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35. 인생 10회 차는 시도한다 (1)
아카데미 수업이 재개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르네.”
“시험이 있으니까요.”
아직도 아카데미 안에 종교계 인사들과 공무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학생들은 수업에 나와야 했다.
“너희들에게 들려줄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다.”
평소에도 그리 좋은 안색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만난 담임 바르바의 안색은 더욱 죽어 가고 있었다.
그런 얼굴로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을 알려 준다니.
“일단 좋은 소식은 시험 기간이 일주일 정도 미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확정은 아니고.”
당연한 말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일주일을 넘게 쉬었는데 시험을 정상적으로 본다니.
아무리 드림 월드를 이용한 테스트가 주가 되었다고 하나, 이론 시험의 잔재는 아직 남아 있었다.
아니, 그 전에 수업을 하지 않으면 아카데미를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일주일이 아니라 그 이상 미루어진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한정적인 재화다.
심지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기도 했다.
즉, 시험이 일주일 미루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그다음은 안 좋은 소식이다. 일단 시험이 미루어지는 만큼 방학도 미루어진다. 작년하고 비교하면 2주 정도 밀릴 예정인데…….”
그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방학이 2주 밀린다니.
‘아니, 2주?’
정신을 차린 학생 하나가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궁금한 거라도 있나?”
“선생님!”
“교수다.”
“아무튼요! 왜 시험은 일주일 미루어지는데, 방학은 2주나 밀리나요? 혹시 개학도 2주 뒤인가요?”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당황했다.
방학이 2주 밀리면, 개학도 2주 밀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어른의 사정이다. 당연히 개학은 작년하고 비슷하고.”
“아…….”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는 법이다.
기숙사 안에서 따분하게 지내던 시간과 방학 2주를 등가교환 하다니.
이건 너무 불합리한 일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 그리고 다 예상했겠지만 놀러 가는 건 다 취소가 되었다.”
“…….”
“이건 아직 말이 안 나온 거긴 한데, 제국제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건국제니 열릴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외부 인원은 받지 않는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아, 그리고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제국 감찰관분들이 한동안 아카데미를 돌아다닐 거다. 감찰관 하면 무서운 이미지지만, 아무나 찌르는 사람들 아니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학생들은 안 찔러. 난 찔리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바르바를 보며, 학생들은 바르바의 안색이 죽어 가는 이유를 살짝 알 수 있었지만.
“교, 교수님!”
“응, 왜.”
“그런데 안 좋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교수의 안색을 신경 써 주기에는 일방적인 통보가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지, 몇 개라고는 말 안 했다.”
학생들은 뻔뻔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르바는 진심이었다.
다른 교수들은 학생들을 잘 어르고 달래고 있겠지만.
‘그래서 바뀌는 것도 없는데.’
정확한 설계를 바탕으로 완벽한 과정, 그리고 계산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마법이다.
그리고 바르바는 마법 연구자로서는 제법, 아니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학생들을 맡는 담임으로서는 초짜 중의 초짜.
그렇기에 은연중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을 대하듯 학생들을 대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인권이 없는 이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아직 안 좋은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는 교수는 학생들의 한탄에도 계속 말을 이어 나갔고, 학생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세상이 어수선해도 아카데미는 굴러간다.
아무리 그래도 테러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안 된 후인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싶지만.
이럴 때 오히려 밖에 돌아다니면 더 위험해지는 법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아카데미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카데미에서 고용한 인력은 물론 군부에서 보낸 병사들, 거기에 이번 사건에 찔리는 것이 많은 창조의 교단에서 보낸 병력까지 수시로 돌아다니고 있기에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황실 아카데미보다도 더 안전한 곳일 수 있었다.
그 대신 인근 상권은 뒤숭숭한 사건으로 인하여 한동안 문을 닫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카데미는 겉보기에는 평화를 되찾아 가는 분위기였다.
“사람 살려…….”
하나 안으로 파고들면 피 말리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이어 참고인 조사를 받는 총학생회장 데일드는 죽을 맛이었다.
‘선배들이 한 말이 이런 의미일까?’
공무원이 된 선배들과 가끔 연락이 닿는 일이 있을 때.
그들은 공무원이 되면 의외로 높으신 분들을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아카데미 학생회 시절이 더 많다며 지금만 고생하면 된다는 말은 덤.
그에 웃어넘긴 데일드였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놓고 말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보다 높은 사람은 장관급이나 그 위밖에 없을 테니까.’
데일드가 들었던 바에 따르면 실무에서 뛰는 이들은 보통 팀장이랬다.
차장과 부장 정도를 만날 정도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나 데일드의 품속에 차장과 부장의 명함은 하루가 지날수록 쌓여 가고 있다.
감찰부, 정보부, 재무부의 부장들이 찍은 인재라는 사실이 어느새 퍼져 다들 한 장씩 챙겨 넣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
고작 작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명함이 얼마나 무겁겠냐마는, 그 안에 담긴 이름들을 생각하면 하루가 지날수록 온몸이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옆에 있었다.
“…….”
“레피스 선배, 드라이르프 가문에게 부탁해서 받아 온 약입니다. 드시면 기운이 좀…….”
르윈의 시종이 아닌, 레피스의 시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레피스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데이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데일드가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으로서, 그리고 제국 측에 첫 제보를 한 이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면.
레피스는 창조의 교단과 일을 함께 진행한 이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었다.
물론 레피스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을 리 없다.
행사에 참여한 중요 인물이라고 하나, 아직 학생.
그것도 이름도 이상한,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 없는 신에 이름을 붙여 탄생한 신흥 종교 동아리의 회장일 뿐이었다.
제국 측에서 보면 왜 이런 사이비 종교 동아리를 탄압하지 않고, 오히려 밀어주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 아 하고 입을 좀 벌리세요.”
“으아…….”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창조의 교단은 매우 큰 실수를 하였고.
그로 인하여 제국의 심장부에서 제국의 백성들이 위험을 겪었다.
그것도 제국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 귀족의 혈통인 이들이 말이다.
그렇기에 제국은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제국이라는 이름과 달리, 대륙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신앙인 창조의 여신과 용사라는 두 키워드와 연관이 없었던 제국으로서는 이번 기회를 살려 창조의 교단에게 최대한 많은 빚을 지게 할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교단의 잘못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고자 안달이 나 있었다.
“네. 잘 마셨어요. 이제 푹 쉬면 조금은 기운이…….”
“있다가 1교시 끝나고, 또 참고인으로…….”
그렇기에 대강당에서 많은 일을 보고 겪었던 핵심 인물 레피스는 꼬투리를 하나라도 더 잡으려는 공무원들의 손길에 고통받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창조 동아리를 비롯한 다른 종교 동아리는 이미 해당 교단의 중요 인물들이었기에 교단에 해가 될 정보를 발설하지 않겠으나.
교단 자체가 없는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인 레피스는 그러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말라 가는 레피스는 빠르게 떠오르는 태양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죽여 줘.”
그래도 살려 달라고 말하는 데일드와 달리, 이제는 생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에 데이지는 결심을 한 표정으로 레피스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제가 도련님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뭘……?”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흐리멍덩한 눈은 데이지의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회장 자리, 바꿀 수 있게요.”
본래 정해진 기간을 제외하고는 동아리를 변경할 수 없고, 한 동아리의 회장쯤 되면 더욱더 어렵겠지만.
‘회장님이 나서면 가능하겠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데일드 정도만 나서도 예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바꾸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마신회의 인질이 되기 위해 절대로 못 보낸다는 시종을 제압하고 테러 현장에 방치했다.
그로 인하여 르윈이 조금이나마 양심에 찔리고 있다.
그런 게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으나, 데이지로서는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 기회를 노려 눈앞에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당연히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괜찮아.”
그러나 데이지의 굳은 결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네?”
“괜찮다고.”
다 죽어 가던 레피스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불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씨는 빠르게 퍼져 나가며, 이윽고 커다란 화마가 되어 날뛰었다.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워. 약도 고마워.”
보약의 효과가 뛰어났던 것일까?
어느새 기운을 차린 레피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늦었어.”
아니었다.
레피스를 일으킨 것은 보약이 아닌 분노의 힘이었다.
“선배…….”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끝내.”
이대로 동아리 회장을 그만둔다면 다시 예전의 평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레피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 환경이 바뀌었고, 인식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냐고 왔던 부모님의 편지도, 이제는 우리 딸이 잘해 내고 있어서 기쁘다는 편지가 오고 있었다.
비슷한 이들만 가득하던 교우 관계도 1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지금 돌아간다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 받았던 고통도 마찬가지였다.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야지.”
어차피 회장 자리를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참고인으로 끌려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회장을 그만둘 필요가 있을까.
“서, 선배님?”
당황하는 데이지를 보며, 레피스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말했다.
“지난 1년, 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어.”
평화에는 힘이 필요하다.
힘과 권력이 부족해도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탐하지 않고 조용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번 휩쓸려 보니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해. 그래야 휩쓸리지 않는 거야.”
“…….”
바다 위를 떠도는 부표와 같은 삶을 사는 것보다는 세계수처럼 뽑히지 않는 거목이 되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레피스를 보며, 데이지와 데일드는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