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23. 인생 10회 차는 축제를 즐긴다 (4)
“벌써 간다고?”
르나인이 울상을 지으며 르윈을 품에 껴안았다.
“나도 더 오래 있고 싶은데.”
르윈이 그렇게 말하며 데이지에게 시선을 주자, 데이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카데미 복귀 요청이 계속해서 오고 있습니다.”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복귀 요청이 계속해서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요청한 이는 다름 아닌 데이지 본인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모시는 집안의 자제분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물론 그 죄책감에 르윈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선배님도 보냈으니까, 그런 거 안 올 줄 알았는데.”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는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이긴 하지.’
모든 게 데이지의 독단이었다.
총학생회장인 데일드나 루테스 같은 사람으로서는 건국제가 끝날 때까지 르윈이 아카데미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폭탄이 멀리 떨어진다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거기에 다른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책임을 져야 할 의무도 없었다.
황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각 교육 과정의 회장들이 다 르윈의 형제였으니까!
그렇기에 베르샤 아카데미의 높으신 분들은 르윈의 복귀가 늦으면 늦을수록 좋았다.
“이번에 복귀하는 학생하고 같이 복귀하면 편하니까요.”
하지만 데이지로서는 르윈이라는 위험 요소가 황실 아카데미까지 세력을 뻗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베리엘에게 강력히 주장하여 대회 참가로 황성에 온 학생들과 함께 르윈이 복귀할 것을 요청, 데이지의 간절한 부탁에 데일드도 아쉬워하면서 공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가해지는데.”
르나인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건국제도 슬슬 끝나 가는 차.
학생회 임원들은 이제야 한숨을 토해 낼 수 있는 시기였다.
“곧 다시 바빠질 예정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말 그대로 한숨을 간신히 쉴 수 있을 정도였다.
일의 시작만큼 중요한 것이 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건국제가 끝나면 중간고사, 중간고사가 끝나면 차기 학생회 선거 기간.
그리고 그 선거가 끝나면 기말고사가 찾아오고, 다 끝나면 졸업식과 입학식을 준비해야 했다.
“…….”
역시 학생회 따위는 때려치워야겠다.
중등부만 하더라도 이 모양인데, 일이 더 많다는 고등부까지 학생회를 맡는다면 쉴 시간이 전혀 없을 것이다.
‘오빠 놈들이 괜히 방학에도 집에 못 돌아가는 게 아니지.’
천하의 드라이르프도 학생회의 노동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빠들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안 르나인은 학생회 탈출을 마음먹었으나, 라테일과 라그일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친해진 동아리가 몇 개 있으니까. 아카데미 간에 협력이나 교류회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괜찮네!”
르윈의 말에 르나인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아카데미 간의 교류회.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 행사이지만.
‘내년에는 학생회 안 할 거니까.’
골치 아픈 일은 다 오빠 놈들이 처리할 거다.
그러니 귀여운 동생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공수표를 남발했다.
“내가 꼭 시도해 볼게!”
이때의 자신을 원망하며, 울면서 일하게 되는 미래가 그리 멀지만은 않았으나, 해맑게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이때의 르나인은 만족했다.
***
번쩍이는 빛과 함께 백탑에서 황탑으로 이동한 르윈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3일만 더 있었으면, 다 만날 수 있었는데.”
“…….”
그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데이지는 빠르게 판단을 내린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큰일 날 뻔했어.’
만나려고 했던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간 르윈의 행적을 떠올리면 그리 좋은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베르샤 아카데미만 해도 힘든데, 다른 곳까지 이어지면.’
누군가는 너무 걱정이 많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카데미 간의 교류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아.’
르윈 디 드라이르프.
베르샤 아카데미 기초 교육 과정 1학년 재학 중.
올해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남은 기초 교육 과정이 3년.
그 이후 교육 과정이 6년이다.
그런데 1학년에 다른 아카데미와의 교류를 추진한다?
정신을 차려 보면 제국 수도에 범조직적인 문제아 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해.’
도서관 사서들에게도 공포감을 느꼈던 데이지였다.
베르샤 아카데미의 특수한 환경.
거기에 탐험에 미친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특이한 환경이라고 하나, 그런 집단이 다른 아카데미에 존재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음식 연구부라는 이상한 동아리도 있었으니까.’
제국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수도인 바벨리안은 거대한 영토와 온갖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수많은 아카데미가 존재했다.
그 수많은 아카데미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데이지는 사명감을 가지고 르윈을 막아야 했다.
“오, 오셨습니까?”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인물 하나가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황금의 탑, 탑주 카벨.
그는 여전히 마탑주라고 하기에는 가벼운 모습으로 르윈의 앞에 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굳이?”
“베르크 왕국과 연관된 소식이 제법 들어왔습니다.”
누가 들을까 르윈의 귓가에 소곤거리는 카벨이었다.
“그건 좀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네.”
르윈과 함께 복귀한 다른 학생들이 마탑의 마법사들의 안내에 따라 퇴장하고 있을 때, 르윈은 마탑주인 카벨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향했다.
‘잘하고 있으려나.’
르윈은 아주 짧지만 뜨거운 우정을 불태웠던 칸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붉은 머리는… 아니, 금발이었나? 아니, 회색?’
흐릿한 기억을 뒤적거리던 르윈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우정이라 다짐하며, 카벨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왕세자님은 잘하고 계신대?”
그 정도로 도움을 주었는데 반란군에게 죽으면 곤란하다.
친구한테 돈을 빌렸으면 적어도 이자 정도는 챙겨 주어야 하니까.
“네. 역도들의 수장인 1왕자는 도망쳤다고 하나 반군은 와해가 되었고, 그를 지지하던 귀족들 역시 대부분 사살되었다고 합니다.”
1왕자가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이야기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크의 왕은?”
“무사합니다. 너무 정정해서 마지막 전투의 최전선에서 1왕자를 쳐 죽이겠다고 날뛰었다고 하더군요.”
대대로 무골을 타고난 베르크 왕가는 뛰어난 무인이 많았다.
왕세자인 칸나는 소드마스터가 되지 못했을 뿐 그 직전에 가까운 실력자였으며, 1왕자 또한 나태하고 쓰레기 같은 인성을 보유했음에도 검술 하나만큼은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베르크의 왕은 모두가 인정하는 무인.
“소드마스터면 왕이 최전방에서 날뛰는구나.”
베르크의 최강자였다.
“꼭 소드마스터라고 해서 앞장선 것은 아닐 겁니다. 베르크의 왕은 왕세자 시절에도 기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호걸이니까요.”
“그런 사람이 바로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얼핏 들으면 소드마스터씩이나 되어서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으나.
“다혈질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영리해서 많은 이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르윈의 말은 칭찬이었다.
“그렇지.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힘을 믿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용사였다.
주변에서 무리라고 하는 일에 가능하다고 말했고, 목숨을 불태워 가며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증명했다.
‘진짜 미친 짓이었지.’
그 결과 세계를 구했지만, 자신의 인생은 구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흑역사와 비교하면 베르크의 국왕은 현왕 그 자체였다.
“상대에게도 소드마스터가 있는 걸 알자마자 바로 철수. 그 후 세력을 모아 반군과 대치하면서 아군의 병력이 수습되는 걸 기다렸습니다.”
개인의 무력을 믿지 않고, 자신의 나라를 믿었다.
“그런 상황에서 칸나 왕세자가 용병을 이끌고 도착하니, 반군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역모를 도모했을 때, 국왕을 잡지 못한 순간 승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소드마스터인 베켄나라는 전력을 투자하며 왕세자 암살이 실패하는 그 순간, 반군의 승리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거기에 숨겨진 현자의 도움을 받기까지 했다고 하니.”
완벽한 승리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시죠?”
데이지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카벨에게서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나를?’
분명 르윈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였다.
거기에 저 부담스럽게 빛나는 눈동자는 무엇인가?
‘설마?’
그저 우연일 뿐일까.
그 부담스러운 시선이 닿는 순간은, 카벨이 숨겨진 현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을 하던 순간이었다.
‘아, 아니겠지?’
데이지의 시선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타국에 숨겨진 현자의 이름이 데이지라니.
드라이르프 가문의 최종 병기, 데이지 같은 소리이지 않나?
“도련님.”
데이지는 입술을 꾹 깨물며 르윈을 노려보았다.
얼마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입안에 옅은 피 맛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현자가…….”
“응, 너야.”
“…….”
이를 악다물며 아니라고 말하라고 눈치를 주는 데이지였지만, 르윈은 그런 데이지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역시!”
감탄사와 함께 더욱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카벨의 모습에 데이지는 이를 갈았다.
“힉!”
“…….”
그 뜨거운 분노가 전해진 것일까.
작게 비명을 내지르며, 예리엘과 하인스는 데이지에게서 두 발자국 멀리 떨어졌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칸나 왕세자가 네가 준 비밀 복주머니를 잘 써먹었나 보지.”
“저는 그런 걸 준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요.”
“진정한 흑막은,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법이니까.”
“진정한 흑막에게 이용당한 불쌍한 소녀는 아니고요?”
“평소에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
세상에.
감탄사까지 내뱉으며 자신을 놀리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누군가가 저를 암살하면, 범인은 도련님입니다.”
고작 시종이 그런 큰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 싶지만, 한 나라를 책임질 왕세자와 마탑의 탑주라는 놈이 믿고 있다.
거기에 바벨리안과 드라이르프의 핏줄들이 인정하니, 칸나에게 제대로 당한 베르크의 1왕자가 마지막 발버둥으로 암살자를 보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암살자 같은 것이 너를 해치지 못하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데이지 나이대의 소녀에게는 로망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사였지만.
“…부려 먹으려고요?”
이미 르윈에게 익숙해진 데이지는 르윈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당연하지. 내 계획은 10년 이상이니까!”
그 계획의 최전선에 있는 자신은, 죽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말.
‘진짜로 할 사람이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느낀 데이지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조용히 닦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