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26. 인생 10회 차는 선거한다 (5)
“지, 진짜였어.”
데이지의 가느다란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다지 무거운 물건을 든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매우 가벼운 물건이었다.
한 장의 종이.
하지만 그 안에 적힌 내용은 데이지에게 너무나도 무거웠다.
[베르샤 아카데미 학생회장 후보 모음.>아카데미 학생회장에 출마한 학생들의 명부였다.
그리고 기초 교육 과정에 포함된 열네 명의 이름에는.
[데이지.>자신의 이름이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망할 도련님…….”
으득!
이가 부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데이지가 거칠게 이를 갈았다.
또다. 또 이렇게 자신을 팔았다.
“저번에는 드라이르프 가문의 최종 병기라더니.”
이제는 아카데미의 개혁을 선도하는 혁명가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인 개혁파!
문제는 그것이 제법 잘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없애 준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그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는 거고.
그렇기에 르윈이 말한, 이제는 자신이 주장하고 있다고 알려지는 개혁 내용에는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하실 건 아니죠?”
베리엘의 물음에 데이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른 새벽.
물자를 옮기는 제1매점 주인을 뒤로한 채, 오늘도 모인 아카데미 사교 모임의 인원은 총 다섯이었다.
거의 출석을 하지 않는 루테스와 최근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한 듯한 레피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늘 모이는 인원들이었다.
르윈의 시종, 데이지.
로열 클래스 기숙사장, 베리엘.
현 아카데미 총학생회장이자 차기 학생회장으로 유력한 데일드.
그리고 르윈과 데이지의 담임인 바르바.
특이점이 있다면 새로운 인물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
“하긴 내가 아카데미 생활을 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도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었으니까.”
바로 최근 아카데미에 상주하기 시작한 마녀, 타니야였다.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문제는 그걸 다 데이지가 한 걸로 알고 있다는 거지만.”
“큭!”
담임인 바르바의 말에 데이지는 이를 갈았다.
실제로 르윈의 발언이 있은 이후, 몇몇 학생들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인사를 하고 갔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헛소리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었지만, 데이지를 제외한 이들은 그 이유를 알 만했다.
“드라이르프의 이름으로 말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마녀조차 드라이르프는 알고 있다.
그런 타니야의 말에 데이지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국민에게 드라이르프는 신뢰의 상징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그녀의 의견을 차단하듯 베리엘이 말하였다.
“그 정도인가요?”
“제국을 수호하는 가문이면서, 동시에 정치에는 잘 관여하지 않는 가문이니까.”
베리엘뿐만이 아니었다.
담임인 바르바조차 인정하는 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신뢰하지 않는 데이지가 이상하다만.”
“…그게.”
드라이르프를 믿지 않는가.
그렇게 말하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만.
“늘 같이 있는 드라이르프가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서.”
“음…….”
“어…….”
데이지의 말에 베리엘과 바르바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말하니, 데이지가 드라이르프의 신뢰도를 의심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럼 가장 큰 문제는.”
작게 한숨을 내쉰 베리엘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배신자가 있다는 거겠죠.”
선거 기간에는 학생회의 개입이 우려되어 아카데미 측에서 따로 지정한 인원들이 선거에 개입하지만.
그 내용은 투표를 시작하는 것부터 개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즉, 그 이전의 내용은 기존의 학생회의 역할.
데이지의 이름이 출마 후보에 들어간 것은 데일드의 허락이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데이지의 말에 여태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데일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크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제법 안쓰러웠지만, 데이지는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왜 그러셨죠?”
서로가 협력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하지만.
혼자서 상대하기에 너무 강하고, 귀찮은 존재가 있기에 모인 모임.
그런데 배신자가 생겼다.
그것도 사실상 자신들이 모인 이유인 존재와 내통을 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 말은 그렇게 하죠.”
싸늘한 데이지의 말에 데일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미리 말을 해 줬으면 준비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한마디가 없어, 자신은 아카데미의 혁명가가 되었다.
그런 데이지의 말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출마하려면 추천인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모은 건가요?”
잠깐의 침묵을 깨고 베리엘이 물었다.
추천인을 제출하지 않으면 출마가 무효가 되기 때문이었다.
“라일라 영애의 추천인과 함께 제출되었습니다.”
아마 라일라의 추천인을 모으며, 겸사겸사 데이지의 추천인도 모았던 모양이었다.
“라일라 아가씨를 도와준다고 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하나, 추천인에 대해 걱정이 되었던 라일라였다.
그래도 친구라고, 그런 라일라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인 줄 알았는데, 이런 함정을 준비했을 줄이야!
“후보 사퇴는.”
“가능은 합니다만, 절차가 걸리는 편입니다.”
어차피 르윈의 의도는 데이지를 회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목표는 라일라. 그러니 지금 선거를 포기한다 해도 절차가 끝날 때까지 데이지는 이용당할 운명이었다.
“…….”
그 사실에 말없이 데일드를 노려보는 데이지였다.
그 뜨거운 시선에 데일드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데이지 양은 회장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강제로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내가 더 상황이 나쁘지 않은가. 그러니까 좀 봐달라.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데일드 님을 제외하고 총학생회장을 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데일드 차일스는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태어난 인재라고 이사장이 그러던데.”
“그런 거였어?”
“…….”
타니야를 제외한 전원이 왜 당연한 것을 말하느냐는 듯한 말투였다.
장난을 치는 것이나, 배신에 대한 보복이라는 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이 세상의 진리를 말하는 듯한 모습일 뿐이었다.
“아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데일드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최대한 여파를 줄여야 하냐는 건데.”
르윈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
아니, 애초에 ‘데이지가 학생회장이 된다면’이라는 가정이 붙었기에.
라일라가 학생회장이 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약속을 안 지킨 것이 아니게 된다.
“우선 학생들을 믿어야겠죠.”
베리엘은 학생들을 믿었다.
아무리 학생들에게 혹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이들이라면 그것이 안 되는 이유를 알 것이다.
“베르샤 아카데미도 나름 명문 소리를 듣는 곳. 다른 곳에 비해 역사가 조금 짧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은 높으니까요.”
바르바 역사 자신이 몸담은 아카데미를 믿고 있다.
비록 이사장의 지원이 두둑하기에 선택한 아카데미지만, 베르샤 아카데미는 믿을 만한 곳이니까.
“맞습니다.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매우 이성적입니다. 선거 홍보를 위한 과장된 선전에 넘어가는 학생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 대표, 총학생회장이자 사교 모임의 배신자 데일드도 자신 있게 주장하였다.
우리 학교, 안전합니다!
“그렇겠죠.”
불안하였지만, 자신은 이제 아카데미를 다닌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베르샤 아카데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학원의 중추를 맡은 인물들이 믿으라고 하지 않는가!
“…….”
그러나 그날 오후.
“아카데미는 바뀌어야 한다!”
“혁명, 혁명이다!”
“무링은 신이고, 데이지는 그 신의 사도다!”
아카데미 곳곳을 뒤덮은 붉은 깃발을 보며 데이지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
광기는 쉽게 싹이 트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싹이 트면 쉽게 퍼지는 법이었다.
“사실 수업이라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왜 우리의 귀중한 청춘을 수업이라는 족쇄로 붙잡고 있는 거지?”
개소리였다. 하지만 그 개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이 많았다.
“나는 검을 배우고 싶어서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왜 연금술이나 마법을 배워야 하는 거지? 어차피 중등 교육에서 전문과정 밟으면 다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이건 나름 그럴듯한 말이었다.
실제로 중등 교육에 들어간 학생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기도 했고.
“저번 수업 시간에 마법사도 근접 전투를 익힐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거리를 벌리는 것이 마법사의 전투법이라고 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앞에 있는 사람이 전부 당했다면 이미 패배한 전투 아닐까요? 거기서 제가 근접 전투를 조금 잘한다고 무슨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건 진짜 맞는 말이었다.
앞에 있던 전투 인원들이 패배했는데, 후방의 마법사가 근접 전투를 배웠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 시험도 수업에서 파생된 것일 뿐이야. 만악의 근원은 수업. 아니, 근본적으로는 등교가 아닐까?”
“검술 특기생이 마법 시험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할까 봐 덜덜 떠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교육 과정에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계속 가스라이팅을 당한 거예요.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후방직! 근접전 배울 시간에 캐스팅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게 이득이잖아요!”
개소리가 가득했다.
학생으로서는 불만일 법한 소리도 가득했다.
개중에서는 왠지 모르지만 제법 좋은 의견도 가득했다.
그것들이 섞이고, 섞여.
뭐가 개소리인지, 불만인지, 좋은 의견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없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유일한 공통점이 하나는 존재했으니.
“등교가 잘못되었다. 이걸 깨닫게 된 건 다 데이지 덕분이야.”
“그 학생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겠지.”
“우리도 깨어 있어야 해요. 데이지, 그 학생처럼!”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 시작은 데이지라는 것이었다.
“믿어……?”
베리엘은 말했다. 아카데미를 믿으라고.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
바르바는 말했다. 베르샤 아카데미는 명문이고, 학생들의 수준은 높은 편이라고.
“안전해……?”
마지막으로 데일드는 말했다.
우리 아카데미는 안전하다고.
“뭐가……?”
데이지가 출마된 곳은 기초 교육 과정의 학생회였다.
그러나 광기는 기초 교육 과정을 넘어 중등, 고등 교육 과정의 학생들에게도 전염되기 시작했다.
“깨어 있는 지도자가 누구?”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아카데미라는 낡은 시스템을 새롭게 변화시킬 자가 누구?”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붉은 깃발이 휘몰아치는 광기의 현장을 보며 데이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도망쳐야 해.’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판단이었다.
“저기 데이지 님이다!”
“우리의 지도자!”
“차기 총학생회장!”
기초 교육에서 어느새 아카데미 총학생회장으로까지 추대가 되고 있다.
만약 이 자리에 데일드가 있었다면 혹했을지도 모를 말이었다.
그러나 데이지에게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저 아닌데요?”
여기서 잡히면 큰일 난다.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는 자신을 부정하며 도망치기 시작했고.
“데이지 님이 앞장서신다!”
“뒤를 따라라!”
그 뒤를 수많은 학생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