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
20화 5.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 생활을 한다 (2)
이름 없는 신.
과거에 존재했다는 잊힌 신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이름이 없기에, 신앙조차 없는 존재들.
“거길 들어간다고?”
루테스의 말에 르윈은 태연한 얼굴로 받아쳤다.
“동아리 선배님이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난 그냥 들어간 건데?”
모든 학생은 동아리에 들어가야 한다.
학생 신분으로서 조금 더 많은 활동을 하라는 의미로 황실 아카데미에서 만든 교칙이었고, 곧 대륙 대부분의 아카데미에서 불문율이 된 교칙이기도 했다.
“어차피 한 곳은 들어가야 했고.”
이름 없는 신을 연구하는 동아리.
그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어려울 것 같은 동아리였다.
사실 어려운 일이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긴 아무것도 안 하니까.”
그것도 활동을 해야 어려운 일.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는 그저 동아리 가입 원칙을 지키기 위한 이름뿐인 동아리였다.
“너도 그래서 들어가겠다는 것 아니냐?”
“아닌데요?”
“뭐?”
르윈의 말에 루테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동아리 활동을 하기 귀찮아서 들어가겠다는 말이 아니라면.
“진짜로 찾으려고?”
“네, 진짜로 찾으려고요.”
진짜로 이름 없는 신을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드라이르프 가문은 창조신 라헬을 믿고 있지 않나?”
“아닌데요? 가문 사람들 대부분이 그쪽일 뿐이지, 마족 신들 빼고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인데요?”
맞지?
그렇게 말하는 듯한 르윈의 시선에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전하. 저희 중에 라헬 신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대중적인 신은 창조신으로 불리는 라헬이었지만, 아주 어린 시절 그 창조의 교단의 조력으로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던 데이지였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물론 그런 그녀를 친언니, 친누나처럼 따르는 예리엘과 하인스에게 창조의 교단은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 어?”
나는 아닌데.
그렇게 말하려던 라일라는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르윈과 달리 눈치를 챙길 줄 아는 귀족 영애였다.
“그래?”
그 말에 루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인류의 과반수는 창조의 교단을 믿고 있었고, 그 외에는 창조신 라헬의 밑에 있는 신들을 믿는 상황.
그다지 신을 믿지 않는다면 모를까, 굳이 이름 없는 신을 찾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뭐, 알아서 해라.”
루테스는 그리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창조신을 믿든, 그 하위 신을 믿든, 잊힌 신을 믿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니까.
‘그냥 다 꺼졌으면 좋을 뿐이지.’
계속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공작가 놈들이 귀찮을 뿐이다.
그렇기에 루테스는 그들을 빠르게 동아리방으로 안내하고 자리를 뜨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네.”
그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아무런 활동이 없었기에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사실이었다.
“진짜 활동 안 하나 보네.”
어두컴컴한 방.
기다란 책상 하나, 그리고 구석에 드문드문 쓰러진 책들이 보이는 책장이 하나, 그리고 의자가 서너 개.
그것이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내부의 전부였다.
“먼지가 이 정도로 쌓였다는 것은, 적어도 몇 달은 방치된 것 같네요.”
“방학이니까 활동을 쉬었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커튼 좀 봐. 이거 몇 년은 안 빤 거 같은데요?”
데이지를 비롯한 사용인 셋은 동아리방의 청소 상태에 인상을 찌푸렸다.
직업병이 도졌는지 청소 도구를 찾는 모습을 보며 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동아리가 이렇게 허술하다니.”
“너 아직 가입도 안 했잖아.”
라일라의 핀잔에 르윈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이렇게 개판으로 운영하면, 뺏을 수밖에 없지!”
드물게 진심인 르윈의 모습에 청소를 시작하려던 세 시종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련님이 저렇게 열정적으로 뭔가를 한다고?”
“언니, 뭔가 위험한 거 아니야?”
“분명 위험한 거지. 분명해.”
“그렇지?”
세 사람의 소곤거림에 라일라 또한 빠르게 합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뭔.”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루테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역시 그 주인에 그 시종이라고 해야 할까.
공작가 막내아들을 대하는 시종들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공작가의 영애도 그 시종들에게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르윈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이 동아리는 이름 없는 신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야. 이름 없는 신의 이름을 찾아내는! 새로운 신을 탄생시키기 위한 동아리!”
창조의 교단에서 판단하기에 따라서는 바로 이단으로 지정될 수도 있는 말을 지껄이는 바로 저놈이 제일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
“그냥 저희도…….”
청소가 끝난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그곳에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극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희의 꿈은 훌륭한 기사잖아. 나는 너희가 그 꿈을 이루길 원해.”
“언니…….”
예리엘이 눈물을 흘리며 데이지의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보며 하인스 역시 조용히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야, 누가 보면 못된 동생들 때문에 못된 귀족에게 팔리는 줄 알겠다.”
그 모습을 본 르윈은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비슷하긴 하지.”
“시끄러워. 그리고 쟤들은 이미 오래전에 내가 샀거든?”
“르윈이 산 게 아니라,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산 거지.”
“그게 그거다.”
라일라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르윈은 손을 휘저었다.
“오늘 일과 끝나겠다. 동아리 가입은 한 달 안에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럼 다 끝이야.”
말이 한 달이지, 입학 후 일주일이면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랑 회식이 끝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한 달?
그때면 이미 동아리에 친해질 사람들은 다 친해지고, 동아리 내에서 파벌도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왕따 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들어가서 자리 잡아라.”
물론 진짜로 왕따를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용인 출신이라 하지만 그 뒷배는 드라이르프 공작가다.
괜히 건드렸다가 화를 당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친해져서 르윈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려고 할 터.
“그렇다고 너무 친해져서 귀찮은 것들 데려오면 죽는다?”
짧은 한마디에 신파극을 찍고 있던 예리엘과 하인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라졌다.
“괜찮을까요?”
“검술 연구회는 마법 연구회랑 더불어서 가장 큰 동아리니까.”
아카데미 구석, 먼지만 날리고 있는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와 달리 거대한 건물 하나를 동아리방으로 받아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르윈은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넌 괜찮고?”
“네.”
예리엘과 하인스와 달리 데이지는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누군가 한 명은 도련님의 곁을 지켜야 하니까요.”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 대한 억제기.
데이지는 그것을 자처한 것이다.
“그냥 마법 관련 동아리를 가도 상관은 없는데.”
“맞아. 나도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라일라를 보며 르윈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는 왜?”
“어?”
같이하자고 데려온 거 아니었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에 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 라일라.”
“응.”
“너는 학생회장이 되어야 해.”
“응.”
“뭐?”
빠질 타이밍을 놓쳐 조용히 의자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루테스는 르윈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학생회는 꼭 들어가야 하는 동아리가 있어.”
“그래?”
“…….”
고개를 갸웃하는 라일라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르윈의 모습을 보며 루테스는 경악했다.
‘저 새끼가?’
두 사람은 친구가 아니었나.
적어도 라일라의 행동은 르윈을 친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르윈이 쓰러졌을 때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이겠지!
“바로 노동 동아리란다.”
“노동 동아리?”
“…….”
전설로만 내려져 오는 동아리.
이름부터가 절대 가입하고 싶지 않은 동아리를 꺼내는 르윈을 보며 루테스는 확신했다.
‘저 새끼는 악마가 분명해.’
학생들은 모르지만, 교직원들은 모두 아는 전설의 동아리였다.
이름 그 자체로, 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아리.
“응. 학생은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이 의무잖아?”
“그렇지.”
“하지만 학생회는 학생회 활동으로 매우 바빠.”
“응, 그렇다고 들었어.”
“하지만 결국 학생회도 학생이야. 그렇기에 동아리에 들어가야 하지.”
“여기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생회의 권한은 생각보다 강하거든.”
“그래?”
“그렇기에 학생회 임원이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그 동아리는 막강한 권세를 얻을 수 있어.”
“그것도 그러네.”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것이 학생회만의 동아리.
오직 아카데미의 일꾼으로서 활동하는 동아리가 있었으니!
“그게 노동 동아리야.”
“그렇구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라일라를 향해 르윈은 담담히 노동 동아리의 장점을 말해 주었다.
“보통은 학생회 임원들만 들어갈 수 있지만, 신청서는 넣을 수 있어.”
“무조건 들어갈 수 없는 거야?”
“그렇지. 학생회만 들어가려고 만든 동아리니까. 하지만 그런 곳에 입부 신청서를 넣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학생회가 되고 싶다?”
“그렇지! 그럼 학생회와 관련된 사람들이 좋게 봐 주겠지?”
‘그렇지.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고 싶다고 신청서 넣는 미친 인간을 싫어할 리가 없지!’
루테스는 창밖을 바라보는 척하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뱉었지만.
“학생회의 신뢰를 얻어야 학생회장이 될 수 있겠지.”
“응! 응!”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의 신뢰를 얻으면!”
“총학생회장이 된다!”
“그렇지!”
루테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느글느글한 학생회장이 사실은 매일 아침 매점에서 위장약을 구매하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하기 싫어. 그만두고 싶어.’라고 중얼거린다는 것을.
그 초인적인 친화력으로, 수많은 인맥을 만들어 활동하는 인간조차도 버거워하는 자리가 총학생회장이다.
그저 자작가의 장남으로서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저 어린 소녀에게, 아카데미에 입학한 첫날부터 총학생회장이 되라고 세뇌를 시키다니.
사실 이름 없는 신을 찾는 이유도 고대에 이름이 지워졌다고 전해지는 마신의 오른팔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루테스는 조용히 악마처럼 속삭이는 르윈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봐. 총학생회장, 라일라 라인하르트.”
“응, 응.”
“모두가 너를 우러러보겠지. 아카데미를 걸어 다니면 모두가 말할 거야.”
“뭐라고?”
“어머, 저기 봐. 저기 총학생회장 라일라 영애가 계셔. 와, 진짜? 저분이 우리 아카데미의…….”
모두가 자신을 바라본다.
그 꿈만 같은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라일라는 오늘 느끼고 말았다.
“부모님도 칭찬하실 거야. 역시 우리 딸이구나. 황실 아카데미에 안 간다고 해서 조금 놀랐는데,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으로 잘 해내고 있구나, 하고.”
“그럴까?”
르윈과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기 위해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던 라일라였다.
그뿐인가? 내년에 시험을 치르자는 말에 대판 싸우기도 했다.
그렇기에 먼저 용서를 하고 베르샤 아카데미에 보내 준 부모님에게 라일라는 마음의 짐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 마음의 짐마저 내려놓을 수 있다면.
“노동 동아리, 가입하고 올게!”
“그래. 데이지랑 같이 가.”
“…가시죠, 아가씨.”
라일라가 길을 잃지 않게, 동시에 사람들이 라일라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데이지를 딸려 보내는 르윈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마저 나가고, 동아리방 안에 남은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너는 정말…….”
못 볼 것을 봤다는 듯한 루테스의 모습에 르윈은 그가 학생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니까.”
비밀로 해 주시죠.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르윈의 모습은 루테스가 앞으로 악몽을 꿀 때마다 나올 정도로.
“어, 그래.”
매우 사악한 미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