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36. 인생 10회 차는 팝콘을 씹는다 (7)
“이건 좀 곤란한데.”
발에 집중하던 마력을 몸 전체에 두르는 플라나를 보며 르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얼핏 보면 신체를 강화하는 느낌이나 출력이 다르다.
순간적으로 강한 폭발력을 내보이는 신체 강화와 달리, 규칙적으로 약한 파장을 주기적으로 내뿜고 있었다.
저 나이에 저런 마력 조작이라니.
과연, 차기 위치 로드의 자리를 이어받을 인재다웠다.
“벌써 들켰어?”
“응.”
옆에서 신나게 중계를 이어 나가던 라일라가 음성 송출 도구를 잠시 끄고 작게 소곤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관중들이 보기에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숨겨진 장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수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 들킨다며.”
“그럴 줄 알았지.”
딱히 힌트를 주지 않았기에 끝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눈치를 챘다니.
능력만이 아니라 상황 판단도 빠른 줄은 몰랐다.
“아니면 하인스가 없는 걸 눈치챘나?”
“그건 조금 티가 나긴 했지.”
여태까지 모든 경기에서 하인스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열심히 팝콘을 씹는 사람도 있고, 느긋하게 차를 우리며 우아하게 티타임을 갖는 이들도 있고.
암암리에 돈이나 식권 등을 걸어서 우승자 맞히는 도박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단 이건 공식적으로 ‘맞선’이다.
물론 당사자도 인정을 안 하는 느낌이나, 르윈은 그런 것도 다 고려하여 하인스를 매번 참가시켰다.
“그래도 저 안에 있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멀뚱멀뚱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플라나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경기장 구석,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관중석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기에, 거세게 날뛰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도망치다가 우연히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하인스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는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플라나가 마력을 사용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최단 거리로 빠르게 뛰어나가는 그녀를 다른 참가자들은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엄청 빠르시네! 저희 아카데미 교수로 오시는 건 어떠세요?”
“싫어어어어!”
울먹이며 도망치는 아이리를 뒤쫓으며 전력을 다하는 그녀들에게 경기장 구석을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 플라나가 양손에 마력을 집중하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에 쏟아부었다.
“아앗! 저게 무엇이죠?”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라일라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흥미를 유도했다.
“이럴 수가! 경기장에 숨겨진 물건이 있었다니!”
다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앞으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잘하면 좋은 일이지.’
역시 베르샤 아카데미, 종신 학생회장으로 예정된 자다웠다.
“그래서 이제 어떡해?”
투명화 마법이 풀린 이상, 플라나의 승리가 코앞처럼 보였다.
이제 저 상자를 열고 하인스를 붙잡으면 그대로 우승!
“…같은 일을 내버려 두겠어?”
“그렇지?”
르윈의 말에 라일라는 안심한 표정으로 경기를 바라보았다.
마침 영상 마법도 그녀를 집중하여 보여 주고 있었다.
『…이잇!』
그녀의 손에 모인 마력으로 여러 차례 상자를 열려고 노력했으나, 잠겨 있는 상자는 여전히 굳건했다.
『이것도 안 돼?』
처음에는 하인스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세밀하게 작업을 진행하던 플라나였으나, 이내 상자의 방어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악다물고 마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또 너냐! 타니야아아아!』
아무리 강력한 마녀의 마법이라도, 마녀가 만든 아티팩트를 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자고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지.”
“그거 나쁜 말 아니야? 바보라는 뜻이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몸이 강력하면 머리가 고생을 덜 한다는 거잖아?”
플라나가 하인스를 찾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나, 그 낮은 확률을 르윈은 전혀 무시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경기는 플라나를 탈락시키기 위한 경기.
그런데도 주최 측의 약속된 억까를 이겨 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그것이 운이든, 실력이든.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르윈은 여러 인생을 살면서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억까.’
이전에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낸 사람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라고 했으나, 그건 상대가 아군이었을 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적이라면, 고난과 역경으로 강해지지 못하게 압도적인 고난과 역경을 선사해 주면 되는 일.
『으으으윽!』
상자를 열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것을 지켜보며 르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
“응?”
아무리 집중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멀리서 계속 마력이 퍼진다면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우리 막내 뭐 하지?”
처음에는 선배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마력을 집중하던 플라나도 어느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 상자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었기에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아하!”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배와 달리, 다른 한 사람은 눈치를 챈 듯한 모습이었다.
“개구멍이 있었구나?”
아니, 정확하게는 토끼굴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아이리를 쫓던 발길을 돌려 플라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잇!”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고작 뛰어오는 것뿐인데 이런 압박감이라니.
플라나는 안색을 하얗게 물들이며 끙끙거렸지만, 상자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어라, 바람!”
“약하구나!”
상자를 여는 것을 포기한 플라나가 검을 뽑아 들며 마법을 사용했다.
검을 뽑는 모션을 주며 단문 영창으로 공격하는 페이크를 준 것이었으나, 그 공격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력화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맨몸으로 뚫어 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 공격으로 이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저렇게 쉽게 무력화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플라나였다.
“단련된 육체는 그 자체가 마법 같은 거란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
선배의 말에 순간 욱한 플라나였으나, 그 말이 맞았다.
‘눈앞에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한 건 없지.’
마법이란 우선 이론이 먼저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늘 결과였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이론을 현실로 만들어 증명하는 자들.
타고날 때부터 마법사인 마녀가 그걸 부정하면 안 되었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체 강화를 했다고 해도 맨손으로 마법을 쳐 내는 것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상자를 등진 채 전력으로 마법을 쏘아 대는 플라나로서는 세상이 자신의 우승을 방해하는 느낌이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우리 후배님, 기사 동아리에 들어왔으면 검을 휘둘러야지.”
“윽!”
플라나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선배를 보며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통하지 않았다.
“플라이.”
선배의 입에서 마법의 주문이 영창이 되었다.
흔히 공중을 날아다니는 마법.
“이건 플라이가 아니잖아요오오!”
그러나 신체 강화 마법을 제외하고는 마력의 움직임이 없었다.
당연했다.
플라나가 검을 꺼내는 척 마법을 사용했다면.
선배는 반대로 마법을 사용하는 척 그냥 플라나를 집어 던진 것뿐이었으니까.
“아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단련된 육체는 그 자체로 마법이란다!”
“으윽!”
아무리 플라나가 어리다고 하지만, 중력 마법의 무게까지 생각한다면 이렇게 쉽게 던질 수는 없었다.
단련된 신체 능력과 그것을 더욱 증폭시켜 주는 강화 마법의 조화.
이것이 기사를 위해 단련한 기사 동아리의 힘인가!
허공을 날아가면서도 감탄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으나.
‘졌어!’
상자를 빼앗겼으니 패배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윽!”
혹시나 다른 선배가 훼방을 놓지는 않을까.
허공에서 마법으로 중심을 잡은 플나라가 시선을 돌렸지만, 또 한 명의 선배는 우직하게 수인의 뒤를 쫓고 있을 뿐이었다.
방해는 없다.
자신의 마법으로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상자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자물쇠가 파괴당하고.
상자가 결국 열리고 말았다.
“…응?”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플라나의 예상대로 하인스가 아니었다.
“또 상자야?”
상자 안의 상자.
그에 헛웃음을 지으며 다음 상자를 열려는 순간.
“뭐야, 이게?”
땅이 거칠게 흔들리고, 바닥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더니 상자와 함께 합쳐져 조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골렘?”
단순한 상자처럼 보이던 물건이 어느새 골렘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며 모두가 놀란 그 순간.
끼익. 끽.
머리처럼 보이는 부분에 쇠와 쇠가 긁히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뿅.
“드디어 나왔습니다!”
“사실 아이리 씨는 중간 보스! 진짜 보스는 여기 있는 블랙 토끼군 1호!”
중계석에서 들려오는 발언에 경기장 안의 모두가 멍하니 블랙 토끼군 1호를 바라보았다.
죽어라 도망치던 아이리조차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블랙 토끼군 1호는 눈길을 끌고 있었다.
***
“…이게 뭐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블랙 토끼군 1호의 안.
바니걸, 아니 바니남 복장의 하인스는 그곳에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인스, 들려?』
“도련님?”
내부에 들리는 르윈의 음성에 하인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사람을 이 꼴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건 또 뭡니까!”
『그거 엄청 비싼 거야. 기갑 갑주는 들어 봤지?』
“용사님 전설에 나오는 그 기갑 갑주요?”
일반적으로 마법사가 설정한 대로 움직이는 골렘과 달리, 안에 사람이 탑승하여 움직이는 골렘.
무인으로 움직이는 골렘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옛 동화에서는 그것을 기갑 갑주라고 불렀다.
『그게 기갑 갑주야.』
“네?”
그러나 기갑 갑주가 옛 동화나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유는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 과거의 대전쟁 이후 모두 소실이 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설에 나오는 물건하고는 차이가 좀 크기는 한데.』
“당연하죠!”
기갑 갑주에 탑승한 기사가 마족 수십을 베어 넘기는 삽화는 아직도 하인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평범한 기사가 소드마스터 못지않은 활약을 하게 만들어 준 장비는 기사에게, 남자에게 있어서는 로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로망에 토끼 코스프레를 한 남자가 타고 있다니!
만약 하인스가 머리에 솟아난 토끼 귀 모양을 보았다면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잘 안다니 설명하기 편하네. 주인으로서 내가 맞선을 진행해 주었지만, 그래도 본인이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하면 좀 그렇잖아?』
“이제야?”
『하지만 그냥 취소하면 참가하신 레이디분들에게 실례지. 그러니까 너에게 기회를 줄게.』
기회라니. 얼핏 들으면 신경을 써 주는 말이었으나.
그런 걸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원래도 알고 있었고.
또 이번 일로 뼛속까지 각인이 된 하인스였다.
『첫 번째 관문 기억하지? 그거 한 번 더 하는 걸로 생각해. 다만 똑같이 하면, 똑같은 결말일 테니.』
시험품 기갑 갑주를 빌려주겠다.
그러니 이겨 봐라.
『원래 예로부터 선택은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여기서 지면 네가 약해서 패배한 것이고, 그러니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뭔…….”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그러나 하인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억지가 가능한 관계가 바로 주종 관계라는 것이었으니까!
『아, 참고로 그거 말 그대로 테스트용이라서. 사용자가 위험할 경우를 대비해 일정 이상 파손이 되면 비상 탈출 장치가 발동된다?』
“설마…….”
『응. 네 생각처럼이야.』
이 부끄러운 차림이 모두에게 공개가 된다.
사실상 사회적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겨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겨야 한다.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인스는 기갑 갑주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