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22. 인생 10회 차의 시종은 나라를 구한다 (4)
“이럴 수가…….”
눈앞에 펼쳐진 수천의 병력에 칸나는 감탄했다.
“이게 다 데이지 양의 작전이 만들어 낸 결과?”
“아,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요!”
데이지가 빽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다 데이지가 만들어 낸 결과다.”
“역시 드라이르프의 책사!”
“머, 멋지다, 언니!”
“이것이 데이지!”
“너희마저…….”
예리엘과 하인스마저 배신했다는 사실에 데이지는 경악했으나.
이미 대세는 이 모든 일의 주역은 데이지라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이게 고등 교육도 가지 못한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녀로서 학년까지 낮추었다는군. 올해 막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했어.”
“대단하군.”
“아니야. 아니라고.”
제국의 부장들조차 감탄하는 모습에 데이지는 그냥 기절하고 싶었다.
‘어째서.’
왜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숨은 흑막이 되어 가는 걸까.
이러다 베르크 왕국에서 암살자라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원망을 가득 담아 르윈을 바라보는 데이지였지만, 르윈은 오히려 엄지를 치켜들 뿐이었다.
“내가 제명에 못 살지.”
고작 하루 만에 수천의 병력을 모은 책사가 되었다.
‘가문에도 소식이 알려지겠지.’
과연 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할까.
알렉스를 비롯한 사용인 동료들의 반응을 떠올리자 눈앞이 아찔해지는 데이지였다.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
“그렇지.”
칸나는 아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르윈 등을 바라보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루테스, 르윈, 예리엘, 하인스.
그 밖에 제국의 부장들까지.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었다.
특히.
“당연하지. 날로 먹을 생각이었나.”
어림도 없다는 르윈의 말에 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 또한 날로 먹을 생각은 없다.”
마지막, 가장 강렬한 반전과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이 모든 것이, 데이지 양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으니.”
데이지.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으로, 과거 타국의 귀족이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노예가 되었지만 운명적으로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이 되었고, 그 재능을 알아본 드라이르프 가문의 지원을 받아 드라이르프의 비밀 무기로 키워졌다.
…라고 르윈이 칸나에게 알려 주었다.
“맞지.”
“이 모든 게 다 데이지의 계획이었으니까.”
“하…….”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는 르윈과 루테스의 모습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다 제 계획대로네요.”
“역시.”
왜 이 사람은 나에게 이런 신뢰를 보내는 것일까.
데이지가 알지 못하는 사이, 르윈에게 가스라이팅을 제대로 당한 칸나는 데이지에게 감사를 표했다.
“왕국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난 후, 꼭 사례를 하겠네.”
“꼭 그러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주범으로 몰린 이상, 보상이라도 확실히 뜯어내야지.
그래야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
“아, 그리고 이건.”
르윈은 품 안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내어 칸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게 뭐지?”
“우리 흑막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번호가 적혀 있으니,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씩 꺼내 보세요.”
“오.”
작게 속삭였기에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나,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칸나의 시선에 또 르윈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데이지였다.
“도련님, 나중에 이야기 좀 하시죠.”
“우리 사이에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있을까?”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해도 된다.
그런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하시죠.”
“그러지, 뭐.”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그렇게 칸나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르윈은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렸다.
***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전하께서 더 고생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국이 최대한 정보를 차단한다고 하지만, 무려 수천의 인원이 움직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많은 상인이 자신의 사병과 용병을 구입하였고.
그들을 지휘하는 자가 베르크의 왕세자라는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칸나와 떨어진 호위들이 하나둘 칸나의 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할센은.”
“마지막까지 용맹했습니다.”
물론, 산 자보다 사자가 많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이들 중에서도 신체 일부가 없어진 이도 있었다.
“고맙네.”
칸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사과와 보상은 왕국을 되찾은 다음의 일이다.’
제국에서 받은 것은 군사만이 아니었다.
대륙 최고의 정보 집단 중 하나, 제국의 정보부가 지속해서 베르크의 소식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잘 도망쳐 다니고 있다고 하네.”
“그분이 그런 선택을 하실 줄 몰랐습니다.”
“그렇지.”
용맹하기로는 베르크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이가 칸나의 아버지이자 현 국왕인 카룰스 베르크였다.
그렇기에 최악의 경우, 반란이 일어난 즉시 사로잡히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카룰스는 반란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을 모아 도망쳤다.
“대장군이 늘 걱정했는데. 마음을 좀 놓았겠어.”
국왕이 가장 앞장서서 돌격하니, 군을 이끄는 이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니.
“오히려 더 화를 내는 건 아닙니까?”
“그럴 수 있지.”
이렇게 농담을 할 정도로, 베르크의 상황은 좋은 편이었다.
몇몇 주요 요새가 반군에게 넘어가 대치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왕이 살아 있고 대장군이 병력을 모으고 있었기에 곧 전쟁을 끝낼 수 있었으니까.
“하루라도 더 빨리 끝내야겠지.”
하지만 몇 달만 지나면 겨울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온갖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최소 봄까지는 대치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상황을 끝내야 했고, 그걸 위한 병력이 바로 용병이라는 명목하에 빌린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 배신자 놈들!”
“제국을 불러오다니, 네가 그러고도 이 나라의 왕세자냐!”
“더러운 제국의 앞잡이 놈!”
베르크의 국경을 넘어 처음으로 만난 성부터 적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병력의 수는?”
“반군은 칠백이 전부지만, 성안에 사는 백성들이 수천입니다.”
공성전이 이어진다면 당연히 그 백성들이 동원될 터.
“반군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목숨이 달리면 어쩔 수 없겠죠.”
정보부의 말에 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지.”
내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국민끼리 검을 겨눈다는 것이다.
국가가 다른 전장에서도 피아 식별이 잘 되지 않는데, 하물며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있을까.
일단 공성전이 시작되면, 누가 반군이고 누가 백성인지 알지 못한다.
점령이 끝난 이후도 마찬가지.
숨어 있는 반군이 있을 수 있기에, 끝없이 의심해야 했다.
“음?”
어떻게 해야 할까.
칸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품속에 있는 주머니 하나가 떠올랐다.
“분명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꺼내 보라고 했지.”
무려 모든 것의 설계자, 데이지가 건네준 물건이었다.
드라이르프 가문 공식 비밀 병기에, 제국의 황자까지 인정한 흑막!
그런 자가 건네준 것이니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으나.
“응?”
1이라 적힌 종이를 꺼내고, 그곳에 적힌 내용을 본 칸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준비된 깃발을 들고, 성벽을 일곱 바퀴 돌며 소리치세요. 우리가 왔다.>“무슨 소리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깃발은 무엇이며, 성벽은 왜 일곱 바퀴나 돌라는 말일까.
“헤바인.”
“네, 전하.”
“밖에 나가서 지휘관들에게 물어보게. 혹시 ‘준비된’ 깃발이 남아 있냐고.”
“알겠습니다.”
수하에게 그렇게 시킨 칸나는 종이의 뒤 내용도 읽었다.
“일주일간, 숙소를 점차 확대하며.”
두 눈을 감고, 그 의미를 생각한 칸나는 곧 무언가 깨닫는 게 있었다.
“설마.”
“전하, 깃발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옵니다.”
거기에 수하가 가져온 깃발을 보며, 깨달음은 확신이 되었다.
***
“제국군을 데려왔다는데. 우리 다 죽는 거 아니냐?”
“그럼 뭐, 항복이라도 하려고?”
어차피 반군의 끝은 죽음이다.
항복해도 소용이 없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끌려다녔을 뿐인데, 어느덧 반군이 된 병사들이었다.
그렇기에 뒤가 없다.
하지만 뒤가 없다고 두려움까지 없을 수는 없었다.
“하, 인생.”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으면 움직임이나 잘 확인해라.”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성전에서 수성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졌을 정도로 수의 차이가 컸다.
“드, 드라이르프다!”
그러나 한쪽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반군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허.”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깃발 중 하나였다.
검을 문 그리폰.
수호를 상징하는 그리폰이 담겨 있는 붉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차마 먼저 공격을 할 수 없었다.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려 모두가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왔다!”
그 외침에 순간 움찔하며 반응한 이들이 있었으나, 다행히 화살이나 마법이 날아가는 일은 없었다.
“가, 갔다.”
드라이르프 또한 먼저 공격할 의사는 없었는지, 조용히 일행에 합류하여 막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우, 우린 다 죽을 거야.”
제국에서는 수호의 상징이지만, 타국에서는 죽음의 사신으로 느껴지는 게 드라이르프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헤, 헤세드 후작가다!”
검은 사자에 쌍검이 교차하여 있는 문양에 지휘관이 비명을 질렀다.
헤세드 후작가.
드라이르프와 라인하르트에 비하면 이름값이 낮으나, 제국에 단 열둘밖에 없는 후작 가문 중 하나였다.
다른 왕국이라면 충분히 공작가로 칭송받을 힘을 지녔으나, 그럼에도 제국의 두 공작가와 비교하면 후작가로 남을 수밖에 없는 곳.
드라이르프를 제외하고는 견줄 자가 몇 없는 무력을 지닌 헤세드의 병사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성벽을 몇 번 돌고 자신들이 왔음을 알렸다.
“서, 설마.”
“제국군이 더 오는 건가?”
처음 왔던 수천의 군대도 무서우나, 어제오늘 도착한 일부의 병력이 더 두려운 반군이었다.
“설마, 또?”
거기에 이제 시작이라는 듯, 하루가 지날수록 새로운 가문들이 자신의 등장을 알렸고, 드라이르프와 헤세드에 비교하면 부족한 곳이지만 하나하나가 악명을 떨치는 제국의 가문들이 계속해서 오고 있다는 것에 반군은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7일이 지난 후.
점점 규모를 키워 가는 적군의 막사에 반군의 기세가 완벽히 꺾일 때쯤.
“베르크의 백성들은 들어라!”
베르크의 왕세자, 칸나는 소수의 병력만을 데리고 성에 접근.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고 하나, 너희 또한 나의 백성이다.”
“너희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지금 항복을 한다면, 왕세자인 나 칸나 델레세 벨 베르크의 이름으로 용서를 하겠으나.”
“끝까지 역적으로 남겠다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항복을 권유하는 협박을 내뱉었고.
“역시.”
반군이 점령한 성의 성문은 허무하게 열렸고.
너무나도 쉽게 열리는 성문을 보며 데이지에 대한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칸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