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26. 인생 10회 차는 선거한다 (2)
제국의 실세 부장들의 선택을 받은 데일드는 자신만만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물론, 다른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과 비교하더라도 우위에 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학생은 물론 교수의 말도 좀 대충 듣게 되는, 그런 상태.
그게 바로 지금의 데일드 차일스의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데일드는 바짝 엎드려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이 아카데미에는 그 부장 라인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인간이 몇몇 존재했고.
그것만 피하면 앞으로의 인생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누추한 곳이라뇨. 제가 9년을 넘게 다닐 아카데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요.”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르윈의 말에 데일드는 르윈이 온 이유를 생각했다.
‘학생회 선거 때문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 보았던 르윈의 형이었다.
라테일 디 드라이르프.
황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
그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 위압감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에 비해 눈앞의 르윈은 강렬한 인상도,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지만.
‘더 악질이지.’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으로서, 그리고 우연히 모인 제1매점의 사교 모임 멤버로서.
르윈이 입학하고 아주 짧은 시간 행했던 일을 데일드는 잘 알고 있었다.
“베르샤 아카데미를 그렇게 좋아해 주신다니, 참 다행입니다.”
그렇기에 데일드는 더욱 납작 엎드렸다.
보장된 미래가 자신의 품속에 고이 보관되고 있는데, 괜히 지나가는 태풍을 건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자연재해는 피하는 것이 제일 좋다.
실제로 같이 있던 원수 새끼 또한 르윈의 정체를 알자마자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게 현명한 거지.’
자신 또한 제삼자의 입장이었다면 당장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러니 이해는 한다.
‘이해만.’
아무리 은퇴각을 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은 자신이었다.
감히 학생회 임원으로서 회장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아무래도 아직 학생회장으로서의 권력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할 듯싶었다.
“좋은 아카데미니까요.”
진심이었다.
황실 아카데미처럼 요구치가 높은 것도 아니었고.
그러면서 최신 기술이나 유행에 민감하며, 드림 월드 같은 값비싼 기술까지 들어올 정도로 실행력이 있다.
거기에 아카데미 지하에는 드래곤이 살고 있고, 그로 인하여 만들어진 미궁을 도전하는 괴짜들이 있으며.
교수와 시종 중에도 르윈이 흥미를 느낄 만한 인물들이 있었으며, 매점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재밌기도 하고요.”
인생 경험 10회 차인 르윈조차도 이런 아카데미는 처음이었다.
수상하고, 기묘한 장소와 사람이 가득하다니.
용사 시절이었으면 일단 뒤집어엎었을 만큼 구린내가 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게 재미지.’
변수가 가득했다.
그것이 이 상황이 여신의 뜻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라헬의 성격상 변수가 많은 요소를 넣을 리 없었으니까.
“다행이군요.”
“다 훌륭한 회장님 덕분이죠.”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르윈의 모습에 데일드는 안심했다.
그러나.
“그러니 1년 더 하시죠.”
“…무엇을요?”
“총학생회장이요.”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데일드의 안색이 굳고 말았다.
‘더 하라고?’
총학생회장 경력 3년 차다.
평균적으로 2년, 적게는 1년만 하는 것이 총학생회장의 자리인데.
그곳에서 3년을 굴렀다.
이제 좀 쉴 때가 되지 않았나.
이미 취업의 길도 활짝 열렸는데!
“저보다 좋은 후보가 많습니다.”
거짓이 아니었다.
최대 파벌 동아리라고 할 수 있는 기사 동아리와 마법 동아리의 수장들이 이미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물론 데일드가 은근슬쩍 본인의 은퇴 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데일드 차일스가 아니라면 해 볼 만하다.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 자리를 1년만 차지하고 있으면,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공무원 취업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은 멍청한 짓이 아닐까?
‘…라고 아카데미 여론까지 미리 만들어 두었는데!’
학생은 물론 교수들조차 데일드의 은퇴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작가 도련님까지 막는다니!
“좋은 후보는 많아도, 제가 원하는 후보는 한 명이라서요.”
“하, 하하!”
공작가 도련님이 원하는 후보라니.
‘내가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올해 입학한 르윈하고는 접점이 거의 없었는데, 왜 저런 신뢰를 보내는 것일까.
‘설마?’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데이지였다.
1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 가는 사이였고.
르윈과도 늘 함께 다니는 심복 중의 심복이었으니까.
그녀의 입김이 들어갔다면 르윈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도 잘 못했는데, 너무 고평가를 받는 느낌이네요.”
“라일라는 엄청나게 잘한다고 하던데요?”
“라, 라일라 후배님이요?”
그러나 르윈의 입에서 나온 인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였다.
아니, 생각 자체를 못했다.
‘내, 내가 라일라 영애 앞에서 뭘 했더라?’
기억을 쥐어짜 봐도,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라일라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면 데일드는 라일라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경우도 다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라일라가 총학생회장이 되기 전까지는 선배님이 든든하게 버텨 주셨으면 좋겠거든요.”
라일라는 르윈에게 데일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
데일드와 대화한 다음 날.
“생각보다 더 빨리 왔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마녀의 숲으로 돌아간 타니야가 매우 빠르게 복귀했다.
“그런가 보네.”
이종족은 느긋하다.
인간에 비해 몇 배의 수명을 지닌 탓일까.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이 보기에 너무나도 시간 개념이 부족해 보일 정도.
엘프나 드워프와 비교해서 빠를 뿐, 마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녀는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잖아?”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네…….”
아니라고 말하려던 타니야였지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동료들이 떠오르자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지인들이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드림 월드는 마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 아카데미 측에서도 좋은 조건을 걸어서.”
노린 거 아니냐는 듯한 시선에 르윈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사장이 움직였나 보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확신은 하지 못했다.
마녀는 요정과 더불어 돈이 많이 드는 종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잘되었나 보네?”
“응. 아카데미 측에서 임시 교수 자리를 준다고 해서, 로드께서 직접 마녀를 선발하고 있어.”
“위치 로드가 직접?”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 르윈은 감탄했다.
‘내 예상보다 더 드림 월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네.’
조금은 감동했다.
교단이라는 놈들은 어떻게든 용사를 팔아먹으려고 안달이었는데.
마녀는 용사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저렇게 진심을 보이다니!
‘물론 더 좋은 드림 월드를 팔아먹으려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슬프다.
어딜 가든 자신의 과거가 잘 팔린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건 확실한 게 아닌데.”
“뭔데?”
비밀이라는 듯 가까이에서 소곤거리는 타니야의 말에 르윈은 귀를 기울였다.
“교수만이 아니라 학생으로도 한 명 더 보낸다는 소문이 있던데?”
“…너?”
“난 학생급이 아니거든? 이미 마녀 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대마녀 후보 중 하나거든?”
“대마녀 후보는 성인이 되면 다 받는 거잖아, 불량품아.”
“어, 어떻게 그걸?”
가슴을 쭉 펴고 자랑하듯 말하던 타니야가 쭈글해졌다.
자기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아이에게 과장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진실을 들키기까지 하다니!
“그리고 말이 짧다?”
거기에 은근슬쩍 말을 놓고 있던 것까지 들키고 말았다.
“크, 크흠! 그건 계약이 성사되기 전 이야기고. 이제는 동등한 계약 관계니까. 나, 나도 반말 좀 할 수 있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다.
거기에 내가 나이도 더 많지 않나!
그렇게 주장하는 타니야의 모습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제는 서로 아쉬울 게 없는 협력 관계지.”
너무나 쉽게 인정하는 르윈의 모습에 타니야가 눈을 가늘게 떴지만, 르윈이 건네는 책 하나에 다 잊고 말았다.
“그, 그건?”
“마녀가 한 입으로 두말할 종족은 아니니까.”
선입금이다.
그렇게 말하며 건네는 한 권의 책을 타니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 내었다.
“화, 확인해 봐도 되겠지?”
“당연하지.”
내려놓는 것조차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타니야는 장갑을 끼고 책장을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마, 맞아. 로드께서 보여 주신 용사의 필체랑 똑같아!”
당연했다.
과거의 용사는 아니지만, 인생 10회 차의 용사가 쓴 필체였으니까.
본인이 직접 쓴 드림 월드의 설계도는 용사의 필체로 아주 유려하게.
“…응?”
인생 10회 차의 경험을 모두 담아, 그가 아는 모든 언어를 통하여 만들어졌다.
“이건 고대 마녀어?”
타니야의 두 눈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여러 국가마다 언어의 형태가 다르고, 같은 나라라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 차이가 있듯 마녀 역시 시대에 따라 조금씩 언어가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고대 마녀어.
현대 마녀의 언어와는 완벽히 다른 방식인, 룬 문자에 가까운 언어가 고대 마녀어였다.
“이, 이건 또 뭐야?”
문제는 고대 마녀어만이 아니었다.
최소한 이게 뭔지는 아는 고대 마녀어와 달리,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글자가 여럿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고대 국가의 언어가 쓰여 있고, 가끔은 자기들끼리 아는 암호로만 기록한 것도 있더라.”
“자기들끼리 아는 암호?”
타니야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책을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간중간 일반적인 언어라고 보기 힘든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고대 마녀어 정도면 마녀 중에서도 전문가가 존재했다.
아직도 주술 쪽에서는 현대 마녀어보다는 고대 마녀어를 높게 쳐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대 인간의 언어를 아는 마녀가 얼마나 있을까.
더 나아가서, 과거 조상들이 만든 암호는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아니, 잠깐.”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던 타니야는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저기, 죄송한데요.”
바로 말투부터 공손하게 바뀌는 타니야의 모습에 르윈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 말은 고대 마녀어도 알고, 암호도 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
그렇게 묻는 타니야의 모습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애초에 그 책을 만든 게 나니까.
뒷말은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둔 채 르윈은 대답을 해 주었고.
“일단 무릎부터 꿇을까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자존심 따위는 가볍게 버릴 수 있다는 모습에 르윈은 감탄했다.
대부분 콧대 높던 마녀였는데, 저렇게 비겁한 마녀가 있었다니!
“그럴 필요는 없고.”
자존심이 없는 사람의 무릎은 가치가 없는 법이다.
그보다는.
“먼저 만날 사람이 있는데.”
“만날 사람이요?”
“들어오세요.”
르윈의 말과 함께 들어온 이는 타니야도 한 번 정도 얼굴을 본 인물이었다.
“학생회장?”
“정확하게는 총학생회장이긴 한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마치 저주에 걸린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다가온 데일드의 모습에 타니야가 순간 움찔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영혼이 빠진 사람 같아.’
흑마법에 당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저렇게 된 원인은 바로.
‘이쪽이겠지.’
겉모습은 참 귀여운데, 속은 귀엽지 않은 놈.
르윈을 바라보며 작게 곱씹은 타니야였지만, 르윈과 시선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업자니까. 해석본은 싸게 팔아야지.”
“팔아 주시는군요…….”
공짜로 주는 것은 기대도 안 했으나, 대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 셋이 일 하나만 하죠.”
그렇게 말하며 내미는 손을 타니야는 붙잡고 싶지 않았으나.
“동업자니까요.”
거절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물건이었기에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