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22. 인생 10회 차의 시종은 나라를 구한다 (3)
갑작스러운 폭거에 충분히 반항할 수 있었으나, 상인 대부분은 반항을 포기했다.
상대가 제국 핵심 인력인 것도 있었고, 제국 5대 상단의 상단주들이 모두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시절 놈들이 아니니까.’
한때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집단이 제국의 감찰부와 재무부였다.
비리를 들춰내야 하는 집단이 가장 비리에 찌들었던 시절.
그 시절에는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잡혀갔고, 누명을 쓰고 죽었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었다.
100년도 채 되지 않았던 과거.
제국의 유명 상단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벨레크가, 풋내기 상인으로 막 레드불 상단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감찰부에 잡혀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역풍을 제대로 맞고 사라진 비리 인원들이 처형되고.
그 자리를 다른 이들이 맡게 되면서 감찰부와 재무부의 악명은 점차 사라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집단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제는 항변할 수 있기에 세금을 걷는 시기가 되면 이전보다도 더욱 전쟁터가 되기는 했지만, 제국의 상인들은 지금의 감찰부와 재무부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황금 공?”
끌려간 이후 처음으로 만난 이가 황금 공 아이웬 골드워라는 사실에 벨레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상인이지만, 상인이 아닌 자.
황금 공과 상인들의 사이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랜만이군.”
“그러네.”
귀족인 상인은 많다.
벨레크만 하더라도 제국의 자작위를 가지고 있었고, 5대 상단의 상단주 중에는 명예 백작위를 가진 이도 존재했다.
하지만 상인에게 권력은 독이다.
상인들이 작위를 가진 이유는 우습게도 평민이라 무시받던 세월의 보상적인 요소가 컸고, 벨레크와 같은 거상의 경우에는 작위를 가진 편이 장기적으로 이득이기에 얻은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상인들의 작위는 세습이 안 되는 명예 작위, 혹은 영지가 없는 이름뿐인 작위였다.
영주의 권한은 영지와 그 영지에 속한 영지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그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다른 귀족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인이다.
너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
그렇기에 상인들은 작위를 가졌음에도, 상인으로 살았다.
골드워 가문을 제외하고는.
“정치인가?”
“장사라네.”
벨레크는 황금 공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이웬 골드워라는 상인보다 더 많은 수입을 버는 상인은 몇 있으나, 골드워 가문만이 황금 공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치와 장사겠지.”
정치와 장사.
서로 침범하지 않는 불문율의 영역에서 오직 혼자만이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 욕심은 여전하네. 그러니 그 나이에 대머리지.”
“…머리가 무슨 상관이지?”
“욕심 많은 놈들이 원래 대머리라고 하지 않나.”
“그럼 그쪽은.”
“나는 딱 상인으로서만 욕심을 부리고 있고, 자네는 아니지 않은가.”
“하.”
황금 공의 역린 중 하나를 건드리자 곧장 반응이 나왔으나, 흥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도발은 좋지 않네. 지금 일이 많이 바쁜 편이니.”
“하긴. 제국의 감찰부와 재무부까지 끌고 와서 진행하는 일이니.”
아무리 과거의 감찰부와 재무부가 아니라고 하나, 이렇게 강제적으로 상단주들을 끌고 왔다.
진행되는 일의 내용에 따라서 그동안 데면데면하던 골드워 가문과 상인의 사이가 완전히 적대 관계로 바뀔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내가 시킨 거 아니네. 나도 끌려온 입장이지.”
“자네가?”
상인들이 골드워 가문의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들이 선을 잘 지키니까.
처음 골드워 가문이 상업과 정치를 병행하였을 때는, 많은 이들이 그들이 곧 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대가 지날수록 골드워 가문은 상인으로서도, 귀족으로서도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베르샤 아카데미와 황금의 마탑.
두 개 모두 일개 상인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었고, 동시에 일개 영주가 건드리기에 너무나도 막대한 재산이 필요했으나 골드워 가문은 그 어려운 조건을 모두 해결하고 자체적으로 아카데미와 마탑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그런 황금 공을 끌고 움직일 수 있는 이가 있다니.
그것도 제국 감찰부와 재무부를 동시에 움직이면서!
“설마.”
그럴 수 있는 자들은 제국에서도 많지 않다.
후작가 중에서도 한둘.
그도 아니라면 두 공작가.
그리고.
“황실인가?”
“그렇다네.”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황금 공의 모습에 벨레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렸군.”
“그렇지. 그러니 정치네.”
정치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황금 공이 움직였다.
“하지만 장사이기도 하지.”
“그러니 자네가 왔겠지.”
정치적으로만 따질 일이었다면 재무부장이나 감찰부장이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제국의 실세 소리를 듣지만, 그래 봤자 공무원이니까.
황실이 명령을 내리면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공무원의 업이었다.
반대로 장사치로서의 일이라면 이런 설명조차 필요 없을 것이다.
돈이 된다면 움직이는 족속들이 바로 상인이었으니까.
“그래서, 무엇이지?”
그 두 개가 오묘하게 섞여 있기에 황금 공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벨레크는 궁금했다.
황금 공이 전면에 나서야 할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장사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
“그건 나 말고 다른 분이 이야기해 줄 것이네.”
“다른 분?”
이곳에 황금 공 말고 다른 사람도 왔단 말인가.
“들어오시죠.”
황금 공의 말과 함께 회색 머리의 건장한 청년이 들어왔다.
“누구시지?”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지만, 눈에 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에 벨레크가 황금 공에게 물었고, 황금 공은 회색 머리 청년의 정체를 벨레크에게 알려 주었다.
“이번에 우리가 맡은 일의 총책임자시다.”
“책임자?”
“칸나 델레세 벨 베르크. 베르크 왕국의 왕세자.”
황금 공은 회색 머리의 청년, 칸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때, 돈 냄새 좀 나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기에 벨레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고작 상인들로 베르크의 내전을 막을 수 있을까?”
“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보이니까. 반란군이 급습을 해서 그렇지, 왕국군이 오히려 강한 느낌이고.”
병력을 수습하고 사람들을 모을 시간이 없기에 밀리지만, 그것만 해결되면 베르크의 반군은 진압이 될 것이다.
“왕세자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힘을 준다는 것에 의의를 갖는 거지.”
“거기에 사병도 좀 지원해 주고?”
“사병이라니. 정규군은 움직이지 않을 거라니까?”
그저 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이 조금 애매한 사람들이 들어갈 뿐이다.
그것을 레일라가 모를 리 없었다.
“나쁘지 않네.”
“그래서 통과가 되었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황제가 마음만 먹었으면 칸나를 잡아들이고 베르크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었다.
“뭐, 나쁘지 않은 선택지니까.”
황실로서는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다.
상인들이 베르크에서 얻은 이권은 결국 세금의 형태로 제국의 수입이 될 터.
거기에 차기 왕인 왕세자에게 빚을 지울 수 있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안 그래도 흉흉한 소문이 돌거든.”
“흉흉한 소문?”
“음, 이건 비밀인데.”
보통 그 말을 내뱉은 이들은 비밀을 숨길 생각이 없는 이들이었다.
“창조의 교단에서 계속 압력을 주고 있거든.”
“거기서?”
창조의 교단이라는 단어에 르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곳이 제국과 같은 강대국에 압력을 줄 때를 르윈은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마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어머, 알고 있네?”
레일라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교단의 압력이라는 단어만으로 마족을 떠올리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창조의 교단에서 신경 쓰는 게 마족 말고 없잖아.”
“그런 편이긴 하지.”
인류와 마족은 불구대천의 원수다.
특히 창조의 여신과 마족의 여신의 관계는 최악.
존재 자체가 서로의 역린과도 같았다.
‘그러니 둘 다 사이좋게 뒤졌으면.’
인류도 그렇고, 마족도 그렇고.
사실 자기 대륙에서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이들이었다.
과거에도 국경 근처에서 소규모 전투가 발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했으나, 대륙을 넘어 서로를 정벌하겠다는 일은 없었다.
전쟁은 다 창조의 여신과 마신의 싸움 탓이다.
신 따위가 쓸데없이 자신을 모시는 이들에게 사주하고, 그로 인하여 서로 칼을 겨누게 했다.
‘그러니 평화의 신이 필요하지.’
전생에서 르윈이 드래곤에게 들었던 말이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념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잊혀 사라졌거나, 자신들처럼 드래곤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르윈은 믿음을 가지고 무링신이 있다고 믿었다.
모든 신의 시작은, 믿음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니까.
“아무튼, 그래서 우리도 직접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워. 바벨리안이라고 하더라도 교단은 무서우니까.”
종교의 무서움은 국경이 없다는 점이다.
분명 창조의 여신을 앞세운 신성국이 존재하지만, 창조의 교단은 신성국이 아닌 온 대륙에 퍼져 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쌓아 온 역사.
그것은 바벨리안조차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다.
“건국제에서도 많이 말하잖아? 바벨리안이 제국이 되는 과정에 용사의 도움이 컸다고.”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
그 이름은 바벨리안의 건국 역사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런 기억은 없지만.’
사람을 거두는 과정에서 바벨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몇 섞이기는 했지만, 그 작고 나약했던 왕국이 제국이 되는 과정에 도움을 준 기억은 없다.
‘그냥 알아서 잘한 건데.’
몇몇 이들에게 숨쉬기 운동을 비롯하여 아티팩트와 서적 등을 지원해 준 것이 전부다.
바벨리안에게만 준 것도 아니고, 인재로 모은 이들 모두에게 비슷한 혜택을 주었으나, 지금 이 땅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은 바벨리안이었다.
“그게 족쇄가 된 거네.”
그것이 족쇄가 되어, 창조의 교단에 발목을 잡혔다.
사실 초창기의 바벨리안이 용사의 이름을 팔아 이득을 보았던 것일 수도 있으나, 그 행동으로 인하여 제국 국민의 머릿속에는 용사에 대한 빚이 존재했고, 이미 죽은 용사 대신 그 빚을 창조의 교단이 뜯어 가고 있었다.
적어도 르윈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글쎄, 어차피 마족이 넘어오면 제국은 나서야 하니까.”
“그건 그렇지.”
대륙의 패권 국가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 제국, 혹은 그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강대국들이 그러했고, 또 전쟁에서의 공으로 인하여 더욱 번영한 예도 존재했다.
‘실패도 있었지만.’
마족과의 전쟁에서 국력을 소모하고 무너지는 나라도 존재했다.
과연 제국은 어떨 것인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번에 직접 내려올 때부터 눈치를 챘지만.’
이 망할 년의 신이, 또 자신을 용사로 선택하려고 발악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림도 없지.’
인생 9회 차를 부려 먹었는데, 양심 없이 또 부려 먹으려 하다니.
절대로 용사 르윈 디 드라이르프는 없다.
그러니 그걸 위해.
아주 조금 미안하지만.
‘주인공이 되어 주렴, 데이지.’
새로운 주인공을 세워야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