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27. 인생 10회 차는 준비한다 (2)
르윈이 도서관 지하에서 정령과의 계약을 고민하고 있을 때.
“누나, 도련님 안 따라가도 되겠어?”
“하루만. 하루만 더 쉴게.”
번아웃이 제대로 온 데이지가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라일라가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순간과 동시에 시작된 번아웃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아, 알았어.”
반쯤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데이지의 모습에 하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고생한 그녀였기에 조금 쉬는 것 정도는 괜찮다.
아니,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내가 가야 하니까!’
데이지조차 이런 모습이 되어 쓰러져 있는데, 자신이 르윈을 혼자서 담당하다니.
하인스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예리엘과 함께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그럼 가 볼게.”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는 하인스를 보며,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내일은 일어나야지.”
선거의 후폭풍은 생각한 것처럼 엄청나지 않았다.
그저 패배가 확정된 이후, 혁명파의 인원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 전부.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후련하게 패배를 인정했다는 모습에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으나.
“다행이었지.”
괜히 쿠데타라도 일으켰으면 주범으로 잡혀갔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평화적으로 끝난 것이 데이지에게도 좋았다.
“내년에 다시 도전하라는 말만 안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내년에 다시 모이기로 한 혁명파의 얼굴을 떠올리며, 데이지는 눈을 감았다.
제발 라일라가 훌륭한 성과를 내어,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는 데일드 회장님도 없을 거고, 도련님이 더 힘을 쓰기 좋을 텐데.”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니 다시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내년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데이지는 자신이 없었다.
***
“우와!”
총학생회의 인수인계.
이미 몇 번이나 했기에, 인수인계를 전혀 할 필요가 없는 데일드였지만.
“이건 익숙해지지가 않네.”
쌓여 있는 서류의 산만큼은 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이래서 총학생회장을 하기 싫었다.
각 학년의 학생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검토해야 하는 자리니까.
이렇게 모든 교육 과정이 함께하는 이벤트에는 일이 쌓인다.
하지만 데일드 차일스, 그는 숙련된 총학생회장이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노예를 다시 데려와야겠어.”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야이 사기꾼 새끼야! 싸우자고? 그래도 우리 집 백작가야!”
전 총학생회 회계이자, 현 총학생회 회장의 선택을 받은 회계인 테라 타르테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동생이 가문 이어받으니까, 공무원으로 진출한다며!”
“닥쳐! 그건 과거 이야기고! 그냥 남자 하나 잘 잡아서 결혼할 거야!”
“요즘 제국 공무원 여성이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데.”
“힘이 약해도 백작가거든? 그거면 충분히 결혼할 만하거든?”
전력 질주하며 도망치는 테라였지만, 데일드는 아카데미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총학생회장이었다.
그가 도망치는 학생회 임원을 붙잡는 것은 이미 트고 튼 일.
결국 테라를 붙잡은 데일드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아카데미입니다. 신분이 우선이 아니라고요.”
아무리 백작가여도, 아카데미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데일드를 노려보며 테라는 이를 갈았다.
“루테스 전하나 르윈 후배에게 그 말을 할 수 있으면 믿을 텐데요.”
“크흠!”
그 말에 잠시 헛기침을 한 데일드였지만,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 학생회 안 한다며! 해산한다며! 그동안 고생했다며!”
그에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테라를 보며, 데일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미안. 그렇게 되었다.”
“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테라를 보며, 잠시 마음이 약해진 데일드였지만.
‘어차피 다 그랬으니까.’
이 또한 여러 번 경험한 일.
불쌍하다고 다 봐주면, 산더미 같은 서류를 혼자 처리해야 한다.
‘그럴 순 없지.’
혼자 하면 죽지만, 다 같이 하면 어떻게든 산다.
초주검이 된다고 하지만, 일단 살아 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가슴속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 명함도 쓸 수 있을 테니까!
“테라 타르테, 너를 다시 총학생회의 회계로 지정하려 한다!”
무려 총학생회의 회계.
제국 재무부에 엄청난 가산점을 받는 자리였다.
공무원 자리를 노리는 모든 이들이 탐을 낼 만한 자리였으나.
“꺼져요!”
테라 타르테는 이미 그것을 한 번 충족시켰기에, 메리트가 그리 크지 않았다.
심지어 학생회 회계 자리가 얼마나 지독한 자리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욱더 할 이유가 없었다.
“어허! 총학생회장의 임명은 아카데미의 불문율로서.”
“불문율이잖아! 교칙 아니잖아!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절대 안 된다는 테라 타르테의 모습에 데일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지, 진짜?”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 몰랐던 테라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싫다고 하는 사람을 막 데려가는 그런 나쁜 사람으로 보여?”
그래도 우리가 3년을 함께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었느냐.
그렇게 묻는 데일드를 보며, 테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
너 그런 사람 맞아.
그렇게 대답하는 테라를 보며, 데일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잘 아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그것을 꺼내었다.
고작 종이 쪼가리였지만, 데일드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 빛나 보이는 명함 석 장이었다.
“이게 뭔지는 알지?”
“…회장님께서 그렇게 자랑을 하셨는데. 모를 수가 있어요?”
출세가 확정된 증거였다.
테라로서도 좀 부러운 일이었고, 아무리 아카데미 안이고 총학생회장인 데일드라고 하더라도, 백작가의 장녀인 자신을 남작가인 데일드가 이렇게 대놓고 쫓아오는 것을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했다.
“그거 아니었으면, 아까 붙잡았을 때 따귀 세 대는 때렸을 테니까요.”
“1년당 한 대씩 때리고, 한 장당 한 대씩 막아 주는 거구나.”
노려보는 시선에 살짝 움찔한 데일드였으나, 지금 테라의 발언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자리 하나를 줄 수 있다.”
“그, 그게 무슨…….”
“명함은 석 장. 그러나 나는 한 명. 명함 두 개는 남는 거지.”
“…그렇다고 남한테 준다고요?”
“좋은 인재가 있으면 줘도 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제국을 위하는 훌륭한 충신들인 만큼 마음도 크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데일드였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재무부, 정보부, 감찰부.
그 세 곳이 제국의 실세 소리를 듣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만큼 일을 잘하고, 많이 하기 때문이었다.
부장들의 권력은 그들이 갈리는 만큼 나오는 것.
상사가 갈리는데, 그 부하 직원들이 안 갈릴 일이 없고.
그렇기에 튕겨 나오는 이들이 상당했기에, 늘 인력을 충원해도 부족한 곳이 세 부서였다.
“나는 너와 함께 가고 싶다.”
이번 한 번만 고생하면 인생이 핀다는 말이었지만.
실상은 지옥으로 들어가 주면 더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데려가 준다는 말이었다.
“그, 그건…….”
하지만 겉모습은 제국 공무원의 실세 중의 실세.
백작가로서도 기회로 여길 만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데, 겉모습마저 쓰레기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
제국 정보부의 강력한 정보 조작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마치 자신을 추행하려는 듯한 사람처럼 데일드를 노려보던 테라의 시선이 사라졌으니까.
“그래도 싫어요.”
오랜 고민 끝에, 테라가 선택한 것은 거절이었다.
“고, 공무원의 꿈을 꾸었던 적도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지난 3년, 테라는 배울 수 있었다.
왜 아카데미 학생회 임원들에게 제국이 공무원의 기회를 주는지.
업무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중에 제국 공무원도 있으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나, 그보다 더 높은 가산점을 받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학생회 생활 확장판이 제국 공무원의 삶이잖아요!”
수업을 듣지 않는 대신, 학생회 업무를 더 하는 게 공무원이다.
그것을 깨달은 테라를 보며 데일드는 짧게 혀를 찼다.
“이렇게 눈치 빠른 임원들은 참 싫던데.”
속일 수가 없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데일드를 보며, 테라는 분노에 부들부들 떨었다.
“여, 역시!”
“그래도 내가 보는 눈이 있기는 한가 봐. 대부분 이 명함을 보면 학생회에 들어오려 할 텐데.”
핵심을 꿰뚫고,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은 학생회 회계에 필요한 능력이다.
그런 의미로, 자신의 총학생회장 경력을 함께한 테라 타르테라는 인물은 최고의 회계였다.
지금도 후회를 하는 것이, 어리다는 이유로 테라를 총학생회 부원으로만 내버려 두었던 1년이었다.
중등 교육 3학년 총학생회장이 이끄는 총학생회에, 중등 교육 3학년 회계가 말이 안 되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기에.
“역시 테라가 학생회를 맡아야 해.”
중등 교육 3학년부터 고등 교육 2학년까지 함께 총학생회를 맡았다.
그중 2년은 총학생회장과 회계라는 직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야말로 영혼의 파트너!
총학생회는 물론 공무원이 되어서도 자주 볼 만한 사이였다.
“3년을 부려 먹었으면서, 더 부려 먹으려고?”
그런 데일드의 모습을 보며 테라는 이를 갈았다.
지독한 새끼인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나쁜 새끼인 줄은 몰랐다.
“내 모습을 봐! 어때?”
으르렁거리는 듯한 말에 데일드는 말없이 테라를 바라보았다.
평소 떡 져 있던 짙고 푸른 머리카락은 윤기가 가득하여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도,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도 거의 사라졌다.
반쯤 죽어 살던 모습과 달리, 한 일주일 정도 벼락치기를 한 학생의 모습 정도?
그렇게 옅어진 다크서클 덕분에 안색도 한층 밝아 보였다.
“열흘. 딱 열흘이야. 그거 쉬었다고 이렇게 사람다워졌어.”
그 이전에는 자기가 사람답지 않았다는 자조적인 말이었으나, 현실이기도 했다.
아카데미에 사고 치는 놈들은 너무나 많았고, 그 때문에 줄줄 새어 나가는 예산은 넘쳐났으니까.
아무리 황금 공이라는 거대한 뒷배가 지원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필요 없는 것에라도 투자하는 것이 황금 공이라는 이사장이었지만, 그렇기에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은 용서를 하지 못하는 것이 황금 공이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쉬었네. 슬슬 다시 일할 때가 되었구나.”
“좋아. 싸우자는 말이구나?”
테라의 손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전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으나, 낙제를 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을 설득하든, 내 대답은 단 하나야. 나는 이제 노예로 살지 않을 거야!”
아카데미 생활도 올해가 끝이다.
그 끝마저 노예로 살다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친구처럼 파릇파릇한 아카데미 여학생으로 살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테라를 보며, 데일드는 명함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래. 네 생각은 그럴 수 있지.”
그러고는 이번에는 품 안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공간 마법 주머니라도 받았어? 뭘 그렇게 꺼내?”
“이건 너희 집에서 보낸 거니까. 너 주려고 가져온 거지.”
“우리 집에서?”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테라는 손아귀의 불꽃을 해제하고는 데일드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매우 익숙한 필체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네가 재무부의 선택을 받다니, 참으로 기쁘구나.> [엄마는 네가 해낼 줄 알았어. 남은 학생회 생활도 잘해 줘.>“…응?”
두 눈을 깜빡이며, 테라는 글씨체를 확인했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두 글씨체는 부모님의 글씨체가 맞았고.
구석에 찍혀 있는 인장은 가문의 인장이 맞았다.
“너, 너…….”
“아쉽네. 나는 자발적으로 학생회에 들어왔으면 했는데.”
이 새끼, 이미 자신의 집에 확인을 받은 상황이었다.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도망칠 곳을 차단했으면서, 나중에 자발적으로 들어온 거지 않냐고 하기 위해 꼬신 거였다.
“주, 죽일 거야…….”
분노에 눈을 빛내며 테라가 으르렁거렸지만, 데일드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최근 더 무서운 인간들을 너무 만나서, 테라의 행동은 귀여운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
“응. 죽을 거야. 올해 선거에 일이 좀 많았잖아? 그래서 작년보다 일거리가 2배는 있더라고.”
“아아…….”
“그거 빨리 해치우려면 최대한 빨리 도망친 노예, 아니 전 학생회를 재건해야 하는데.”
“나보고… 걔들 뒤통수를 치라고?”
“그럼 우리 둘이 다 할까?”
“…….”
데일드의 말에 테라는 침묵했다. 그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기를 잃은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며, 데일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2일 후.
아카데미의 총학생회는 다른 교육 과정보다 빠른 임원을 모집, 가장 빠르게 업무를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총학생회의 위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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