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28. 인생 10회 차는 시도한다 (1)
2학기 기말시험이 끝났다.
즉, 이제 남은 시험은 없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아카데미에 놀자판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내년에 아카데미 쉴드가 벗겨지고, 이제는 결혼과 취업, 그리고 가문을 이어받을 준비를 해야 하는 고등부 3학년들이나, 아직까지 인수인계를 받고 있을 학생회 인원들은 이제 바빠질 시라고 하나, 그들은 아카데미의 아주 소수다.
10개의 학년 중 한 학년.
소수 중의 소수.
심지어 이제 갈 사람들이다.
선배님들의 졸업?
재학생들에게는 알 바가 아니었다.
‘분명 그랬는데.’
사람 중 바쁜 사람은 졸업생이요.
사람 아닌 이들 중 바쁜 사람은 대학원생뿐이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놀자판인 아카데미에서 일할 줄이야.
작년까지의 자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니, 어제만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세계수의 씨앗은…….”
그러나 눈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후배의 모습에, 세렐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드라이르프니까.
까마득한 선배라고 하더라도, 하늘 같은 공작가를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이걸 어떻게 아는 거야.’
심지어 세계수에 대해 수상할 정도로 다양한 지식을 알고 있었다.
이름만 세계수 씨앗 연구회인 자신과 다르게.
만약 같은 동아리 후배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동아리 회장 자리를 넘겨주고 싶은 지식이었다.
하지만 이 후배, 다른 동아리다.
그것도 세계수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부원.
‘아니, 이제는 이름 바뀌었지.’
이름이 없던 신을 찾는다고 놀던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링.
이름을 찾은 순간,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는 바뀌었다.
단순히 이름이 무링신 연구 동아리로 바뀐 것이 아니라, 활동 그 자체가 변한 것이다.
신의 이름을 찾았으니, 그것으로 적극적으로 포교를 하고.
인류를 대표하는 교단인 창조의 교단의 도움을 받고.
그렇게 점차 이름을 알리며, 거물이 되어 가는 레피스를 보고 세렐이 어떤 생각을 하였던가.
‘쟤가 미쳤나 싶었었는데.’
함께 소귀족으로 살던 세렐은 그런 레피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밀렸구나.’
절벽에서 강제로 밀려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세계수에 대한 지식이 쌓여 갈 때마다 불길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뿐인가?
‘너 인생 망했어.’
확신이 가득 담긴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느낌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놀았던 소꿉친구고.
그렇기에 서로 짓궂은 장난도 많이 쳤던 사이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말에 한 줌의 악의조차 담겨 있지가 않았다.
그냥 담담히. 당연한 상식을 말하는 말투였다.
오랜 친구였기에, 그런 레피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세렐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느낀다고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세계수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 이상, 세계수의 씨앗이 발아하는 일은 없겠죠.”
“그, 그렇겠죠?”
“그렇다고 세계수의 씨앗을 발아시키려고 세계수를 불태울 수도 없고요.”
그랬다가는 엘프와의 전쟁이었다.
그냥 전쟁도 아니고, 목숨을 도외시한 엘프의 총력전을 견뎌야 했다.
이번 건국제만 하더라도, 지나가던 엘프 소드마스터가 갑자기 튀어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제국의 황제조차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터.
그렇게 세계수의 씨앗은 발아시키지 못할 것이다.
보통은 그러한 결과로 끝나는 것이 세계수의 씨앗에 대한 견해였다.
그러나.
“그러니 우리는 기존의 상식하고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렐의 눈앞에 있는 인물은 기존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인간이었다.
“어, 어떻게요?”
그게 될 리가 있냐.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귀족 사회에서는 가문이 깡패인 법.
그런 방법이 있냐고 최대한 돌려서 말하는 세렐이었으나.
“그 분야의 전문가를 제가 데려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짜잔!”
“…요정?”
안타깝게도, 르윈에게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존재했었다.
***
세상에는 영물이란 존재가 있다.
마력이 육체에 깃들어, 기존의 존재와 다른 영역에 도달한 존재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사나 마법사도 인간의 영물이고, 골렘도 암석의 영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조금 더 과거로 가면 수인족도 동물의 영물이 진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수인족의 몸에는 어마어마한 마력석이 있다, 내단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수인족 사냥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으면 인간 새끼들이 문제라니까.’
같은 인간 출신의 르윈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안 망한 것이 이상한 종족이었다.
모든 종족을 대상으로 사냥을 실천한 전적이 있는 종족이라니.
심지어 최고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라헬이라니.
이 정도 되면 마족 놈들은 정의를 구현하려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르윈은 자신의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세렐을 보며, 엘리를 소개해 줬다.
“맨드레이크의 영물, 엘리입니다. 제 친구죠.”
“친구 취급이었구나!”
그랬구나!
두 눈을 크게 뜨며, 이제야 자신이 르윈의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은 엘리였다.
“그럼 뭐였는데.”
“애완 식물?”
“그럼 그걸로 가자.”
“아니, 그냥 친구 하자!”
여태까지 취급이 너무했는데, 그게 친구 취급이었다.
괜히 애완 식물로 내려가면 더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엘리가 다급히 르윈의 입을 막았다.
“크흠! 친구인 엘리입니다. 식물의 전문가입니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르윈이 시켜서 하는 말일 뿐이었다.
인간이라고 인간의 근원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엘리 또한 식물에 속한다고 식물에 대해 잘 알 리가 없었다.
그나마 맨드레이크에게 물 잘 주고, 마력이 높은 곳에서 키우면 잘 자란다는 것을 아는 정도?
“저, 전문가!”
그러나 순진한 귀족 아가씨를 속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제국 수도에 있는 명문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맨드레이크 영물을 보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세계수도 크게 보면 나무의 영물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 그렇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이고, 웬만한 신들보다 더 많은 신앙을 보유하고 있을 뿐.
세계수는 결국 나무였다.
나무의 영물.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무의 영물이라는 존재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그렇게 정의를 내려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엘프들은 지랄하겠지만.’
신성한 세계수를 영물 취급하는 것에 엘프는 난리를 치겠지만, 이곳에 엘프는 없었다.
그러니 마음껏 입을 털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같은 영물이자 전문가인 엘리의 도움이 있다면 세계수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것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르윈의 말에 세렐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한 것을 만나니, 진짜 신비한 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존재가 또 있으니까요.”
“또, 또요?”
르윈이 주먹을 움켜쥐고는 세렐의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 어린아이의 티가 가득한 자그마한 손.
그 손에 세렐이 시선을 주자, 르윈은 그것을 살며시 펼쳐 보았다.
“이, 이건?”
손이 펼쳐지자 푸른빛으로 빛나는 작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을 보자 세렐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정령…….”
“영물과 정령. 이 정도면 세계수의 씨앗을 최초로 발아하는 것도 꿈은 아니지 않을까요?”
작게 속삭이는 르윈의 말에, 세렐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그게 될까?”
세렐을 설득한 이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이제는 완벽히 모습을 감추는 데 성공한 엘리의 질문에 르윈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안 되지.”
영물과 정령.
쉽게 볼 수 없는 조합이었으나, 그건 인간의 기준이었다.
“그게 되었으면 엘프가 진작에 세계수 양식을 하고 있겠지.”
인간의 기준으로 불멸의 존재처럼 보이는 엘프였다.
심지어 종족의 콘셉트가 자연의 수호자,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인간처럼 자신이 살겠다고 산이나 숲을 개간한다고 밀어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 친화적이라고 정령들이 엘프를 좋아하고, 불의 정령 같은 종류 빼고는 잘 계약하잖아.”
“불은 아니야?”
“인간보다는 잘 계약하는 편이지만, 숲에 살아서 잘 안 부르거든.”
숲에서 불의 정령이 조금 신을 내면 대형 참사가 벌어진다.
대부분의 엘프가 물의 정령의 선호도가 높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거기에 오래된 식물이 많기에 엘프의 왕국에는 영물급 존재가 많기도 할 거고.”
영물의 조건은 일단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것이 식물의 영물이 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동물이라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죽을 위험이 낮아지지만.
식물은 마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주워 가는 사람이 이득을 보는 구조였으니까.
“역시 엘프야!”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인간이 사는 곳보다 살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야. 걔들도 필요하면 동물이고, 식물이고, 영물이고 잡아다가 쓴다.”
“에?”
인간처럼 개인의 욕심으로 무언가를 해치지 않을 뿐, 엘프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동물과 식물을 죽인다.
“애초에 걔들 육식에 가까운 잡식이잖아.”
“자연의 수호자라며!”
“자연의 수호자니까, 약육강식. 자연의 기본 아니야?”
“인간한테는 풀만 뜯어 먹고 사는 종족 아니었어?”
“어머니이자 신처럼 모시는 게 세계수인데, 어머니 동족인 식물을 뜯어 먹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어… 그러네?”
세계수의 잎사귀와 비슷한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인간으로 대입하면,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뜯어 먹는 모습으로 생각하면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자 이해가 확 되는 엘리였다.
“…내 환상.”
“따지고 보면 엘프보다 드워프가 더 채식에 가까울걸? 드워프가 죽고 못 사는 술도 따지고 보면 식물로 만드는 거잖아.”
“그, 그런가?”
초식 드워프, 육식 엘프라니.
종족의 이미지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나, 어떤 의미로는 사실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필요해 의해서야. 엘프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먹고살아야지.”
그에 비해 인간은 배가 불러도, 더 강해질 수 있다면 배가 터질지언정 입에 집어넣는 종족이었다.
“너처럼?”
“잡아먹히고 싶다고?”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엘프는 정령과도 친하고, 영물하고도 친하다.
그렇기에.
“애초에 이 방법도 내가 알던 엘프가 실험하려던 것이었거든.”
“엘프도 알아?”
“전통적인 용사 파티 구성원으로 엘프가 하나씩 있잖아?”
물론 르윈의 모든 회 차에 엘프 동료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가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보면 자신도 모르던 동료가 추가되었고.
높은 확률로 이종족이 추가되어 있을 뿐.
“이름하여 용사 파티의 이종족 쿼터제라는 거지.”
“와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엘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늘 참으로 많은 환상이 깨지는 엘리였다.
“뭐, 그래도 몇몇 엘프는 실제로 동료였고. 그 덕분에 다른 엘프를 소개받기도 했었는데.”
그중에서는 엘프 기준으로 괴짜도 존재했다.
아니, 인간 기준으로도 괴짜가 맞긴 했었다.
“그 녀석은 실패했거든.”
“실험에?”
“시도 그 자체에.”
엘프의 신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
그 존재를 양산한다.
즉.
“어머니를 양산하겠다고 하이 엘프가 주장하니, 다들 말렸거든.”
“와오!”
당시의 르윈으로서도 아찔했던 기억에 엘리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