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36. 인생 10회 차는 팝콘을 씹는다 (1)
“플라나야, 그게 무슨 말이니?”
결국 52전 3승 49패의 처참한 전적으로 사실상 패배한 하인스였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르윈이 극비리에 숨겼던 참가자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그렇기에 경기가 모두 끝난 후, 두 번째 관문이 진행되기 전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몇몇 참가자에게는 중도 탈락을 할 생각이라는 말도 들었다.
“마, 마검사가 꿈이었어요!”
그러나 중간에 그만둔다는 선택지가 없는 이들도 있었으니, 후배인 플라나 또한 그중에 하나였다.
“그, 그렇구나.”
‘그나마 이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등줄기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하인스였다.
안 그래도 선배들은 힘으로 이기기 어려운데, 그나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후배가 마검사 지망생이란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플라나의 거짓말이었으나, 하인스가 그것까지 눈치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나보다도 더 강한 거 아니야?’
그의 지인 중, 가장 마법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데이지였다.
그러나 데이지의 마법을 여러 차례 보아 온 하인스도 플라나에게 당한 마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너무나 빨랐고, 너무나 강했기에.
보는 순간 기절했고, 그로 인하여 이후에도 여파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2승을 더 챙긴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아이가.
“선배님, 저 힘낼게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빛내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에, 하인스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
약 2주가 흐른 뒤.
“이건 예상을 못했는데…….”
르윈은 드물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인스의 인기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어!”
그러나 심각한 표정과 달리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소처럼 시답지 않은 말이었다.
“그야 아카데미의 연예인처럼 되고 있으니까요.”
데이지의 말대로였다.
현재 인기리에 진행되는 맞선 오디션의 주인공.
어찌 되었든 52명의 여자에게 선택을 받은 자.
그렇기에 하인스에 관한 관심은 관문이 진행될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외모가 뛰어나기에 많은 이들이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학생회장 자리가 위험할 수도?”
“너 왠지 기대하는 것 같다?”
“그, 그럴 리가!”
라일라의 외침에 르윈이 눈을 가늘게 떴고, 라일라는 그 시선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피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자신의 계획에, 라일라는 종신 학생회장을 맡아야 했다.
기초 교육 과정 3년은 물론이요, 데일드가 가지고 있는 베르샤 아카데미 최연소 학생회장도 갈아치우는 것이 르윈의 목표.
그런데 벌써 정신을 차리다니.
그만큼 학생회로서의 업무가 과다한 것도 있겠으나.
‘재미가 없을 만하기는 하지.’
중요 행사가 다 취소 및 연기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여튼 창조의 교단이고 마신회고 도움이 안 돼요.’
원래 학생회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하면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잘 마무리되고, 또 다른 학생들이 그것을 즐기는 모습으로 보람과 성취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라일라는 학생회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맡은 대형 프로젝트가 마신교의 테러로 망했다.
보람과 성취감은커녕 오히려 뒤처리로 고생을 했을 터.
고생만 있고, 보람이 없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터.
그러니 라일라가 벌써 탈주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허락해 주지 않겠지만.’
아는 지인이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을 위치에 있고.
그러면서 또 성실한 사람은 르윈의 주변에 라일라가 유일했다.
그나마 교체를 한다면 데이지 정도를 고려해 볼 수 있으나, 그녀 역시 다른 역할이 있기에 라일라만 한 인재는 없었다.
“걱정 마. 우린 친구잖아. 내년에도 라일라가 학생회장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
그딴 거 필요 없는데.
눈빛만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한 라일라를 무시한 채, 르윈은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네 번째 관문은 뭘 할까?”
아이디어가 떨어졌다.
솔직하게 고백하는 르윈을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도련님…….”
“그렇게 보지 마. 솔직히 이렇게 잘될 줄 몰랐잖아.”
“그건 맞습니다만.”
계산 착오였다.
입학하자마자 명물이라고 아카데미 건물에 불붙은 것을 자랑하는 것을 보았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우리 아카데미는 조금 미친 것 같아.”
그 말을 내뱉는 이가 르윈이었기에 주변의 이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었기에 굳이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일단 하인스한테 더 맡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조금은 더 생산적인 의견이 필요했기에, 예리엘은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2관문, 3관문도 하인스한테 맡겼잖아요.”
“표면적으로는 맞선이니까.”
대놓고 표면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정도로 하인스의 맞선 오디션은 아카데미의 유흥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죠. 하지만 그 결과.”
예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칠판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분필을 가지고 칠판에 지난 경기들의 결과를 적어 내었다.
1관문-탈락자 3명.
2관문-탈락자 2명.
3관문-탈락자 2명.
“탈락자가 고작 일곱이에요. 열 명으로 시작했으면 모를까. 52명이 시작했는데 이제 일곱이라고요.”
생존자 45명.
많아도 너무 많은 숫자다.
방학 전까지 계속할 생각이 아니라면 슬슬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제 곧 기말시험도 준비해야 하고요.”
“학생회도 2학기 업무를 준비해야 해서 슬슬 바빠지겠지?”
“싫어…….”
데이지와 자신의 말에 축 늘어지는 라일라를 억지로 일으키며, 르윈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럴 때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도록 하자.”
“전문가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이런 이벤트의 전문가라니.
그런 사람이 있는가?
모두가 그런 의문을 보일 때, 르윈은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
“…그래서 사람들이 대량으로 탈락할 관문을 만들어 달라?”
전문가로 초빙된 사람을 보며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네!”
르윈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루테스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했다.
‘루테스 전하가 왜 전문가지?’
‘황실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게 진짜면 제국은 곧 망할 것 같은데, 언니?’
수군거리는 주변에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리는 루테스였으나, 곧 표정을 풀었다.
“솔직히 첫 번째 관문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르윈이 하는 일은 대부분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지만, 솔직히 이번 것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던 루테스였다.
거기다 최근에 르윈이 바쁜 탓에 귀찮은 일이 없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르윈의 관심이 이런 시답지 않은 일에 쏠리면 쏠릴수록 나는 자유로워진다.
그것을 깨달은 루테스는 멀리서 구경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르윈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은 필요 없다. 자극적인 발언이었지. 그런데 참가자 대부분이 그 발언을 한 사람보다 강하다니. 오히려 마이너스야.”
눈물이 주룩주룩 나온다는 매운 음식을 시켰는데, 색깔만 빨간색이고 맛은 달달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설명하며, 루테스는 다음 관문에 대한 평가도 이어 나갔다.
“그다음은 제법 신경을 쓴 느낌이었지.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지를 알아본다. 맞선이라는 의도를 잘 살린 관문이었지. 그러나 문제가 너무 단순하고, 당사자도 너무 단순했어.”
하인스와 같은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학생들을 떨어트린다.
시도 자체는 루테스도 높이 평가했으나, 결과는 그저 그랬다.
“문제가 자극적이거나, 선택지를 고르는 당사자가 자극적이었으면 조금 더 보는 맛이 있었겠지. 하지만 둘 다 아니야.”
하인스는 흔히 말하는 모범적인 정답만을 골랐고, 참가자들 또한 그러했다.
“솔직히 마지막 문제에 반전이 있을 줄 알았거든요.”
“능력이 된다면 애인을 여럿 사귀어도 좋다는 문제였지? 거기서 하인스 녀석이 쓰레기 엔딩을 선택했으면 볼만했지.”
“그랬으면 탈락자가 2명이 아니라 47명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건 좀 볼만했을 수도 있었겠지.”
다만 하인스가 조금, 아니 많이 쓰레기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좀 곤란하지 않나?”
“법으로는 가능하잖아요.”
“부인을 여럿 두는 사람은 흔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수와 연애하는 남자는 흔하지 않지.”
“그건 또 그렇네요.”
“그걸 공식적으로 선언하면 다음 맞선 오디션이 곤란하지 않을까?”
“네? 이걸 또 해요?”
“연례행사로 진행할 생각 아니었나?”
“아닌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표정을 짓는 르윈을 보며, 루테스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맞선은 혼약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매년 하는 게 보통인데.”
“…….”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르윈은 단호히 결단을 내렸다.
‘미안해, 얘들아.’
쌍둥이 동생이 있든 말든, 방학 때 가문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나중에 다 크면 보자꾸나.
그렇게 생각하는 르윈이었으나, 루테스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번 한 번에 끝낼 생각이었나?”
나이 제한도 없고, 고등부 참가자도 받기에 연례행사로 진행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루테스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그렇군. 남은 인원이 있었구나!”
“…네?”
“도련님, 아니죠?”
루테스와 시선이 마주친 데이지와 예리엘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인스가 당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으나, 또 아는 사람이었기에 은근히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이었으나.
당사자가 되면 즐기기는커녕 지옥이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아직이라뇨!”
“도련님!”
“아쉽네.”
“…차라리 연례행사로 진행하시죠, 도련님.”
“하인스도 그러기를 바랄 거예요.”
루테스의 말에 차마 뭐라 못하고 하인스를 팔아먹는 두 사람을 보며, 루테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저들의 주인인 네가 알아서 하고. 3관문도 2관문하고 마찬가지야. 결말이 부족해.”
맞선 오디션이라는 자극적인 시작과 달리 결말이 별로였다.
중간 과정이 나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기에 더욱더 결말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조금 더 자극적인 맛이 있고, 극적인 맛도 있어야지. 역전에 역전에 역전에 역전이 일어나서.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결말.”
“그런 게 있을까요?”
말이 쉽지, 그런 결말을 만드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루테스는 드물게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있지. 그러면서 대량으로 탈락자가 나올 수 있는 게.”
루테스의 말을 들으며 르윈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황실 인증 마크가 박혀 있는 공식 망나니의 의견.
인생 9회 차를 용사로 산 애송이는 따라갈 수 없는 생각에 르윈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모든 수업이 끝난 시간.
“…도련님?”
눈을 뜬 하인스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 구속이 되어 있는 상태.
그 와중에 몸에는 커다란 리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도련님?”
이건 좀 아니잖아요.
그렇게 울먹이는 하인스의 귓가에.
“4관문, 배틀로얄 게임을 시작합니다!”
왠지 평소보다 더 신나 보이는 르윈의 목소리와 함께 역대 최고의 함성을 들으며 하인스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