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35. 인생 10회 차는 시도한다 (6)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생각보다 재밌는데?”
본인이 맞선을 봐야 할 때는 자괴감이 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남이 맞선을 본다고 하니 구경하는 맛이 쏠쏠했다.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구경거리 취급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에 하인스가 우는 소리를 내었지만, 르윈은 당당했다.
“너도 구경했잖아.”
“…….”
“시종이 모시는 주인을 구경하는데, 주인은 시종 좀 구경하면 안 돼?”
“…….”
이미 쌓아 놓은 업보가 있었기에 하인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맞선을 볼 리가 없었으니까.’
가문에 종속된 시종이 맞선을 본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대부분 일하며 눈이 맞은 시종끼리 주인의 허락을 받고 혼인하거나, 아니면 주인이 주선해 준 이들과 자연스럽게 혼인하는 것을 보통으로 알고 있었다.
‘아무리 도련님이라고 하더라도, 맞선은 생각도 못했는데.’
보통이 아닌 주인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상대는 어떤 스타일이 좋아?”
자연스럽게 맞선 리스트를 준비하겠다는 르윈의 모습에 하인스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아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누가 맞선을 아는 사람하고 봐. 아는 사람이면 그냥 고백하고 연애를 했겠지.”
“아니, 그래도 좀…….”
“그리고 너 아는 사람도 얼마 없잖아.”
“그 정도는 아닌데요?”
억울하다는 하인스를 보며, 르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긴 하네. 그러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예리엘이랑 맞선 볼래?”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다.
겉모습은 아름다운 편이고, 또 제법 인기도 많아 보이나.
‘예리엘은 아니지.’
그냥 가족과 같은 사이라는 것을 넘어, 어릴 때부터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였다.
솔직히 지금 당장 같은 욕탕에 들어가도 아무런 사심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 하인스였다.
‘그보다는 대련장에서 맞붙는 게 더 가슴 뛰겠지.’
그 정도 사이였기에, 맞선에서 예리엘을 만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하인스였다.
“예, 예리엘은 빼고…….”
“와! 우리 예리엘이 어때서.”
“그런 이야기가 아닌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고등부 선배는 어때?”
“너무 나이 차이가 심한 것도 조금은…….”
“더럽게 까다롭네.”
“앞으로의 인생이 달린 거니, 까다로운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건 또 그렇네.”
나름 합리적인 의견에 르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모두가 만족할, 합리적인 방법.
그것은 바로.
***
아카데미 곳곳에는 아카데미의 소식을 공지하는 게시판이 존재한다.
보통은 각 학생회의 회의 결과를 붙여 놓거나, 동아리 홍보물 같은 것이 붙어 있었고.
간혹 학생 개인이 만든 대자보나 매점의 신제품들이 붙어 있기도 한 곳이었다.
“공개 오디션?”
그 게시판에 눈에 띄는 게시물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종이에 큼직하게 드라이르프 가문의 문양이 박혀 있는데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뭔데?”
평소 게시판을 보는 인원은 몇 없으니, 한 번 보면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표시였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맞선 상대를 구한다는데?”
“누가? 설마 르윈 디 드라이르프 본인이?”
드라이르프, 맞선.
그 두 가지만으로도 자극적이었기에, 제법 많은 사람이 게시판에 있는 종이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은 아니고, 가문에 속한 인원이라는데?”
“누구지?”
베르샤 아카데미에 다니는 모든 학생이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존재는 알고 있으나, 그의 시종들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가 아니면, 자신들이 르윈과 연관이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
“이건 뭐냐?”
그러나 정확하게 따지면 데이지와 예리엘, 하인스를 모르는 학생보다 알고 있는 학생이 더 많았다.
공작가가 입학한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보를 모으던 학생도 있었고.
또 드라이르프에 접근하려고 시도했던 학생도 생각보다 많았으며.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세 사람은 건국제 행사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르윈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 뿐, 애초에 입학하자마자 건국제에 참여하는 이들은 적고.
또 그곳에서 자신을 증명한 이들은 더더욱 적었기 때문이었다.
“하인스 맞선 본다는데?”
“크하하!”
특히 데이지를 제외한 두 사람이 포함된 동아리, 기사 동아리의 선배들은 예리엘과 하인스에게 거는 기대가 제법 컸다.
그 둘이 드라이르프와 연이 없었더라도 관심을 가졌을 만큼 그들은 재능을 보여 주었고, 그 재능보다 값진 노력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떼어 가도 되나?”
“그러다 학생회에 찍힌다. 안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지, 학생회에서 동아리들 주시하고 있는데. 괜히 감점을 받아서 예산 줄어들면 선배들이 너 죽이려고 할걸?”
“지옥의 100연전은 무섭지.”
톡톡.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자신의 옆구리를 톡톡 건드리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마, 남자 새끼가 옆구리 툭툭 긁는 건 선 넘는 거 아니냐?”
“뭔 소리야?”
“아니, 지금 네가…….”
건드리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던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친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그곳에 작은 소녀가 있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헉!”
“뭐, 뭐야!”
옆에 있는데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사실에 그도, 그의 옆에 있던 친구도 놀랐으나.
“안녕하세요, 선배님!”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방긋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종이들을 한 움큼 집어 그들에게 내밀었다.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좀 나눠 드릴까요?”
“어, 어?”
멍하니 그녀가 내미는 종이를 받은 이는, 그것이 게시판에 걸려 있는 오디션 홍보물과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라일라 후배.”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이와 달리, 그의 친구는 상대가 누군지 눈치를 챘다.
라일라 라인하르트.
르윈 디 드라이르프와 같은 시기에 아카데미에 입학한 공작 가문의 영애이자, 입학하자마자 학생회장을 차지하며 자신을 드러낸 자.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신비인.’
최근 동아리 예산 삭감이 많았고, 그렇기에 가장 만만한 기초 교육 학생회에 동아리 예산 좀 올려 달라고 찾아간 간 큰 학생들이 제법 있었으나.
그들 중 누구도 라일라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는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있을 정도였다.
‘고수다!’
그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라인하르트의 권위에 쫓겨났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즉, 이것은 그녀와 자신들의 경지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몇 년을 더 살았음에도 이 정도 차이이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보다 더한 노력이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더 정진하겠다는 의미였으나.
“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라일라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하, 하하! 하하하하!”
종이 한 장에 예리엘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의 몸으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하, 하윽! 하하!”
너무 크게 웃어 몸이 아플 정도지만, 웃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 맞선이랰……!”
혀가 꼬이고, 눈가에 눈물까지 고이던 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예리엘.”
그 모습을 보며 데이지는 그녀를 말리고자 했다.
아무리 그래도 드라이르프가의 시종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행동이다.
그렇게 다그쳐야 했으나.
“…….”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기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데이지는 참고 있었다.
“누나?”
그 모습을 지켜본 하인스는 공허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누나마저 이러기야?”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기에 하인스는 절망했다.
믿었던 데이지에게 배신을 당했기에 데미지는 2배, 아니 3배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큭.
데이지는 부정하려 했으나, 그 사이로 작게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르윈! 다 붙이고 왔어!”
“라일라 아가씨…….”
믿었던 이들에게 다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하인스는 절망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라일라는 눈을 빛낼 뿐이었다.
“데일드 회장님한테 부탁해서 모든 게시판에 붙이는 걸 허락받았어!”
“좋네.”
“그렇지? 한동안 모든 행사가 중단되었었는데, 학생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거라고 좋아하시던데?”
“총학생회장니이이임!”
아니, 당신마저!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을 억까하는 느낌에 하인스는 좌절했으나.
“이걸로 하인스에게도 좋은 짝이 생기겠지.”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인스인데. 내가 축의금도 넉넉하게 보낼 거야.”
아카데미에서 두 번째로 권력자 집안인 두 남녀가 합심하여 일을 진행하니 하인스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 안 돼. 막을 수 없어.’
수만 가지 수를 떠올려 보았으나 답이 없었다.
그렇기에 하인스는 그간 르윈에게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차악의 수를 생각해 내었다.
“저, 저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다행히 관심을 보인다.
르윈과 라일라가 반응한 것을 보며, 하인스는 광기에 깃든 눈으로 아직도 바닥을 구르는 예리엘을 가리켰다.
“저만 공개 맞선이라……! 하려면 예리엘도 같이해야죠!”
“캬하하! 아, 응?”
미친 듯이 웃던 예리엘이 웃음을 멈추며, 그건 무슨 개소리냐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러네!”
라일라가 눈을 빛내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미친 새끼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자신의 발목까지 끌어당기냐.
그런 심정으로 하인스를 노려보았으나, 이미 하인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하면 너도 해야지! 아니, 그 전에 데이지 누나부터 하는 게 도의에 맞지 않아?”
“하인스?”
갑작스럽게 눈먼 화살에 맞게 된 데이지가 퍼뜩 놀라며 멍하니 하인스를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니.
표정만으로 그것을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그것도 그렇네…….”
옆에서 들려오는 라일라의 작은 중얼거림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
맞선은 멀리서 구경하면 희극이었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었다.
하인스의 물귀신 작전으로 그것을 깨닫게 된 데이지와 예리엘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도…….’
‘아카데미에 맞선을 보겠다고, 저렇게 공개 오디션을 한다고?’
소름이 돋았다.
이제 기초 교육 2학년 1학기가 끝나 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아카데미 기간을 떠올리면 5분의 1도 되지 않는 기간이다.
‘앞으로 지금 한 것에 4배는 더 아카데미에 있어야 하는데…….’
‘아카데미에 전설로 남아 길이길이 전해지겠지?’
어쩌면 베르샤 아카데미의 명물로 남을 수 있었다.
아니, 마법관에 불을 지르는 테러 행위와 제국의 망나니 황태자를 명물이라고 취급하는 미친 아카데미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아카데미 명물, 맞선 오디션.
상상하는 것만으로 수치심에 죽고 싶어진다.
그에 안색이 하얗게 물든 두 사람이 르윈을 바라봤으나.
“데이지랑 예리엘은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번만큼은 르윈에게 구원받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런 게 있어.”
예리엘은 알아서 잘하고 있고, 데이지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연애는 조금 미루어야 했다.
나중에 급해지면 최선을 다해서 구해 주면 되겠지.
데이지가 들었다면 결사반대를 했을 말이지만, 지금은 하인스처럼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차악의 수단, 동료를 늘려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마저 실패한 하인스가 절망한 표정으로 르윈을 바라보았으나.
“네가 너무 잘나서 그래.”
돌아오는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그래. 누가 이딴 오디션에 참가를 하겠어.’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품었으나.
“왜, 왜 잘되냐고!”
그 희망마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