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36. 인생 10회 차는 팝콘을 씹는다 (3)
자고로 예로부터 싸움 구경은 인간에게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과거에는 권력자들이 노예들을 구매하여 싸우게 하고, 그것을 구경하는 곳이 있었고.
지금은 그것이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기에 대놓고 하는 곳은 없지만, 아직 불법적으로 활동을 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고.
또한 크게 보면 매년 행해지는 행사에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제국의 건국제만 보더라도, 메인으로 기사와 마법사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고.
그 밖에도 여러 행사에서 좋은 인재를 뽑는다는 취지로 쌈박질을 권장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일반인들은 그런 대회를 구경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귀족들이라고 하더라도 능력이 되지 않으면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들의 전투라면 화려함이라도 있지, 검사들은 일검에 승부가 나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기가 있는데, 아카데미 수준은 다를 터가 있겠는가?
오히려 수준이 낮기에 구경하기에는 더 좋았고, 그렇기에 학생들의 반응은 축제와 다르지 않았다.
‘나쁘지 않네.’
아티팩트를 미끼로 건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대다수가 1매점에서 싼값에 구해 온 자잘한 물건들과 타니야나 베렐스가 만든 실패작이었지만.
간간이 쓸 만한 것을 섞었기에 잘만 고르면 학생 수준에서는 괜찮은 물건도 존재했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아티팩트를 준다는 말에 흥분한 것일까.
배틀로얄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 주는 이들을 보며, 르윈 또한 준비했던 팝콘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우승 후보의 탈락! 이럴 수가! 세 명이 한 사람을 쓰러트리기 위해 뭉칠 줄 몰랐는데요!”
생각보다 변수가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아티팩트의 성능 차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실력의 차이를 운으로 메울 수 있게 되었고.
그럼에도 이길 수 없는 경우, 동맹이라는 변수를 만들어 강한 적을 쓰러트리기도 했다.
그뿐인가?
“큭! 어째서!”
“우리의 동맹은 선배를 쓰러트릴 때까지였잖아?”
“배신! 배신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냉정한 판단이라고 할까요? 말 그대로 하극상을 위해 만들어진 동맹! 목적이 수행되자마자 레나 학생이 동맹을 파기합니다!”
곳곳에서 배신과 동맹이 판을 치고 있다.
조금 전까지 같은 목표로 싸우던 이들이 서로 검을 겨눈다.
이유도 다양했다.
목표였던 강적을 쓰러트려서.
누구에게도 매력적인 아티팩트를 발견해서.
혹은 그냥.
그뿐인가?
조금 전까지 싸우던 이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도 있었고.
기척을 감추고 숨어 있다가, 싸우는 이들 사이에 난입하여 어부지리를 챙겨 가는 이들도 있었다.
싸움에서 밀리자 후일을 도모하며 도망치는 이들.
그런 이들의 뒤를 추격하는 이들.
그리고 순수하게 아티팩트만 노리는 이들까지.
‘재밌다!’
메인인 하인스가 방치되는 기분이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중계는 라일라에게 맡긴 채 열심히 팝콘을 뜯으며 맞선을 가장한 배틀로얄 게임을 구경하던 르윈은 이내 팝콘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1라운드도 곧 끝나 갑니다! 현재 살아남은 인원은 총 다섯!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고등부 선배들이 대거 탈락! 오히려 중등 교육 학생들과 기초 교육 학생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만큼 경기는 흥미진진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원래 인생 10회 차고 1회 차고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순수하게 경기를 구경하던 르윈은 곧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기분 탓이지?’
그랬으면 참 좋겠는데.
이런 일은 꼭 기분 탓이 아니더라.
그렇게 생각한 르윈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화장실.”
“지금 중요한 순간인데!”
중계하던 라일라가 중간에 눈치챘으나, 입을 삐죽이면서도 보내 주었다.
그렇게 자리를 빠져나온 르윈은 그대로 건물을 지나쳐 아카데미 뒷산으로 향했다.
“…….”
그리고 저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에 자신의 불길한 느낌이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하아, 하아.”
흔히 공주님 안기라고 부르는 자세로, 하인스를 감싼 포대기를 들어 올리며 플라나는 생각했다.
‘어려서, 살았어.’
“대이변! 배틀로얄의 첫 승자는 따끈따끈한 신입생, 플라나 아룬 양이 차지했습니다!”
귓가에 들리는 환호 소리와 달리 플라나는 탈진 직전의 상태였다.
‘…끝났다.’
최종 5인이 남은 순간, 다섯 중 넷은 암묵적으로 합의를 보았다.
일단 가장 강한 고등부 선배부터 쓰러트리자.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연합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등부 참가자 셋과 플라나는 서로 연계를 하여 고등부 선배를 쓰러트릴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녀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배신이 일어났다.
열다섯이나 되는 숫자 중 이들이 끝까지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끈끈한 우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굳건한 믿음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배신을 모르는 순진한 이들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 고만고만했으니까.
압도적인 강자가 쓰러지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 고등부 인원들이 빠르게 상대를 배신한 것과 달리, 이들은 대부분의 인원이 자신들보다 강하기에 동맹을 끊을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약자였기에 오히려 끝까지 뭉칠 수 있었던 것이고, 강자가 되는 순간 숨겨 왔던 발톱을 꺼냈을 뿐이다.
강자가 사라지는 순간 약자는 다시 강자와 약자로 나뉘었다.
그리고 중등부 인원 셋은 플라나를 약자로 생각했다.
비록 하인스를 쓰러트릴 때 보여 준 마법은 대단했으나, 그건 기습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검술 동아리에 속한 아이가 갑자기 마법을 사용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플라나의 직속 선배나 마찬가지인 하인스였기에 아마 그 충격은 더욱더 컸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셋은 서로를 노렸고, 플라나는 그저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경쟁자가 하나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험했지.’
그것을 보고 플라나도 전투에 참여했다.
앙증맞은 손으로 파밍한 목검을 들어 올렸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처음 얻었던 지팡이와 달리 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아티팩트인 목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검술에 마법까지 사용하여 빠르게 둘을 제압하면 이번 관문을 우승할 수 있다.
나라면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큰 실수였다.
가만히 지켜보았다면 힘을 더 소비한 한 명을 보다 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는데.
자신이라면 충분히 둘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자만과 눈앞의 우승에 눈이 멀어 선배들을 너무 무시했다.
빈틈을 노려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리려 했던 기습은 실패했고.
또 플라나의 실력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선배 둘은 언제 서로를 배신했냐는 듯 손을 잡고 플라나를 압박했다.
몇 번의 위기가 찾아왔고, 그로 인하여 패배라는 글자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
우습게도 마지막 일격을 서로에게 날리며 그들은 기회를 놓쳤고.
플라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선배.”
“읍읍!”
(건물 3층 높이에서 생명의 위기를 느꼈기에)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하인스를 보며, 플라나는 드물게 약한 소리를 내뱉었다.
“솔직히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에 자만했어요.”
교수라는 자들의 수업은 마녀의 사회에서 받은 수업보다 못했고, 또 제국의 인재라는 자들은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같은 시기에 입학했다는 후작 가문의 인원들은 대부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유일하게 매일 보는 사이가 된 데르칸 후작 가문의 아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깝게 행동하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하니 생각한 것하고는 전혀 다르네요.”
“읍읍.”
자신의 말에 공감한 듯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그저 구속을 풀어 달라는 시선을 보낼 뿐인) 하인스의 모습을, 플라나는 더욱 애달픈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우승할 수 있을까요?”
과연 남은 두 배틀로얄의 승자도 자신처럼 약자일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기다리면서 첫 번째 경기를 모두 보았을 테니까.
압도적인 강자들이 약자들의 무리에 각개격파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까.
실력에 자신이 있더라도 동맹을 맺을 것이다.
동맹이 아니라 어떠한 거래가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중에는 어차피 재미로 참가한 것이니 유아독존으로 싸움을 하려는 사람도 있겠지.
어찌 되었든 바보가 아닌 이상 우승을 하려는 자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를 생각할 것이다.
“마지막에도 힘으로 하는 거라면 어떡하죠?”
“읍읍!”
일단 나부터 풀어 줘.
그런 애절한 시선에 플라나는 가슴속 뜨거운 것이 더욱 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배…….”
저 힘낼게요.
“읍읍!”
힘내서 좀 풀어 달라니까.
그렇게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를 하는 그들에게.
“다음 경기 준비해야 해서 하인스를 데려가겠습니다.”
“읍읍!”
이벤트 위원회가 다가와 하인스를 회수했고.
‘살려 줘.’
하인스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다시 한번 장대 바구니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
창조의 여신, 라헬.
인류의 최고신이자, 세상을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존재.
그녀의 은총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매일 간절히 기도하는 신도의 수가 얼마일까.
인류가 살아가는 대륙의 모든 종족이 인정하는 신이었기에.
저 사악한 땅에 사는, 사악한 신을 믿는 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기도할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는 종족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존재가 라헬에게 기도를 올리나, 그것은 그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짝사랑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여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들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세상은 그들을 성자나 성녀라고 부르고 추앙했고.
더 나아가서 오직 인간만이 여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인간이 가장 우월한 종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아니, 알더라도 부정할 사실이라고 하는 게 더 올바를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 중에서 선택받은 존재만이 들을 수 있다는 여신의 목소리를 다른 종족이, 심지어 인간들이 가장 무시했던 수인족이 들을 수 있다니.
“흥흥~”
그러나 여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인족이 있었다.
다른 수인들처럼 강인하지도, 하늘을 날지도, 물에서 숨을 쉬지도 못하지만.
커다란 귀를 가지고, 만물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땅을 통통 튀어 다니는 이들이 존재했다.
약육강식의 수인족의 세계에서 연약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받은 이들.
위대한 창조의 여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무녀이자 제사장.
“여기라고 들었는데.”
토끼 수인, 아이리는 지도를 펼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대하신 창조의 여신 가라사대.
“용사님은 어디 계시지?”
용사가 탄생하였으니, 너희는 그 의무를 다하라.
위대하신 여신님의 말이니, 그것은 따라야 한다.
보통은 다른 수인들이 나갔으나, 이번만큼은 내가 갈 거다!
그렇게 신탁을 받은 당사자가 신탁도 알리지 않고 탈주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아이리는 지도를 집어넣고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모를 때는 기도가 최고다.
그러니 기도해야지.
그렇게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고 기도하니.
‘어쩐지 몸이 가벼운 느낌이야.’
이것도 다 여신님의 은총인가.
근데 왜 귀는 아플까.
기분 탓일까?
“…라고 하기에는 찢어질 것 같은데!”
끄앙!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니, 그곳에는 어린아이가 자신의 귀를 잡아들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간인가.
사악한 이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어린아이도 막 지나가는 토끼를 괴롭히는 것인가!
“…어?”
그러나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리는 고개가 자연스럽게 기울어졌다.
잘 모르겠지만, 수인족 특유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용사님?”
그렇게 찾던 용사가 여기 있다.
그렇게 생각한 아이리였으나.
“끄아아앙!”
용사님은 대답 없이 그녀의 귀를 더 잡아당길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