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24.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3)
베르샤 아카데미에 레피스 원드라는 새로운 세력의 돌풍이 불기 시작했으나, 학생 중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직 그녀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고.
일반적인 세력이 아닌, 창조의 교단이라는 종교적 세력이 얽혀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도 마법이 잘 안 돼!”
“시험이 다음 주인데?”
과거의 자신이 쌓아 온, 나태라는 이름의 죄악을 감당하기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틀렸어.”
몸속의 마력을 다 뽑아낸 하인스가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운 듯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검술 훈련마저 중단하고, 몸속의 마력을 모두 뽑아 사용하였지만 완벽하게 발현시킨 속성은 넷.
남은 한 주의 시간 동안 하나의 속성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나도 틀렸어.”
탁자에 턱을 괸 채 공허한 눈으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예리엘이 말했다.
그곳에는 본래 뛰어다녀야 할 생쥐들이 자연의 섭리라는 듯 자연스럽게 탁자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건 좀.”
생쥐들이 자신이 생쥐가 아닌 뱀으로 착각하는 듯한 모습에 데이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고로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되는 일인데.
‘어딜 고쳐야 하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찾을 수 없기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분명 같은 재료고,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는데…….”
이것 또한 저주일까.
하인스가 투박한 손길로 우직하게 만든 포션조차 낙제점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예리엘이 만든 포션은 여전히 괴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괜찮아.”
그 사실에 좌절하는 예리엘의 어깨를 라일라가 다정한 손길로 두들겨 주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존재하니까.”
나도 그러니까.
진심이 가득 담긴 중얼거림에 예리엘은 좌절했다.
자신의 포션 제작 능력은 라일라의 존재감과 비슷한 영역이라는 의미였으니까.
“망했어.”
그 한마디에 턱을 괴던 손에 힘이 풀리고, 예리엘의 얼굴이 그대로 탁자로 떨어졌다.
“…….”
데이지는 그것을 지켜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쪽에는 마력 탈진 상태로 반쯤 기절한 하인스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탁자에 머리를 처박은 예리엘과 그 머리 위를 기어 다니는 생쥐가 있었으며, 방구석에는 혼자서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라일라가 배경과 동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개판이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베르샤 아카데미, 아니 제국 전역에 퍼져 있는 상태였다.
***
“르윈 님은 급해 보이지 않으시네요.”
“공부는 평소에 하는 거니까.”
모든 기숙사 중에서도 가장 비싼 금액을 자랑하는 로열 클래스 기숙사는 청소를 시작으로 기본적인 시설 관리를 메이드들이 맡는다.
그중에서도 메이드장을 맡고 있는 베리엘은 황실의 사용인들보다 뛰어나다고 루테스가 인정한 인물.
당연히 르윈의 방 또한 그녀의 담당이었고, 그렇기에 자주 르윈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데이지가 시켰어?”
“네.”
하지만 메이드가 학생과 직접 마주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방학 때라면 모를까, 학업이 시작하는 기간에는 학생이 없는 오전 시간에 모든 업무를 끝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인정하네?”
“굳이 속지 않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요.”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대범하다고 해야 할까.
늘 한결같은 베리엘의 모습에 르윈은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데.’
외모는 물론 재능 또한 또래 중 손에 꼽을 실력자다.
이전에 황실 아카데미에서 메이드를 했었다고 하니, 연줄 또한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여기에 있기에 아까운 인재인데.’
데이지가 가장 이상적으로 성장한 모습이라고 할까.
아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내가? 뭘?”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눈빛이었습니다.”
“그럼 맞네.”
“어머!”
전혀 당황하지 않는 모습으로, 당황한 모습을 연기한다.
오히려 조용히 어항의 식물을 연기하던 엘리가 더 놀랐을 정도였다.
“드라이르프 가문으로 올래? 월급은 여기 2배. 보너스 별도.”
“…가문의 재산을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듯 말씀하시네요.”
“걱정하지 마. 방학 때 부모님께 일주일 정도만 떼쓰면 해 줄 거야.”
일주일 정도 바닥을 뒹굴 자신이 있으니, 돈 떼어 먹을 걱정은 하지 말라는 르윈의 말에 베리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지 양이 괜히 걱정하는 게 아니군요.”
“둘이 상당히 친해졌다? 지금 오면 귀여운 데이지가 공짜.”
“그건 좀 흥미가 생기는 말씀이십니다만, 아쉽게도 저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요청을 받지 못한다는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기는 했어.”
“저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시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벌써 그러시면 나중에 큰일 납니다.”
전혀 상처받지 않은 모습으로 청소를 이어 가는 베리엘에게 르윈은 쾌활한 어조로 대답했다.
“괜찮아. 다 루테스 선배에게 배울 테니까.”
훌륭한 망나니 롤모델, 루테스의 이야기에 베리엘은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선을 넘으시는 분은 아니니까요.”
그 정도면 괜찮다.
오히려 최근 데이지에게 듣는 르윈의 행동들이 더 위험했으니까.
“도서관분들하고는 최근 만남이 없으시네요.”
“응. 다들 시험 기간이라고 바빠서.”
놀랍게도 도서관 사서들은 우등생이었다.
대부분 좋은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이론 쪽으로 매우 뛰어나 도서관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성적을 확인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그렇군요.”
모범생, 범생이, 안경잡이들.
평범한 학생들, 아니 평범한 교수진들마저 도서관 사서들을 그런 이미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의 본성을 아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미지가 아주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이론에 뛰어난 이들이 실전에서는 약하다는 이미지를.
“그래서 탐사는 언제 또 가실 예정이십니까?”
“그건 동아리 기밀이라.”
르윈의 말에 베리엘의 무표정이 처음으로 깨지고 말았다.
다음 탐사 예정을 기밀이라고 말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알고 계시군요.”
데이지가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르윈의 말투와 태도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말했잖아. 둘이 상당히 친해졌다고.”
“데이지 양은 르윈 님의 사람입니다. 저에게 비밀을 말했을까요?”
“응.”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만큼 르윈과 데이지의 신뢰는 다른 의미로 끈끈했다.
“데이지는 아직까지는 르윈의 사람이라기보다 드라이르프의 사람에 가까우니까.”
데이지라는 사람은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사람을 위해 행동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일을 베리엘에게 알리고 있다고 르윈은 확신했다.
“비밀을 알리는 것이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게 이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데이지 양을 신뢰하시는군요.”
“응. 우리 애들을 안 믿으면 내가 누굴 믿겠어?”
일그러진 믿음이지만, 그 무엇보다 끈끈한 믿음이기도 했다.
“데이지 양이 르윈 님이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아 걱정하고 있습니다.”
“나 친구 많은데.”
“동급생 친구들은 거의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편이긴 하지.”
반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드라이르프인걸.”
드라이르프 공작가.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는 독이며,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꿀이었다.
그렇기에 독을 피해 접근하지 않는 자와 꿀을 얻기 위해 다가오는 자들만이 존재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름값을 낮추기 위해 선배들 위주로 만나시는 것이었습니까?”
아무리 높은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학년 차이가 크게 나는 선배면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은 존재했다.
그 부분을 지적하는 베리엘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도 있고.”
드라이르프라는 이름값은 그런 교육 과정의 차이도 무시하게 만들지만.
다르게 말하면, 선배들조차 감당하지 않는 무게를 같은 교육 과정의 동급생들이 짊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제 곧 2학기도 끝나잖아.”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았습니다만.”
“중간시험 보고. 중간중간에 행사 하고. 기말 시험 보면 끝이지.”
“…….”
대충 말하는 듯했지만, 사실이기도 한 말이었다.
3개월.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매우 길게 느껴지는 미래이지만.
떠올린다고 생각하면 매우 짧게 느껴지는 과거일 뿐이었다.
“반대로 되돌리면 여름방학 시작할 때쯤이었잖아?”
그때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의 말에 베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 방학 때 베리엘은 뭐 했어?”
“저희는 늘 같습니다. 아카데미 전반의 일을 하고. 학생분들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만?”
“그것을 제외하면 개인 업무를 처리하는 게 전부였지요.”
“개인 업무라.”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모습에 베리엘은 순간 움찔했지만, 그 시간은 매우 찰나였다.
‘그 일은 데이지 양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방학 때 드라이르프 가문으로 돌아갔던 르윈이었다.
심지어 이동 마법이 아닌,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일을 알 수는 없어.’
그런데 왜일까.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저 시선은.
마치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묘한 기분에 베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그 모습에 르윈은 베리엘이 보기에 참으로 모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2학기가 끝나는 것이랑 선배들 위주로 만나는 것이랑 무슨 연관이 있으신 겁니까?”
“아, 그 이야기 중이었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까먹었었네.”
“…….”
“2학기가 끝나면 2학년이 시작된다는 말이잖아.”
“겨울방학이 끝나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럼 내가 선배가 되는 거고.”
“…그렇습니다.”
계속 찝찝한 말을 하는 르윈으로 인해 기분이 오묘했던 베리엘은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무언가 깨달을 수 있었다.
‘선배?’
당연한 일이었다.
르윈 디 드라이르프는 올해 막 입학을 했고.
당연히 아카데미 교육 과정에서 가장 밑에 있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다르다.
남은 2학기 시험 두 개를 절망적으로 망치거나, 등교 거부를 선언하지 않는다면 유급할 일은 없었고.
그럼 자동으로 기초 교육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이 될 터.
그렇다는 말은.
“동갑 친구가 어렵다면 후배들하고 친하게 지내도 되잖아?”
“어…….”
르윈의 말에 베리엘은 순간적으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드라이르프 공작가.
그 이름값은 너무 높아서 까마득히 높은 선배들조차 조심스러우며, 동급생들은 그 이름값에 짓눌려 행동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아래인 후배들은 어떻게 될까?
‘이미 모범 답안이 있었지…….’
루테스 디 바벨리안.
비록 입학하기도 전,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인물과 엮여 억제력이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그가 평범하게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올해 입학한 학생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망했다.’
그런데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은 루테스가 르윈과 엮인 이후 조용하게 지내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기 때문.
하지만 르윈은 다르다.
올해, 갑자기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를 무링신 연구 동아리로 바꾸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아카데미의 공식, 비공식 문제아를 가리지 않고 접촉했으며.
데이지의 말에 따르면 황실 아카데미의 문제아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즉.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도서관 사서를 비롯하여 문제아 성격이 강한 동아리들의 위세가 약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런 동아리에 들어가는 신입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사 동아리나 마법 동아리 등에 들어가니까.
하지만 르윈이 권유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입생 중 드라이르프의 이름을 거부할 수 있는 이들은…….’
없다.
갑자기 세상이 미쳐서 황족이나 후작가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로 신입생을 보내거나.
평민이나 하급 귀족이 미쳐 가지고 드라이르프 공작가에 대들지 않는 이상은.
‘비상!’
순간 붉은 등이 반짝이는 듯한 환상을 본 베리엘이 비틀거렸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세상이 미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일이.
내년에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