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3)
13화 3. 인생 10회 차는 변하지 않는다 (4)
안 돼…….”
르윈의 누이, 르나인이 애절한 목소리로 통곡했다.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황실 아카데미로!”
“안 돼.”
조금 전 르나인이 했던 말이었지만, 말투는 전혀 달랐다.
“르윈이 삐뚤어졌어…….”
그 단호함에 르나인이 울먹이며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얘도 참.”
그런 딸의 모습에 에르젠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생이 떠나는 날이잖니.”
“나도… 베르샤 아카데미로 전학 가도 돼요?”
“안 돼.”
“힝…….”
계속 안 된다는 말을 들은 르나인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에르젠은 단호했다.
“언제까지 르윈을 잡고 살려고 그러니?”
“평생?”
“…….”
두 눈에 담긴 진심에 에르젠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왜 동생만 생기면 이럴까.’
르나인이 태어났을 때도 장남인 라테일과 차남인 라그일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르윈이 태어난 이후, 그 관심은 순식간에 르윈에게로 돌아갔다.
‘르윈이도 동생이 생기면 저렇게 변하려나.’
르윈의 성격이 형제들과 좀 매우 다르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
르윈도 과연 제 형제들처럼 바뀔지 에르젠은 궁금해졌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드라이르프 가문의 명예를 굳이 빛낼 필요는 없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세 시종 또한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격려를 받고 있었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명예는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래. 너희의 역할은 단 하나.”
“르윈 도련님이 그 빛나는 명예에 잉크를 뿌리는 짓만 하지 않게 막으면 된단다.”
이미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한 라테일과 라그일의 전속 집사의 말이었다.
자칫 형제간의 파벌 싸움으로 볼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르윈의 전속 집사 알렉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데이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데이지.”
부드럽게 데이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린 알렉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데이지를 불렀다.
“네, 집사님.”
“힘든 일일 것이다.”
“네.”
“하지만 나는 너를 믿는다.”
“…….”
“너희를 믿는다.”
툭. 툭.
데이지에게 올렸던 손으로, 알렉스는 예리엘과 하인스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도련님을, 잘 막아야 한다.”
“흑…….”
장남, 라테일의 전속 집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라테일이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알렉스의 요청으로 종종 르윈을 보살폈기에 세 사람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우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문으로 요청을 하여라.”
라그일의 전속 집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최상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사고를 막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도련님이 막는다고 막아질 수 있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바로 보고부터 올려야 한다.”
“출석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 출석 일수가 부족하면 아무리 성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유급을 하게 되니까.”
“성적…….”
“왜 그러는가, 알렉스.”
“도련님이라면… ‘유급 한번 해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라고 일부러 성적을 낮게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가능성이 있어!”
“시험 기간에 성적도 바로바로 보고하거라! 시험 기간마다 매일! 혹시라도 점수가 바닥을 치면!”
알렉스의 말에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집사들이 온갖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게 하겠어?’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던 르윈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들 사이에서 르윈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고 있는 듯했다.
“르윈.”
묵직한 목소리에 르윈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울먹이며 르윈을 인형처럼 껴안고 있던 르나인도 그 목소리를 듣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네, 아버지.”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아버지이자 현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가주.
제국의 군권을 맡고 있는, 라이하르 디 드라이르프였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군법에 의하여 철저하게 병사들을 다스리는 그를 사람들은 철혈의 공작이라 불렀지만.
“조심해야 한다.”
“…….”
눈에서 떨어지는 저 물방울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지은 별명이야?’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철혈의 공작’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다니.
이 별명을 지은 사람은 철혈의 공작 본인을 본 사람이 아니라고 르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배움은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 남들이 더 뛰어나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 사람의 재능은 다 다르고, 재능이 피어나는 시기도 다 다르기에 조급해질 필요도 없지.”
맞는 말이었다.
검에 재능이 있는 자가 꼭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검술의 재능이 부족해도 검에 마력을 담는 것에 재능을 가진 자가 종종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을 르윈은 자주 보았다.
하지만 소드마스터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검술에 재능이 없다고 그만두는 순간 거기서 끝이었다.
‘어렵지.’
그렇다고 검술에 재능이 없는 이들에게 계속 검을 들게 하는 것이 좋냐고 묻는다면 르윈은 말할 수 있었다.
절대 아니라고.
그 재능으로 다른 마력을 이용하는 길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그 노력으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차분하게,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거라.”
“네.”
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운이 좋네.’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살 생각이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일은 아홉 번으로 충분했다.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요!”
르윈의 말에 라이하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르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
“…….”
“…….”
멀리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 시종의 눈은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
“도련님, 이 세상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베르샤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 안.
한참 침묵을 유지하던 알렉스가 르윈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응, 알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르윈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임이라는 것으로 인해 목숨을 아홉 번이나 날린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르윈의 말에 알렉스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알고는 있구나, 하는 느낌이지만.
“응. 더럽게 귀찮고, 쓸모없고, 지켜 봤자 별로 알아주지 않는 거잖아?”
“…….”
이어지는 르윈의 책임에 대한 해석에 알렉스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도련님, 책임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틀려? 그 사람이 맡아서 해야 할 의무가 책임이잖아. 근데 그거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줘.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구나, 생각하지.”
오히려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용사로서 적과 함께 죽은 이후, 다음 생에서 확인해 보니 알지도 못했던 인간들이 자신의 동료로 기록되어 있기도 했고,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라고 세워진 수많은 동상의 모습 중 진짜와 같은 것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밖에도 신전에선 온갖 허구적인 이야기로 용사와 그를 보낸 여신을 찬양했고, 수많은 왕족들이 자신을 용사의 후손이라 주장했다.
‘나쁜 새끼들.’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아홉 번의 인생을 살면서 연애도 몇 번 못해 봤는데, 다시 태어나서 전생의 자신이 난봉꾼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서 끝이야.”
용사가 세상을 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르윈 또한 이전 생까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도련님…….”
하지만 그 사연을 모르는 알렉스로서는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꼬여 있을까.’
어째서 사람들에게 몇 번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인생 10회 차를 알 수 없는 알렉스로서는 르윈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도련님, 가주님께서 말씀하신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라는 말은 정도를 지키는 선에서 이루라는 말씀이셨을 것입니다.”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내가 법에 걸릴 만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걸리지 않는 선에서는 마음껏 즐기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제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응, 뭐, 그럴 거야. 아마도.”
“…….”
왜 잘 나가다가 아마도를 붙이는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알렉스는 인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아…….”
“제발, 제발…….”
“하, 하하…….”
르윈과 알렉스의 대화를 들은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고, 예리엘은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인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앞으로 긴 시간 동안 르윈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알렉스가 아니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르윈이 아카데미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뿐.
아카데미에 들어간 이후 그가 르윈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베르샤 아카데미의 방학 기간만이 될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이 아이들의 역할이었다.
그것을 위해 준비된 이들이었고, 그렇기에 르윈 디 드라이르프를 담당하는 모든 이들은 저 세 사람에게 아낌없이 퍼 주었다.
르윈의 명령, 그 이상으로.
평범한 사용인들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혜택이었지만, 알렉스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렉스뿐만 아니라 드라이르프가의 모든 사용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힘내거라.”
그렇기에 알렉스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작은 응원 정도가 전부였다.
“네.”
그것을 데이지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도의 아카데미라고 하지만 황실 아카데미처럼 빡빡한 곳이 아니니까.”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차라리 쉴 틈 없이 교육하는 곳이면 도련님이 딴짓을 못했을 텐데.”
“아니야. 도련님이라면 황실 아카데미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을 거야.”
“충분히 가능해. 오히려 우리가 학업에 짓눌려 제대로 활동하지 못할 수도 있어.”
예리엘의 말에 알렉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그것을 배우는 학생들 또한 그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괜히 황실 아카데미의 졸업장만 가지고 있어도 출셋길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들어가기 어려우나, 졸업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곳.
아무리 데이지 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황실 아카데미 역시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천재들만 모이는 곳.
“생각해 봐. 같은 양의 과제를 받았는데 우리는 끙끙대며 처리를 하고 있고, 도련님은 금방 다 해결했다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우리한테 과제를 떠넘기고 도망칠 수도 있어요.”
“충분히 가능해. 이거 안 하면 나 퇴학인데, 안 해 줄 거야? 라고 협박을 하는 거면…….”
하인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얼굴을 하얗게 물들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들이 진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르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들어간 적도 없는 황실 아카데미 생활을 저렇게 구체적으로 떠올리다니!
“어떻게 알았지?”
“…….”
“…….”
“…….”
“…….”
그렇기에 살짝 열받은 르윈이 장난삼아 내뱉은 말이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장난이야, 장난. 왜 그렇게 정색을 하는 건데?”
그에 르윈이 본심을 말했지만, 그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집사님, 도련님이 과제를 저희에게 떠넘기면 저희가 대신 해야 할까요?”
“저기요?”
‘역시.’라고 작게 중얼거린 데이지는 진지하게 알렉스를 바라보았고.
“졸업은 해야 하는데…….”
알렉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했으며.
“아아…….”
“제 말 들리세요?”
예리엘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고.
“하, 하하.”
“이것들이 진짜.”
하인스는 해탈한 고승의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 해 버릴까.”
그렇게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며, 르윈의 일행은 베르샤 아카데미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