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31. 인생 10회 차는 후배를 원한다 (7)
“그렇게 계속되는 싸움, 아니 전도 끝에 동아리 부원이 50명이 늘었습니다!”
꺄르륵!
드물게 활기찬 레피스의 목소리에 모두가 침묵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병에 걸린 거라는 소리가 있던데.
그런 소리가 왜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걸로 총학생회에 동아리 예산도 더 받아 낼 수 있고! 동아리 부실도 넓은 곳으로 옮기겠죠!”
그야 지금의 동아리실로는 부원들을 다 수용하지 못하니까!
많은 중소 동아리들의 꿈과 같은 일이었다.
다른 동아리였다면 동아리 회장의 평가가 수직으로 상승하여 종신 회장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종신 회장은 레피스였다.
본인의 의지는 하나도 없지만, 그렇게 정해진 상황이었다.
“이럴 것 같은 징조가 있었지. 그래서 내가 도망치려 했는데.”
레피스의 눈에 귀기가 감돌았다.
평소 무해한 토끼 같은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사령술을 사용하는 네크로맨서들이 찾는다는, 전설의 혼령과 같은 모습으로 레피스는 데일드를 노려보았다.
“누가 받아 주지 않았지.”
“…….”
으득!
어금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에 데일드는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창조의 교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레피스를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또 도망치려 한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니까.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총학생회장이 아니겠지.’
학생들이 학생회 임원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 제국의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간혹 명예로운 자리로 착각하여 들어가는 귀한 집 자식도 있으나, 1년 하고 도망치는 것이 대부분인 상황.
황실 아카데미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이들은 보장된 미래를 위해서 이 꽉 깨물고 일하는 것이고.
이미 최고의 미래를 보장받은 데일드는 더 이상 학생회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하고 있다.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라고 말하면 죽겠지.’
그러나 데일드는 눈치가 있는 남자였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의 진실은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입을 다물고, 레피스의 원망을 받아들였다.
그것으로 아카데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싼 편이었으니까!
“한잔하세요.”
“흑!”
레피스 또한 그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옆에서 위로의 병을 건네는 데이지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물론 술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1매점에서 파는 효과 좋은 약을 시리즈로 비우며 레피스는 한탄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2학기에 월반하면 내년에는 졸업할 수 있을까…….”
그나마 최선의 판단이 월반이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힘들걸…….”
데일드는 월반의 기준을 떠올렸다.
일단 레피스가 달성하기 어려운 성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럴 시간이 없을 테니까.”
“…왜요?”
적개심이 가득한 눈빛에 순간 움찔한 데일드였으나, 그는 레피스를 이해했다.
‘나도 내년에 더 하라고 하면 못 버틸 테지.’
먼저 도망가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잘 달랜다고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어제저녁에 창조의 교단으로부터 공문이 왔는데.”
“교단에서 공문이?”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베리엘이었다.
“올해 창조의 교단에서 일곱 번째 용사님을 기리는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고요.”
창조의 교단이 인정한 9명의 용사.
그들을 기리는 행사는 여러 곳에서 진행되었으나, 창조의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행사는 일 년에 단 한 번.
그것도 한 명의 용사만을 지정해서 진행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각자 죽은 시기가 다르기에, 모든 용사를 다 추모했다가는 1년 동안 용사 추모 행사만 진행하다가 한 해가 지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세상을 구한 용사를 대충 추모할 수도 없는 법.
그렇기에 창조의 교단은 한 명의 용사를 정하여 공식적으로 행사를 진행하였고, 이번에는 일곱 번째 용사의 차례가 된 것이다.
“…그게 왜요?”
그 설명을 들은 레피스는 두 눈을 빛내며 위협적으로 데일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적을 바라보며 적개심을 내비치는 야수… 라기보다는 토끼와 같은 모습이었으나.
‘미래를 보았구나.’
데일드는 그것이 위협이 아닌, 공포에 물든 행동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제국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제국 대성당과 함께 저희 아카데미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성국과 일곱 번째 용사가 탄생한 지역이겠으나, 용사를 추모하는 모든 이들이 그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성지 순례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것이었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각 국가의 대성당에서 영상 마법 도구를 이용하여 신성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 주고.
그곳도 가기 어려운 자들을 위하여 지방 교단에서는 예배로 용사를 추모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베르샤 아카데미가 제국 대성당과 함께 포함이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카데미에 종교 행사가 있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으나, 제국 수도에는 황실 아카데미가 존재했다.
‘그곳을 버리고 왜! 왜 하필!’
레피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나, 베리엘은 무언가 예상되는 것이 존재했다.
“…그렇군요. 마를렌 영애가 있었죠.”
“그게 누군데요?”
레피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 때문에 아카데미 행사가 진행된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베리엘의 말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마를렌 렐 아렐리드. 이번에 유학을 온 신입생 중 하나입니다.”
“신성국에서요?”
“아닙니다. 아리타 왕국에서 오신 분입니다.”
“아리타 왕국…….”
레피스로서도 알 수밖에 없는 이름이 나왔다.
아리타 왕국.
한때 제국에 가장 가까웠던 국가이자, 두 번의 마족 전쟁에서 선두에 섰던 국가.
그렇기에 많은 국력이 소모되었고, 인류의 재앙이 될 뻔했다고 평가받는 지난 전쟁에 휘청거렸으나.
결국은 이겨 내고 지금도 강대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제국으로서도 만만히 볼 수 없는 국가였다.
“설마 아렐리드가.”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아무리 세상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레피스도 용사의 이름 정도는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용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일곱 번째 용사님의 가장 큰 동료 두 분이 이어진 가문. 그곳이 아리타 왕국의 아렐리드 후작가이고.”
베리엘의 설명에 레피스가 울상을 지었다.
이러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그런 뿌리 깊은 집안의 딸내미가 베르샤 아카데미에 왔냐는 것이지만.
“이번에 베르샤 아카데미의 대표로 행사를 진행할 세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녀라면 충분히 아카데미에서 행사를 진행할 대표 자격이 있었으니까.
“회장님이랑 창조 동아리의 베르마샤 선배랑 그 영애랑 진행을 한다는 소리네요.”
그리고 난 그곳에도 종교 관계자라고 참여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레피스였으나, 데일드의 반응이 이상했다.
“회장님, 왜 제 눈을 피하세요?”
싸늘하다. 기분 탓인가. 발끝이 동상에 걸린 듯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그게.”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하든가!”
불안하게 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건가.
그것도 날 보고!
머릿속으로는 데일드의 행동을 이해한 레피스였으나, 가슴은 그러지 못했다.
“행사 대표는 마를렌 영애와 베르마샤 회장, 그리고…….”
당신입니다.
자신을 가리키는 데일드의 손가락을 보며, 진지하게 손가락을 꺾어 버릴까 고민하는 레피스였다.
***
‘돌았나?’
방과 후 동아리 시간.
수많은 동아리 부원들 앞에 선 레피스의 말에 르윈이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였다.
‘마왕군도 이렇게 모욕적인 선전포고를 한 적은 없었는데.’
마왕군은 용사를 존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약한 인류 따위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마족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하는 것들이 단련해 봐야 어떻게 마족을 이길 수 있겠는가.
마왕이 나설 필요도 없다.
사천왕, 아니 그 밑의 군단장 선에서 인류는 파멸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을 가졌던 마족이었으나, 패배했다.
아니, 냉정하게 평가를 하면 인류가 입은 피해도 막심했기에 겨우 수비를 성공한 인류로서는 무승부라고 보는 게 정확했으나, 마족에게는 패배가 맞았다.
당연히 승리하리라 생각한 전쟁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용사가 있었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한 번은 자신들의 실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횟수가 점점 쌓이고.
거기에 모든 마족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
파괴 혹은 파멸의 신에 가장 가까웠다고 불리는 아펠리오스조차 쓰러지는 것을 보며.
힘을 숭배하는 마족들은 용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와 가치관이 조금 다른 마족 중에서는 용사를 동경하는 존재가 있을 정도.
물론 아주 소수, 별종들의 이야기지만 모든 마족이 용사를 존중할 만한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엿을 먹이는 방식이 환상적이네.’
마족조차 하지 못한 일을 인간은 해내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자랑스럽다는 듯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그렇게 소규모 종교인들을 대표하여.”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튀어나왔다.
르윈과 황녀라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인물들의 강요에 강제로 가입한 동아리였다.
무링신 연구 동아리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신을 주장하는 동아리라니!
혹시 사이비는 아닌가.
나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이 다수였다.
개중에 독실한 창조의 교단 신자들은 울면서 기도까지 했다.
‘신실한 라헬 님의 종인데, 이단의 소굴에 가입하였습니다.’라고.
그러나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다니.
사실 이곳이 창조의 교단이 밀어주는 신흥 종교였다니!
“참여는 자율적으로 맡긴다고 했으나, 봉사 및 아카데미 내신 관련으로 좋은 평가가 있을 예정이니 모두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율이라고 하나, 그것이 자율이 아니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입생들은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기존 동아리 부원들은 레피스가 보내는 시선에 답을 알았으니까!
‘당연히 참가해야지.’
그리고 르윈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 정도로 선전포고를 보냈는데, 참여를 안 하면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다.
부모님을 욕해도 이 정도 치욕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관 속에 들어간 행사를 본인 앞에서 한다니.
“마지막으로, 함께 이번 일을 진행하게 될 임시 부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심지어 관짝 들어가기 전부터 남몰래 뒤통수를 쳤던 이들의 후손을 대표로 세우다니.
이 정도면 확인 사살을 위해 관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꼴이었다.
적어도 르윈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번에 과분한 일을 맡게 된 마를렌 렐 아렐리드라고 합니다.”
수줍게 볼을 붉히며 고개를 연신 꾸벅거리는 소녀를 보며, 르윈은 오랜만에 피가 들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