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35. 인생 10회 차는 시도한다 (4)
“이거 줄 테니, 우리 애랑 헤어져요.”
책상에 종이봉투를 툭 올려놓으며, 르윈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뭐 하세요?”
“연습. 이런 거 한 번쯤 해 보고 싶기는 했거든.”
고위 귀족 가문의 안주인이 자기 아들과 연애 중인 평민에게 돈을 건네주며 헤어져 달라고 요구하는 장면.
나중에 자신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따라 해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이런다고 진짜 헤어질까?”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은 돈과 권력도 이겨 낼 수 있을까.
그 의문을 풀고 싶었지만, 인생 9회 차 중 자식이 있었던 적은 없었기에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는 못했던 르윈이었다.
“보통은 헤어지죠.”
책 속의 이야기에서는 대부분 사랑이 이기지만, 현실은 대부분 돈과 권력이 이기는 법이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데이지를 보며 르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현실을 퍽퍽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제 현실을 실시간으로 퍽퍽하게 만드시는 분이 누구신데요.”
“좋아. 나중에 데이지도 연인이 생기면 돈 주고 헤어지라고 해야겠다.”
“혼삿길마저 막아 버리겠다고 본인 앞에서 선언하다니…….”
“그럴 리가. 고난과 역경은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법이야.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고 너를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아 주는 거라고.”
“권력을 이겨 내기에는 드라이르프 가문은 너무 강합니다만?”
“걱정하지 마. 너의 주인은 야반도주 정도는 가볍게 넘어가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의 시종은 주인이 야반도주 소식을 듣자마자 싱글벙글 웃으며 추격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절대 야반도주할 일은 없다고 선언하는 데이지를 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저는 재미없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데이지는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문득 르윈이 했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잠깐만요.”
“생각해 보니 야반도주도 나쁘지 않은 것 같지?”
“절대 아닙니다. 조금 전에 ‘저도 연인이 생기면’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는데?”
“…지금 하는 연습. 누구 때문에 하는 일이죠?”
“비밀인데.”
그 말이면 충분했다.
르윈이 저렇게 간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아카데미 내에서라면 우리랑 라일라 아가씨 정도.’
일단 자신은 아니니 제외.
라일라는 테러 사건 이후 하루하루 메말라 가고 있었기에 누군가와 연애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에 비해.
‘누구지?’
자신의 두 동생들은 그림 같은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적어도 중등 교육까지는 자신이 희생하자고 생각했던 데이지의 각오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중 누군가 연인을 만든 것인가.
‘나한테 아무 말도 없었는데.’
개인사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데이지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르윈 또한 고민하고 있었다.
‘말할까?’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데이지의 귀에 흘러 들어갈 내용이었다.
최근 데이지에게 미안한 것도 좀 있고, 또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데이지가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하인스와 관련된 일이지 않은가?
‘굳이 말릴 것 같지도 않고.’
거기에 상황을 설명하면 데이지도 수긍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원래 남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는 법이다.
그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데이지도 조금은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데이지.”
“네, 도련님.”
그렇기에 르윈은 동료를 늘리기 위해 절대 지켜지지 않는 그 발언을 하며 말했다.
“너만 알고 있어야 하는데…….”
***
“하아!”
르윈의 말이 끝난 후, 데이지는 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한숨을 내뱉으며 연신 마른세수를 하였다.
“한 종족의 차기 후계자니까, 그것도 돈 많이 벌어 가기로 유명한 마녀의 후계자니까. 돈보다는 마법과 관련된 걸 넣어서 주는 게 어떨까 싶은데.”
“도련님, 제발… 제발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주어야 상대가 효과적인 반응을 보일까 상의해 오는 르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데이지는 손을 저으며 잠시 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다.
‘베리엘 님에게 예리엘만 주시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어쩌다 후작 가문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탁을 했었다.
그러나 하인스는 달랐다.
그의 주변에 위험한 인물은 없었으니까.
드라이르프와 어떻게든 연이 닿고 싶어 하는 이들과 순수하게 하인스의 재능과 노력을 보고 다가오는 이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호감을 나타내는 몇몇 하급 귀족과 평민이 있었을 뿐이었다.
‘정체를 숨긴 마녀의 후계자? 그게 뭔데?’
연애 소설에나 나올 법한 주제였다.
아니, 백 보 양보해서 현실에 있을 수 있다고 쳐도, 베르샤 아카데미와 같은 어중간한 곳이 아닌 황실 아카데미에서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다니.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인스와 엮이다니!
“아으…….”
머리가 복잡하다.
르윈 하나만으로도 벅찬 데이지였는데, 그냥 즐거운 아카데미 생활을 하라고 방치해 둔 동생들도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애들 잘못은 아닌데.’
마녀의 후계자도 자신의 의지로 하인스에게 접근했고, 데르칸 후작가의 혈족도 자신의 의지로 예리엘에게 접근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그건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도련님도 내 잘못은 없다고 주장하겠지.’
외통수였다.
르윈이 직접 벌인 일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아니, 그렇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실력이 뛰어났다.
“하.”
그러니 나중에 딴소리 나오지 않게 확실하게 말해야 했다.
“애들이 문제네요.”
예리엘과 하인스에게는 아주 조금 미안하지만, 주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시종의 의무다.
“왜? 상대가 반하는 게 애들 문제는 아니잖아.”
“아니요. 문제입니다. 상대가 반하기 전에 철벽을 쳤어야죠.”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건 데이지의 장기이기도 했다.
자신의 주인을 보며 수없이 학습한 결과였으니까.
“타니야 님과 베렐스 님의 요청도 이해가 됩니다. 확실히, 차기 후계자가 어린 시절부터 인간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고민이 되겠지요.”
하인스가 나빴다.
그렇게 주장하며, 두 마녀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저도 돕겠습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데이지를 보며, 르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
플라나 아룬.
제국 먼 지방의 하급 귀족인 아룬 가문의 영애로서 시골에서 살아서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순진한 귀족.
플라나는 그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선배, 저건 뭔가요?”
“아, 그건.”
순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으면, 이 친절한 선배는 진지하게 자신의 질문에 답해 준다.
그뿐인가?
“아, 그렇군요! 저도 아카데미 인근 도시에 가 보고 싶은데.”
“얼마 전의 테러로 근처 시설들이 다 문을 닫았으니까. 소문에 의하면 도시 쪽은 아직도 감찰관분들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더라.”
“아쉽네요. 소풍도 그렇고, 아카데미 외출증 받고 도시 구경하는 것도 다 기대했었는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녀의 세상에서만 살던 플라나에게 소풍과 도시 구경은 아카데미 입학의 목적 중 하나였으니까.
“늦어도 내년이면 통제가 풀릴 테니까. 그때 같이 가면 되지.”
“정말요? 같이 가 주시는 거죠!”
그러나 플라나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일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데이트 약속!’
물론 상대의 성격을 고려하면 단둘이 간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의 옆에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소꿉친구와 같은 존재도 있었고, 또 그를 노리는 많은 연적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플라나는 자신이 있었다.
‘단둘이 나가는 상황을 만들면 그만이야.’
소꿉친구는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가족과 같은 상대였고, 또 그쪽도 제법 인기가 많았기에 달라붙는 남자가 많았다.
개중에는 마녀의 후계자인 플라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제국의 고위 귀족도 있는바, 여차하면 신분을 밝히고 그자와 연합할 생각도 있었다.
그해 비해 이쪽은 아직 진가를 깨달은 이들이 얼마 없으니.
‘내 상대가 아니지.’
천재가 많기로 소문난 마녀라는 종족 중에서도, 그 재능을 인정받아 차기 후계자가 된 자신이다.
제국을 넘어 대륙 최고 교육 기관이라는 황실 아카데미에서도 적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그녀에게 베르샤 아카데미의 어중간한 학생들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헤어지세요.”
“…네?”
그러나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단호한 어조로 자신에게 선고하는 눈앞의 존재가 그러했다.
‘왜, 왜지?’
데이지.
그녀에게 처음 호출되었을 때, 플라나는 기뻤다.
그녀가 누구인가?
자신이 반한 남자가 늘 고마워하고,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처음에는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고 긴장했으나, 그가 ‘누나가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사실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있거든.’이라고 쑥스럽게 말한 것을 들은 이후.
데이지는 적이 아닌, 가장 아군으로 삼아야 할 존재라고 깨달은 플라나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니.
입꼬리가 휘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며, 거울 앞에서 최대한 예쁘게 보이기 위해 단장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헤어지라고 말한다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걸 처음으로 경험한 플라나는 혼란에 빠졌다.
“저, 저기, 그게 무슨…….”
그렇기에 플라나는 자신이 들은 말을 부정했다.
연애 사망 선고의 5단계 중 1단계의 증상이었다.
“하인스와, 제 동생과 헤어지라고 말했습니다.”
“…….”
또렷한 그 목소리에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분노했다.
“제가 왜요?”
2단계 증상이었다.
“아무리 가족과 같은 사이라고 하더라도, 친동생은 아니잖아요. 누구와 헤어지라고 할 위치는 아니잖아요!”
“할 말은 많지만, 귀찮으니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가족이 아니라고요? 그렇다 쳐도 저는 르윈 디 드라이르프 님을 모시는 시녀장 후보입니다. 도련님의 모든 시종을 총괄하시는 집사장 알렉스 님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
“그러니 전속 시종인 하인스에게 임무 수행에 방해되는 것을 금지할 권한이 있습니다.”
“아…….”
상대가 예상한 것 이상의 거물이었다.
그냥 가족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마음만 먹으면 하인스의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였다니.
‘이, 이길 수 없어…….’
흔히 먼저 반한 놈이 지는 거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나는 이미 하인스에게 졌다.
그리고 종교에 빗대어 하인스가 평범한 신자라면, 데이지는 그 신자를 마음대로 통솔할 수 있는 교황쯤 되는 인물이었다.
‘어, 어떡해?’
그 사실을 깨닫고 플라나는 공포에 빠졌다.
3단계 증상이었다.
“하인스는 드라이르프 가문에 종속된 자이며, 르윈 디 드라이르프 도련님을 모셔야 하는 전속 시종입니다. 그런 자가 이름도 모르는 가문의 영애와 사귀는…….”
“사, 사실은!”
이름도 모르는 가문이라 안 된다.
그 말에 플라나는 눈을 빛냈다.
‘아직 기회가 있어.’
“뭐죠?”
싸늘한 눈빛에 잠시 움찔했지만, 플라나는 각오를 다졌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가문이 아니에요.”
나는 사실 마녀다.
그것도 마녀의 후계자로 내정이 되어 있는 자다.
그것을 밝힌다면, 아무리 드라이르프라고 하더라도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
드라이르프의 직계 혈족이라면 모를까, 시종과 연애하는데 말리지는 않겠지!
‘가능해!’
4단계, 흥정의 단계에 돌입한 그녀는 눈을 빛내며 그 사실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혹시나 자신이 차기 마녀의 후계자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면.”
“어……?”
“굳이 말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모시는 곳은 드라이르프입니다. 그것도 모를 것 같습니까?”
사실 르윈이 말해 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아마 르윈도 마녀들이 알려 주기 전까지는 몰랐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데이지였으나, 르윈 덕분에 단련된 포커페이스는 완벽했고.
“…….”
그렇기에 플라나는 절망했다.
‘이, 이렇게 끝이야?’
마지막 5단계, 체념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플라나는 차기 마녀의 후계자였다.
그녀가 현 위치 로드의 혈족이고 천재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차기 후계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노력가였고, 또한 어린 나이였지만 아주 강한 정신력을 보유한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체념의 단계가 찾아오기 전, 마지막 5단계 기출 변형을 해내었다.
“앗! 오후에 기사 동아리 단체 연습이 있었는데!”
“네?”
“시간이 다 되었으니,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죠!”
연애 사망 선고, 회피 1단계.
도주.
두 발에 마법까지 걸며 도망치는 플라나의 뒷모습을 데이지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