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30. 인생 10회 차는 계획한다 (6)
루테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르윈이 루테스와 만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그렇기에 루테스에게 지금의 상황은 불운이었고.
테라에게는 재앙이었으며.
‘누구지?’
신입생인 빌에게는 그저 모든 것이 의문일 뿐이었다.
“오자마자 만나다니!”
이건 운명이네요.
반갑다는 듯이 말하는 르윈의 모습에 루테스의 인상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러냐.”
그러나 인상을 일그러트리는 루테스를 보며, 테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고작 인사만으로 루테스 전하의 기를 꺾다니.’
루테스가 처음 입학했던 해를 알고 있는 테라로서는 늘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좋은 게 아닐까?’
문득 그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르윈에 대한 소문은 테라 또한 알음알음 듣고 있기에 알고 있다.
무려 그 총학생회장 데일드가 주시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물밑에서 몇몇 사건을 일으켰고, 또 그보다 더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내 눈에 안 보이잖아?’
테라가 보기에는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더 조용했다.
데일드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가 더 위험할 것 같다고 했지만.
‘어차피 올해가 지나면 난 졸업이기도 하고.’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눈앞에 터지는 사건보다는 물밑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더 좋지 않을까.
솔직히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은밀한 계획보다는 겉면이 활활 타오르는 마법관이 더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올해 큰 사건만 터지지 않는다면 상관없지 않을까.
재앙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차악 정도가 아닐까.
그럼 최악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괜찮은데?’
총학생회 경력이 길면 길어질수록 불가능한 최선보다는 실현 가능한 차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테라였다.
그녀에게는 눈앞에서 날뛰는 루테스보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르윈이 더 괜찮아 보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하더라도 곧 터질지, 아니면 영원히 안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르윈 후배.”
그렇기에 테라는 밝은 모습으로 르윈에게 인사를 건넸다.
데일드는 조심하라고 말했으나, 알 바인가.
‘나만 아니면 되지.’
애초에 자신이 총학생회를 또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다 데일드 때문이다.
그러니 그 녀석은 좀 고통받아도 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렇게 확실한 노선을 정한 테라는 빌에게도 르윈을 소개했다.
“여기 있는 후배는 르윈 디 드라이르프. 스승님이 기사시라고 했으니, 드라이르프의 이름은 들어 봤지?”
사실 기사와 연관이 없더라도 제국에 살아가는 이들은 드라이르프의 이름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지방의 작은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빌 역시 마찬가지.
황족에 이어 드라이르프까지 보게 된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카데미?’
비록 같은 학년은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사람들과 같은 세대를 보내는 것이다.
황실 아카데미를 떨어졌을 때의 안타까웠던 마음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살면서 멀리서 보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과 한솥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여기는 올해 신입생으로 들어온 빌 데인 후배인데.”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테라의 소개에 빌은 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나?’
고개를 든 순간, 인상을 팍 찌푸린 르윈의 모습을 보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
빌.
흔하디흔한 이름이었다.
지나가는 평민을 붙잡고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고, 가끔이지만 고위 귀족 사이에서도 같은 이름이 존재할 정도였다.
‘내 이름이었으니까.’
창조의 교단이 인정한 첫 번째 용사의 이름.
그 당시에도 흔했고, 그 이후에는 더욱더 흔해진 이름.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최초의 용사님처럼 세상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라며…….”
그리고 르윈의 예상대로, 눈앞의 빌이라는 소년은 용사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존재였다.
‘왜 자기 자식 이름을, 고아라서 대충 지은 이름으로 짓는 걸까.’
최초의 용사.
그 호칭만 들으면 참으로 엄청나 보이지만, 그 시절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르윈으로서는 부끄러운 이름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으며.
거기에 약한 주제에 자만하기까지 했었다.
10번의 인생 중에서도 가장 부끄러운 흑역사.
그러나 우습게도 그 못난 용사를 사람들은 가장 좋아했다.
‘나를 수치사 시키려는 마족들의 음모가 분명해.’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빌이라는 이름은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다.
막상 그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만나니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는 이 아카데미에 오게 되었습니다.”
딴생각하는 사이 자기소개가 끝나 버렸다.
제법 슬픈 이야기였는지, 옆에서 예리엘과 하인스가 조용히 훌쩍이고 있는 상황.
얼핏 들었던 첫 구절이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라는 말이 나왔으니, 아마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리라.
“그래. 열심히 해라.”
아무리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은 르윈조차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만능의 단어였다.
그렇기에 르윈은 대충 넘어갔고, 다행히도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빌 또한 르윈의 기분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기에 빠르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선배님한테 마저 안내받고. 나는 루테스 선배랑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할 이야기 없는데.”
“에이, 같은 동아리의 부원으로서 방학 동안 연구한 것들을 공유해야죠.”
“그러니까 연구한 것 자체가 없다니까?”
자꾸만 자신을 끌고 가려 하는 르윈의 행동에 작게 반항을 하는 루테스였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갈게요!”
“안 간다니까!”
르윈 디 드라이르프와 빌 데인의 짧은 첫 만남.
르윈은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신입을 더는 만날 생각이 없었으나.
얼마 후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때의 르윈은 전혀 알지 못했다.
***
방학이 끝나 갈 무렵, 아카데미에 모이는 이들은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연구를 위한 탐사, 혹은 학회 등에 출석한 교수.
방학을 맞이하여 학생처럼 휴가를 떠난 일반 직원이나 공무원들.
그리고 신입생처럼 아카데미 신임 교수들이 들어오는 시기도 이맘때였다.
“야.”
마탑의 이동 마법진 앞.
타니야는 눈앞에 보이는 인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묻지 마.”
그녀의 시선을 받은 붉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여인의 표정 또한 일그러졌다.
“이년아, 네가 나라면 안 물어볼 수 있겠냐?”
으르렁거리는 타니야의 말에 상대방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그럴 만해.’
붉은 머리의 여인.
그녀는 드림 월드의 설계도를 대가로 올해 베르샤 아카데미에 교수로 입학할 예정인 베렐스 아그니였다.
타니야 드림하고는 오랜 악연으로 묶여 있는 소꿉친구 사이.
그렇기에 평소 같았으면 불만 있으면 한판 붙자고 하겠으나, 이번만큼은 타니야의 의문이 너무나도 합당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왜 아가씨까지 데려온 건데?”
아가씨.
흔한 말이었으나, 마녀의 생태를 아는 이들이라면 경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족이 있고, 그 종족의 특징에 따라 살아가는 형태가 달라진다.
대표적으로는 세계수와 하이 엘프라는 구심점을 통해 오래전부터 왕정 국가를 세운 엘프.
광산을 채굴하기 위해 흩어져 있기에 부족 단위로 활동하는 드워프.
크게는 수인이라는 종족으로 묶이지만, 각자의 고유한 특성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수인 안에서도 여러 종족이 나뉘는 수인족.
그리고 연구하는 마법에 따라 가문이 나뉘는 마녀가 존재한다.
마녀가 다른 종족과 가장 구분이 되는 시스템은 다른 종족과 달리 모든 가문이 수평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도 왕족, 귀족, 평민 등으로 나뉘듯, 다른 종족도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마녀는 아니었다.
마법이란 인류의 잣대로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위대한 것.
각자가 연구하는 마법에 높고 낮음은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에 마법을 연구하는 모든 마녀는 평등하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가문의 수장이 모이는 장로회를 열어 회의하고.
그것을 통해 얻어 낸 결과를 바탕으로 마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마녀의 수장인 위치 로드의 역할이었다.
“로드께서 데려가라는데, 내가 어쩌냐.”
“아무도 안 말려?”
“안 말렸겠냐?”
즉, 모든 가문이 평등한 마녀 사회에서 아가씨라고 불릴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바로 마녀들에게 유일한 상급자인 위치 로드의 후계자뿐이었다.
“…난 몰라.”
타니야는 마른세수를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 구석에서 신기하다는 듯 마탑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소녀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호위도 안 데려왔어?”
“…그럼 수상하잖아.”
“그건 그렇네.”
안 그래도 마녀라고 한다면 시선이 모일 텐데.
그 마녀가 주변에 호위를 줄줄이 데리고 온다?
딱 봐도 수상하다.
그리고 그런 수상한 이들은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마녀라고 납치하려 하는 사람은 없겠지?”
“지금이 옛날인 줄 알아?”
“누가 보면 백 년은 산 줄.”
“최소 그 두 배는 살 건데?”
“그럴 실력은 되고?”
마녀 하면 장수하는 종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실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마법을 연구하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력량을 늘린다.
그것을 통해 수명을 늘리는 종족이 마녀였기에, 다르게 말하면 깨달음이 부족한 마녀는 평범한 인간처럼 단명한다.
살아온 세월이 곧 실력.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종족.
그것이 마녀였다.
“아무튼 그럼 다행이고.”
“하긴, 아가씨한테 위험이 생기면 그때는 그냥 죽는 거니까.”
작게 한숨을 내쉰 타니야는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차기 위치 로드를 바라보았다.
“뭐, 아카데미가 개학하기 이전까지만 고생하면 되니까.”
아카데미가 개학하면 타니야는 물론 교수로 온 베렐스 또한 바쁠 터.
그때쯤 되면 다른 마녀를 보내서 알아서 아가씨를 데리고 갈 것으로 생각한 타니야였으나.
“안 가.”
“뭘?”
“아가씨 안 돌아가신다고.”
“…왜?”
“…인간과의 교류 차원으로 아카데미 입학하신대.”
타니야는 베렐스의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과의 교류. 좋지.
그래서 내가 여기 있고, 이 녀석이 여기에 있는 거니까.
그런데 아가씨도?
“…돌았냐?”
“로드께서 하신 말씀인데?”
“…로드가 올해 몇 살이시지?”
“노망난 것 아니다?”
“진짜?”
“…….”
자신 또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똑같은 생각을 했기에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베렐스였다.
“아니지?”
“…….”
“아니라고 말해.”
“…….”
“너 이럴 때 입 다무는 년 아니었잖아!”
이제는 베렐스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터는 타니야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카데미 입학이 쉬운 줄 알아?”
현실을 부정하는 타니야였으나, 베렐스는 그런 타니야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미 아카데미 시험 합격하셨어. 그래서 온 거야.”
“아, 안 돼…….”
“참고로, 위치 로드 후계자라는 것은 절대 밝히지 말래. 평범한 학생으로서 생활하고 싶대.”
“아카데미 진짜 별것 없는데?”
“네가 그렇게 설득해 봐. 아가씨 돌려보내면 내가 아카데미 있는 동안은 너 언니라 부른다.”
베렐스의 성격상 죽으면 죽었지, 자신을 언니라 부를 마녀가 아니었다.
즉, 그냥 불가능하다는 소리.
“아아…….”
드림 월드의 설계도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위치 로드의 보호자 역할도 해야 한다니.
딱!
“뭐냐, 그건?”
“위장약. 효과 죽여. 너도 하나 줄까?”
데이지에게 추천받은 위장약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앞으로 단골이 될 것 같다고 느끼는 타니야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