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6)
16화 4.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에 간다 (3)
“괜찮으시다면 제가 아카데미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베리엘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이 가는 사람이 알아서 붙어 주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좋아!”
라일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주는 베리엘이 마음에 든 상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된 순간, 데이지가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영광입니다.”
일행의 허락을 맡은 베리엘은 함께 이동하던 메이드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르윈 일행에 합류했다.
그리고.
“저곳이 마법과 건물입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기초 교육부터 고등 교육, 그리고 마법과 연관된 동아리 활동들이 있는 곳입니다.”
“…….”
“…….”
“…….”
베리엘이 가리킨 방향을 본 세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평소 기행을 일삼던 르윈은 물론, 그런 르윈에게 익숙해진 데이지에게도 눈앞의 장면은 조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불났는데?”
라일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건물 외벽 한쪽이 활활 불타고 있었지만, 어쩐지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흔하다고?”
무슨 놈의 아카데미에 화재가 흔한 일인가 싶다마는, 주변의 반응을 보면 맞는 것 같았다.
아직 방학 기간이라 지나가는 사람의 숫자는 적었지만, 크게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네. 마법은 쉬운 학문이 아닌 만큼 실패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
말만 들으면 그럴싸하다.
마법은 그런 학문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보통은 안 그렇지 않아?”
그는 아카데미를 여러 번 다닌 경험이 있었다.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으로는 처음일 뿐, 용사 생활 10회 차의 경험 중에는 대학원에 진학한 경험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마법에 대한 개념이 떨어졌던 아주 먼 옛날에도 아카데미 건물에 불이 나 있는 상태는 흔하지 않았다고!
“맞습니다.”
그리고 그 지적을 베리엘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확실히 황실 아카데미에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는 않았죠. 하지만 이곳은 베르샤 아카데미입니다.”
다른 아카데미와는 조금 다르다고 말하는 그녀였지만, 르윈이 반응한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황실 아카데미를 다녀 본 것처럼 말하네?”
“이전 직장이었습니다.”
베리엘의 말에 르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전 직장이 황실 아카데미라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여기로 이직을 했다고?”
황실 아카데미라는 명함은 학생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교수나 조교들은 물론 그곳을 지키는 기사와 병력, 거기에 그곳을 관리하는 집사나 메이드를 비롯한 사용인, 심지어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들조차도 인정받는 곳이 황실 아카데미란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직한 곳이 베르샤 아카데미라니.
개인 사정으로 이직을 했을 수는 있겠지만, 베르샤 아카데미보다는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능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 황실 아카데미의 경우, 방학에도 학생들이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라서.”
르윈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던 걸까.
베리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직 요인을 솔직하게 밝혔다.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학 기간에 학생들이 별로 없는 이곳으로 이직을 했죠.”
방학 기간도 길고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베리엘의 모습에 어이가 없던 르윈이 한마디를 내뱉으려 했지만.
“무슨 그런 이유로…….”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르윈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련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맞지. 방학 길다고 여기를 선택한 사람이 누군데.”
그 말에 베리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르윈에게로 향했다.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도련님이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였는데.
‘그런 이유일 줄이야.’
별종이다.
르윈이 자신을 향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베리엘은 르윈에 대한 첫인상을 정리했다.
“그럼 라일라 아가씨께서는.”
“쟤는 나 말고 친구가 없어서 따라온 느낌?”
“야!”
르윈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라일라가 소리를 질렀지만, 전부 사실이었기에 입을 꾹 닫고 노려만 볼 뿐이었다.
‘올해도 재밌는 분들이 많이 들어온 것 같네요.’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생활도 좋지만, 이런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일하는 거,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면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미소를 짓던 그녀의 시선에 익숙한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악!”
“도착했군요.”
화재의 현장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른 여인이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달려왔다.
“베리엘!”
“네, 테라 아가씨.”
“이거 누구 짓이야?”
으득.
테라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또 어떤 망나니 새끼들이 일을 저지른 거냐. 이번에는 진짜로 죽여 버리고 말 테다.
그 살기 어린 어조에 라일라는 몸을 떨었고, 르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흔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베리엘의 반응이나 주변에 지나가던 몇몇 학생의 반응을 생각하면 진짜로 흔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반응은 뭔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찾는 듯한 반응이지 않은가?
“저도 잘 모릅니다.”
“또 실수라고 범인 감싸 주는 건 아니지?”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베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신입생분들에게 아카데미를 소개해 드리면서 우연히 현장에 있던 것뿐입니다.”
그녀의 말에 테라라고 불린 여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지 망했네.’
남자아이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매우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미안. 정신이 없어서 몰랐네. 나는 총학생회에서 회계를 맡은 테라 타르테라고 해.”
총학생회.
그곳은 기초, 중등, 고등으로 나누어진 학생회를 총괄하는 곳으로 아카데미 내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교수들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학생들이라고 말하지만.’
총학생회의 경험이 있는 르윈은 그 이면의 일들을 알고 있었다.
‘건드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때려치울까 봐 안 건드리는 거지.’
권한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학생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면서 귀찮은 일 다 시키는 거지.’
테라 타르테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짙은 푸른색 머리카락은 떡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감이 짙었으며, 특유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눈치채기 어려울 뿐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아카데미 사정에 따라서는 대학원생들조차 치를 떠는 곳이었지.’
위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고 일거리를 넘기고, 아래에서는 학생들이 권한을 남용한다고 뭐라 한다.
거기에 퇴학당하지 않는 이상 사퇴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우니, 꿈과 희망이 넘치는 청춘의 아카데미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곳.
장점이라고는 몰려드는 일 처리를 감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업무 처리 능력이 좋아지고,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제국 공무원 시험에서 엄청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르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담아, 자발적으로 이 아카데미의 노예 역할을 하는 그녀에게 자신을 소개하였다.
“신입생인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고 합니다, 테라 선배님.”
“도련님……?”
“르윈……?”
“어?”
그 소개를 받고 세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이, 정상적으로 행동을 하신다고요?’
데이지는 르윈이 멀쩡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에 놀랐고.
‘르윈이 예의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어?’
라일라는 르윈이 예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드라이르프?’
테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공작가의 신입생에게 시작부터 이미지를 조졌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인생…….’
그녀 역시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는 최상위 포식자라고 할 수 있는 백작가의 장녀였지만, 공작가의 아들내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심지어.
“안녕하세요. 라일라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
테라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공작가의 딸내미까지 나타나 버렸다.
‘뭐지?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니, 그 전에 나 망했나?’
아무리 총학생회의 임원이라 하더라도, 공작가의 자식들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되다니.
‘안 그래도 작년에 그 망할 놈이 입학해서 개판이 났었는데!’
테라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작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 망나니 때문에 1년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가?
“아, 아하하.”
불을 지른 범인 새끼를 잡아다가 족쳐야겠다는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
지금은 올해에 불어올 바람이 산뜻한 봄바람인지, 아니면 아카데미를 개판으로 만들 거대한 폭풍인지를 알아야 했다.
‘이런 건 내 전문이 아닌데.’
짧게 혀를 차면서도, 금세 미소를 지었다.
총학생회 3년 차.
기초부 시절부터 눈에 띄어 중등부가 되자마자 노예, 아니 학생회 임원으로 선택된 인재가 테라였다.
고등부에 올라서자마자 총학생회의 회계를 맡게 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그녀는.
“아, 아하하하하!”
사회생활을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회장, 살려 줘!’
총학생회의 공식적인 얼굴마담은 당연하겠지만 총학생회장이었다.
하지만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은 좀 더 특별했다.
학생과 교수는 물론, 제국 고위 공직자들과도 안면을 익힐 정도로 뛰어난 대인 관계를 자랑하는 인물.
그렇기에 전체적인 능력이 뛰어나지도, 다른 이들보다 압도적인 집안이 아님에도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이 될 수 있었다.
“그, 그게 말이죠.”
테라의 눈동자가 한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총학생회장의 대인 관계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총학생회의 인원들은 각자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즉, 총학생회 인원들은 순수하게 업무 능력만으로 선택받은 이들.
회장의 부족한 업무 능력은 임원들의 능력으로, 임원들의 부족한 대인 관계 능력은 회장의 능력으로 보완해 주고 있던 관계였다.
‘그냥 사람 보내는 건데!’
그런데 이런 특급 VIP와 만나게 되다니.
이 모든 게 마법과 건물에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눈이 뒤집힌 것이 문제였다.
마법과 건물, 통칭 ‘마법관’이 어떤 건물인가?
아카데미에 있는 수많은 건물 중에서도 가장 비싼 건물.
온갖 실험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기에 건물에 쓰인 자재부터가 다른 건물과 급이 달랐다.
그뿐인가? 정기적으로 마탑의 고위 마법사가 방문하여 온갖 마법 처리를 하는 곳.
보통 마법으로는 외관에 흠집조차 못 내는 건물이며, 비상시 대피 장소로 지정된 곳이기도 했다.
‘그 망할 새끼들.’
하지만 아카데미의 몇몇 멍청이들은 그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보통 화력에 흠집조차 없는 건물이라면 그것을 불태우는 것 또한 능력이 아닐까 하고.
아주 바보 같고 멍청한 논리였지만, 자고로 마법사들이란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자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자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멋지고 천재 같아 보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한없이 바보 같고 멍청한 존재가 마법사였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이번 사건의 마법사들은 전부 바보였다.
그 바보들은 마법관 건물에 자신의 마법을 남기는 ‘마법관 챌린지’라는 행위를 퍼트리기 시작했고, 수많은 이들이 그 바보 같은 일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은 실패했다.
어중간한 마법으로는 마법관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뛰어난 학생들이 마법관에 흔적을 남기는 것에 성공하고.
그것을 보며 더 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전 교육 과정이 함께 사용하는 마법관의 수리 비용은 총학생회에 청구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그 청구 금액은 지속적으로 총학생회의 회계인 테라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누구는 방학 기간에도 집에도 못 가고 일하고 있는데, 누구는 일거리만 만들고 있다니.
그 사실에 분노한 테라가 서류의 산에서 뛰쳐나왔으나.
그 결과가 이거라니.
“어떤 새끼야!”
결국 울분이 폭발한 테라의 목소리가 아카데미에 울려 퍼졌고.
“……?”
“……?”
자기소개를 했을 뿐인데 혼자 웃고 화를 내는 테라의 모습에 르윈과 라일라의 시선이 마주치는 그 순간.
“나다.”
누군가의 아주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