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5)
15화 4.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에 간다 (2)
베르샤 아카데미.
제국 수도 끝자락 중의 끝자락이지만, 그래도 제국 수도에 포함된 아카데미였다.
제국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서는 하위권이지만, 대륙 전체로 보자면 상위권인 위치.
누군가에게는 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선택지 정도에 있는 애매한 아카데미였다.
“딱 좋네.”
그것이 르윈이 베르샤 아카데미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역사와 전통… 과는 전혀 거리가 먼 아카데미.
그 덕분에 건물과 시설 등에 세월의 흔적이 없었다.
“괜히 역사와 전통이라고 오래된 건물 쓰는 것보다는 새것이 좋지.”
마법과 관련해서는 오래된 것이 최신 기술보다도 뛰어난 효과를 보여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배우려면 최소 고등 교육 이상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내야 했고.
‘애초에 나한테 필요도 없는 것이기도 하고.’
르윈 디 드라이르프.
나이는 이제 고작 열 살의 어린아이지만, 그 안에는 인생 10회 차를 살아가고 있는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뿐인가?
인생 10회 차 중 아홉 번을 용사로서 살아온 경험 또한 존재했다.
전투 마법에 한해서는 아주 옛날의 마법 체계는 물론, 실전되거나 마탑에서조차 잊힌 마법까지 그의 머릿속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르윈에게는 과거의 희귀한 마법보다는 흔한 최신 마법들이 더 배울 가치가 있었다.
“도련님,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을 하고 있던 르윈의 귓가에 매우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매우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이지와 그녀에게 안겨 훌쩍이고 있는 라일라의 모습이었다.
“아직도 울어?”
“…….”
그 모습에 르윈은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장난을 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저렇게까지 오랫동안 우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애들 우는 건 좀 그런데.’
울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인류의 배신자들은 뚝배기를 깨 버리면 해결이 되었는데.
하지만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사용하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르윈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라일라.”
“흡…….”
붉게 물든 눈이 토끼 같다.
그렇게 생각한 르윈은 품속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라일라에게 내밀었다.
“먹을래?”
“도련님…….”
세상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던 라일라였다.
그런데 고작 사탕으로 회유하려고 하다니.
그런 게 통할 리가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르윈의 손에 들린 사탕을 향해 라일라의 손이 다가갔다.
“아가씨?”
“레몬 맛 없어……?”
“있을걸?”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맛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여기.”
“흥…….”
받아 든 사탕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고는 입술을 삐죽거린다.
아직도 불만이 많은 듯하였지만, 눈물이 멈춘 것에 데이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됐지?”
“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데이지는 입을 다물었다.
저 뻔뻔한 모습을 더 지켜봐야 자신의 속만 뒤집힐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저 구경하자.”
아직 방학 기간이기에 사람이 거의 없는 아카데미를 걸으며 르윈은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욱 좋은 환경에 감탄을 했다.
‘진짜 크네.’
제법 긴 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보지 못한 곳이 많았다.
수도의 다른 아카데미와 달리 수도 외곽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쓸데없이 크고 구조도 복잡해서 신입생은 물론 아카데미에 몇 년을 다닌 사람들조차 길을 잃는 일이 많다고 했었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곳이라고 르윈은 생각했다.
이런 넓고 복잡한 구조는 그가 생각하는 아카데미 생활 계획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으니까!
“건물과 건물 간의 거리가 제법 되는군요.”
“그렇지. 심지어 같은 학년의 건물이잖아? 여기 출신 선생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길을 잃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렇네요. 길을 잃었다고 변명하기 참 좋은 곳입니다.”
“변명이라니. 진짜라니까?”
이래서 눈치 빠른 시종이 있으면 귀찮다.
그렇게 생각하며, 르윈은 품속에 있던 사탕 하나를 꺼내 라일라의 입속에 넣어 주며 한 곳을 가리켰다.
“대신 그만큼 인력도 투자하는 것 같더라.”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카데미의 학생도, 교직원도 아니었다.
데이지와 비슷한 복장의 여인들.
이 아카데미를 관리하는 메이드의 모습에 데이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적으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사용인들을 데리고 올 수 없으니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배움의 장소인 아카데미에서 모든 학생은 평등하다.
그렇기에 귀족들이 사용인이나 호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진짜 자기 옷 하나 혼자 못 갈아입는 사람은 없겠지?”
“모르는 일이죠.”
귀족들에게 사용인은 손이자 발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소한 것 하나까지 챙겨 주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변화였다.
거기에 배움을 위해 온 아카데미에서 평등을 위해 귀족들에게 요리나 빨래를 시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
그렇기에 최소한의 조건을 챙겨 주는 이들이 곳곳에 상주하여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것은 모든 학생입니다. 의외로 귀족 학생들보다 평민 학생들에게 더 큰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 또한 사실이었다.
귀족이 아닌 평민 학생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는 사용인들에 부담감을 느끼지만, 어느 정도 적응하는 순간부터 귀족들보다도 더욱 그들에게 의지하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황실 아카데미를 제외하고 성적이 부족하다고 학생을 퇴학시키는 아카데미는 없잖아?”
그렇기에 르윈처럼 아카데미를 즐기기 위해 오는 귀족 학생들은 제법 많은 편이었다.
부모들 또한 그것을 알지만, 배움보다도 인맥이 쓸모가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평민 학생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퇴학 처리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민 학생의 경우 귀족이나 상단의 지원, 아니면 장학금을 받아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 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귀족과 달리 성적이 하락하면 그런 지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 자연스럽게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평민 학생들에게는 귀족들보다 더 많은 개인 공부 시간이 필요했고, 하나의 잡일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일상을 도와주는 사용인들을 귀족들보다도 더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남 일처럼 말하지만, 데이지 너도 마찬가지잖아?”
“네. 하지만 저도 한때는 귀족이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보살핌받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진짜?”
르윈이 주던 사탕을 4개째 먹고 있던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데이지에게 물었다.
그녀는 데이지가 귀족이었다는 사실이 퍽 놀라웠던 모양이다.
“네. 제국은 아니지만, 시르덴이라는 가문의 귀족으로 태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왜 르윈 같은 애를 모시게 된 거야?”
“얀마.”
“가문이 망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일만 없었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요.
작게 중얼거리는 데이지의 말을 들은 라일라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냈다.
“미안해.”
“다 과거의 일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라일라 아가씨와 만나게 되었으니,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겠네요.”
“데이지…….”
참으로 아름다운 주종 관계구나.
르윈이 그렇게 착각할 정도로 훈훈한 장면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너희 집 메이드인 줄 알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줄래?”
“절대 안 되지.”
호시탐탐 자신의 시종들을 빼앗으려는 소꿉친구의 만행에 르윈은 혀를 내둘렀다.
“얘들은 앞으로 할 일이 많거든.”
앞으로 10년 동안 아카데미 생활을 해야 했다.
그 기간 중 데이지는 물론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예리엘과 하인스 역시 많은 일들을 할 것이었다.
‘본인 의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 보는 것.
그것을 이루게 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아.”
그 말을 들은 데이지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르윈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길을 지나가고 있던 메이드 중 한 명이 연신 한숨을 내뱉는 데이지를 보고는 르윈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는 로열 클래스 기숙사의 메이드장인 베리엘이라고 합니다. 불편한 게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데이지 님.”
그녀의 말에 데이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베르샤 아카데미 최고 기숙사의 메이드장을 맡았다는 그녀의 외모가 너무나도 젊었기에 놀랐고, 잠시 후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를… 아시는군요.”
“기숙사장을 맡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숙사에 있는 인원들 정도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시선을 조금 더 뒤로 향했다.
“제국의 두 기둥이라 불리는 드라이르프와 라인하르트의 자제분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카데미 소속 메이드가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예절 교육을 받아 온 귀족 영애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 우아한 모습에 잠시 입을 벌리고 지켜보고 있던 라일라가 잠시 후 두 눈을 크게 떴다.
“나, 나를 보는데?”
“축하한다.”
꾹꾹 소매를 잡아당기는 라일라의 손을 떼어 내면서도 르윈의 시선은 베리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뭐지?’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다.
단순히 외모만 놓고 본다고 해도 매우 뛰어난 외모였고, 많이 쳐줘 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아카데미 최고 클래스 기숙사의 장을 맡고 있었다.
메이드로서도, 관리자로서도 능력이 있다는 것.
그뿐인가?
‘빈틈이 적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생 10회 차, 인류를 아홉 번 구원한 전직 용사의 시점이었다.
못해도 최소 평기사 수준.
거기서 끝이 아니라,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은 기사보다는 마법사의 흐름에 가까웠다.
‘이게 베르샤 아카데미의 메이드장 수준이라고?’
어림도 없었다.
아무리 제국이 대륙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이런 인재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직접 가 보지는 않았으나 최고 교육 기관이라 불리는 황실 아카데미에 있어도 놀라운 수준이 아닐까.
“안녕?”
그렇기에 수상했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이질적인 존재감.
르윈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용사로 선택받은 인생 1회 차 시절, 그 이후로부터 쭉 느껴 왔던 것이었기에.
“반갑습니다, 르윈 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기에 르윈은 손을 내밀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의심이 드는 사람일수록 멀리하는 것보다는 가까이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서로 악수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라일라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전 정문에서 르윈에게 당한 것이 있었기에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내민 손이었고.
“반갑습니다, 라일라 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음, 역시 수상해.’
라일라의 존재를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르윈은 베리엘에 대한 위험도를 상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