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24.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1)
축제가 끝난 아카데미에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노점을 열어 한몫 제대로 챙긴 학생들도 있고, 대회나 행사에 참여하여 수상한 이들 또한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은 그저 건국제라는 축제를 즐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가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와!”
학생들은 절망하고 만다.
“시험 기간이다.”
아카데미가 건국제 축제로 인하여 한바탕 뜨거워진 것도 깔끔하게 잠재우는 한마디였다.
한겨울의 추위보다 차가운 현실이 학생들의 온몸에 휘감겼다.
“괜찮아.”
그 현실에 좌절하는 하인스의 어깨를 토닥이며, 르윈은 긍정적인 상황을 말해 주었다.
“망해도 다 같이 망하니까.”
“전혀 위로되지 않는데요?”
하인스는 물론 데이지와 예리엘은 평범한 학생과 다르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으로, 르윈의 곁에서 함께하기 위해 지내는 이들이다.
당연히 학비는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나오고,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그 지원이 없어지진 않겠으나.
‘체면이 있지.’
다른 시종들에 비해 자신이 특혜를 받는 것을 잘 아는 하인스였다.
그 이유가 르윈의 요청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평소에 울화통이 터지더라도 이 악물고 르윈과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밥값은 다 하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수치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아카데미의 성적은 명확하게 등수가 나온다.
그것도 아카데미 광장 한복판에, 모두가 볼 수 있게.
“공부해야 하는데.”
이전에 무엇을 배웠더라.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건국제 기간에 수업을 안 했으니 복습할 분량이 적지.”
르윈의 말처럼 공부할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건국제 기간에도 공부하는 독한 애들도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 사람이 있어요?”
모두가 놀 때 공부를 하는 인간.
그런 인간이 있을까.
“당연히 있지.”
있다. 그것도 제법 많이.
“도련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다음 탐사로 축제 기간에 도서관 몇 번 들렀거든.”
“…또 가시는군요.”
“당연하지.”
드래곤으로 인하여 공간이 비틀렸기에 어떤 공간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다.
그런 재미있는 곳을 안 가다니.
“인생의 손해잖아?”
“그건 모르겠고, 데이지 누나의 위장은 손해인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르윈은 훗! 하고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쩌겠어. 내가 주인인데.”
“…….”
데이지에게 하는 말이지만, 저 말에는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걸 하인스도 알고, 르윈 또한 알고 있었다.
“정말 쓰레기 같은 대답이네요.”
“그렇지만 사실인걸.”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잔혹한 현실을 알려 주며, 르윈은 추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참고로 건국제로 인하여 수업 진행이 안 되었다고 했잖아.”
“그랬죠.”
“그래서 복습할 분량이 적고.”
“그나마 다행이죠.”
“그건 다르게 말하면, 시험에 낼 분량도 적어진다는 말이거든.”
“그렇죠?”
“하지만 시험 분량이 적어진다고 하더라도, 30문제 내던 걸 10문제로 줄일 수는 없잖아?”
“어……. 그렇죠?”
르윈의 말에 하인스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등이 축축해지고, 발끝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그래서 필기시험보다는 실습 시험에 중점을 둔다고 하더라.”
“…….”
적은 범위에서 똑같은 분량의 문제를 낸다면, 필연적으로 영양가 없는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필기시험의 점수를 줄이고, 이론 시험의 점수를 올린다.
“그, 그냥 필기시험 문제를 줄이면 안 될까요?”
“그러면 편하긴 한데. 이번이 첫 건국제도 아니잖아?”
아주 오랜 시간 그것이 이어지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간혹 이유 없이 전해져 오는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카데미 교수들이 바보들은 아닐 테니까.”
제국 핵심 교육 기관에서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
그렇기에 미래가 바뀌는 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덜덜 떠는 하인스를 보며, 르윈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법 실습, 잘할 수 있지?”
“…….”
점점 절망이라는 감정으로 물들어 가는 하인스의 눈동자를 보며 르윈은 즐겁게 웃었다.
***
“시험 준비요? 당연히 하고 있었습니다.”
“오…….”
하인스와 달리 자신감이 넘치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히려 저는 도련님이 걱정인데요. 시험공부 안 하셔도 되겠습니까?”
“난 원래 벼락치기 스타일이니까.”
르윈의 당당한 말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벼락치기란 시험 전날에라도 공부하는 것을 뜻합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데이지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잘 치지는 않잖아? 그나저나 그 안경은 뭐야. 못 보던 건데.”
의도적으로 말을 돌리는 것이지만, 어차피 영양가 없는 말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데이지는 잘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모를까.
시험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불필요한 사담은 줄이는 것이 낫다고 데이지는 판단했다.
“라일라 영애께서 선물로 주신 겁니다. 진정한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시던데요.”
“나 팔아서 얻었구나.”
저번에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정도로 자신을 팔던 데이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르윈은 헛웃음을 지었다.
“다 도련님에게 배운 거죠.”
“참 잘 배웠네.”
“다 훌륭하신 주인님 덕분이죠.”
훈훈하게 서로를 칭찬하는 주종이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예리엘과 하인스는 버거워 보이던데.”
“언제까지 제가 봐줄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법도 익혀 두는 것이 좋겠지요.”
평소에 경고도 확실히 해 뒀다는 데이지의 말에, 르윈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한다면 하는 애들이니까.”
말을 내뱉는 순간, 예리엘이 만들었던 포션들이 떠올라 잠시 멈칫한 르윈이었지만.
곧 그 내용물의 효력은 괜찮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괜찮았던가?’
뭔가 부작용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 저편으로 날려 버렸다면 중요한 내용은 아닐 터.
“그럼 한동안 여기서 공부만 할 거야?”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고를 치지 말아 달라는 데이지의 시선에 르윈은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도 한동안 할 일이 있거든.”
“당연히 시험공부는 아니겠죠?”
시험 기간에 할 일이라면 시험공부가 당연한데.
르윈 디 드라이르프는 당연한 일을 하지 않으리란 확고한 믿음이 데이지에게는 존재했다.
“인생 공부지.”
“…….”
그리고 그런 자신의 믿음에 화답하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인생 공부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일?”
“구체적으로요.”
“그냥 동아리 가서 기도나 하려는 건데?”
“…기도를요?”
기도가 무엇인가.
성직자들이 말하기를, 인간이 신과 대화하고 교감을 하는 행동이요.
또 어느 사상가가 말하기를, 불안전한 인간이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의 이름을 빌려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당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도련님이요?”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르윈이라는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기에.
데이지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르윈을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데?”
“거짓말을 하려면 조금 그럴싸한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는 거짓말 싫어하는데.”
“진짜 기도를 하신다고요? 저희가 시험이라도 잘 보게 해 달라고요?”
그런 기특한 일을 도련님이 하실 리 없잖아요.
그런 무언의 압박을 담아 르윈을 보자, 르윈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럴 리가. 시험을 잘 보고 싶으면 신에게 빌 시간에 너희가 더 노력하게 했겠지.”
노력하게 만든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이었지만, 데이지에게는 조금 두려운 말이었다.
‘무슨 짓을 저질러서 노력하게 만드는지 모르니까.’
필요하다면 사람을 절벽 끝으로 보내지 않을까.
아니, 베르크 왕국의 일을 떠올리면 단순히 절벽에 보내는 것을 넘어 절벽 밑으로 밀어 버릴 사람이었다.
“그러시겠죠.”
“진짜로 가서 기도만 하는 거야.”
“누구한테요?”
“당연히 무링신이지.”
“무쓸모 잉여신에게요?”
“응. 이루어 주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도는 필요하니까.”
“…….”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사람이 왜 신에게 기도하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다.
어떤 사상가가 말했듯, 기도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당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루에 세 번, 매일같이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어도.
똑같이 하루에 세 번, 매일같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성자나 성녀 소리를 듣는 이들이나 그런 기도를 할까.
아니, 어쩌면 성자나 성녀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만 기도를 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아픈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들은 개인적인 일이 아닌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 또한 개인적인 소망일 뿐이었다.
애초에 신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면, 그 아픔조차 신이 내려 준 것이니까.
그것을 자신이 원하지 않으니 철회해 달라는 것이다.
자기 뜻을 일방적으로 신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데이지가 생각하는 기도였고, 그렇기에 그녀가 진심으로 기도한 것은 아주 어릴 때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으니까.
“왜? 이상해?”
“네.”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믿는 자들은 아주 소수.
나머지는 그냥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기적이라는 단어에 매달려 신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에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너도 가끔 하잖아?”
“대부분 도련님 때문이죠.”
“보통은 창조의 여신을 생각하며 하고 있지?”
“그렇죠.”
창조의 교단과 악연만 가득했지만, 일단 기도를 하면 창조의 여신을 떠올리게 된다.
창조의 교단이 인류가 믿는 가장 큰 종교이기도 했고.
그래서일까. 일단 신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창조의 여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가끔 무링신에게도 하지만요.”
“잘하고 있네.”
르윈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기적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
“신이 인간을 가련하게 생각해서?”
영혼이 전혀 깃들지 않은 데이지의 대답이었지만, 르윈은 나름 진지하게 말해 주었다.
“틀렸어. 신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야.”
“그게 무슨 소리죠?”
“예를 들어 네가 매일같이 구매하는 위장약 있지?”
“알고 계시면 좀 안 먹게 해 주시면 감사할 텐데요.”
“그걸 하나 사면 추첨권을 준다고 생각해 봐.”
“듣는 척도 안 해 주시는군요.”
앞으로도 열심히 먹으라는 의지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요?”
“추첨을 통해 한 명에게 황성의 고급 저택을 준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도련님에게 속한 노예라면서요. 사유 재산이 허락되나요?”
“응. 그 저택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요.”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말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데이지는 그러려니 했다.
“위장약을 살 때, 살짝 기대되기는 하네요.”
“그렇지? 만약 다른 상단에 비슷한 위장약을 판다고 하면 너는 어떤 것을 고를 것 같아?”
“가격이나 성능이 다르다면 모를까, 지금 먹는 것을 먹겠죠.”
“그렇지?”
상인은 이득을 추구하는 자다.
그렇기에 황성의 고급 저택을 준다면 둘 중 하나였다.
사기거나, 아니면.
“그렇게 줘도 이득이 되니까.”
신의 기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간혹 기적을 사용하여 기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기도가 신에게 이득이 된다?”
“그거야.”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으로 소모되는 신력보다 기도를 통해 얻는 신앙이 더 이득이다.
그렇기에 신은 기적을 행하고, 더욱더 자신에게 기도하게 만든다.
그것이 신과 인간의 관계.
“그러니 너도 기도하려면 라헬 같은 거 말고 무링신에게 해.”
“무쓸모 잉여신이 기적을 일으켜 줄 수 있나요?”
인상을 찌푸리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그녀의 이마를 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어차피 둘 다 안 도와주는데, 그럼 라헬 같은 것보다는 무링신이 더 좋잖아?”
그렇게 자리를 떠나는 르윈의 뒷모습을 보며.
“…둘 다 쓸모없다는 말이잖아.”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안경을 쓰고 공부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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