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9)
19화 5.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 생활을 한다 (1)
“그렇게 이 베르샤 아카데미는.”
진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름 아카데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말들이었지만.
“너무 길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벌써 한 시간째 말하는 이사장의 모습에 르윈은 작게 하품을 했다.
“도련님.”
“솔직히 지루하잖아?”
이번만큼은 데이지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르윈뿐만이 아니라 학생 대부분이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심지어 하인스는 자고 있다고?”
“그럴 리가요.”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뜨고, 멀쩡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하인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세요, 멀쩡하게.”
하지만 곧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인스?”
손을 얼굴 쪽으로 가져가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자고 있다.
눈을 뜨고, 서 있는 상태라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
“죄송합니다.”
“그럴 수 있지.”
사실 이사장의 이야기가 너무 졸리기는 했다.
이 정도면 신입생을 평가하기 위해 수면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
몰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 올리지만.
‘그래도 참아야지.’
이 이후 있을 일을 생각하며 꾹 참아 내었다.
“앞으로 역사와 전통이 가득할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축하를 전하며.”
길고도 길었던 이사장의 말이 드디어 끝나는 순간이었다.
지겨운 훈화가 끝났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환호하고.
그 소리에 졸던 하인스가 눈을 뜨고 일어나고.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데이지는 싸늘한 웃음과 함께 잘 잤냐고 물어봤으며.
그 모습을 보며 예리엘이 입을 가리고 웃고 있을 때.
평소라면 한마디 거들었을 르윈은 정신을 집중하고 강당을 노려보았다.
‘시간이 되었는데.’
몇 차례의 아카데미 경험상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수많은 신입생이 모인 자리.
몇몇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르윈은 느낄 수 있었다.
몇몇 신입생들의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급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내려다보는 시선도.
그리고 매우 전문적으로 은신을 사용하는 이들의 시선까지.
그 모든 것을 눈치챘지만,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옛날 생각 나네.’
초보 용사 시절, 마왕을 비롯한 수많은 적이 보낸 암살자들 때문에 고생했던 르윈이었다.
암살자들이 어떤 존재인가?
오직 적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수면조차 포기하며 상대를 관찰하는 변태들.
그렇게 지켜보고, 또 지켜보며 상대가 가장 약하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내가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숨어 있는 존재가 바로 암살자였다.
‘아직인가?’
그런 변태들에게 시달렸던 르윈이었기에 누구보다 시선에 민감했다.
하지만 그런 르윈조차도 정신을 집중해야 간신히 느낄 수 있는 이가 있었으니.
“저기 있네.”
“네?”
말없이 하인스를 압박하던 데이지가 르윈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아.”
르윈이 바라보던 방향을 한참 노려보던 그녀는 강당의 구석에서 긴장한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라일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수록 찾기 힘드네요.”
“라일라가 들으면 울걸?”
“아가씨를 찾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라.”
그게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은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것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베르샤 아카데미 입학이기도 했다.
“움직인다.”
이사장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라일라는 긴장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불안한 눈동자가 르윈을 바라보고, 르윈은 그 시선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조금 나아진 안색으로 강당 위로 올라가 확성 마법이 걸린 도구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신입생 대표, 라일라 라인하르트입니다.”
청아한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지고, 신입생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어? 이사장은?”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이사장님이 있지 않았어?”
“마법인가?”
마법이 아니다.
라일라는 그냥 정해진 위치에서 대기하다가 이사장이 자리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강당의 중앙까지 걸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눈치챈 사람이 거의 없었다.
르윈조차도 집중해야 느끼는 시선을 다른 이들이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아.’
존재감이 희미할 뿐이지, 존재 자체가 잊히는 것은 아니었다.
확성 도구로 말을 꺼내자마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지만.’
그저 존재감이 희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존재감이 희미하다면, 존재감을 올리면 되는 것이다.
조건은 이미 충분하다.
역변하지 않는 이상 외모는 활짝 꽃을 피울 것이다.
가문도 충분하다. 제국의 2~3위를 다투는 라인하르트 공작가의 핏줄을 잇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저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모을 것이 분명한 조건들이었다.
‘거기에 성적도 수석이고, 성격도 좋아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만하지.’
모두가 눈치채지 못할 뿐.
“앞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겪을 일들이 우리의 미래에…….”
청아한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며, 사람들은 조용히 라일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가 눈치챌 수만 있다면 라일라는 얼마든지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아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목적이랑 일치하기도 하고’
르윈 디 드라이르프.
아홉 번의 인생을 용사로서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살아온 존재는 이제 쉬고 싶었다.
인생에 흔하디흔한 한 명의 엑스트라로서 길고 오래 살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라일라 라인하르트.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나 형제들조차 가끔 존재를 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나, 조연으로서 이름이 기억되고자 노력한 것이다.
최대한 잊히려는 르윈과 최대한 알려지려고 하는 라일라.
정반대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렇기에 해야 할 행동은 하나였다.
‘이대로라면 내가 자연스럽게 학생회장이 되겠지.’
아카데미는 배움의 터.
그렇기에 신분을 논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게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족은 그 특수성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권력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니까 제외. 그나마 비벼 볼 수 있는 후작가도 없고.’
남은 것은 자신과 라일라뿐.
하지만 라일라의 존재감이 지금과 같다면 남은 길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회장, 르윈 디 드라이르프.’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기초부의 학생회장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아마 중등부면 총학생회에 들어가고, 고등부에 들어갈 때쯤이면 총학생회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할 수는 없지.’
학생회는 지옥이다.
기초부 정도는 적당한 권력과 놀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중등부만 올라가도 권한과 일이 동시에 많아진다.
고등부? 거기까지 가면 끝이다.
괜히 고등부 학생회에 들어가면 제국 공무원 시험이 그냥 패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준비된 노예 생활.
그것은 르윈이 원하는 아카데미 생활이 아니었다.
‘기껏 여신의 노예를 탈출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카데미의 노예가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르윈은 어떡해서든 라일라를 키워야 했다.
베르샤 아카데미 종신 학생회장, 라일라 라인하르트를!
“그렇게…….”
신입생 대표로 연설을 하던 라일라는 갑작스러운 한기에 작게 몸을 떨었지만, 곧 연설을 이어 나갔다.
“이상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박수와 환호가 울려 퍼졌다.
어떤 이는 순수하게, 어떤 이는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에, 또 몇몇 이들은 지겨웠던 입학식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환호였지만.
‘좋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는 듯한 그 느낌에 라일라는 묘한 쾌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라일라.”
“왜?”
“아카데미에 왔으면 학생회장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던진 미끼를.
“당연하지!”
라일라는 너무나 쉽게 물어 버리고 말았다.
***
아카데미 입학 1일 차.
지겨운 입학식이 끝나고, 신입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것을 보며.
“준비됐지?”
“당연하지.”
“지금 이 순간이, 올해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매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신입생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녕?”
“어, 어, 안녕하세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에 신입생들이 1차로 당황,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선배라는 사실에 2차로 당황하지만.
“신입생이지? 내가 좋은 정보가 있어서 알려 주려고.”
“아직 동아리 안 들어갔지?”
그 말에 신입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입학식을 했는데, 어떻게 동아리에 들어가겠는가!
“우리 아카데미에서 가장 활동 성적이 좋을 예정인 동아리가 있는데.”
“이 동아리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앞날이 활짝 필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온갖 좋은 말을 내뱉고 있지만, 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신입생들은 그것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 그게.”
둘, 혹은 세 명의 선배들이 한 명의 신입생을 붙잡고 몰아붙인다.
아직 어린 나이, 거기에 인생의 대부분을 가문과 사용인들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그들에게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어때? 좋지?”
“자자, 여기에 이름만 적으면 돼.”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라니까?”
“선배 말만 들으면 아카데미 생활이 편해진다.”
선배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당했던 일이었기에!
“저게 그 유명한 신입생 사냥이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며 르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을 동아리로 끌어들이고 예산 타 먹으려고 하는 거지.”
“그래도 되는 겁니까?”
마치 늑대 무리에 사냥당하는 양 떼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인스는 그 참혹한 현장을 피해 눈을 감으며 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안 그러면 도태되니까.”
동아리는 중복 가입이 불가능하다.
중복 가입이 가능하다면 다수의 유령 부원을 만들어 예산을 타 가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다 관리하면 다수의 인원이 가입할 수 있겠으나.
‘그럼 학생회가 죽겠지.’
그것을 관리할 기관인 학생회는 늘 인력 부족에 업무는 늘 쌓여 있다.
학생회가 쓰러지면 그 일거리는 교수를 비롯한 학사진들에게 넘어간다.
수업 준비와 자신들의 연구에도 시간이 없는 이들이 그것을 원할 리 없으니, 그냥 간단한 방법으로 차단하는 것이 최고였다.
그렇기에 동아리들은 더 많은 예산 확보를 위해 신입생들을 노려야 했다.
“그런고로 우리를 저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 준 선배님에게 박수.”
짝짝짝.
“…….”
“…….”
“…….”
“…….”
르윈이 손뼉을 치는 것을 보며, 라일라와 세 시종은 옆에서 썩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루테스 디 바벨리안.
대륙 최강의 국가, 제국의 4황자가 그곳에 있었다.
“…이거 때문에 부른 거냐?”
한 달 정도 굶은 상태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맹수와도 같던 선배들이, 루테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돌아갔다.
베르샤 아카데미의 명물.
베리엘의 그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한 모습!
“아니요.”
하지만 르윈은 루테스를 벌레 기피제와 같은 용도로 부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조금은 그런 목적이 있기는 했었으나.
“동아리 가입하려고요.”
“그럼 저기서 미쳐 날뛰는 녀석 한 명만 붙잡으면 되는 거잖아.”
왜 귀찮게 자신을 협박해 불러냈냐는 말에 르윈은 작게 미소 지었다.
“저기에는 없는 동아리니까요.”
“뭐, 만들게?”
“아니요.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동아리는 만들 수가 없잖아요?”
“그게 나랑 뭔…….”
뭔 상관이냐.
그렇게 물으려던 루테스는 무언가를 깨닫고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너, 혹시…….”
“네.”
그러지 말라는 목소리였지만, 르윈은 다른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적.
그리고 매우 운이 좋게도 그 목적과 루테스는 연결 고리가 있었다.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생각했던 곳이거든요.”
“…….”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한 르윈의 미소에 루테스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