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31. 인생 10회 차는 후배를 원한다 (5)
“그렇게 저녁에 한 번 더 보내니까 비밀이라면서 알려 줬다던데?”
점심에 두 번, 저녁에 한 번.
총 세 번을 만난 플라나와 하인스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더 많은 만남을 위해 플라나는 기사 동아리를 선택했다.
“왜, 왜?”
“왜 기사 동아리냐고? 어차피 마법 관련해서는 배울 게 없으니까. 차라리 검이라도 배우겠다는데?”
“……!”
제법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차기 후계자로서 수많은 마녀에게 영재 교육을 받아 온 플라나였다.
고등 교육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면 모를까, 그 이전까지 플라나를 만족시킬 만한 마법 수업은 같은 마녀인 베렐스가 진행하는 수업 정도.
차라리 호신술을 배우기 위해서 기사 동아리에 들어가는 게 이득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서 문제지만!’
그냥 들었으면 좋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이미 개인적인 욕망이 한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였다.
심지어 그 대상이 베르샤 아카데미에서 가장 껄끄러운 르윈의 시종이라니.
잘못하다가는 마녀 전체와 르윈이 엮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이미 엮였나?’
목덜미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타니야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솔직히 말해도 되나?’
이미 엮이고, 정체까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르윈이 어떻게 위치 로드의 문양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묻는다고 대답을 해 주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플라나의 정보를 미리 알려 주고 문제가 생기지 않게 만드는 것이 좋을 수도 있었다.
‘절대 내가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런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있기는 하지만.
‘이게 다 아가씨를 위해서야!’
그렇게 각오를 다진 타니야는 조심스럽게 플라나에 대한 정보를 르윈에게 말해 주었다.
***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자, 타니야는 제법 많은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을 시작으로 싫어하는 것, 취미, 개인적인 특징 등.
아주 개인적인 취향 정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든 것을 알려 줄 생각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나.
‘충분하지.’
르윈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개인 정보였다.
어차피 마녀라는 종족에 대해서는 몇 번의 협업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뿐인가?
‘플라임의 손녀라…….’
애초에 르윈은 현 위치 로드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막 위치 로드가 되었을 당시 마대륙에서는 아펠리오스라는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 튀어나왔고, 그걸 틀어막기 위해 용사는 정말 개처럼 굴렀다.
정말 대륙 끝에서 정반대까지 다 돌아다녔을 정도로.
덕분에 많은 종족을 만났고, 많은 인연을 쌓기도 했다.
플라임 역시 그중 하나.
다만 아무리 플라임이 젊은 나이에 위치 로드가 되었고, 또 마녀라는 종족이 오래 살았다고 하나.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전생의 인연이 현생과 이어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초장수 종족으로 분류되는 엘프가 존재했고.
인류를 벗어나면 정령이 있었고, 특별한 인연은 없었지만 엘리와 같은 영물급 존재라면 충분히 천 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다만 플라임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줄 몰랐던 것은.
‘그때도 천재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괴물이 되었겠네.’
그냥 수명이 긴 엘프와 달리 마녀는 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자신의 강함.
그렇기에 마녀는 장유유서가 가장 잘 지켜지는 종족이기도 했다.
왜?
‘거긴 나이가 깡패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전성기와 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마녀라는 종족은 그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수인족들보다도 더 약육강식에 어울리는 종족.
그리고 그곳에서 최장수 마녀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플라임은 나이로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위치 로드하고는 못 만나겠네.’
그렇기에 르윈은 플라나를 보자마자 생각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플라임의 후손이라는 생각은 했으나, 플라임이 아직까지 살아서 위치 로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딸이나 손녀가 위치 로드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전생의 인연과 현생이 접촉하게 되면 그리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놈의 인과율이 뭔지.’
창조의 여신, 라헬은 말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과가 존재해야 하며, 인과가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맞는 말이긴 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 무언가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인과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그 뒤의 말은 르윈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전생의 인과는 현생과 연결되지 않기에, 전생의 인연과 현생의 인연을 연결해서는 안 된다.’
전생에 만난 사람은 전생의 너와 이어진 사람이지, 현생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다.
전생의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말이었다.
아무리 신앙심이 충만했던 당시의 르윈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전생과 현생이 이어지게 된 순간, 르윈은 라헬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걸 어떻게 해야 창조신이지.’
자칭의 수준이 그렇지.
그걸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저 라헬은 무능력했고, 자신은 멍청했다.
“그래서 아가씨는 열 명의 언니가 존재함에도, 위치 로드의 후계자로 선택을 받을 수 있었죠!”
어느덧 플라나의 개인 취향에서 자랑으로 바뀌었다.
하나하나가 플라나가 얼마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기대가 되는지 열변을 토하는 타니야를 보며 르윈은 미소 지었다.
‘로드와 접촉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지지와 사랑을 받는 후계자면 나쁘지 않지.’
그 후계자가 하인스와 인연이 생긴다면 마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용사라는 존재 때문에 창조의 교단과 척을 지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마녀라는 종족이 인간처럼 창조의 여신을 숭배하는 종족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마녀는 신을 숭배하지 않는다.
믿는다면 그저 존재하는 신보다는, 자신들이 갈고닦은 마법을 믿는 종족. 그것이 마녀였으니까.
‘전도하기 딱 좋은 종족이지!’
무링교 마녀 지부, 선교사 하인스.
본인은 무링교를 믿은 적도, 선교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는 하인스지만.
안타깝게도 원래 하인스의 뜻대로 되는 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
동아리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기사 동아리처럼 시간을 정해 함께 단련하고, 대련하는 시간을 가지는 곳이 있으면.
마법 동아리처럼 자율적으로 연구를 진행, 정해진 기간에 그 내용을 발표하는 곳도 있었다.
도서관 사서 같은 경우에는 요일마다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서를 지정.
날마다 도서관을 관리하고, 나머지 기간은 자율적으로 보내기도 한다.
물론 정규적으로 단합 대회를 열기도 하지만.
하지만 자율이 보장되어 있다고 동아리 활동을 안 하는 것은 동아리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
그렇기에 동아리 부원의 숫자는 물론 활동 내용을 보고 아카데미는 동아리를 지원하고, 때에 따라서는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아리를 폐지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아카데미 초반.
신입생들이 동아리 가입을 시작하고 활동하는 기간에는 학생회가 비정기 감사를 시행한다.
주요 목적은 동아리 활동 점검.
이때 잘못 걸리면 연말에 따낸 동아리 예산이 삭감되고, 잘못하면 동아리 그 자체가 날아가서 다른 동아리를 찾아야 하기에 동아리 회장들이 총력전을 다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
감사를 나온 총학생회 서기의 말에 레피스는 울고 싶었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왜 의문문이냐.”
그걸 몰라서 묻냐.
동갑으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지만, 그래도 총학생회다.
참자. 참아야 한다.
아쉬웠다. 조금 더 친했으면 한 대 쳤을 텐데.
그렇게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며, 레피스는 학생회 서기인 파르펜의 손목을 잡았다.
“그럼 감사를 위해서 활동 내용을 봐야지.”
“…꼭?”
떨떠름한 표정의 파르펜을 보며, 레피스는 그제야 방긋 웃었다.
“일이잖아.”
같이 죽자.
기분 탓일까. 파르펜은 타니야의 웃음에 그런 음성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총학생회로서 동아리 감찰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다른 동아리에서 말이 나올 수도 있기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럼 무링신께서는 평화의 신이시면, 평화를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데요?”
눈을 빛내며 묻는 인물은, 올해 처음 아카데미에 들어온 인물임에도 그의 기억에 강렬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레일라 디 바벨리안.’
제국의 3황녀.
나이도 더 많은 황자인 루테스가 있으니 황녀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으나, 루테스와 레일라에게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황위 계승의 기회.
대륙 최고의 국가라 불리는, 바벨리안이라는 제국의 황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레일라는 가지고 있었고, 루테스는 가지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생각했는데.’
거기에 처음부터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한 루테스와 달리 레일라는 전학생이었다.
그것도 무려 황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라 부르는 황실 아카데미의 전학생.
‘진짜였네.’
학생회에 들어오고 난 뒤, 로열 클래스 메이드장을 맡은 베리엘이 황실 아카데미 메이드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황실 아카데미란 그런 위상을 가진 곳이었다.
교수나 사용인들이 황실 아카데미에서 다른 아카데미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놀라는 곳.
다른 아카데미의 메이드장보다는 황실 아카데미의 메이드 서열 꼴찌가 더 위상이 있는 곳!
그리고 아카데미라는 시스템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명함이 가장 가치가 있는 직업은 바로 학생이었다.
돈이나 다른 가치를 볼 수 있는 교직원이나 사용인과 달리, 학생은 자신의 순수한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심지어 자신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인 학생들과도 연을 쌓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의미로, 황제를 노리는 이로서 황실 아카데미에서의 인연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비록 작년에 드라이르프와 라인하르트가 입학했다 하더라도, 올해 네 곳의 후작가가 입학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황실 아카데미는 그곳의 후계자들이 재학 중이거나 졸업을 했었으니까.
“그렇구나!”
눈을 빛내며 다소곳이 웃는 황녀를 보며 파르펜은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미쳤네.’
눈앞에 황녀가 웃고 있다.
옆에는 굳은 표정의 황자도 있었다.
황족이 눈앞에 있다.
평민으로서 황족을 볼 기회가 어디에 있을까.
만약 이곳이 아카데미가 아니라면, 자신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고만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작년과 올해 입학한 공작가와 후작 가문의 자제들도 파르펜의 입장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존경하는 데일드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
공무원을 노리는 자, 이런 경험에 익숙해져야 한다.
공무원이란 제국의 손발이며, 제국을 이끄는 이들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니까.
그러니 졸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믿고 서기로 뽑아 준 총학생회장을 위해서라도!
“안녕하세요!”
그때 등 뒤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플라나와 하인스의 운명의 실을 엮기 위해 동아리 활동이 뜸한 르윈이었다.
“오랜만에…….”
방긋 웃던 미소가 누군가를 보고 점점 싸늘해져 갔다.
“어머, 오셨네요?”
기분 탓일까? 조금 전까지 하하! 호호! 하던 황녀의 웃음이 조소로 바뀐 듯한 기분은.
“…….”
“…….”
아직 꽃샘추위가 간혹 존재하기는 했으나, 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따스한 기온이 순간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파르펜은 느꼈다.
그리고 그는 선택했다.
“그럼 동아리 감사는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링신 연구 동아리 레피스 회장.”
“야…….”
가늘고 길게 살아가는 것이 목적인 제국 공무원 생활.
그리고 파르펜은 제국의 예비 공무원으로서 가장 훌륭한 덕목을 지닌 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