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24.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5)
“응?”
갑자기 눈을 뜬 예리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인가.
“시험 중이었지.”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물든 머릿속에서 간신히 정보의 파편을 찾아 꺼내었다.
아카데미, 시험.
그 두 가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 이후에 지금에 대한 상황이 떠올랐다.
“무슨 아카데미가 애들한테 현장 실습을 시키지?”
미리 준비했다고 하지만, 몬스터가 풀려 있는 한복판에 사람을 집어 던지다니.
아무리 건국제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하!”
그런 상황에서 잠깐 졸다니.
자신 또한 너무 긴장감이 떨어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예리엘은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위험하지는 않겠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교수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데이지나 하인스가 다치는 일은 없을 터.
“도련님은 죽인다고 죽어 줄 사람도 아니고.”
르윈을 생각하며 잠시 인상을 찌푸린 예리엘이 꺼낸 검을 휘둘렀다.
키에엑!
자신의 반도 안 되는 작은 키에 짙은 녹색의 몬스터.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약한 축에 포함이 되지만, 특유의 번식력 덕분에 퇴치가 어려운 고블린이었다.
“한 마리가 끝인가?”
고블린 한두 마리 정도면 기초 교육에 막 입학한 학생들도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날붙이를 든 것도 아니고, 저런 나뭇가지로 무장한 상태라면 더욱더.
“시험 내용이 몬스터를 사냥한 숫자만큼 점수를 쌓는 것이라고 했던가?”
누군가 주입하듯, 어렴풋이 떠오르는 정보들에 예리엘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더 잡아야지.”
이번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인스는 이겨야 했다.
“후!”
그렇게 짧게 호흡을 내뱉은 예리엘은 눈을 빛내며 주변의 적들을 하나둘 쓰러트렸다.
“고블린 셋. 늑대 다섯. 슬라임 하나. 이 정도 수준인가?”
당황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슬라임은 물리 공격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었으나, 기초 마법 정도만 가능해도 상대가 가능한 기본적인 슬라임이었기에 어떻게든 대처가 되었다.
“생각보다 더 적은데?”
이곳에 자신의 반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학년 전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돌아다녔는데 만난 몬스터의 숫자가 적었다.
“엄청나게 큰 영역을 준비한 건가?”
하지만 몬스터만 아니라 학생들 또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돌아다닌 구역은 극히 일부라는 것.
“아니면 누군가에게 당했나?”
다른 학생들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정보.
다른 학생을 제압하면, 그 역시도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르윈이라면 웃으며 ‘그럼 사람만 다 때려잡으면 되겠네?’라고 할 것 같은 규칙이 있었다.
“흠.”
왜 그런 중요한 규칙을 까먹고 있었을까.
“언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데이지의 말처럼 컨디션 유지를 위해 정해진 시간에 끝을 맺었어야 했다.
그러나 불안한 자신의 실력에 기숙사로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연습을 시도했고.
그로 인하여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 버린 듯하다고 예리엘은 생각했다.
“진짜 누가 이런 곳에서 시험을 본다고 생각을 했겠냐고.”
적어도 중등 교육은 되어야 시험을 위해 야외로 나간다고 했는데.
“뭐, 나이로 따지면 중등 교육 다니는 애들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몇 살 어린 애들이랑 같은 시험을 보는데.
그런데도 시험 전날 죽어라 노력해야 하다니.
사실 나는 엄청난 바보가 아닐까.
그런 고민이 들어 어깨가 축 늘어지는 예리엘이었지만.
“…….”
순간적으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다시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하인스?”
“야, 튀어!”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수풀을 헤치며 등장한 하인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예리엘이었지만.
“으아악!”
“저리 비켜!”
그 뒤에 따라오는 다른 학생들과.
“뭘 데리고 오는 거야!”
“내가 데리고 온 거 아니야!”
그 뒤에 쫓아오는 검은 연기의 무언가에 예리엘은 바로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
처음 눈을 뜬 하인스는 예리엘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시험 중이었지.”
전날 마력을 너무 쥐어짠 탓일까.
흐릿한 기억을 쥐어짜며 이곳이 시험장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난 이런 게 더 체질이긴 하지만.”
주변의 몬스터를 사냥하며,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예리엘과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하, 하인스?”
“벨프즈?”
예리엘과 달리, 제법 빠른 시간에 같은 반 학생과 조우했다는 것이다.
“싸우지 말자!”
상대를 보는 순간 학생들끼리의 전투도 허용된다는 것을 떠올린 하인스가 검을 들어 올리자, 벨프즈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래도 시험인데.”
“서로 싸울 수 있다고 했지, 꼭 싸우라는 건 아니잖아?”
그 말에 하인스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를 잡아서 점수를 쌓아도 충분하니까.’
사람을 쓰러트리면, 그 사람의 점수 일부와 함께 한 명의 경쟁자를 탈락시킬 수 있으나.
길게 생각해 보면 같은 학년 동급생과 아카데미가 끝나는 날까지 척을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도련님도 아니고.’
르윈이라면 ‘그런 걸 내가 신경을 써야 할까?’라든가, ‘다 패배자의 유언이잖아?’라고 말할 테지만.
하인스는 자신이 그런 망나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어. 여기서 동맹을 맺고, 협력을 해도 시험의 규칙에 위배되지는 않아.”
하인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뿌옇게 느껴지는 머릿속을 쥐어짜 냈다.
‘그런 규칙은…….’
없었다. 모르는 걸 수도 있으나, 그렇다면 사전에 공지를 안 한 것이기에 괜찮을 터.
“그러지, 뭐.”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만, 반에 친한 사람을 만들 기회이기도 했다.
‘반강제적으로 고립되었으니까.’
오른쪽에 드라이르프, 왼쪽에는 라인하르트와 함께하는 생활이다.
적당한 구심점이었다면 반의 중심이 되어 모두가 가까이했겠으나, 두 공작가의 이름은 구심점이 아닌 태풍의 눈이었다.
그렇기에 태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학생들은 적정한 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적당히 친하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가까워진 이는 없었다.
“고마워. 하인스는 검술 동아리에서도 기대를 받는 신인이니까!”
“나도 마법은 자신이 없는걸. 벨프즈는 마법 시험 성적 좋은 편이잖아?”
전사와 마법사.
아주 먼 옛날부터 대대로 전해져 온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조합이었다.
가벼운 몬스터만 있기에 조합을 따질 필요는 없었으나.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시험이라고 했으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조금 강한 몬스터를 풀어 두었을 수도 있다.
‘던전에서 가끔 튀어나온다는 보스 몬스터처럼.’
그래 봤자 고블린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적일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벨프즈와 함께 사냥을 진행했고.
그러다 우연히 한두 사람을 더 만나 4인 파티를 짜게 되었다.
“효율이 별로인데.”
“몬스터가 더 나오는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안 그래도,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적들이었다.
그나마 뭉쳐 다니는 늑대도 4마리 이상은 만나지 못한 상황.
덕분에 서로 한 번씩 공격하면 적이 쓰러지니 전투는 쉬우나, 이것은 시험이었다.
4인 파티를 모았으면 그에 걸맞은 적들을 쓰러트려야 할 터.
“그럼 저기로 가자.”
“그래.”
처음 온 곳이지만, 왠지 저곳으로 가면 몬스터들이 더 많이 나올 것 같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더 많은 몬스터가 나올 법한 곳으로 향했고.
“저, 저게 뭐야?”
그것을 만나고 말았다.
“…도망쳐!”
검은 연기를 내뿜는 무언가.
그것을 본 순간, 하인스의 본능은 말하였다.
저것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자신이 백 명, 천 명이 있어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할 것이고.
기사 동아리의 모든 선배가 달라붙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가문의 기사단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드라이르프 가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또 가문의 기사들이 진심으로 싸우는 것을 본 적도 없었지만.
하인스의 감각은 그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으아악!”
“살려 줘!”
하인스의 말에 그들은 공포로 얼어붙어 있던 발을 바쁘게 움직였고.
“…….”
검은 연기의 무언가는 그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 쫓아오는 건가?”
누군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렇게 내뱉는 순간.
“아 씨! 따라오잖아!”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그것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
“아카데미 시험에 저런 게 있어도 되는 거냐고!”
가장 선두에 선 예리엘이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머릿속에 그런 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빠르게 사라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눈앞에 현실이 있는데, 당연히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저거 우리 가지고 노는 거야.”
“뭐?”
“계속 거리를 유지한 채로 따라오고 있어.”
“도련님처럼 악취미네!”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으면서 우리가 힘이 빠져 지칠 때까지 따라오는 것인가.
그에 이를 악다문 예리엘은 몸을 빙 돌리더니 멈춰 섰다.
“야, 뭐 해?”
“그딴 악취미에 놀아나는 것은 도련님으로 충분해.”
어릴 적, 용사님이 나오는 동화를 읽었고.
그런 용사의 동료가 되는 상상을 했던 예리엘이었다.
비록 노예가 되고.
현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기적을 만나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록 용사의 동료가 된다는 상상을 이루지는 못하겠으나.
그런 훌륭한 기사가 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죽는다면 마지막은 폼 나게 죽어야지.”
각오를 다진 예리엘의 검에 푸른빛의 마력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숨을 건 각오.
시험을 위해서라고 하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생각해 보니 연금술 훈련밖에 안 했는데.’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마력이 잠시 출렁거렸으나.
곧바로 마력을 안정시켰고, 그것은 예리엘의 검에 그대로 증명이 되었다.
“거, 검기?”
단순히 검에 마력을 담아 검기를 흉내 내는 것은 이전에도 할 수 있었고, 하인스 역시 가능했으나.
예리엘은 지금 하나의 벽을 뛰어넘어 진짜를 만들어 가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와…….”
“기초 교육에서 저 정도 수준을?”
“이길 수 있어!”
도망치던 하인스가 멈춰 서자, 그에 따라 고개를 돌린 다른 학생들도 예리엘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를 보며 감탄했다.
“이런 곳에서 내가 질 것 같아!”
예리엘의 각오에 화답하듯, 검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이곳이 꿈으로 이루어진 드림 월드라고 할지라도,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드림 월드의 설계적으로 불가능한 일.
즉 이것은 예리엘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며, 현실에서도 예리엘이 검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몰아넣고, 자신도 모르는 한계를 끌어낸다.
그것이 용사가 드림 월드를 만들어 낸 이유이며, 예리엘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압!”
마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예리엘은 절망적인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꺄아악!”
“…….”
“시, 싫어! 살려 줘!”
“…….”
“끄아앙?”
검은 연기 속으로 들어간 예리엘의 울음기 가득한 비명에, 하인스를 포함한 학생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동화는 동화일 뿐, 현실은 잔혹하다고.
“도, 도망쳐!”
그렇게 예리엘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시간을 번 이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예리엘의 희생은 그다지 시간을 벌어 주지는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