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29. 인생 10회 차는 생각한다 (7)
아인헤르츠의 던전에 방문한 이후, 르윈의 일과는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일단 이른 새벽에 기상.
감히 주인을 감시하는 시종들의 감시망을 돌파하여 베아트리체와 엘리를 아인헤르츠의 던전으로 보내 주고.
덤으로 잠깐 다른 지역도 갔다가 점심을 먹을 때쯤 복귀.
그 후 자신을 찾는 데이지 등에게 정원에서 낮잠을 잤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식사 후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한다.
산책이 끝나면 쌍둥이 동생들을 잠깐 돌봐 주고, 저녁 식사 전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저녁을 먹고.
그 이후에도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다 그대로 잔다.
“참으로 보람찬 하루지.”
“도대체 어디서 보람을 느끼시는 건가요.”
어이가 없다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는 데이지가 불쌍해.”
“제발 제 일상의 소중함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으시면 안 됩니까?”
르윈의 일과로 인하여 데이지의 일과도 바뀌었다.
이전처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같았지만, 르윈의 뒤를 밟기 위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기척을 죽이고 가문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 덕분에 가문 내부에서 새벽에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덤.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르윈의 일행과 그들의 뒤를 덮치기 위해 노력하는 데이지 등으로 소문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 몸짓을 부풀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잖아.”
“…….”
침대에 누워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시전하고 있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게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카데미 이전까지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침대 위에 있는 게 괜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졌다.
‘이게 맞나?’
귀족이 아닌 이들은 귀족으로 태어나면 놀고먹는다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귀족은 평민들보다도 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급 귀족의 삶이란 사람들의 인식처럼 부자의 삶이 아니다.
물론 가난한 평민들처럼 먹고살 걱정이 없기는 하겠으나, 딱 그 정도.
사치를 부리는 것은 어렵고, 세금이나 나라의 지원금은 영지를 운영하는 비용에 비하면 부족하며, 그나마 가진 한 줌의 땅도 대부분 후계자인 장남이 차지할 뿐.
나머지 형제들은 아카데미에서 노력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기사나 마법사가 되어 취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성적이 안 좋아서 그것마저 불가능하다면 남자는 입대로 나라에 팔려 가고, 여자는 정략혼으로 다른 가문으로 팔려 갈 뿐.
그게 싫어서 아카데미를 자퇴, 모험가나 상인의 길을 선택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물론 드라이르프 같은 대귀족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귀족도 대귀족 나름의 고충은 있는 법.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귀족의 세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하급 귀족이라면 모를까, 정치의 영역에 들어간 귀족들에게 나태한 자식은 언제나 발목을 잡을지 모르는 위험 요소였다.
그렇기에 상위 귀족일수록 더 자식에게 엄격한 요구를 했고, 자식들 또한 그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증거가 황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제국 수도의 상위권 아카데미.
아카데미의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곳에 다니는 상위 귀족의 수가 많다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도련님.”
아카데미.
그 키워드를 듣자 데이지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 베르샤 아카데미의 입학 경쟁률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아, 슬슬 그 시기지?”
연말에 많은 일이 있으나, 대부분은 어른들의 행사였다.
황실의 연회를 시작으로 공작가, 후작가, 백작가 순서로 계속 연회가 열리고.
또 제국의 각 부처에서는 내년 일정을 정하기에 전쟁이 벌어진다.
가장 심한 것은 재무부.
내년도 예산을 따내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발발.
예산을 위해 제국의 공무원들이 모두 재무부로 출근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나 그런 것들은 모두 어른들의 사정.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곧 성인이 되는 이들을 제외하면 연말의 중요 행사는 단둘.
하나는 아카데미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졸업이요.
다른 하나는 아카데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입학이었다.
졸업으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고학년들이 사라지고.
그들의 후계자가 아카데미의 새로운 권력을 잡게 된다면.
입학으로 아카데미에 새로운 바람을 불 수 있는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는 2년을 거센 폭풍에 휩싸였었다.
작년, 루테스 디 바벨리안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강타했고.
그 뒤를 이어 올해에는 르윈 디 드라이르프와 라일라 라인하르트가 연이어 강타했다.
후작가만으로도 생태계 파괴범 소리를 듣던 베르샤 아카데미에 황족과 두 공작가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일이었고.
그중 한 명은 아카데미를 입학한 해에 전에 없던 지지를 얻으며 기초 교육 학생회장까지 당선이 되었으니.
과연 내년에는 어떤 이들이 아카데미로 들어올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었다.
“집사장께서 파악하신 것에 의하면 적어도 제국의 후작가가 셋 이상. 다른 나라의 왕족이 둘. 그리고 이상하게 다른 나라의 유학생이 많은 기묘한 해라고 했습니다.”
“그래?”
알렉스가 파악했다는 것은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조사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황족과 공작가가 있으니, 후작가에서 움직인 것은 르윈도 예상했던 일이었으나.
‘유학생이 많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인데.’
아무리 제국이 대륙의 중심이라고 표현이 된다고 하나, 자국의 귀족이 타국의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은 그리 좋은 시선을 보내기 어렵다.
그나마 황실 아카데미라면 그 수준을 인정받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겠으나, 굳이 베르샤 아카데미까지 찾아온다니.
“교단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짓을 하네.”
귀족이라면 잃을 것이 있겠으나, 반대로 말하면 귀족이 아니라면 유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의 선진 교육을 배운 이들이 복귀했을 때 충분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하물며 신을 믿는 마음에 국경이 없다고 주장하는 종교 관련 인물들이라면 베르샤 아카데미를 선택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귀찮은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르윈의 머릿속에 하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선배가 잠시 떠오르다 사라졌다.
“레피스 선배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그럴까요?”
왜일까.
데이지의 머릿속에서는 울먹이며 ‘내가 왜?’라고 소리를 지르는 레피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으나, 르윈은 아닌 듯싶었다.
“당연하지. 동아리 회장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어?”
믿지 마!
그렇게 외치는 레피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데이지였으나.
“그렇겠죠.”
안타깝게도 데이지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르윈 하나를 막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뭐, 후작가에서 입학 원서를 넣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복수로 넣었을 테니까.”
“알렉스 집사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베르샤 아카데미에 흥미가 있다고 하나, 황실 아카데미를 포기할 정도의 메리트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왜? 나는 우리 아카데미 좋은데.”
“저희 아카데미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일반적으로 황실 아카데미가 더 좋을 뿐.”
“모르는 일이지. 우리 아카데미가 나중에는 황실 아카데미보다 유명해질 수도 있잖아?”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카데미의 근본은 학생. 학생들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다르지.”
“황실 아카데미는 도련님의 형제분들이 맡고 계신데요?”
“형이나 누나는 몇 년 후에 졸업하잖아. 그에 비해 우리 아카데미는 라일라 종신 학생회장 체계 아래 9년은 유지가 될 테고.”
“…라일라 아가씨가 언제 종신이었습니까.”
“올해 기초부 학생회장이 된 이후부터. 지금부터 학생회장인데, 계속 안 시킬 것 같아?”
“…….”
그건 맞는 말이었다.
루테스나 르윈이 학생회장 선거에 참가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라일라 라인하르트의 학생회장 체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라일라의 의지든 아니든 말이다.
“뛰어난 종신 학생회장과 그를 받쳐 줄 뛰어난 후배들이 있다면, 황실 아카데미로부터 최고의 아카데미라는 타이틀을 빼앗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 르윈의 바람을 신이 들어준 것일까.
내년 입학하는 이들이 베르샤 아카데미의 황금 세대라 불리게 되지만.
그것은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
“엣취!”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재채기에 라일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킁! 하고 코를 풀어 내었다.
“으! 추워.”
왠지 모르게 오한까지 드는 상황.
그런 라일라를 주변 학생들이 걱정해 주었다.
“날씨가 아주 쌀쌀합니다, 회장.”
학생회 임원 하나가 준비해 둔 담요를 꺼내 라일라의 어깨에 둘러 주었고.
“몸조심하세요.”
다른 학생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법을 발현.
주전자에 물을 넣으며 동시에 발화 마법으로 주전자를 뜨겁게 달구어 코코아를 타서 라일라의 앞에 가져왔다.
“고, 고마워.”
담요와 코코아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라일라는 얼굴을 붉히며 코코아를 한 입 마셨다.
‘그래도 나를 챙기는구나.’
매일 ‘일해라. 일해라. 일해라.’라고 말하는 골렘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를 걱정도 해 주는구나.
아직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는 임원들에게 안심하는 라일라였으나.
“회장님이 쓰러지시면 일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바쁜 타이밍에 쓰러지시면 안 되죠.”
“회장은 쓰러지면 안 된다. 일주일을 야근한 데일드 총학생회장이 과로로 실려 나가면서 한 명언입니다.”
“…내 감동 돌려줘.”
쿵!
책상에 머리를 박은 라일라는 울먹이는 눈으로 한 입 마신 코코아 잔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던 거냐!
“왜 이렇게 바쁜 거야.”
그냥 혼잣말로 내뱉은 한탄이었으나, 학생회 임원들은 자신들의 회장의 질문에 충실히 답을 해 주는 이들이었다.
“원래 연말과 연초가 제일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작과 끝이 바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내년은 왜 오는 걸까? 취업이 막막한 고등부 3학년들이 내뱉는 말이 쓸모가 없는 거랑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싶지 않아…….”
모르는 게 약이다.
옛 선조들이 했던 말의 뜻을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라일라였다.
이런 현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라일라 회장은 편한 편입니다.”
“이, 이게?”
“네. 선배들에게 들은 바로는, 데일드 회장이 처음 총학생회장이 되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라일라의 이름 뒤에는 라인하르트라는 성이 붙는다.
제국 최고의 권력가.
현 재상을 맡은 나라의 핵심 권력자가 눈에 넣어도 안 아파할 막내딸.
그런 라일라였기에 선을 넘는 이들은 없었으나, 데일드는 달랐다.
베르샤 아카데미 최연소 학생회장.
그런데 배경은 이름도 알기 어려운 남작 가문.
학생들 사이에서 허수아비 학생회장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로 데일드의 초기 권력은 위태롭기만 했다.
“온갖 부정 청탁이 들어오고, 상급생들의 동아리 예산을 올려 달라는 신청이 쏟아졌다고 하죠.”
그러나 데일드는 그것을 모두 해결하고, 자신을 증명해 냈다.
괜히 아카데미 종신 학생회장으로서 졸업 이후에도 학생회장으로 남아 달라는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었다.
“회장님은 대단하시구나.”
서류의 도장을 찍으며 라일라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쉬면서 도장이나 찍으라는 말 같지도 않은 요구를 하는 임원들을 상대하는 것도 지치는데.
아카데미 전부를 상대로 무쌍을 벌였던 데일드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똑똑.
“네, 들어오세요.”
이제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도장을 찍던 라일라는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입을 열었고.
“회장님?”
어색한 웃음과 함께 들어오는 데일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미안한데.”
“…….”
“이거 잘못되어서 수정이 필요해서. 다시 제출을 해 주었으면…….”
“…….”
라일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는.
‘나쁜 사람.’
책상 한편에 쌓여 가는 서류를 보며, 라일라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