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4)
14화 4.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에 간다 (1)
베르샤 아카데미까지의 여행은 매우 평화로웠다.
애초에 대제국 최고의 권력자인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의 깃발을 보고도 건드릴 간 큰 이들은 제국에서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심심해.”
위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도련님?”
가장 먼저 위기를 감지한 것은 모닥불 앞에서 간단한 요리를 하던 데이지였다.
그녀는 수프를 휘젓던 국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심심해. 여행이 이렇게 잔잔할 줄은 몰랐는데.”
르윈의 기억 속 여행이란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언제, 어디서 적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적진 한가운데에서 모닥불을 피운다는 것은 자살을 희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식사는 딱딱한 육포 하나를 입에 넣고 녹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인류와 마족의 운명을 건 전쟁에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무슨 여행을 상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게 좋은 겁니다. 애초에 마차를 타고 가자고 말씀하신 분은 도련님이시고요.”
애초에 드라이르프 가문 정도의 권력과 재력이면 르윈을 비롯한 인원들을 이동 마법으로 한 번에 수도까지 보낼 수 있었다.
르윈의 형제들도 대부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고, 특히 르나인은 자주 이용하여 포탈을 관리하는 마탑에서 VIP 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
그저 르윈이 여행을 간다는 핑계로 마차로 이동하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러니까, 괜히 사고 치지 마시고 조용히 있어 주세요.”
데이지가 다시 국자를 붙잡고 수프가 눌어붙지 않게 휘저었다.
“…….”
하지만 데이지의 시선은 계속 르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심하다.
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저 인간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곱게 넘어간 적이 없었으니까.
“…….”
데이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말없이 수프를 휘젓는 속도만이 점점 빨라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던 데이지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 심심하시면 오랜만에 예리엘과 하인스를 지도해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소중한 동생들을 그대로 팔아먹었다.
“그럴까?”
“네. 그 아이들도 심심해하기에 기사분들에게 훈련을 부탁드렸으니까요.”
그러니 두 사람도 좋아할 거라는 이야기에 르윈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밥 먹기 전에 간단하게 운동이나 좀 하고 올까?”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데이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인간은 매우 나태하지만, 또 심심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을 지닌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이불 밖은 위험하다면서 온종일 침대에서 나오려 하지 않다가도, 어떨 때는 살이 에일 것 같은 추위에도 일출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사용인들보다도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인간이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심심하다는 말은 평범한 사람들의 심심하다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위기였다.
그리고 데이지와 예리엘, 하인스는 그 위기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었다.
“도착하기도 전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렇게 르윈이 사라진 지 얼마 후.
수프가 완성될 때쯤 르윈은 두 사람과 함께 돌아왔다.
“…….”
잠깐 시선을 돌렸던 데이지는 그대로 수프로 시선을 내렸다.
예리엘의 오른쪽 눈에 난 멍이라거나,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듯한 하인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다.
‘응, 절대 아니야.’
그렇게 되새기며 데이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빨리 오셨네요.”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까 기분이 좋더라고. 그래서 힘 조절이 조금 안 된 느낌?”
평소보다 힘 조절이 안 되었다는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웃는 모습 그대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았어.”
그 한마디에 데이지는 동생들의 시선이 조금 더 차가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나저나 알렉스는 요즘 잘 보이지를 않네.”
“함께 이동하는 상단과 이야기할 것이 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지금 르윈과 함께 이동하는 이들은 드라이르프 가문의 인원만이 아니었다.
대륙 5대 상단 중 하나로 불리는 레드불 상단과 동행 중인 상태였다.
수프를 한 입 떠 넣으며, 르윈은 생각했다.
‘무슨 수를 쓰려는 걸까?’
굳이 마차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을 르윈이 주도했다면, 레드불 상단과의 동행은 알렉스가 주도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이동하는 인원의 규모가 커야 몬스터들이 습격을 하지 않는다거나, 정기적으로 베르샤 아카데미에 물건을 납품하는 이들이기에 길을 잘 알고 있다거나, 사람이 북적거려야 조금 더 여행의 기분이 들지 않겠냐는 말까지.
참으로 다양한 말들로 자신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떠올린 르윈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가 되었든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
달그락거리는 마차 바퀴의 소리를 들으며 르윈은 생각했다.
‘보통 여기서 무슨 사건이 일어나야 정상 아니야?’
과연 알렉스가 무슨 수를 써서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두근거리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
그렇게 생각하며 르윈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하.”
저 멀리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뚱뚱하지만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사내.
여행 첫날 자신을 레드불 상단의 책임자라고 말했던 이가 분명했다.
“알렉스.”
“네, 도련님.”
르윈은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어디부터가 계획이었어?”
상대는 자신을 너무 잘 알았다.
그렇기에 계속 불안한 척하며 자신을 말리기 위한 수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척 움직였다.
“계획이라니요?”
어떻게 제가 주인이신 도련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 표정으로 답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뻔뻔했다.
“저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저 일했을 뿐이다.
맞는 말이었다.
그는 이 여행 동안 드라이르프 가문의 집사로서, 그저 레드불 상단과 앞으로 이것저것 거래할 물품들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
하지만 르윈은 놓치지 않았다.
단 한순간이지만,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을 향해 승자의 미소를 짓는 듯한 알렉스의 표정을!
“좋아.”
르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의 연륜을 인정했다.
인생 10회 차를 살았지만, 자신이 알렉스의 나이보다 오래 산 경험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여태까지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도련님.”
너무나 쉽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 오히려 알렉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르윈에게 패배는 생각보다 익숙한 일이었다.
전투 종족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은 물론, 그가 상대했던 사교도들이나 흑마법사는 매우 까다로운 적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 세계에 용사라는 존재가 전설처럼 남겨진 이유는 단 하나.
숱한 패배 속에 살아남고, 결국 세상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뒤져서 문제지.’
가장 마지막에 늘 운명에 패배했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기에 르윈은 자신의 패배를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졌어.”
상쾌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이것으로 자신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셔도,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만!”
애초에 알렉스를 비롯한 사용인들에게는 이 승부 자체가 상처뿐인 싸움이었다.
애초에 사용인이 주인으로 모시는 이와 싸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아니야.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도련님, 무슨 착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척할 필요도 없어. 나는 내 패배를 인정한다니까?”
“도련님…….”
“하지만 다음에는 안 져.”
“…….”
알렉스는 울고 싶었다.
사실 그는 승자의 미소를 지은 적이 없었다.
그저 르윈의 착각이었을 뿐.
애초에 이 승부는 일방적인 디펜스 게임이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사고를 치는 망할 도련님을, 알렉스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최선을 다하여 막아 내는 디펜스 게임.
그 게임의 장소가 이제는 드라이르프 공작가라는 한정적이고 안전한 장소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로 바뀌었고, 그를 막을 수 있는 인원도 단 셋으로 바뀌었는데.
왜 이 망할 도련님은 여기서 더 열을 내시는 걸까!
“집사님…….”
전의를 불태우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가 울먹이는 얼굴로 알렉스를 올려다보았다.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울 뿐 그녀는 아직 어렸다.
예리엘과 하인스 역시 마찬가지.
사용인들은 물론 기사단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아직 10대 초반의 아이들일 뿐이었다.
“미안하다. 힘내거라.”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니.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실을 만들고 있는 망할 도련님이 가장 어린 나이였다.
“레드불 상단에서 받은 위장약이란다. 베르샤 아카데미 매점으로 지속적으로 입고를 부탁해 놨으니, 드라이르프 가문 이름을 말하고 받아 가거라.”
“감사합니다.”
이런 어린 나이에 위장약을 챙겨 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추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순간이 찾아왔기에.
“도련님, 도착했다고 합니다.”
“응.”
알렉스는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장남, 라테일 디 드라이르프를 모시는 집사는 말했다.
그가 아카데미에 들어갈 때, 드라이르프의 이름을 세상에 빛낼 것이라고.
드라이르프 가문의 차남, 라그일 디 드라이르프를 모시는 집사는 말했다.
그가 아카데미에 들어갈 때, 먼저 입학한 형을 도와 드라이르프의 이름을 더욱 빛낼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드라이르프 가문의 장녀, 르나인 디 드라이르프를 모시는 집사는 그들과 조금 다른 말을 했었다.
정이 많아 생각보다 세상에 상처를 잘 받을 것 같은 그녀가 걱정이 좀 된다고.
지금 알렉스의 심정과 가장 비슷한 것은 마지막이었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막내, 르윈 디 드라이르프를 모시는 집사, 그는 드라이르프 가문으로 돌아가 다른 집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도련님이 세상에 상처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그리고 그런 그의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으니.
“아……!”
베르샤 아카데미의 정문 앞.
가벼운 발돋움으로 종종거리며 뛰고 있던 금발의 아이가 르윈의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주변이 환하게 빛날 듯한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놀랍게도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르윈의 호위로서 온 기사들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
그녀를 눈치챈 이들은 평소 망할 도련님과의 술래잡기로 단련된 알렉스를 비롯한 사용인 셋, 그리고 그 원인인 르윈뿐.
“왔어?”
그녀, 라일라 라인하르트 역시 매우 익숙했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르윈을 향해 다가오며 웃었지만.
“응……?”
자신을 쓱 지나치는 르윈의 모습에 순간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
그녀의 머릿속으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설마 르윈마저 자신을 못 찾은 걸까.
진짜 세상에 나 혼자인 느낌이 되어 버리고 만 걸까.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에 다급히 고개를 돌린 라일라가 데이지 등을 바라보며 입을 뻥긋거렸다.
“아, 안녕?”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로웠기에 데이지 등은 예를 차리지도 못한 채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힝…….”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데이지의 품을 향해 라일라가 달려들었다.
“데이지! 르윈이! 르윈이!”
“도련님…….”
데이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라일라는 보지 못하겠지만, 데이지는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르윈의 모습을.
“와, 우리 라일라, 더 존재감이 없어졌네?”
“으아아앙!”
그리고 그가 던진 한마디에 더욱 울먹이는 라일라의 모습을 보며.
“…….”
알렉스는 조용히 위장약 한 병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