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8)
18화 4.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에 간다 (5)
루테스 디 바벨리안.
그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말이 어울릴 것이었다.
첫 번째 탈락자.
그는 가장 먼저 권력 싸움에 패배한 황자였다.
이유는 모른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던 황제가 차별을 하기 시작하고.
세력이 하루아침에 망하여 다른 형제들에게 흡수되고.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던 형제 사이도 갑작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그 사실이 제법 충격적이었는지 그가 망나니가 되었다는 소문이 황실에 퍼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편했다.
‘이제 귀찮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루테스는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기 자신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그는 황제가 되기 위해 배워야 했고, 일해야 했다.
그뿐인가?
아무리 잘해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제와 비교당해야 했고, 밑에서 추격해 오는 형제들을 따돌려야 하기도 했다.
누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고귀한 핏줄이라면 세상을 다스릴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루테스는 달랐다.
그냥 아버지가 황제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너무 피곤했다.
황실의 핏줄이 자신뿐이라면 이해라도 했을 텐데.
아내도 많으신 아버지는 자식도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자식 중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그렇기에 루테스는 황제가 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오히려 좋았다.
황제가 될 수 없을 뿐 그가 황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형제들이 잠을 줄여 가며 공부하고, 옥좌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울 동안, 나는 누릴 것 다 누리고 자유롭게 살다가 차기 황제가 가려질 때쯤 바짝 기어서 목숨만 부지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똑똑.
“빌어먹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루테스는 이를 갈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의 자유가 하루아침에 망가지게 된 것은.
‘당연히 그날이지.’
요즘 유명하다는 마법관 챌린지에 참여하고, 덤으로 망할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총학생회 임원을 좀 괴롭히려던 그날.
루테스는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망할 놈을 만나고 말았다.
“전하.”
익숙한 목소리였다.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도 가장 고귀한 이들만 모여 있는 로열 클래스의 메이드장의 목소리였으니까.
“르윈 님께서 오셨습니다.”
“베리엘…….”
그녀의 입에서 예상했던 말이 그대로 나왔다.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들리는 그 말이!
“없다고 말하라고 했잖아!”
짜증을 가득 담은 말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황자의 분노였다.
베르샤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이를 감당할 이들은 많지 않다.
학장을 비롯한 아카데미의 수뇌부들이거나, 제법 경력이 많은 교수, 학생 중에서는 그 느글느글한 총학생회장 정도일까.
사용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황자의 분노를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루테스에게는 매우 안타깝게도.
“거짓말은 나쁜 일입니다.”
그 한 명이 바로 베리엘이었다.
“그리고 저는 모두의 메이드입니다. 루테스 전하도, 르윈 님도, 모두 모셔야 하죠.”
“…….”
누가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끈 떨어진 연 신세인 황자보다는 현 드라이르프 공작에게 사랑받는 막내아들을 선택한 것처럼 들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루테스는 알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메이드는 자신과 평민 학생을 두고도 저런 말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믿을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믿을 수 없다.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학생에게도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물론 사기는 치지만!
“그러니, 전하.”
그 증거로 매일 아침 벌어지는 실랑이가 지겹지도 않은지, 베리엘은 루테스의 말을 모두 무시한 채 늘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니, 직접 말씀하시지요.”
“젠장.”
오늘도 이렇게 되는구나.
루테스는 이를 갈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꾸미지도 않은 상태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와 베리엘을 살짝 노려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
얼마나 걸었을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년이 화사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이 새끼는 뭘까.’
소년이 누군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르윈 디 드라이르프.
베리엘의 말로는 그 드라이르프 공작이 품에 껴안고 산다는 막내아들.
“어.”
최악의 첫 만남 이후,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르윈을 루테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꾸 오지?’
첫 만남은 최악이었다.
일단 먼저 얻어맞은 르윈도, 그리고 그 이후 사기를 당한 루테스 자신도 서로 호감이 생길 만한 일은 전혀 없었던 사이였다.
그런데 왜.
“오늘도 이불 밖은 위험하신 건가요?”
“어, 그렇지.”
왜 이딴 말에 격하게 공감을 하는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루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평소처럼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선배님, 이제 곧 개학이잖아요.”
평소라면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르윈은 여태까지의 패턴과 조금 다르게 루테스의 팔을 붙잡았다.
“뭐?”
그게 나랑 뭔 상관인가.
라고 하기에는 자신도 아직 학생이었다.
그렇기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르윈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바쁠 텐데, 그 전에 같이 아카데미나 돌아다니지 않으실래요?”
“…….”
내가 왜.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을 알고 있었기에 루테스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복수인가?’
그렇다면 참으로 참신하면서도 성공적인 복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참 좋은 의견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베리엘의 표정에는 은은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요즘 참 잘 웃는다?”
“저는 원래 잘 웃었습니다.”
“퍽이나.”
그럼 내가 본 1년은 뭔데.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루테스는 르윈을 바라보았다.
“거절하면?”
“선배님께서 때린 왼쪽 뺨이 참으로 아플 것 같은데요.”
대놓고 하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잘 통하는 협박이기도 했다.
공작가의 아들이 황자의 방문 앞에서 울면서 바닥을 구르는 모습은 루테스조차 정신이 아찔해지는 장면이었으니까.
‘참으로 개 같았지.’
모르는 척하려고 해도 베리엘이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이 커지면 루테스만 불리할 뿐.
‘젠장.’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면서도 루테스는 지적할 것은 지적했다.
“네가 맞은 건 오른쪽 뺨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고통이 왼쪽까지 이동했나 보네요.”
“그럴 수 있죠.”
개소리를 내뱉는 놈이나, 옆에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놈이나.
“젠장.”
어째서 내 주변에 이런 놈들이 생겨난 것일까.
작년의 평화를 떠올리던 루테스는 울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지, 뭐.”
개학까지 참으면 된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루테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따뜻한 봄.
개학을 앞둔 베르샤 아카데미에는 제법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기…….”
“맞지?”
신입생들은 아카데미를 구경하고, 방학에 헤어졌던 재학생들은 서로 만나 방학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있던 찰나.
그들의 시선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루테스 전하시다.”
“저게 그 유명한…….”
“와!”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당연하게도 황족인 루테스였다.
가장 앞에 서 있는 것도 있지만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그와 정반대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있었으니.
‘저게 모범적인 망나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걷는 걸음걸이며, 건드리면 물어뜯겠다는 듯한 표정까지!
그가 지나가는 길마다 자연스럽게 인파가 갈라지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분이 그분이지?”
“이번에 새로 입학하신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그리고 루테스를 향했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뒤에 있는 르윈에게 향했다.
황족과 드라이르프 공작가.
황실 아카데미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조합을 두 눈으로 보다니.
그 사실에 감탄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조금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라인하르트 영애만 있으면 더 대단했을 텐데.”
“그러게.”
르윈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라일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
“그런 것 같네.”
르윈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일라는 울상을 지었다.
위로나 해 달라고 말한 건데, 이렇게 긍정해 버리다니!
“힝.”
아카데미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인 베리엘이 자신을 알아보았기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더욱 타격이 큰 라일라였다.
“아가씨, 괜찮습니다.”
“오히려 아가씨 외모 보고 달라붙을 귀찮은 사람들이 적어진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라일라를 달래는 역할은 늘 그렇듯 르윈의 시종들이었다.
“그럴까?”
“뭐, 외모는 나쁘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
“진짜?”
없는 말은 하지 않는 르윈의 말에 라일라는 두 눈을 빛냈지만.
“물론 그것도 보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겠지만.”
“도련님!”
“이잇!”
이어지는 말에 라일라는 르윈의 종아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
“느려.”
“맞아. 맞아. 좀 맞아!”
라일라의 발차기는 매우 빨랐으나, 르윈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 공격을 모두 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걸 왜 모르지?’
라일라를 인식하고 있는 루테스를 제외하고는 그녀를 눈치채는 학생은 없었다.
‘뭐야, 무서워.’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밀 병기인가.
계속 인식을 하려고 노력해도 간간이 사라지는 라일라의 인기척에 루테스는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이곳이 저희 아카데미의 명물 중 하나인 대도서관입니다.”
루테스는 이런 개판인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카데미를 소개하는 베리엘의 모습이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여기도요?”
“명물이 너무 많은데요.”
어느새 싸우던 것도 멈추고 질문을 하는 르윈과 라일라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베리엘은 작은 목소리로 비밀이라는 듯 속삭였다.
“이곳은 조금 다른 곳입니다. 저번에 보셨던 마법관 챌린지의 마법관이나 개차반 황자, 그리고 조금 전에 보셨던 고백하면 무조건 차이는 장소, 고대의 나무와 달리 아는 사람만 아는 명소이기 때문입니다.”
“오오.”
“중간에 이상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거냐?”
루테스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모두가 무시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명소.
그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이 대도서관에는 슬픈 과거가 있습니다.”
“이 아카데미, 과거라고 해 봤자 얼마 안 되잖아.”
“그렇기에 일어난 비극이지요.”
루테스의 핀잔에 베리엘은 슬픈 표정을 연기했다.
“이사장께서 베르샤 아카데미를 설립한 것은 좋았지만, 역사도 없고 전통도 없는 아카데미가 수도에서 살아남기는 매우 힘들었죠.”
황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수많은 아카데미와의 경쟁.
뚜렷한 장점이 없는 신생 아카데미가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장은 수도 아카데미 회의에서 무시당하고, 차별당하기 일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이겨 내고, 베르샤 아카데미는 수도 최고의 아카데미가 되었다.
“같은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나오는 일이었죠.”
현실은 늘 냉혹하다.
그렇기에 베르샤 아카데미의 이사장은 삐뚤어졌다.
“그 결과 만들어진 장소 중 하나가 이 대도서관입니다.”
규모만 놓고 보면 수도권에 있는 모든 아카데미 중 최고.
황실 도서관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였다.
“아.”
그 말을 듣고 르윈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용물은 부실하다?”
“맞습니다.”
하지만 규모만 크면 뭐 하나.
황실 아카데미의 도서관처럼 희귀한 서적들이 없는데.
“전 대륙에서 책을 사들였지만, 시중에 풀린 것들엔 한계가 분명하죠.”
몇몇 서적들을 경매로 구매했지만, 그 질은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그리고 너무 크게 지어진 탓에 매년 수많은 학생이 도서관에서 길을 잃고 행방불명되기까지 했죠.”
도서관 사서의 주요 업무가 미아 찾기라는 설명에 르윈은 감탄사마저 내뱉었다.
“심지어 지하에 던전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
루테스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대도서관은 크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뭐, 괜찮습니다. 저번에 내려가서 확인해 봤는데, 특별히 위험한 몬스터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
하지만 이어진 베리엘의 말에 루테스의 고개가 꺾이고 말았다.
‘진짜 있던 거냐!’
“지금 가는 거야?”
베리엘의 말에 르윈이 눈을 빛내며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대도서관은 학생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직 입학하지 않은 신입생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르윈은 눈에 보일 정도로 풀이 죽었다.
“아쉽네.”
곧 개학식이니 그때까지만 참으라는 베리엘의 말을 들은 르윈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들 미쳤어.’
루테스는 황실의 망나니가 가장 정상인 현실에, 어서 빨리 개학하여 이 일행과 떨어지기를 기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