로 몸 안의 탁기를 내뱉는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이성이 돌아오고, 그리고 깨닫는다.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으득.
순간 이가 부러졌다고 착각할 정도의 소리가 났다.
소리의 근원지는 내 입.
되돌아왔던 이성이, 순간 다시 날아가 버릴 뻔했다.
“도련님?”
드라이르프에 데이지라는 이름의 비밀 병기가 따로 존재할 리가 없다.
저 데이지는 나다.
그에 원망을 가득 담아 도련님을 노려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미소였다.
‘뭘 잘했다고!’
더 화가 나는 것은 저것이 진심이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이 잘했다고 믿는 저 자존감.
도대체 저 자신감의 원천은 어디인 것일까 궁금할 때도 많았고, 또 감탄도 많이 했지만.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기가 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했지만.
‘그냥 죽었으면.’
지금만큼은 그냥 좀 죽었으면 좋겠다.
“누나, 언제부터 가문의 비밀 병기가 되었어?”
“나도 몰라.”
“진짜야?”
“그럴 리가 있겠니.”
너무나 당당한 선언에 옆에 있던 동생들마저 혹시나 하는 눈치를 보내고 있었고.
“그런 거물이었다니.”
구석에 있던 베르크의 왕세자는 감탄사마저 내뱉고 있다.
“절대 아닙니다!”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믿어 주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대외적으로는 그렇지.”
“…….”
망할 도련님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속출했다.
“모든 계획은 다 저기 있는 데이지로부터 나왔다.”
평소 도련님의 행실을 떠올리면,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하지만 저 말을 내뱉는 이는 도련님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원망을 가득 담아 바라보니, 루테스 전하가 시선을 피한다.
자신 또한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도련님이라는 것.
문제는 도대체 언제부터 두 사람이 말을 맞추었냐는 것이다.
특별히 두 사람만 있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전하를 설득하고, 아니 협박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려면.
‘도대체 뭘 해야 하지?’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하려 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아니, 냉정하기에 더욱 떠오르는 게 없을 것이다.
상대는 도련님이니까!
정상인이라면, 황자를 저렇게 이용하지는 않으니까!
“흐음.”
“저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사건은 점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가고 있었다.
제국의 황녀가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고, 제국의 정보부장이라는 자가 나를 힐끔거리며 연신 감탄을 내뱉고 있다.
“우리 애가 좀 잘났지.”
“제발 닥쳐 주세요…….”
이가 으득으득 갈렸다.
저기서 왜 자꾸 한마디씩을 더 내뱉어서 날 절벽 끝으로 밀어 버리는 것일까.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늘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내려 주는 건가 원망스러웠다.
‘애초에 우리 가문이 망한 이유부터가 창조의 교단 때문이었지.’
가장 큰 원인까지는 아니나,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창조의 교단이 맞았다.
적대 가문에서 뇌물을 받고 가문을 이단으로 선언했으니까.
창조의 여신이 날 도우려 했다면 그때 도왔으리라.
그때 도왔더라면 이런 망할 도련님을 만나는 일도 없었으리라.
‘도련님이 창조의 교단을 욕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
그 원인을 따지면 우습게도 도련님 때문이지만, 어쩌겠는가.
어쩌면 평생을 같이해야 할지 모르는 도련님과 척을 지는 것보다는, 목소리 한번 들어 본 적이 없는 창조의 여신과 척을 지는 게 낫지.
애초에 종교 역시 강제로 무링교에 입문하지 않았던가.
창조 같은 모호한 개념보다도, 평화가 더 좋기도 하고.
그러니 무링신이시여.
진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상관없으니, 저 망할 도련님으로부터 제 평화를 지켜 주세요.
그렇게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으나, 곧 그 이름의 뜻이 무쓸모 잉여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
‘살았다.’
하마터면 루테스 디 바벨리안의 역모 의혹이 사실이 될 뻔했다.
그 사실에 루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은 불쌍하게 되었지만.’
하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루테스 디 바벨리안의 역모 의혹이 사라진 자리에는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 데이지 흑막설이 대신 자리를 잡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사전에 르윈과 이야기가 되어 있던 것이었다.
이번 사건의 주역을 데이지로 삼겠다고.
데이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루테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아니면 선배가 주역을 맡게 되니까요.’
‘뭐?’
‘베르크 왕국을 돕고, 그들의 지지를 얻는다! 타국의 위세를 얻어 다시 황위 계승권에 도전하는 거죠.’
‘개자식이…….’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인간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충분히 자신을 주범으로 만들 사람이라고 루테스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루테스는 르윈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왜 그렇게까지 하지? 시종이 뭐 잘못이라도 했나?’
‘잘못이라니요. 누가 보면 혼내는 줄 알겠는데요?’
‘본인은 울고 싶을 텐데?’
‘원래 젊을 때 눈물을 많이 흘려야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이죠.’
가장 어린 놈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어지는 르윈의 발언은 루테스의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 내 주는 말이었다.
‘저는 저희 애들이 조금 더 유명해졌으면 하거든요.’
‘시종이? 왜?’
‘애들을 시종으로 삼을 때 약속한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데이지하고 한 약속을 지키려면 데이지가 조금 더 유명해져야 하고요.’
‘그, 그래?’
도대체 무슨 약속을 했기에 시종이 유명해져야 하는가.
그것을 루테스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다 데이지를 위한 일이라고요.’
‘그렇구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루테스는 한 가지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불쌍한 녀석.’
악마와 계약을 해 버렸다.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녀석과.
‘원숭이 손이라고 했던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 소원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주지는 않는다.
일그러지고, 비틀린 방식으로 소원은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본인에게 끔찍한 비극으로 다가오게 된다.
‘비극은 맞지.’
순식간에 제국의 황녀와 정보부장의 관심을 사 버렸다.
그리고 이 일을 꾸민 주동자는 드라이르프의 핏줄과 황제의 핏줄이다.
거기에 휘말린 이는 한 나라의 왕세자.
시종에 불과한 아카데미 학생이 견디기에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주인을 잘못 만난 본인의 탓도 조금은 있으니까.
“그러니, 자네들도 우리 계획에 협조 좀 해 주면 좋겠는데.”
“일단 폐하께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알지.”
최대한 레일라의 시선을 무시하며, 루테스는 에르문에게 자신들의 계획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무슨 계획인지는 모르지만.’
데이지도 모르는 데이지의 계획이었다.
본인도 모르는 것을 루테스가 알 리가 없었다.
“그럼 무슨 계획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도 흥미가 생기는데?”
그렇기에 에르문과 레일라의 말에 루테스는 당당히 답할 수 있었다.
“그건, 계획의 설계자인 데이지가 말해 줄 거다.”
“전하?”
더 정확하게는 당당하게 떠넘긴다가 맞는 말일 테지만.
***
“황금의 탑, 마탑주 카벨을 인계하라는 명령이다.”
“제, 제가요?”
감찰부에 구금이 되어 있던 카벨은 갑작스러운 이동에 당황했다.
“아, 아직 아무런 취조도 받지 않았는데.”
“상부의 명령이다. 아마 다른 곳에서 취조하기로 한 것 같은데.”
힐끔 서류로 시선을 준 감찰부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잘 가라.”
“아,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카벨이 구금된 곳은 평범한 감찰부의 임시 감옥이었다.
현행범이나, 의심이 되는 자들을 신문하기 위한 장소.
죄가 확정이 된 이들이 아니기에 제법 괜찮은 시설이었으나, 다르게 말하면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결말은 단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무죄 확정으로 세상으로 풀려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가 확정이 되어 끌려가는 건데!’
제대로 된 신문조차 없었는데, 이동하다니.
이미 죄가 확정되었다는 의미.
이제부터는 범죄자이기에 감찰부에서 온갖 고문을 하더라도 카벨은 인권 침해를 호소할 수 없었다.
‘서, 설마!’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범죄자가 확정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분명한 증거가 있다는 의미.
‘루테스 전하께서 진짜 역모라도 준비하셨던 건가!’
나를 속인 건가.
그래서 나는 역적이 되어 이렇게 끌려가는 걸까.
‘아, 안 돼.’
아무리 황금 공의 가호가 있다고 하더라도, 역모는 못 막는다.
아니, 황금 공은 막을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
‘괜히 공범이라는 오해를 받기 전에 손절하겠지!’
손절이면 다행이다.
연관이 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먼저 묻을 수 있다.
“아직 못 끝낸 연구가 많은데.”
그렇게 세상에 대한 미련을 한탄하고 있을 때, 마차의 문이 열리고 그의 최후가 결정되었다.
“뭐 해, 안 내리고.”
“루테스 전하?”
“할 일이 많다.”
“결국, 붙잡히신 겁니까?”
“무슨 헛소리야?”
자신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루테스의 시선에 카벨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감찰부에 잡혀 오신 거 아닙니까?”
“아니, 감찰부는 이제 우리랑 한배를 탔다.”
“서, 설마?”
감찰부조차 역모에 동참한다는 소리인가!
심지어!
“황금 공하고 연락되지? 자네가 황금 공을 설득해 줘야겠어.”
“황금 공마저 역모에 가담시키시려는 겁니까?”
감찰부를 넘어 황금 공까지 포섭하려는 루테스의 의지에 카벨이 감탄했다.
“그래, 그거 비슷한 거다.”
“아아…….”
이제는 익숙한 오해에, 루테스는 해명조차 포기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