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23. 인생 10회 차는 축제를 즐긴다 (3)
『우승자는 엘프의 왕국, 수르크에서 오신 방랑 기사 펠테스!』
“이변은 없었네.”
르윈은 팝콘을 씹어 먹으며, 검술 대회의 종합 우승자가 선언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보면 칸나 왕세자가 불쌍하기는 하네.”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우승을 차지한 엘프 고인물의 모습에 르윈은 자신만만하게 출전했다가 1차에서 탈락한 칸나를 떠올렸다.
“지금 보니 그러네요.”
데이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꺾고 올라간 힐리나는 아카데미 결승전에서 패배.
그래도 출전권을 얻어 황성으로 왔으나, 황성에서도 16강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데이지였다.
그에 비해 칸나는 우승자, 그것도 압도적인 전력 차를 보여 주며 우승한 엘프를 1차전에서 만나 패배한 것이니, 운이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명예로운 패배였죠.”
“패배에 명예가 있을까?”
예리엘의 명예로운 패배라는 말에 하인스가 의문을 던졌다.
명예로운 패배란 존재하는가.
“포장하면 명예고, 포장지를 그냥 뜯어 버리면 패배일 뿐이지.”
그에 대한 대답을 르윈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포장의 전문가, 창조의 교단에 의하여 온갖 포장을 당한 인생이 아홉 번이기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건국제 대회도 다 끝나 가네요.”
“안 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말을 꺼내자마자 차단당한 데이지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더욱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안 가도 되지?”
“안 됩니다.”
베르샤 아카데미를 떠난 지도 이제 닷새째.
첫날은 사건 때문이고, 둘째 날은 그 여파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수업도 안 하잖아. 축제 끝날 때까지는 여기서 구경하는 게 더 이득 아니야?”
아카데미 측에서 황성에 내보낼 사람들은 이미 다 선발된 것은 물론 대회에 출전까지 했다.
그 이후에도 자잘한 이벤트들이 있겠으나, 황실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수준이 낮다.
굳이 여기까지 왔는데, 아카데미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것이 르윈의 주장이었다.
“그래도 보안이나 그런 걸…….”
“여긴 황실 아카데미인데? 바로 옆 동네가 황성인데?”
“…….”
이것 또한 르윈의 주장이 옳았다.
보안으로만 따지면 제국 외곽에 있는 베르샤 아카데미보다 황실이 근처인 황실 아카데미가 더 좋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봐.”
“그냥 도련님이 이곳에 있는 게 싫습니다.”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번에 아가씨를 붙잡아 놓으시고, 혼자 어디에 가셨죠?”
“응.”
“만난 사람은 그 음식 연구부인지 하는 사람들이고요.”
“알고 있었어?”
“뻔하니까요.”
황실 아카데미의 학생 식당 요리사 납치 사건이 있던 당일.
르윈은 잠깐 화장실을 간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고, 그 이후에 황실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교류가 생겼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유명한 사람들만 만나더군요.”
르윈의 말이 맞았다.
르나인에게 물어본 결과 황실 아카데미에도 문제아는 존재했고, 뛰어난 이들이 모인 황실 아카데미인 만큼 문제아들의 수준도 엄청났다.
당장 요리사 납치 주범이었던 베로니카만 하더라도 레이세르 후작가의 장녀로 뛰어난 마법사였고, 그녀를 따르는 음식 연구부 부원들 또한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는 한 명, 한 명이 다 건드리기 어려운 가문.
황실 아카데미는 제국, 아니 대륙 최고의 교육 기관이었고, 그곳에 다니는 문제아들 또한 대륙 최고의 문제아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하고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
단순하게 제국에서 건국제를 즐긴다면 데이지도 가만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냥, 아카데미 교류회인데?”
“…아카데미 문제아 교류회요?”
데이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르윈을 노려보았으나, 르윈은 그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동아리 차원에서 다른 학원 사람들하고도 교류하는 게 좋지.”
“동아리 차원이라.”
공식적으로 음식 동아리와 교류하는 것은 무링신 연구 동아리라는 의미였다.
‘전혀 상관이 없잖아!’
다른 아카데미와의 교류?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카데미 동아리 차원에서 그런 교류가 없는 것도 아니고, 교수 차원으로 가면 서로 협력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도 작성하는 게 흔한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비슷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끼리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무링신 연구 동아리는 신을 찾고 연구하는 목표를 지닌 동아리로 포장은 되어 있었고, 분류 또한 종교 동아리로 명확하게 분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종교 동아리와 음식 동아리의 교류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절대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르윈은 당당했다.
“종교는 어디에나 존재하지. 나이, 성별, 직업을 구분하지 않아.”
“…그래서요?”
“아무리 다른 영역의 동아리라고 하더라도 포교는 가능하다는 거지.”
한마디로, 다른 아카데미에 무링신을 포교하고 다녔다.
그러니 교류가 맞다.
오히려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부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포교는 성공하셨나요?”
“제법 괜찮은 성과였지.”
심지어 성과도 괜찮단다.
그 말에 데이지는 더욱 불안해질 뿐이었다.
“오늘도 만날 사람이 있고요?”
“응. 베로니카 영애. 생각보다 발이 넓더라고.”
학생 식당에서는 진상 고객에 테러리스트 취급이지만, 다른 음식점 사람들에게는 제법 도움을 준다고 평가를 받는 음식 연구부였다.
물론 레이세르 후작가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주변 음식점과 학생들에게는 괴짜 미식가 정도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음식 연구부에서 분기마다 발행하는 맛집 서적이 황성에서는 제법 유명한 편이라고 하고.”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렇지? 우리 동아리도 앞으로 계속 확장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절대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종교, 더 커지지 않는 게 세상을 위한 일 같으니까.
차마 그렇게까지 말은 못하고, 데이지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건국제는 많은 제국민들에게 재미와 자부심을 주고, 또 몇몇 준비된 이들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도 주었다.
‘점점 더 작위가 올라가고 있어!’
그리고 여기, 하루하루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피스 영애님!”
방긋 미소를 지으며 내미는 손을 레피스는 다급히 붙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베르베타 영애님.”
건국제 기념, 아카데미 종교 행사를 맡았던 레피스.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황성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고, 또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높으신 성직자들이 가득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성직자는 귀족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성직자 중에는 고위 귀족에 버금가는 사람이 많았고, 또 창조의 교단의 몇몇 이들은 고위 귀족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작위를 가진 성직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다르다.
‘후작가 영애님이 왜!’
무려 베르베타 후작가의 막내다.
자신의 동아리에 황족이나 공작가 막내가 존재해서 덜한 느낌이지만, 후작가는 제국에 단 열두 개뿐인 직위였다.
백작가만 하더라도 천상계 취급인데, 그 위인 후작가는 어떠하겠는가!
“어머, 베르베타 영애님이라니요. 제 이름은 베르베타가 아니랍니다?”
웃으며 내뱉는 말에 레피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시, 실수했나?’
잘 모르는 사람일 경우 가문으로 부르는 것이 흔하지만, 개중에는 그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가문으로 불리면 본인이 아닌 가문만 보고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베르베타 가문은 아카데미도 거의 다 졸업했다고 했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것은 가문의 막내뿐.
‘그리고 막내가 그런 피해망상을 제일 심하게 가지고 있다고 했지?’
찍혔다!
레피스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상대는 웃으며 레피스의 손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제 이름은 엘리드나입니다.”
“네, 네. 엘리드나 영애님.”
기회를 준 것인가.
생각보다 관대한 영애님이라 다행이라고 레피스가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였다.
“후훗, 앞으로 자주 볼 사이니까, 편하게 엘리드나로 부르셔도 돼요. 저희 동갑이던데요?”
“네, 네?”
머릿속에 물음표 몇 개가 생겨났다 사라졌다.
이 영애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앞으로 자주 볼 사이라니?
내가? 당신이랑? 도대체 왜?
‘이것이 종교의 힘인가?’
후작가 영애님이 밑바닥 중의 밑바닥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작가 영애님에게 신경을 쓸 정도로 종교란 것이 대단한 것인가.
점점 더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 자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레피스였다.
‘내년에 때려치우자.’
동아리 제도는 아카데미 시스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도였기에 쉽게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매년 학기 초,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동아리를 정하는 시기.
재학생들도 현재 동아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때 다른 동아리에 가입하고 동아리를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
그때 동아리를 바꾸는 것은 제국의 법과 아카데미 학칙이 모두 인정하기에 레피스는 내년에 다른 후배에게 동아리 회장직을 떠넘기고 떠나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 대해서는 언니에게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언니요?”
“아, 레피스 양은 언니에 대해서 모르고 계시죠?”
어느새 레피스 영애님에서 레피스 양이 되어 버렸다.
중간에 분명 레피스 영애라는 단계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것마저 생략된 것이다.
‘왜, 왜 이래?’
후작가 영애가 갑자기 훅 하고 친분을 과시하며 들어온다.
그것에 언니라고 불린 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레피스조차 알 수 있었다.
“베로니카 디 레이세르. 이름은 들어 보셨죠?”
“다, 당연하죠.”
거짓말이다.
사실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레이세르 후작가.’
그러나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몰라도, 레이세르라는 성은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잊겠는가.
눈앞의 베르베타 영애와 같은, 제국에 열두 개뿐인 후작가 중 하나인데!
‘이게 황성?’
간혹 베르샤 아카데미에도 후작 가문의 자제가 들어오기도 한다.
하나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사라진 이들로, 베르샤 아카데미에 전설로 남겨진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유명한 이유는 단 하나.
가문이 후작 가문이어서.
제국 수도에서 손가락 안에 든다는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도 후작 가문 사람들은 귀할 만큼, 후작 가문은 보기 힘든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가 자신을 알다니.
심지어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다른 후작 가문 영애의 추천을 받고!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것을 레피스가 깨달았을 때.
“언니가 우연히 무링교 사람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눴는데?”
“매우 흥미로웠다고 하더라고요.”
“…….”
도대체 어떤 새끼일까.
어떤 새끼가 겁도 없이 후작가 영애에게 무링교 같은 사이비 종교로 대화를 한 것일까.
‘…한 명밖에 없잖아?’
“드라이르프 가문의 막내 도련님이 들어간 동아리라면서요?”
역시 그 새끼다.
“언니께서 제가 종교 행사에 참여한다는 걸 듣자마자 레피스를 만나 보라고 하셨어요.”
어느새 레피스 양은 레피스가 되었다.
참으로 사람과 빠르게 친해지는 영애님 같았다.
‘나는 안 친해서 문제지!’
일방적인 친분과 호의에 레피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렇게 자신을 향해 포위망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레피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