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30. 인생 10회 차는 계획한다 (7)
“우리 베르샤 아카데미는 제국 수도 최대 규모의 토지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교육기관으로!”
오늘따라 더 기세가 강렬한 이사장의 훈화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작년보다 더 길어진 것 같아.”
“벌써 황금 세대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까요. 이사장님도 기분이 좋으시겠죠.”
“황금 공 소리 듣는 가문이 왜 이렇게 아카데미에 진심일까?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일까?”
“초대 이사장이었던 황금 공의 유지를 이어받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끝없이 이어지는 이사장의 말에 학생은 물론 교수들조차 하나둘 지쳐 가고 있었다.
덕분에 후방에 있는 학생들은 졸거나 딴짓을 하고, 그 여파가 점점 앞으로 밀려나기 시작하는 중.
평소라면 조용히 하고 앞을 보라고 말할 데이지조차 르윈의 잡담에 참여할 정도.
그 정도로 이사장의 말은 길었고, 재미가 없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재미있겠네.”
“올해는 작년보다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에이! 작년은 옆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났었는데, 올해는 조용하겠지.”
“…세계 평화 말고 저의 평화요.”
작년, 내전.
그 두 가지 키워드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데이지였다.
도대체 그 나라의 왕세자는 왜 르윈의 말을 믿어서는.
‘내가 드라이르프 가문의 비밀 병기일 리가 없잖아.’
하나 상대는 그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방학 기간, 가문에 보내진 베르크 왕국의 선물이 그 증거였다.
“도련님, 올해는 작년하고 다릅니다. 아카데미에 후작 가문이 여럿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드라이르프 공작가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후작가는 그런 드라이르프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곳들이었다.
제국의 단둘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공작가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단 열두 개뿐이라는 상징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며, 때때로 황후를 배출하는 곳이기도 했다.
아무리 르윈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곳을 쉽게 건드리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선택.
괜히 입학 초기에 약점을 잡힌 루테스처럼, 르윈도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나쁘지 않나?’
약점 잡힌 르윈이라니.
얼핏 들으면 안 좋을 수 있으나, 그로 인하여 르윈의 행동이 억제될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 일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모시는 자로서 섬기는 주인에게 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르윈은 조금 생겨도 되지 않을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자신이 불충한 것일까.
아니면 르윈의 업보인 것일까.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끝나지 않은 이사장의 훈화를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올해는 아카데미에 큰 변화가 있을 해입니다. 베르샤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문화의 선두를 이끌기 위해 다양한 왕국과 교류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종족과도 협력하며…….”
“이사장이 저렇게 말하는 거면 마녀 말고 다른 종족도 올 것 같은데.”
“들은 게 있으신가요?”
“그건 아닌데, 다양한 종족과 협력한다면서 이미 소문 다 퍼진 마녀 하나하고만 협력하면 웃기잖아.”
“그건 그렇네요.”
자신이 소속된 곳이 점점 발전한다면 좋은 일이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앞으로 8년은 더 있어야 할 아카데미가 발전한다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아카데미가 발전하면 할수록 르윈의 사고 규모도 커질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가 인상을 찌푸릴 무렵, 르윈의 인상 역시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저게 왜 저기 있냐.”
“네?”
작지만, 확실하게 감정이 들어간 목소리에 데이지의 시선이 다시 이사장에게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몇몇 학생이 단상 위에 올라간 상태였다.
“올해 우리 아카데미를 찾아 준 학생분들에게 박수와 함성으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장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선두에 있는 이가 누구인가.
“가장 먼저 황실 아카데미에서 저희 아카데미로 전학 오신 제국의 꽃, 레일라 디 바벨리안 전하십니다.”
첫 시작부터 황족이다.
그것도 황실 아카데미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로 전학을 온.
“…응?”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 건가.
자신의 머리가 잘못된 것인지, 귀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잘못된 것인지 의심한 데이지였다.
황실 아카데미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로 전학을 온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인데.
그것이 황족이라니.
심지어.
‘작년 여름에 도련님하고 맞선을 봤던 분…….’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다행이라면 드물게 르윈이 꺼리던 사람이라는 것.
그렇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접점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펴질 기미를 안 보이는 르윈의 인상에 데이지가 작게 소곤거렸다.
“아마도?”
딱 보아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마도는 무엇인가.
‘도련님답지 않은데.’
대놓고 황족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나, 르윈이라면 직설적으로 말하리라 생각한 데이지였다.
심지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확신이 없는 듯한 기분.
“그리고 다음은…….”
차례차례 호명되는 전학생과 유학생은 데이지에게도 제법 인상이 깊게 남았다.
신성국에서 온 전학생은 물론, 마법 왕국 유텐과 기사의 성지라고 불리는 마테리스 왕국.
그리고.
“여러분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곳도 있습니다. 두 번이나 마족과의 전투에서 선봉에 선 국가, 아리타 왕국의 아렐리드 가문의 영애께서도 저희 베르샤 아카데미로 유학을…….”
아리타 왕국.
전성기, 제국을 선포해도 이상하지 않을 힘을 지녔고.
두 번이나 마족을 막아 낸 명예로운 국가.
그러나 두 번의 싸움에서 흘린 피를 이겨 내지 못하고, 결국 바벨리안에게 제국의 이름을 내준 나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륙의 강대국을 뽑을 때 다섯 번째 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는 저력 있는 국가이며, 동시에 신성국이 인정한 몇 안 되는 가문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렐리드 후작가.”
인류의 일곱 번째 용사의 동료 둘이 세운 곳으로 이름 높은 가문.
데이지 또한 어린 시절, 동화로 여러 차례 들었기에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런 곳조차 이곳에 오다니.
베르샤 아카데미가 생각보다도 더 대단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것이 데이지가 저지른 큰 실수이기도 했다.
“맞구나?”
옛 추억을 떠올리던 데이지는 바로 옆에 있는 르윈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까.
처음부터 르윈이 바라보고 있던 것은 레일라 디 바벨리안이 아니었다.
‘엘리아 덴 레이리드.’
단상 위에 올라선 아렐리드 가문의 유학생의 모습이 르윈이 기억하는 옛 인연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기에.
가장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연인이자, 가장 큰 상처를 준 배신자의 모습과 똑같았기에 바라본 것이고.
‘바르센 덴 아렐리드.’
절친한 친구이자, 마찬가지로 자신을 배신했던 배신자의 성을 듣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리타 왕국에서 유학을 온 마를렌 렐 아렐리드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을 르윈은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어두운 방 안.
그곳에 모인 이들은 긴장감이 가득 담긴 분위기에 걸맞게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며 말했다.
“우리가 모시게 된 신은 뭐다?”
“평화신.”
“그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뭐다?”
“평화.”
그곳의 중심에서, 이제는 제법 거물의 오오라를 풍기는 레피스 원드는 근엄하게 선언했다.
“그럼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가만히 있는다!”
“신입생은?”
“필요 없다!”
“그래! 그러니까 전력을 다해서 신입생을 찾지 마! 아니, 오지 못하게 막아 버려!”
아카데미 입학식.
그것은 신입생들을 위한 행사이자 동아리들의 사냥의 시간이기도 했다.
동아리로서는 올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으니까.
여기서 얼마나 많은 학생을 납치, 아니 끌어들일 수 있냐에 따라서 한 해 예산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 베르샤 아카데미 총학생회가 주목하는 동아리이자, 제국 수도의 종교계가 주목하는 동아리인 무링신 연구 동아리는 달랐다.
동아리 예산?
그런 것은 필요 없다.
활동에 필요한 것은 창조 동아리와 창조의 교단에서 수상할 정도로 잘 지원과 협력을 해 주고 있고.
거기에 루테스와 르윈을 격리시킨 곳이기에, 총학생회장인 데일드 역시 아낌없는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차피 우리 동아리, 돈 쓸 일도 없으니까!”
애초에 동아리 예산이 필요 없다.
이전부터 동아리 예산으로 받는 약간의 지원금의 사용처가 어디였는가?
대부분이 다과요, 남는 것으로 의자를 조금 더 편한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비활동 동아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동아리.
그것이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였고, 르윈에 의하여 강제로 개종된 곳이 지금의 무링신 연구 동아리였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입 부원도, 동아리 지원금도 아니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발전하면 안 돼.”
진지하게 선언하는 레피스를 보며,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행정관(강제) 피르는 말하였다.
“그런 것치고 언니 스케줄이 살인적인데.”
“…동아리 부부장 자리 아직 공석인 거 알고 있지?”
“…….”
“이제 고등부도 올라왔겠다, 피르 네가 맡아도 충분…….”
“살인적인 스케줄로 우리의 평화를 지키고 있는 부장님 만세!”
너도 같이 뒤지고 싶냐.
그 협박에 피르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회장.”
“뭐.”
“여기 없는 부원들이 몇 있습니다만…….”
부원의 합당한 말에 레피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사장이 신났는지, 기초 교육 학생들을 전원 불러 모았으니까.”
원래 입학식은 신입생들을 위한 자리였기에 기존의 학생들은 입학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이사장이 신을 내며 모든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불러 모으려 했고.
그것이 거의 실행될 뻔하였으나 모든 학생을 한자리에 모을 장소나 통제할 인력이 부족하였기에, 교수진과의 회의 끝에 기초 교육 학생들만 신입생들과 함께 입학식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었다.
“가장 위험한 부원들이 빠진 거 아닙니까?”
부원의 말에 레피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이곳에 없는 부원은 단둘.
바로 르윈과 루테스였다.
“루테스 전하께서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니까, 부원을 데려오시지는 않겠지만…….”
르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말한 순간, 부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하?”
다만 평상시와 다른 점은 얼굴이 더욱 일그러져 있다는 것뿐이었지만.
“여기가 부실이에요?”
“누, 누구세요?”
그리고 혼자도 아니었다.
왠지 모르지만, 루테스와 정말 닮아 보이는 소녀가 함께였다.
‘아니겠지?’
레피스가 기억하기로, 올해 신입생으로 들어올 만한 황족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다만 전학생이 있었을 뿐.
“황실 아카데미에서 전학 온 레일라 디 바벨리안입니다! 동아리 신청하려고 왔는데요!”
“…….”
레피스는 거칠게 떨리는 눈동자로 루테스를 바라보았다.
아니죠? 장난이죠?
그런 간절한 시선에도, 루테스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선배! 신입생 데려왔어요!”
신이 난 듯한 르윈의 목소리에 레피스는 간절히 기도했다.
‘무링신, 평화신이라며!’
개학 첫날, 평화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달은 레피스와 무링신 연구 동아리 부원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