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28. 인생 10회 차는 시도한다 (6)
아카데미의 겨울방학이 다가오는 시기.
“안 되네?”
“실패했네?”
“휴…….”
오늘도 반응이 없는 세계수의 씨앗을 보며 르윈과 엘리, 그리고 세렐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실패해서 좋은 모양이네?”
“그러게요?”
세렐의 안도의 한숨에 엘리와 르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시선을 받은 세렐은 당황한 모습으로 부정했으나, 속마음은 달랐다.
‘진짜 되면 어떡하지?’
세계수 씨앗 연구회는 제국은 물론 전 대륙에 퍼져 있는 유명 동아리다.
그러나 실제로 씨앗을 연구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창기 여러 곳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선물 받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천재가 모이는 동아리였으나, 수백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씨앗이 발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국가 소속 연구 기관이나 마탑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잔재만이 남은 곳이 되었다.
‘그래서 들어온 건데.’
올해 무링신 연구 동아리 회장으로서 이름을 떨친 레피스를 비웃었던 업보인 것인가.
연말이 되니, 자신이 그 꼴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유, 유명해지고 싶어요!”
거짓말이다.
세렐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레피스와 친구였고,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마음도, 현실도 소귀족인 레피스처럼 세렐 또한 소귀족으로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렇죠?”
하지만 공작가 도련님이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소귀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기에 욕심이 없으나.
그렇기에 르윈에게 반항하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세렐이었다.
“이제 곧 방학이라 아쉽네요.”
그 전에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아쉬워하는 르윈을 보며, 세렐은 최대한 기뻐하는 표정을 숨기며 대답했다.
“방학에는 가문으로 내려간다고 하셨었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방학 때 르윈이 아카데미에 없다는 것.
레피스와 마찬가지로 방학에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렐으로서는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을 얻는 것이었다.
“기뻐 보이네요.”
“그, 그럴 리가요.”
그러나 아직 레피스처럼 포커페이스 단련이 안 된 세렐은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약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르윈이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쉬운데.”
“나도.”
“…….”
정말 아쉽다는 표정의 르윈과 엘리의 모습에 세렐은 할 말을 잃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남의 동아리실을 빼앗고.
동아리 부원이라는 놈들은 다 도망을 쳐 버리고.
동아리 권한으로 아카데미가 보유 중인 세계수의 씨앗까지 빌려 왔다.
솔직히 말해서, 세계수의 씨앗 연구회 동아리에 몇 년 동안 소속이 되어 있었던 세렐조차 그때 처음으로 세계수의 씨앗을 보았다.
아니, 그걸 빌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그때 처음 알았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 계속해서 쌓여 간다.
심지어 기초 교육에 다니는 주제에, 고등 교육에 다니는 세렐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순수하게 마법 방어를 뚫어 내는 것은 불가능한 느낌이네.”
“그게 가능했으면 옛날에 뚫어 냈겠지.”
“그럼 다음으로는 세계수와 연결된 흐름을 꼬아서 명령 체계를 바꿔 보는 걸 시도해 봐야 하는데.”
심지어 알아듣는 내용보다 못 알아듣는 내용이 많을 정도였다.
‘공작 가문은 다 저런가?’
괜히 다 황실 아카데미 쪽으로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그런 대단한 집안의 사람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다 끝내 놓을 수 있으시죠?”
“노, 노력은 해 볼게요!”
의문을 해결할 시간도 없이, 또 방학 숙제가 늘어나고 말았다.
***
“쉽게 성공한다고 생각은 안 했지만, 단서조차 찾기 어렵네.”
세계수 씨앗 연구 동아리실을 빠져나오며 르윈은 아쉬운 소리를 내뱉었다.
방학이 코앞인데, 생각보다 성과가 나온 것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최근 활동 내용만 보면 데이지가 제일 성과가 많은 것 같던데?”
“걔가 저번 선거 이후에 활동적으로 변했더라고.”
역시 아카데미에 혁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여걸다웠다.
그날 이후, 데이지의 활동에는 거침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원래 사람은 수동적이면 안 돼. 남들에게 휘둘리다가 자기 인생을 다 버린다고.”
인생 9회 차를 그렇게 살았던 호구의 결론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주도해야 하는 법!
데이지는 그것을 조금 빨리 깨달았을 뿐이었다.
“본인은 평생 몰랐어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텐데.”
때로는 모르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걸 굳이 알려 주는 것이 데이지의 인생에 도움이 될까.
그렇게 주장하는 엘리를 보며 르윈은 자신 있게 말했다.
“당연하지. 데이지는 앞으로 더 성장할 거니까!”
“앞으로 더 고생할 일이 가득하다는 이야기구나!”
드라이르프 가문의 흑막이자, 아카데미의 혁명가!
고작 아카데미 1년 만에 얻은 칭호들이었다.
그것도 기초 교육 1학년에!
“원래 역경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하잖아.”
“그렇다고 굳이 역경을 만들어 줄 필요는 없겠지만.”
2학년이 된 데이지는 얼마나 더 강해지는 걸까.
참으로 걱정이 되면서 흥미가 끌릴 수밖에 없는 엘리였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나도 가는 거지?”
“우리 집?”
“당연하지!”
방학의 아카데미는 심심하다.
나름 잘 돌아다니고 있는 편인 엘리였으나, 옆에 르윈이 같이 있기에 가능한 일.
방학이 되어 르윈이 돌아가면 또 방 안에서 조용히 식물인 척만 해야 했다.
“뭐, 그 정도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저 정도의 기술이라면 엘리의 정체가 들킬 걱정은 없었다.
“진짜지?”
“그렇다고 너무 돌아다니는 건 안 되고.”
“내가 얼마나 조용한데!”
“원래 식물은 조용해.”
오히려 식물이 말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식물 중 가장 시끄러운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식물 차별이야!”
“억울하면 종족 바꾸든가.”
이미 인생 9회 차를 살며, 다양한 종족을 만났던 르윈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경험하며, 완벽하게 종족을 차별할 자신이 있었다.
“종족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놈들치고, 모든 종족에 대해 자세히 아는 놈이 없어.”
“다 알면 차별해도 돼?”
“차별화가 되잖아.”
“그런가?”
인생 9회 차의 빅데이터로 인한 차별이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엘리였다.
“제일 안 좋은 종족이 어딘데?”
“당연히 인간 놈들이지.”
“차별 확실하네!”
자기 종족부터 차별한다는데, 엘리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그럼 마지막으로.”
N회 차 마지막을 내뱉는 이사장의 말에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선두에서 끝까지 버티는 고등부 3학년들의 노력 덕분에 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황금 공은 눈치채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하고 끝을 내자면.”
“눈치 더럽게 없네.”
“졸업식이니, 아쉬워서 끝내지 못하는 거겠죠.”
그런 탓일까.
계속해서 마지막을 연발하는 황금 공에게 르윈이 투덜거렸고, 그것을 들은 데이지가 이사장을 변론했으나.
“여름방학 때도 똑같았던 것 같은데?”
“…….”
르윈의 한마디에 데이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졸업하는 사람들도, 이사장의 말보다는 후배랑 인사할 시간을 더 원할 텐데?”
“그렇긴 하죠.”
무려 10년을 지낸 아카데미에서 졸업하는 날이자, 아카데미라는 보호막을 벗어나 냉혹한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시기였다.
고등부 3학년으로서는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 터.
그것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카데미 생활을 하며 만들어 간 인맥과의 대화일 터였다.
‘졸업할 때,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데이지는 자신의 졸업 날을 상상해 보았다.
우선 지금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연상인 이들.
총학생회장인 데일드를 주축으로 선배들은 이미 옛날 옛적에 졸업했을 것이고.
비슷한 처지의 동기들하고는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그나마 가까운 사람 중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볼 사람은 베리엘이나 담임인 바르바 정도 아닐까.
‘내 아카데미 생활,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지 않다.
그리고 그 원인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망이 아주 가득한데.”
알고는 계시네요.
그렇게 말하려던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마탑을 이용해서 가는 겁니다.”
지난 여름방학.
짧지만 매우 섬뜩했던 마차 여행의 경험을 떠올리며 데이지는 르윈의 확답을 요구했다.
“알겠다니까.”
그래도 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 덕분일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사장의 말은 부이사장의 손에 끌려 나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
“나도 갈래! 갈 거라고!”
“어림도 없지.”
곳곳에서 선후배 간의 뜨거운 눈물바다가 연출되는 졸업식이자 겨울방학식.
그곳에서 또 한 명의 인물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니.
“어딜 학생회장이 방학에 놀 생각을 해?”
“이렇게 일이 많을 거라는 말은 없었잖아!”
바로 베르샤 아카데미 기초 교육 과정의 학생회장을 맡은 라일라 라인하르트였다.
“그러게, 일을 빨리 처리했어야지.”
“했거든? 매일 일만 했거든? 그런데 쌓이는 속도가 처리하는 속도보다 빨랐을 뿐이거든!”
방학에 르윈의 집으로 가기 위해 라일라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최선을 다했다고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게 기말시험을 포기하고 했어야지.”
“공부를 어떻게 포기해!”
학업과 학생회.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한 라일라의 판단은 결과만 보면 성공적이었다.
기말시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낸 결과, 1학년 전교 1등을 달성하였고.
학생회에서도 나름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둘을 성공한 대신 르윈의 집에 가는 것은 실패했다.
“회장, 슬슬 돌아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아직 남은 일거리가 산더미입니다.”
터벅터벅 걸어온 학생회 임원 둘은 익숙하다는 듯 라일라의 양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었다.
“어제 그 산을 처리했는데?”
라일라의 시선이 거칠게 흔들렸다.
존재감 이전에 라인하르트의 영애라는 신분에 라일라를 함부로 대하는 학생들은 없었으나, 이들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산은 어제의 산.”
“자고 일어나면 쌓여 있는 게 서류의 산이라는 겁니다.”
“아, 안 돼!”
라일라가 간절한 눈으로 호소했으나, 두 사람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죠. 일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죠.”
“역시 우리의 회장님.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그게 아니잖아! 아, 안 돼! 내 동생! 이번에 태어났다던데!”
“회장님 동생 아닙니다.”
“언제부터 회장님이 라일라 디 드라이르프셨습니까?”
그렇게 라일라를 질질 끌고 가는 둘을 보며, 데이지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네요.”
데이지가 알기로, 둘 다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다.
그런데 고위 귀족조차 함부로 못하는 라인하르트를 저렇게 겁 없이 대할 수 있다니.
“내가 사람 추천을 좀 잘했지.”
“…도련님이 추천하셨어요?”
“응. 후원받던 상단이 경영 악화로 위태롭다고 하기에 우리 가문에서 지원을 좀 해 줬거든.”
즉, 르윈이 아니면 뒤가 없어진 사람들이기에 저렇게 겁 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도련님…….”
“그럼 집에 갈까?”
참으로 할 말이 많았으나, 여기서 뭐라 한마디를 더 한다면 목적지가 바뀔 위험도 있었기에.
“알겠습니다.”
데이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