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36. 인생 10회 차는 팝콘을 씹는다 (6)
“이건 사기예요.”
아이리가 울면서 항의를 해도, 당연히 들어 주는 이는 없었다.
“이제 문제 생기면 소송 건다?”
르윈은 만족스럽게 계약서를 만지작거리며 협박까지 할 정도였다.
“누가 그러면 무서워할 줄 알고요?”
아무리 용사님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이리는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지만.
“참고로 우리 가문 드라이르프인데? 군대 끌고 갈 건데?”
“…….”
태연하게 ‘그럼 전쟁이다!’를 선언하는 르윈의 말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여신님, 이게 용사 맞아요?’
수인족에게 여신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드는 업적을 세운 르윈이었지만, 그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신님, 진짜 이게 맞나요?’
르윈을 통해 신분 보증을 받은 이후, 인간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을 내디딘 아이리는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대망의 마지막 관문!”
“이것으로 최종 승자가 정해진다!”
수많은 학생의 환호와 동시에, 아이리는 얼핏 살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투기를 받아 내고 있었다.
“예로부터 토끼는 도망의 달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바다의 신이 보낸 바다의 자객, 거북이에게 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지혜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라거나, 아예 거북이랑 경주하는 이야기도 있죠.”
“그렇습니다. 그만큼 토끼는 거북이와 많이 엮이는 기분이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어렵게 모신 토끼 수인 아이리 씨와 함께하는 마지막 관문.”
“이름하여 토끼를 잡아라!”
“지금부터 시자아아악!”
“하겠습니다아아아!”
펑!
용사님의 선언과 함께 맑은 하늘에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던 아이리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야수들을 볼 수 있었다.
***
“거기 서세요!”
등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온다.
그런다고 서는 바보는 없겠으나.
‘절대 잡히면 안 돼.’
아이리는 절대 잡혀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다.
‘잡히면 용사 안 한다.’
용사님의 선언이었다. 그러니 절대 잡히면 안 된다.
물론 안 잡혀도 용사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아이리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진짜 무겁네.”
거북이 하면 생각나는 가장 큰 특징은 커다란 등껍질이었다.
물론 아무리 르윈이라고 하더라도 여학생들의 등에다가 거북이 등껍질 같은 장식을 달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대신 거북이 등껍질보다도 훨씬 무거운 핸디캡을 줬을 뿐.
두 발목의 무게추는 얼핏 보면 단순한 훈련용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하나하나 중력 마법이 새겨져 참가자들은 발이 땅에 묶이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출력 조절 못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해 주세요!”
그것을 최대한 무효화시키기 위해서는 발에 마력을 집중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검술을 사용할 때 보법을 신경 쓰는 듯한 느낌이나.
순수하게 중력 그 자체를 이겨 내기 위해서였기에 출력은 단순한 보법을 사용할 때와는 천지 차이.
“저게 뭐야!”
땅을 걸을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심할 때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갈라지기도 했다.
‘밟히기라도 하면 죽을 것 같은데요?’
멀리서 지켜보면 신기하지만, 쫓기는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잘못하여 발이라도 밟히는 순간, 발이 그대로 뭉개질 것 같았으니까!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콰직!
그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아이리는 더욱더 빠르게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으윽!”
아이리의 뒤를 쫓던 이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더 마력을 집중하고.
쿵! 쿵! 쿵! 쿵!
집중된 마력은 더욱더 큰 충격을 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냥 저거 풀어 주고 하면 안 돼요?”
무섭다. 분명 거리는 더욱더 벌어지고 있는데, 아이리는 더욱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핸디캡 없어도 되니까 저 무식한 것들을 치워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
“이거 써 보니까 되게 훈련되는데?”
“그러게. 작아서 무시했는데, 생각보다 힘드네.”
“이게 말로만 듣던 마녀의 기술력?”
그러나 추격하는 학생들은 중력 마법이 각인된 무게추가 제법 마음에 든 듯했다.
이전 경기에서 받은 아티팩트랑 이거랑 교환하고 싶다거나, 혹은 무게추 한두 개 정도 더 넣어도 될 것 같다는 소리가 아이리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을 정도로!
‘여신님, 인간들은 이상해요!’
용사님도 좀 이상한데, 다른 인간도 많이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저런 것을 좋아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되는 것 같기도……?’
그러나 막상 생각을 하니, 고향에 있는 수인들 중에서도 저 물건을 좋아할 만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곰 일족 같은 경우에는 발목이 아니라 몸통에 주렁주렁 달고 다닐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이래서 전사들은!”
수인이라고 하나, 본래 무녀이자 제사장 역할을 맡은 토끼 일족으로서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으아앙!”
그래 봤자 아이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울면서 도망치는 것밖에는.
***
두 선배가 날뛰는 것을 보며, 플라나는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라며 선배들에 비하면 무게추가 절반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였으나.
“…무거워.”
미성숙한 육체는 그 절반도 안 되는 무게추도 버거웠다.
‘애초에 중력 마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힘들 정도니까.’
순수한 철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 수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플라나에게는 큰 제한이었다.
“각인된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것도 안 되고.”
우승을 다투는 선배들이 날뛰고 있는 동안 플라나는 마력 그 자체를 뚫으려고 노력했으나, 각인된 마법이 생각 이상으로 견고하여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도 타니야 작품이야.’
여전히 쓸데없는 아티팩트이나, 여전히 고퀄리티였다.
하기야 현실이자 현실이 아닌 꿈과 정신을 잇는 드림 월드를 만드는 가문이었다.
아티팩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마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아티팩트를 만드는 기술 또한 올라갔고.
그렇기에 드림 가문의 아티팩트는 수많은 마녀 사이에서도 명품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대중성만 갖추면 정말 좋은 마녀일 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 수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아.”
정말 쓸데없는 물건 하나는 최고로 잘 만든다.
“어떻게 하지?”
이걸 뚫으려면 순수하게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 자신은 저 수인을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선배들도 못 따라잡고 있으니까.’
신체 강화 마법이란, 사용자의 신체가 단련될수록 더욱 효과를 발휘하는 마법.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력량이 더 많거나, 마력을 더 잘 다루면 더 효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랬다면 마법사가 근접전에서 기사들을 다 때려잡았을 것이다.
“음.”
극한으로 단련된 선배들조차 저런데, 이제 막 기사 동아리에 들어간 자신이 신체 강화를 하고 저기에 끼어든다고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기사로 취업을 준비하는 고등부 선배와 신체 능력을 타고난 수인족을 상대로 미성숙한 육체를 가진 자신이 뭘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그 수단은 모두 포기했다.
지금도 시작 지점에서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 지켜볼 뿐이었다.
관중석에서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시작부터 관심이 없다는 듯 아예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이들 또한 제법 많았다.
그럴 것이다.
플라나 본인이었어도, 운으로 올라온 듯한 신입생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테니까.
저쪽이 더 화려하고, 볼거리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저들에게는 없고, 자신에게는 있는 것이 두 가지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마법이라는 분야 하나는 자신이 압도적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랑.’
그저 재미로 참가한 저들과 달리 자신은 ‘사랑’으로 참가한 것이다.
모든 참가자에게 사랑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으나, 사랑으로 참가한 이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따지면 자신의 사랑이 가장 강한 게 아닐까.
‘아니, 그럴 거야.’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와 선배가 이어져 있을 것이다.
플라나는 하인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힘을 줘요, 선배!’
그렇게 생각하며 관중석으로 고개를 돌린 플라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관중석을 바라보았고.
“…어?”
다시 고개를 돌려 폭음을 내며 경기장을 뒤집고 있는 아이리와 선배들을 바라보며.
“그렇구나.”
플라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토끼는 한 마리가 아니었어.”
승리를 차지할 한 가지의 수.
그것이 플라나의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
어둠 속, 하인스는 생각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이 어둠 속에서 그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맞선 이벤트라는 웃기지도 않는 행사가 진행이 된 이후, 아카데미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베르샤 아카데미 최고 인기남!”
“무려 수십 명의 여친 후보자를 거느린 무서운 신성!”
“부장님! 간판 동아리 마크 대신 하인스 얼굴 박아 넣죠! 그럼 내년에 마법계 동아리 다 이기고, 우리가 아카데미 최고 동아리 될 텐데!”
“…나쁘지 않은걸?”
심지어 마음의 평화를 누리던 기사 동아리에서조차 저런 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존경하던 부장님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하더라도, 아직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다.
그뿐인가?
“나는 더 심했단다.”
믿었던 누나에게 살려 달라고 했을 때, 그 차가운 시선이란.
그제야 작년 선거에서 데이지가 겪었던 고통을 이해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배신자!”
“미안. 도우면 다음은 나래.”
그렇기에 데이지는 포기하고 예리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것 또한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 또한 이해는 해 줄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아닌 예리엘이 지금과 같은 일을 당하고 있었고, 르윈이 예리엘을 돕는다면 다음 맞선 차례는 너라고 말한다면 하인스는 가벼운 마음으로 예리엘을 버렸을 테니까.
그리고.
“선배,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나쁘지 않네. 이번 기회에 사람들 앞에서 도장 콱 찍으면 되겠네?”
“우승하면 드라이르프 가문 공식으로 넌 내 것이라는 소리지?”
생각보다 진지하게 자신을 노리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부끄럽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그로 인하여 공식 전적 수십 연패를 하게 되고.
부끄러운 자신의 연애관을 묻는 듯한 말들에 공개적으로 대답을 해야 했으며.
몇 시간을 높은 곳에 묶여 방치를 당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그래도 누나보다는 나으니까!’
그래도 난 드라이르프 가문의 최종 병기이자 흑막은 아니고, 아카데미를 한 번 혁명으로 이끈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도 마지막 관문에서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관문은 특별히 수인족의 도움을 받게 될 거야.”
“…이종족이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거였어요?”
“이름하여 토끼를 잡아라!”
“토끼 수인이시군요.”
“말 그대로 토끼를 잡는 사람이 우승하는 거지.”
“…….”
대답을 해 주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대화였다.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인스의 앞으로 르윈은 하나의 의상을 꺼내었다.
“그리고 토끼 하면 바니걸이지.”
“아카데미 공식 행사에서 수인분이 바니걸 옷을 입는다고요?”
기초부 학생들에게는 너무 선정적인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하인스였으나, 조용한 르윈의 모습에 다른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상상만으로 지옥인 생각이.
“도련님, 수인분이 입는 거… 맞죠?”
“…….”
“…….”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요!”
울면서 뛰쳐나갔지만, 10초도 안 되어 잡혔고.
3초 만에 제압을 당했으며, 3분 후 강제로 복장이 바뀌었고.
10분 후, 상자에 집어넣어져 지금까지 방치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아무도 찾지 마라.’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중얼거렸지만.
똑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