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26. 인생 10회 차는 선거한다 (1)
아카데미 내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기사 동아리가 자랑하는 지도자! 최대 동아리의 수뇌부를 맡으며 쌓아 온 경험은…….”
시험 기간이 끝나자마자 아카데미에 하나둘 학생들이 튀어나와 홍보를 시작했다.
각자 자신의 경력과 실력을 어필하며 학생회에 들어갈 인재라고 뽐내는 상황.
그중에는 당연히 르윈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도련님.”
“왜.”
“그렇게 자랑하실 게 없습니까?”
“1학년한테 뭘 바라?”
데이지는 수치스러운 얼굴로 르윈의 홍보 문구를 보았다.
[드라이르프 가문, 삼남. 르윈 디 드라이르프.>다른 이들처럼 경력과 실력이 아닌, 단순히 가문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도련님, 기사 동아리 선배가 부르는데 가면 안 될까요.”
“응, 안 돼.”
“선거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나도 선거하잖아. 나야, 선배야?”
부끄러운 것은 예리엘과 하인스도 마찬가지.
그에 도망치려고 변명을 해 보았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럼 제발 저것이라도 치워 주시면 안 되나요?”
드라이르프 가문 옆에 자그마하게 쓰여 있는 문구.
[현 무링신 연구 동아리 부원.>그것만이라도 치워 달라는 데이지의 부탁을.
“싫어.”
르윈은 당연하게 거절했다.
“도련님…….”
“데이지, 실망이야. 우리 동아리가 부끄러워?”
네.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동아리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열심히 얼굴마담을 하는 레피스가 떠오르자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이럴 때 같이 홍보해야 내년에 사람이 더 들어오지.”
“…….”
이름부터 수상한 동아리에 과연 사람이 들어올까.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동아리 이름만 듣는다면 들어올 리가 없겠으나, 놀랍게도 동아리 구성원을 보면 메리트가 있었다.
황족인 루테스,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르윈, 그리고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하는 레피스까지.
그들과의 인맥 형성을 위해서라면, 무링신 연구 동아리라는 의미도 알 수 없는 동아리에 들어올 만했다.
‘그냥 동아리에 이름만 올리는 사람도 많으니까.’
물론 그걸 르윈이 허락하지는 않겠으나, 현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부원들을 제외하고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동아리에 이름만 올려 보자는 생각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그게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시작이기도 했고.’
동아리 활동을 하기 싫은 사람들이 모인 비활동 동아리.
그것이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전신,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와 가볍게 생활하다가,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재앙을 만난 불쌍한 이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듣기로는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서도 르윈의 학생회 선거에 도움을 주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학생회는 업무상 동아리 겸업이 불가능하기에, 르윈이 학생회에 들어가면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도 평화가 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도련님은 학생회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시다는 게 문제지.’
애초에 라일라를 학생회 임원으로 만들겠다는 이유가 자신이 학생회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거의 모든 학생이 그 사실을 모른다.
르윈의 형제들이 모두 황실 아카데미에서 학생회를 맡고 있으니, 르윈 또한 자연스럽게 학생회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작위가 높은 가문의 인물이 권력을 잡기 위해 학생회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으니까.
‘차라리 그런 야심을 품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귀족들의 정치적 다툼, 권력을 위한 투쟁!
듣기만 해도 살벌한 일이지만, 귀족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기도 했고.
드라이르프 가문에 들어올 때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르윈은 정치와 권력 같은 것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무쓸모 잉여신이라는 생각한 적도 없는 신이라든가, 아카데미 지하에 있는 비밀 던전이라든가, 아카데미에 문제가 있는 학생에게만 관심을 주고 있다.
하나같이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다.
그 덕에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더라도, 뿌듯함이나 만족감보다는 수치스러운 기분만 들 뿐이었다.
그뿐인가.
“도련님,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라일라 아가씨에게 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홀로, 외롭게.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라일라의 모습에 죄책감마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누굴?”
“제가 가겠습니다.”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언니 대신 제가…….”
“예리엘보다는 남자인 제가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단둘이 있는 건데, 여자끼리 있는 게 더 좋지!”
“그냥 나랑 있기 싫다고 대놓고 말하지?”
서로 자기가 가겠다고 다투는 둘의 모습에 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키워 줬더니 주인이 부끄럽다고 도망치려 하다니.
“이래서 인간을 믿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렇죠.”
“인간이 믿긴 어렵긴 하죠.”
“좀 믿음을 주면 좋겠는데.”
“…….”
따갑게 쏟아지는 시선에, 르윈은 잠시 시선을 피했다.
“크흠! 그리고 지금 라일라를 도와주면 안 돼.”
“왜죠?”
작게 헛기침을 한 르윈은 혼자 쓸쓸히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그간의 활동 내역을 적은 전단지를 쌓아 두었지만, 놀랍게도 시선이 가지 않는다.
자신처럼 거대한 간판에 라인하르트라는 이름만 받았어도, 조금의 관심은 받았을 텐데.
“저걸 봐. 딱 봐도 가문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저렇게 있는 것 같잖아?”
“라일라 아가씨는 누구와 달리 올곧으신 분이니까요.”
가문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라일라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다.
“기특하기는 하지.”
대륙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바벨리안 제국의 둘뿐인 공작가.
조금 엇나가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배경이 있었다.
거기에 많이 엇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그런데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걷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했으나.
“미련하다는 게 문제지만.”
미련하다.
르윈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하지만 사실인걸.”
인생 1회 차, 평민 고아부터 인생 10회 차, 제국 최고 가문의 공작가에서 태어난 경험을 모두 지닌 르윈이었다.
회 차가 거듭될수록, 보상을 받는 것처럼 가문의 격이 상승했고.
그로 인하여 왕족이나 황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분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태어났을 때 집안이 좋다면, 그걸 활용하지 않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라일라가 이것저것 신경 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조차도 가려 버리는 존재감.
그것이 존재하는 한, 라일라가 학생회 임원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임원이 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라일라가 바라는 것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라일라를 귀족처럼 만들어야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귀족의 세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이용하는 것이 참된 귀족이었다.
그리고 라일라는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무기를 들고 태어난 존재.
“그것이 차기 베르샤 아카데미 종신 학생회장, 라일라 라인하르트니까.”
***
“종신 학생회장?”
“카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평소의 느글느글한 웃음은 버려 둔 채 날카로운 안광을 쏘아 내는 데일드 차일스를 보며 종신 학생회장이라는 말을 꺼낸 학생은 당황했다.
“왜, 왜 그러냐.”
“어디서 그런 더러운 말을!”
종신 학생회장이라니.
벌써 총학생회장 연임이 3년이다.
재수 없게 중등 교육부터 총학생회장을 시작한 불쌍한 인생.
처음에는 좋았었다.
어차피 공무원을 노려야 하는 인생이었는데, 총학생회장이라니.
거기에 중등 교육부터 총학생회장을 맡았다는 것은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미래에 도움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알아주었고, 그 덕에 총학생회장을 연임했고.
그 믿음에 보답하듯 더 열심히 일한 결과 3년 연임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쉴 거다.”
3년 동안 개같이 구른 데일드는 쉬고 싶었다.
인생 9회 차를 구른 어떤 호구와 달리, 데일드는 3년 만에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하기 싫어.”
사람은 좀 쉬고 살아야 한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기에 늦었다.
그렇기에 하나의 목표만을 보고 악착같이 버텼다.
바로 제국의 공무원이 되자는 마음.
그것 하나만이 데일드 차일스를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으로 버티게 한 유일한 원동력이었으나.
“이제 일할 이유도 없으니까.”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평범한 종이 쪼가리들에 불과했지만, 그 어떤 온열 마법보다도 훈훈함을 느끼게 해 주는 물건이 데일드의 셔츠 주머니에 잠들어 있었다.
“명함 자랑은 그만해라.”
이미 질리게 데일드의 자랑을 들은 친구였다.
솔직히 말해서 부럽지 않다면 거짓이겠지.
‘공무원을 노리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 곳이니까.’
제국의 감찰부, 재무부, 정보부.
하나같이 제국 핵심 기관으로, 그곳에 취업한다는 것만으로도 하급 귀족들은 가문의 격이 올라가는 효과를 얻었다.
심지어 데일드에게 명함을 준 이들이 누구인가.
제국의 부장급 인원 중 최고로 손꼽히는 이들이지 않은가?
데일드 차일스의 인생은 이제 폈다.
그리고 데일드는 그럴 만한 인재라는 것을 친구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쪽에서 널 놔줄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데일드 차일스는 제국의 세 부장이 노릴 만한 인재고.
그렇기에 아카데미는 그를 마지막까지 놔주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이제 그만 놔주겠지.”
“우리 이사장님은 양심이 없으신데?”
“망할 대머리…….”
황금 공을 인생의 은인 취급을 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아군이 되는 것이 냉철한 아카데미의 세계.
이사장과 총학생회장은 적이다.
적어도 오늘부터는 그랬다.
“내가 할 것 같아?”
데일드가 이를 갈았지만,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다 한다고 생각할걸?”
데일드 차일스는 유능하다.
학생도, 교수도, 아카데미 운영진도.
심지어 아카데미 근처 상인들이나 협력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베르샤 아카데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그리 생각하지 않을까.
“나를 대체할 인재가 있잖아.”
“누구?”
적어도 친구가 생각하기에는 없었으나, 데일드는 달랐다.
“루테스 전하, 르윈 공자, 라일라 영애.”
황족이고, 공작가다.
그 정도면 하찮은 남작가 출신인 자신보다는 훨씬 잘할 수 있다.
“…기초 교육 클래스잖아, 미친 새끼야!”
그러나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기초 교육, 그것도 작년과 올해 입학한 애들이었다.
“왜 그렇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해.”
“미친놈…….”
사람을 너무 부려 먹어서 망가져 버린 것인가.
친구는 허리춤의 검집을 두들기며 생각했다.
‘보통 이럴 때는 두들기면 고쳐진다고 했었는데.’
친구가 고쳐지는 게 빠를까, 못 쓸 정도로 망가지는 게 빠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쳇!”
목격자가 생기면 곤란하다.
그에 데일드를 고치는 일은 나중에 해야겠다고 생각한 친구가 고개를 돌리자.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전해 드리려고 찾아왔는데요!”
그곳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붉은 머리의 소년이 방긋 웃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