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36. 인생 10회 차는 팝콘을 씹는다 (5)
르윈이 없어도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첫 경기에 엄청난 변수가 일어나 모두가 기대했으나, 그다음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고.
그렇게 2명의 우승 후보와 기적을 보여 준 신입생.
그리고 반쯤 영혼이 빠져나온 상태로 내려온 하인스를 끝으로 대망의 결승전만을 남기게 되었다.
“결승전은 언제쯤이 좋을까?”
“뭐 할지는 생각을 했어?”
“아직 안 정했는데.”
“전력 차가 너무 압도적인데, 개인전은 무리지 않을까?”
“오히려 개인전이 더 좋지. 1 대 1 대 1이면, 약한 쪽이 킹메이커 역할을 맡을 수도 있잖아.”
“변수를 없애려고 시작부터 둘이서 공격하면?”
“져야지.”
“재미없는데.”
그렇긴 하지만, 애초에 이 이벤트는 플라나가 하인스에게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서 진행한 이벤트였다.
애초에 플라나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변수인 것.
‘이 정도면 운명이라고 믿어 주고 싶을 정도인데.’
구석에서 ‘흐어어!’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뱉는 녀석에게 과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차기 위치 로드의 후계자라는 자리보다 타니야와 베렐스가 약속한 보상이 더 달콤해 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마녀 쪽에서 만든 물건이니까, 하인스를 미끼로 걸면 쉽게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더 쉬운 길일 수 있으나, 다른 이들의 귀에 물건에 대한 정보가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를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니, 자신이 목줄을 쥐고 있는 타니야와 베렐스에게 얻는 것이 더 좋을 터.
‘결국 플라나는 하인스의 편을 들 테니까.’
그리고 그 하인스는 데이지의 편이었다.
이렇게나 내 편이 없다니.
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독해질 수밖에 없다.
르윈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관문을 생각했다.
“괜찮은 게 하나 있네.”
마침 적당히 귀찮은 존재가 찾아왔으니, 어딘가 써먹어야 덜 억울할 터.
‘어차피 달라붙을 거,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게 관리를 해야지.’
수인족의 스토킹 능력은 그간의 인생이 보증한다.
괜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저지르면 더 귀찮으니, 차라리 눈에 보이는 곳에 놓는 것이 더 좋다.
‘일거리를 주면 더 좋고.’
마녀에 이어 수인족도 받아들이는 베르샤 아카데미.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었다.
***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슬슬 공부하는 학생들의 입에서는 시험이라는 단어가, 그와 정반대인 학생들에게서는 방학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쯤.
“르윈 님이 그걸 어떻게…….”
아카데미에 찾아온 수인족이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에, 베리엘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대답했다.
“그건 비밀.”
“…아시는 분입니까?”
“조금은?”
그 대답에 작게 한숨을 내쉰 베리엘은 그녀가 아카데미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역시 잡혔구나?”
“지나가던 감찰부장에게 잡혔다고 합니다.”
아무리 수인족 중에서 최약체를 뽑을 때 늘 거론되는 토끼라고 하나, 인간과 비교하면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갖춘 것이 수인이었다.
그렇기에 손쉽게 아카데미에 침투했을 터.
그러나 불행히도 베르샤 아카데미는 보통 아카데미가 아니었다.
따끈따끈하게 마신회가 테러를 일으키고, 그로 인하여 제국이 한 번 뒤집힌 장소.
제법 시간이 지났다고 하나, 아직도 아카데미의 이사장과 창조의 교단의 높으신 양반들은 제국의 강도 높은 조사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필이면 감찰부에 잡히네.”
“수인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용사님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여 창조의 교단 측에 문의를 해 봤으나…….”
“아는 것이 없다?”
“그렇습니다.”
그럴 것이다.
공식적으로 현시대에 용사로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준비는 하고 있겠지만.’
과거의 용사는 인류의 희망이자 자부심이었으나, 현대의 용사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용사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용사가 없으면 안 될 정도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미리 말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선 중요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들이 우리를 신경 써 준 적이 없지.’
애초에 마족의 침략은 창조의 여신과 파괴의 신의 내기나 마찬가지였다.
즉 어느 정도 룰이 존재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만큼 불이익이 있을 터.
미리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해 주고, 대비하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었다.
“교단 측에서는 추모식에 참석하려던 인원이라고 생각했으나,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서…….”
그렇기에 창조의 교단은 여신에게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여신을 모시는 자신들이 아닌 다른 이가, 그것도 인간이 아닌 수인족이 용사에 관련된 신탁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창조의 교단과 아이리의 주장은 계속 평행선일 테고.
안 그래도 테러로 인하여 어수선한 아카데미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수인족을 타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풀어 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지하 감옥은 예상 밖이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수인족 탄압으로도 보일 수 있는데, 감옥에 집어넣다니.
“…앗! 용… 억!”
그러나 베리엘의 안내를 받으며 아이리가 있는 감옥으로 향하던 르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어.”
함부로 용사를 묻히려고 하는 아이리의 종아리를 걷어찬 르윈은 떨떠름한 얼굴로 베리엘을 바라보았다.
“이거 탈옥 맞지?”
“…….”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베리엘의 모습에 르윈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용… 아니, 르윈 님. 살려 주세요.”
제법 고생을 한 탓일까.
조금은 눈치가 생긴 아이리를 보며 르윈은 준비한 물건을 꺼내었다.
“…그게 뭐예요?”
“당근 몰라?”
“아니, 그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당근을 모를까!
세상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리는 르윈이 내민 당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토끼 귀를 가졌다고, 토끼처럼 당근 먹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맞는데?”
“차별 반대!”
이건 수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었다.
토끼 수인이라고, 토끼처럼 당근을 먹으라고 하다니.
아이리는 인간 세상에 만연한 차별에 눈물을 글썽거렸으나.
“…살려 달라는 게 배고파서 그런 거라면서.”
밥 달래서 밥 가져온 르윈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여기도 풀만 주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토끼 수인이라고 풀떼기만 먹지 않는다. 고기도 줘라!
그렇게 주장하는 아이리를 바라보며 르윈이 말했다.
“감옥에서 반찬 투정을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르윈의 말에 순간 움찔한 아이리였으나,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 나갔다.
“애초에 저 같은 연약한 여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 이상한데요?”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베리엘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르윈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해 주었다.
“저희도 처음에는 저 수인분을 아카데미 귀빈실에 모셨습니다.”
아무리 수상하다고 하더라도, 제국은 공식적으로 모든 이종족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치는 국가였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아카데미에 잠입한 수상한 수인이라고 하더라도 최대한 신경을 써야 했고.
그렇기에 베르샤 아카데미도, 제국의 감찰부도 신분도 불확실한 아이리를 귀빈 대접 해 주었다.
베리엘의 말처럼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귀빈실에 모셨다고 하더라도, 구금은 구금. 감찰부 쪽에서 수인 측 대사관에 연락을 넣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믿음의 대가는 배신이었다.
구금 당일 탈옥 횟수 5회.
주간 탈출 시도 횟수를 모두 따지면 107회.
그 밖에 물품 파손 및 상해까지!
“잠깐! 그렇게 말하면 엄청난 범죄자 같은데, 탈출하려고 커튼 좀 찢은 거랑 나 잡으려다가 넘어져서 다친 사람이 있을 뿐이잖아!”
“저희는 그걸 물품 파손 및 상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맞긴 하지.”
“…비겁한 인간들.”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는 아이리를 무시한 채 베리엘은 아카데미 변호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귀빈실에서는 제대로 된 구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한 단계씩 낮추다 보니 이곳이 되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아카데미라는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만들어진 공간이 지하 감옥이었다.
그 시절에는 아카데미에 테러는 물론이고, 다른 국가의 첩자가 기본.
크게 한탕 할 흉악범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카데미였다.
“그런데 우리 아카데미는 그 정도의 역사가 없잖아?”
“그렇죠. 하지만 우리 대, 아니 우리 이사장님은 다른 아카데미에 있는 게 우리 아카데미에 없으면 게거품을 무시는 분이시거든요.”
요컨대 ‘다른 아카데미에 지하 감옥이 존재하니 우리도 만든다!’라고 하면서 만들었다는 소리였다.
“당연하게 요즘 같은 시대에 지하 감옥을 쓸 일이 없어서 반쯤 창고로 쓰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사건들로 인하여 먼지만 쌓이던 지하 감옥이 개방되었다는 말이었다.
“그 덕분에 이분을 모실 수 있게 되었지만요.”
“그런 것치고는 사람이 없던데.”
“얼마 전까지는 몇 명 더 있었지만, 이전에 사고를 친 마신회 놈들은 제국에서 수거해 갔습니다.”
“살아서 데려간 거 아니지? 시체 챙겨 갔다는 말이지?”
“잠깐만요! 마신회라뇨! 시체라뇨! 그런 건 못 들었는데?”
기겁한 아이리가 코끝을 움찔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어, 어쩐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그럴 리가요? 잘 닦았는데요.”
“끄아앙!”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벽면을 쓸어내리는 베리엘의 모습에 아이리가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 사람을 이런 곳에 가둬도 되는 거예요?”
“사람 아니시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간수 말로는 밤마다 뭐가 나온다고 하던데…….”
“차별 반대!”
수인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아니, 오히려 육체적으로 강점을 가진 수인이기에 귀신 같은 것은 인간보다도 더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꺼내 주세요!”
훌쩍이며 감옥의 창살을 붙잡고 얼굴을 내미는 아이리를 보며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꺼내 줄 수는 있지.”
“역시 용… 아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사의 용 자만 꺼내도 표정이 싸늘해지는 르윈을 보며, 아이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정정했다.
“그래. 앞으로 계속 볼 사이인데, 자꾸 헛소리하면 안 되지.”
사회성 부족한 수인족이니, 이해를 해 줘야 했다.
앞으로 교육을 받으면 사회성이 키워지겠지.
‘그런 의미로.’
“자.”
“…이게 뭐예요?”
“종이잖아.”
“그건 저도 아는데…….”
아이리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무언가 갑과 을의 관계와 계약이라는 단어가 좀.
아니, 많은 종이.
“계약서잖아요.”
“응.”
“부족에서 인간한테 계약서 잘못 쓰면 인생 망한다던데…….”
“어허! 나 못 믿어?”
무려 용사님인데.
그렇게 말하는 듯한 르윈을, 아이리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용사님, 용사님 할 때는 아니라면서.’
이런 불길한 물건을 꺼낼 때만 저러는 것이 불안하다.
하지만.
‘용사님은 용사님이니까.’
“자, 여기 인주도 있으니까. 사인이 없으면 손가락으로 찍어서…….”
설마 여신님의 신탁을 받고 온 사람에게 사기를 칠까.
그렇게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바른 아이리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종이에 손가락이 닿기 직전,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지. 용사님은 말이야. 사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전해 들었던 용사의 이야기.
‘오히려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라고 하더구나.’
그저 카더라라는 이야기였으나, 그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약서 좀 확인해도 되죠?”
“응… 안 돼.”
당연한 권리 행사에 르윈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안심한 아이리의 엄지손가락을, 르윈의 손이 빛과 같은 속도로 찍어 눌렀다.
“악!”
손에 묻은 인주가 종이에 찍히고, 그것을 빼앗긴 아이리가 비명을 내질렀으나.
“잘 찍혔네.”
이미 계약서에 찍힌 지장을 보며 뿌듯하게 웃는 르윈의 모습에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