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29. 인생 10회 차는 생각한다 (9)
연초부터 시끄러웠던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연회는 삼 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끝이 났다.
바로 얼마 전까지 황실에서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다음 주부터 후작 가문들의 연회가 열리기에, 적당히 짧은 기간 동안 연회를 진행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귀족 서열의 꼭대기에 있는 공작가였기에 짧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가장 밑바닥인 남작가의 경우에는 앞으로 후작, 백작, 자작의 연회에 참여해야 했고.
또 맡은 직위에 따라서는 남작 본인이 연회를 이어서 열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으어…….”
“죽겠다.”
하지만 짧다고 하더라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짧은 기간, 가문의 위세를 보여 주어야 하기에 사용인들은 더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다.”
그것은 베테랑 사용인인 알렉스 역시 마찬가지인 듯, 그 역시 피로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일까지는 쉬어라.”
“괘, 괜찮습니다.”
“배려해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 병사에게 병장이 쉬라고 해도, 쉬는 신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리엘과 하인스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은 다 뒷정리로 바쁜데, 쉬라고 말한다고 편하게 쉴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얼굴은 두껍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어, 언니?”
그러나 데이지는 달랐다.
그녀는 알렉스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지친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누나, 그래도…….”
그런 데이지를 하인스가 붙잡으려 했으나, 데이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이 있어.”
“데이지의 말이 맞다.”
알렉스 역시 데이지의 말을 지지했다.
“너희는 가문의 사용인이기 이전, 르윈 도련님의 전속이기도 하다.”
너희가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르윈이다.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예리엘과 하인스도 깨달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다만 보통의 관계였다면 여기서 르윈을 보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
“우리는 도련님을 감시해야 해.”
이미 이 주종 관계는 어긋난 지 오래였다.
당당히 시종이 주인을 감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는 관계!
어긋나도 너무나 어긋난 관계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누나, 도련님이 없어!”
“베아트리체 씨도 없다는데?”
“또 튀었어…….”
애초에 르윈이 평범한 인간과는 너무나도 어긋난 존재이기에, 돌고 돌아서 보면 딱 맞는 관계이기도 했다.
***
“이래도 되는 거야?”
연회가 끝나자마자 아인헤르츠의 던전으로 도망친 르윈을 보며 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좀 그렇긴 한데.”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연회가 열렸다는 것은, 곧 드라이르프의 혈족이 모였다는 것이기도 했다.
가주는 물론 안주인, 그리고 장남과 장녀까지.
비록 둘째인 라그일은 형과 여동생을 대신하여 아카데미의 토템이 되어 있었고.
또 장녀인 르나인 역시 혼자 죽을 수 없는 둘째 오빠의 마수에 의하여, 아침이 되자마자 아카데미로 끌려가고 말았으나.
르윈은 그보다 더 빨리 아인헤르츠의 던전으로 도망을 쳤기에, 그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집에 둘째 형 빼고 다 있기 어렵기는 한데.”
르윈은 연회 기간,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도.
“데이지가 엄청 귀찮게 굴 것 같아서 튀었어.”
그 당당한 선언에 아인헤르츠가 껄껄대며 웃었다.
“네가 눈치도 본다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눈치도 보고 좀 그러는 거지.”
“옛날에는 안 그러지 않았나?”
“그때는 눈치 보면서 일 못하던 시절이니까 그랬지.”
과거 용사는 신의 대변자라는 말에 평판을 신경 쓰기도 했으나.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평판 따위를 신경 쓰면 안 된다는 것을 회 차가 거듭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받네.”
“뭐가? 눈치도 안 봤다면서.”
“그래도 신경은 썼거든. 그래도 여신님 체면은 지켜 줘야지 하고.”
지켜 줄 양심도, 체면도 없는 존재의 체면을 지키려 했다니.
참으로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인류에게는 다행이었겠네.”
“뭐가?”
“거기서 더 막 나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어?”
아마 재앙이었을 것이다.
엘리에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내가 원래는 참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그 말을 화장대에 화장품 대신 위장약 올려 두고 사는 데이지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이게 다 세상이 잘못한 거라고.”
“나왔다! 아카데미 메이드들이 뽑은, 미래 없는 졸업생의 한탄 1위! 난 잘못한 게 없어! 내가 취업하지 못하는 세상이 잘못이야!”
“…….”
엘리의 감탄사 섞인 외침에 르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거랑 비교하면 좀 그런데.”
그냥 어떻게든 될 거라고 대충대충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아무리 르윈이라도 상처받는다.
나름 인생 9회 차분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괜히 초대 용사의 평가가 역대 용사 중 최고인 줄 알아?”
진짠데. 나 착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이었으나, 이곳에 르윈의 아군은 없었다.
“네. 인생 2회 차 이후부터 흑마법사 탄압하신 분.”
“네. 연약한 소녀에게 납치, 감금, 협박하신 분.”
“아니, 연약한 소녀에게 한 적은 없었거든?”
“…내 이야기였었는데. 진짜로 했었구나!”
“끌끌! 저 녀석 납치, 감금, 협박은 물론 암살도 특기인 녀석이라고.”
“어쩐지. 맘먹고 기척 죽이면 아무도 못 찾더라.”
“…….”
죽이 척척 맞는 비인간 동맹의 공격에 천하의 르윈도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프다. 그냥 맞아도 아픈데, 다 자신의 업보나 마찬가지여서 더 아프다!
“이, 이건 다 라헬 탓이야…….”
변명하듯 외치는 르윈의 말에 엘리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창조의 여신의 말도 들어 봐야 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창조의 여신도 억울한 부분이 있지 않겠냐는 엘리의 말이었으나, 이번에는 아인헤르츠가 동조하지 않았다.
“아니, 고년은 억울할 게 없어.”
단언하는 듯한 말에 엘리의 두 눈이 커졌다.
“와! 인류의 최고신이라는데. 좋은 평가를 받는 걸 못 보네.”
“그걸 어떻게 좋게 평가해?”
“창조의 여신보다는 탐욕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게 어울리는 신이지. 자기 손으로 만든 게 없는 창조신이 어디 있나?”
신랄한 평가에 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안 좋아?”
“구체적으로 안 좋은 점을 말하면 하루 종일 말할 수 있지만.”
“자기 욕하는 것은 귀신같이 찾아서 엿듣는 녀석이라 피하는 게 좋겠지.”
귀찮게 기사단을 이곳으로 꼬라박을 수도 있다는 말에 엘리는 작게 웃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자기 욕 좀 했다고 성기사들을 대륙 8대 금지이자 죽음의 산맥으로 보낼 리가 있겠는가?
“…….”
“…….”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 대신 침묵만이 가득하니 엘리도 무언가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그러고도 남을 년이지.”
“자신을 위해 죽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할 수도?”
“…와오!”
역시 전생까지 르윈의 상사였던 자.
여신이 상상 이상의 쓰레기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는 엘리였다.
***
아인헤르츠의 던전에는 여러 실험실이 있었고, 그중에서는 마력을 증폭시키는 공간 역시 존재했다.
“으으!”
그리고 그곳에서 막대한 마력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백발의 소녀, 베아트리체였다.
-정신 차려라. 또 쓰러진다.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는 사념에 베아트리체는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그러고 있어, 오빠.’
르윈이 엘리를 판, 아니 아인헤르츠와 엘리의 거래를 성사시킨 그날 이후.
베아트리체는 그 보상으로 아인헤르츠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 아직 그녀가 배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첫날, 베아트리체를 자세히 관찰한 아인헤르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몸이 왜 이런가.”
“그,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건데.”
베아트리체도 자신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먹은 날보다 먹지 못한 날이 더 많았고.
오빠가 죽은 이후에는 무언가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도망자의 삶에서 제대로 된 식사는 어려운 일이었고.
굶주림을 못 이겨 산에서 아무 열매나 버섯 등을 뜯어 먹고 며칠을 끙끙 앓았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래. 그나마 저 애새끼를 만나지 않았으면 아예 손쓰기 어려웠겠지. 세밀한 마력 통제만 놓고 보면 저 녀석이 나보다도 더 뛰어나니까.”
“네?”
그 애송이가 르윈을 뜻하는 것을 베아트리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인헤르츠의 말에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었다.
“요즘 흑마법사라는 것들은 다 사기만 덕지덕지 품어서는.”
쯧쯧!
혓바닥도 없는 해골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그 안에 담긴 불쾌감에 베아트리체는 당황했다.
“저… 그 몸이 육체를 말하는 게 아니었나요?”
“육체? 뭐, 삐쩍 말라서 볼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푸른 안광을 내뿜는 눈구멍이 베아트리체의 위아래를 한 번 훑어보는 듯 지나갔다.
“내가 할 말이냐?”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삐쩍 마른 것을 넘어 뼈다귀만 남은 자신의 몸으로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
“…….”
그 모습에 베아트리체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했다.
“뼈다귀가 비쩍 말랐다고 해 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지. 그리고 애초에 나 정도 되면 육신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뼈밖에 없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아인헤르츠가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애초에 흑마법사란 육신이 아닌 영혼을 더 숭상하는 이들이니까.”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이들 중 하나인 자가 아인헤르츠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육신을 포기하고, 영혼의 격을 더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결과가 지금이었다.
“내가 말한 몸이란 네 몸 안의 마력을 말하는 것이다. 흑마법사란 죽음과 가까운 존재다. 그러니까 사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개소리 들으면서 자랐지?”
“개, 개소리는…….”
부모님을 개로 만드는 패륜적 농담에 베아트리체는 울상을 지었지만.
“개소리 맞다. 개념부터가 안 맞아. 산 자가 죽은 자들의 기운을 흡수하는 건 이론 단계부터 탈락 아니냐?”
“…….”
까마득한 선조의 신랄한 평가.
심지어 내용도 맞는 말이었기에 반론을 내뱉지 못했다.
“그, 그래도 그거 선조님께서 그랬다고 하셨는데.”
“선조가 병신이었네.”
“…그, 그거.”
“뭐.”
“아인헤르츠 님 말하는 거였는데.”
“…….”
순간적으로 자신을 병신으로 만든 아인헤르츠가 침묵했으나.
“그거 내가 만든 거 아니다.”
“네?”
“그거 내가 만든 이론에 이것저것 붙여서 흑탑 새끼들이 판 거라고!”
내 학파 후손이라는 것들이 그것도 모르냐!
그렇게 억울함을 토하는 아인헤르츠를 말린 베아트리체에게 찾아온 것은 가르침이 아닌 수련이었다.
“일단 몸 안의 사기를 완벽하게 없애라. 그게 최우선이다.”
르윈이 빼내었기에 사기가 대부분 사라지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사기가 뒤섞인 마력을 받아들였기에 우선 몸속을 비우고 채워야 한다.
그래야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아인헤르츠는 이곳에서 수련할 것을 명했다.
-힘드냐?
혼자는 아니었다. 온몸에 마법진을 각인하여 형광 빛을 번쩍이는 오빠도 함께였다.
자신이 마력을 흡수하고 내뱉는 것처럼 오빠도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힘드니까 말 좀 그만 걸어!’
다만 자동으로 마법진이 마력을 흡수 배출하는 오빠와 달리, 베아트리체는 정신을 집중하고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들도 하는 호흡법을 의식적으로 노력에 노력하며 따라 해야 하지만!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 더욱 귀찮아진 오빠를 무시한 채 베아트리체는 집중했다.
안 그래도 연회로 인하여 며칠을 쉬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마력의 흐름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는데.
“어?”
실수로 입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 안에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이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으니까.
“어?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최선을 다해 마력을 제어하며 베아트리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입 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고, 머릿속으로 오빠의 생각이 흘러 들어왔지만.
베아트리체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
그렇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간신히 마력을 제어하고 탈진한 그녀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시도는 해 볼 수 있겠는데…….”
“진짜 멍청이는 아니었네요, 영감님.”
무언가 악당 같은 느낌의 목소리를 들으며, 베아트리체는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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