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22. 인생 10회 차의 시종은 나라를 구한다 (5)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평가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데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요? 시작했으면 끝을 보셔야죠!”
그 말에 예리엘이 불안한 표정으로 데이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언니… 지금 한 말, 나중에 감당 가능해?”
“…….”
예리엘의 지적에 데이지의 입이 순간 다물어졌다.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라.
어찌 보면 참으로 좋은 말이지만, 르윈과 합쳐지니 불길한 느낌이 가득 담긴 말로 바뀌고 말았다.
“때, 때로는 자중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요.”
그렇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이는 데이지였다.
“아, 아무튼, 기껏 본선에도 나갔는데. 주목도 받았는데!”
그런데 왜 때려치우냐.
그 말에 르윈은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그냥?”
“어차피 대회에 나간 이유도 칸나 왕세자 때문이었잖아?”
그런데 그 이유가 사라졌다.
그러니 귀찮게 대회에 나가서 검을 휘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다행이지.’
원래 자라나는 새싹들은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사는 법이다.
패배? 그것도 양분으로 삼아 쑥쑥 크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압도적인 벽을 만나면 마음이 꺾이고 만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하지만 너무 세게 맞으면 꺾이는 게 당연하다.
마음이 먼저 꺾이지 않더라도, 허리가 반으로 접히면 마음도 결국 꺾일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지.”
황녀인 레일라가 말하지 않았던가?
더러운 마족 놈들이 또 머리를 기웃거릴 수 있다고.
창조의 교단이라면 이를 가는 르윈도 인정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창조의 여신과 그 신도들이 마족을 극히 증오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마족으로 거짓말을 할 놈들은 아니지.’
그것마저 거짓말을 한다면 창조의 교단은 존재 자체가 필요 없다.
지금도 그다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족을 막으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아.”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레피스 선배가 종교 행사에 좀 참여해 달라고 했었는데.”
“설마…….”
“응, 까먹었어.”
“하…….”
하지만 이번만큼은 르윈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까먹을 만했잖아?”
“그렇죠…….”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십중팔구는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일이 없었으면, 기억했을까요?”
“글쎄?”
애초에 이 인간은 어제의 사건이 없더라도 종교 행사 같은 건 기억하지 않았을 사람이었지만!
“레피스 선배가 불쌍하네요.”
지금쯤 눈물 고인 새빨간 눈으로 이리저리 뛰고 있을 레피스를 떠올리며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
‘나쁜 새끼들.’
데이지의 예상대로, 레피스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만, 예상이 틀린 것도 있었으니.
“베르마샤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네. 베르샤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종파를 만들고 있는 아해라고.”
“무링신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레피스 원드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기세가 좋구만!”
“이름 없는 신을 되돌리려는 아이이니, 그럴 만하지.”
레피스는 울고 있지 않았다.
아니, 울 수가 없었다.
‘신의 이름을 빌려 저주한다. 꼭 하고 만다!’
고개를 돌리면 높으신 분, 그것을 피해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또 높으신 분들이 있다.
그렇기에 울 수 없었다.
높으신 분들이 하하호호 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울상을 짓고 있을 용기가 레피스에게는 없었다.
‘창조의 여신이든, 무링신이든 상관없으니까.’
제발 도망친 동아리 부원들과 일은 다 저지르고 참석도 안 하는 르윈에게 저주가 내리기를.
레피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여신님의 뜻이라고 하니.”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주는 저주고.
일단은 접객이 먼저였다.
‘왜 이렇게 친절하지?’
이것이 종교?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레피스에게 호의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어디 주교, 제사장, 추기경 같은 높으신 분들이었는데도!
“잘하고 계시네요.”
“베르마샤 선배!”
익숙한 목소리에 레피스가 고개를 돌렸다.
“바빠서 잘 못 챙겼는데, 혼자서도 잘하시네요.”
“아니요. 부담스러워요. 무서워요. 살려 주세요.”
이제는 우는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창조 동아리의 베르마샤와 친분이 생긴 레피스였다.
물론 레피스에게 엄청난 친화력이 있다든가, 혹은 베르마샤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안 친해질 수 없을 만큼 만남이 있었을 뿐!
‘쉬고 싶다.’
건국제 기간, 베르마샤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종교 활동을 한 레피스였다.
건국제를 기념하는 종교 행사는 레피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였고, 창조의 교단은 행사에 전력을 다하였다.
덕분에 그 전력에 휘말린 레피스는 수업까지 빠져 가며 종교 행사 준비에 참여해야 했다.
‘아카데미 수업을 그렇게 쉽게 빠질 수 있다니.’
역시 창조의 교단인가.
출석까지 모두 인정되어 합리적으로 수업에서 튈 수 있다는 사실에 레피스는 감탄도 했지만, 온갖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상상보다도 더 힘들어서 오히려 수업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그 정도면 괜찮네요.”
“안 괜찮은데!”
진심으로 괜찮지 않다.
최근 높으신 분들을 만나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뿐인가?
아예 동아리 부원으로 황자 전하와 공작가 막내 도련님을 모시고 있다.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면 기겁을 하실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한 가문의 가주로서 만나는 이들도, 레피스의 동아리 활동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니까!
“이러다가 거물이 되어 버릴 것 같아 무서워요.”
“새로운 종교를 세우는 사람이 거물이 아닐 리가 없죠.”
마법계에서도 하나의 학파를 세우는 이는 거물 취급을 해 준다.
아무리 그 학파의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없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의미니까.
하물며 그보다 대중적인 종교를 만드는 일이다.
“레피스는 거물이 맞습니다.”
베르마샤의 온화한 웃음에 레피스는 좌절했다.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따뜻한 시선이다.
인정받는 기분이다.
분명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무거워.’
태생부터가 소귀족인 레피스로서는 그저 그 무게에 깔려 죽을 맛이었다.
‘애초에 내가 원한 게 아니었는데.’
거기에 본인이 욕심이 많았다면 이 기회를 잘 노렸을 것이다.
창조의 여신 라헬을 충실하게 믿는 고위 귀족도 많았으니까.
지금 쌓는 인맥을 잘 사용하기만 하면 원드 남작가를 키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저는 거물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러나 그런 준비도, 의욕도 레피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쌍하지.’
그런 레피스가 베르마샤는 안타까웠으나.
‘이 또한 다 신의 뜻이니.’
여신 라헬은 레피스를 원한다.
새로운 종교?
레피스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보통이라면 그런 것이 생기는 것을 사람들은 원치 않는다.
기존의 마이너 종교조차 기존의 신도들을 유지하고자 발버둥을 치는 상황이었고, 메이저급이 되는 종교들은 어떻게든 사람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종교라니.
창조의 교단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제외한, 아주 작은 시장에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는 의미다.
그걸 다른 종교가 원할 리 없다.
일반 신도들조차 그러할 텐데, 고위 간부는 어떻겠는가?
보통이라면 새로운 새싹이 자라나기 전에 밟는다.
세상에 이름 없는 신을 찾는 사람은 많으나, 그 신이 이름을 되찾은 적이 없다는 게 그 증거다.
‘본래라면 그렇게 될 운명이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창조의 여신이 베르마샤를 포함한 다수의 성자에게 동시에 자신의 뜻을 전하였으니까.
‘레피스 원드를 도와 그녀의 신이 나의 품에 오게 해라.’
하나도 아니고, 거의 모든 성자, 성녀 후보생에게 전달된 말이다.
당연히 교단에서도 레피스 원드에 대한 우선순위를 1순위로 올렸고, 다른 교단에도 은밀하게 그녀를 방해하지 말라고 전달하였다.
‘이미 늦었지.’
대세는 기울었다.
레피스 원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는 무링교라는 교단을 설립한 설립자가 될 테고, 창조의 교단은 무링교라는 종교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 레피스 자매님께서는 거물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맨날 필요할 때만 자매님이래.”
흰 머리와 붉은 눈.
마치 울먹이는 토끼와 같은 모습은, 레피스가 매번 주장하는 소귀족은 몰라도 소동물하고는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종교계에서 떠오르는 거물 중의 거물이다.
창조의 여신 라헬이 원하고, 베르마샤를 포함한 수많은 신도들이 그 뜻에 따르며, 창조의 교단이라는 거대한 종교에 포함된 수많은 종교들이 그것을 인정할 테니까.
“겉모습만 보면 바벨리안의 황족하고 비슷하지 않습니까?”
“묘사만 비슷하지, 실제로 보면 다른데요? 황족은 나 같은 탁한 백발이 아니라, 그 뭐냐. 뭐더라…….”
끙끙거리던 레피스는 아! 하고 외치며 말했다.
“순백! 순백의 백발! 내가 눈 내린 곳에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라면, 그분들은 아무도 밟지 않고 쌓인 눈!”
자기 비하도 저 정도면 안쓰러울 정도다.
베르마샤는 그녀에게 조금의 용기를 주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레피스 님은 그 황손조차 품으신 분 아닙니까.”
“아…….”
그러나 위로로 전한 말은 레피스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우리 동아리에 황자가 있다. 공작가는 덤이다.
‘죽고 싶다.’
순간적으로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2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건국제만 끝나면 다 끝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그 둘을 또 만나야 된다는 것이 체감되었기 때문이다.
“음…….”
축 늘어진 레피스를 보며 베르마샤 또한 자신의 말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홀로 기도를 드리며 버텼다.
그러니 레피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베르마샤 형제님.”
“일레소 형제님.”
마침 저 멀리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기에, 베르마샤는 레피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부르는 사람이 있어, 잠시만 갔다 오겠습니다.”
“…….”
그 말을 하고 떠나는 베르마샤의 뒷모습을 레피스는 원망을 담아 노려보았다.
‘그러고 또 한동안 안 오면서!’
성자와 성녀 후보가 적은 수는 아니나, 대륙에 있는 창조의 교단 신도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아주 귀중한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무려 신의 목소리를 듣는, 선택받은 이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저렇게 떠난 베르마샤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 분명하다.
여태까지 그랬으니까!
‘나쁜 새끼…….’
레피스를 뒤에서 미는 것이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면, 레피스를 앞에서 끌고 가는 존재는 베르마샤 라이트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어 주는 덕분에 추진력을 단 듯 앞으로 끌려 나가는 사람은 바로 레피스 원드였다.
‘온다.’
베르마샤는 레피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으나, 자의 0퍼센트, 타의 100퍼센트로 거물이 되어 가는 레피스를 사람들은 혼자 두지 않았다.
“하하, 나는 자애의 교단에서 수도원장을 맡은…….”
“이쪽은 바람의 교단에서 제4성기단을 맡은…….”
하나둘 다가오고 사라지는 고위 인사들을 보며, 레피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베르마샤 선배도 저주하면, 여신께서 들어주실까?’
괜히 그랬다가는 도망친 동아리 부원들과 르윈에 대한 저주까지 취소가 될 수 있다.
인맥, 아니 신맥 하나 잘 둔 베르마샤는 용서하기로 마음먹으며.
레피스는 동아리 부원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렇게 한 종교의 거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