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1)
21화 5.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 생활을 한다 (3)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사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며,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하는 것이 그의 루틴이었다.
“어쩌다가.”
그는 해가 뜨는 순간이 좋았다.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빛이 차오르는 그 순간이.
지평선 너머 붉게 물드는 구름이.
자연은 너무나도 신비롭기에 태양이 뜨는 위치는 매일 조금씩 달랐고, 하늘은 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그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해가 뜨고 아침이 찾아오고.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고.
그것이 무한히 반복되면서도 매일 똑같지 않다는 사실이 그는 늘 신기했다.
자연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세상의 진리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인 마법사로서 그 위대함을 보고, 느끼고, 깨달을 때마다 그는 더 열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왜.”
평소와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함에도, 남자는 우울했다.
“왜 하필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그의 루틴에는 포함되지 않은 곳이었다.
“1매점은 이 시간에도 여는구나.”
몰랐는데.
이것 또한 새로운 발견이라면 발견일 것이다.
아카데미 생활이 10년이 넘었는데, 이 시간에 매점이 연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24시간 운영을 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나?”
베르샤 아카데미는 그 규모가 큰 만큼 매점 또한 세 곳이 존재한다.
그중 이곳, 흔히 1매점으로 불리는 곳에는 온갖 소문들이 가득했다.
1매점은 24시간 운영을 한다.
매점 주인이 수상하게 능력이 좋다.
대륙 최고 상단 중 하나인 레드불 상단의 상단주가 가끔 오기도 한다.
비상시 마법관과 대도서관, 그리고 총학생회실과 더불어 4대 대피 장소로 지정이 되어 있다.
몇 개는 그저 소문에 불과했지만, 몇 개는 조금만 찾아보면 진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 하나 더 있었으니.
“총학생회장이네.”
아마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총학생회장의 손에 들린 상자를 바라보았다.
[효과 빠른 위장약(대용량)>“하하.”
이쪽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총학생회장이 선택한 곳이라니.
아무래도 제1매점에서 판매하는 위장약, 스트레스 해소제, 수면 방해 물약 등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소문은 알고 싶지 않았는데.”
젠장.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의 손이 자연스럽게 주머니로 향했다.
“금연이었지.”
이번 겨울 방학 동안 겨우 성공했는데, 아무래도 또 실패인 듯싶었다.
“이번에는 진짜 억울하네.”
진짜 성공했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구매 물품에 담배를 추가하며 매점의 문을 열었다.
“음.”
그리고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시간에 손님이 많나?’
생각보다 깔끔한 매점 안, 그곳에 손님으로 보이는 학생이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어, 음.”
심지어 기억에 있는 학생이었다.
‘데이지.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
르윈 디 드라이르프를 위해 입학한 세 명의 시종 중 하나.
‘왜 셋이나 필요한가에 대해서 말이 좀 나오긴 했지만.’
세 시종의 성적이 뛰어났기에 말이 좀 나오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 시간에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여기 있습니다.”
그때 매점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익숙한 상자 하나를 들고 등장했다.
[효과 빠른 위장약(대용량)>조금 전 총학생회장이 들고 나간 것과 같은 제품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감사는 제가 해야죠. 드라이르프 공작가에서 힘 좀 써 줘서 레드불 상단에서 좋은 물품들을 더 쉽게 받게 되었으니까요.”
“꼭 필요한 물건이니까요.”
“…….”
씁쓸한 표정으로 상자를 품에 안아 든 그녀의 모습이 왜 익숙할까.
거울을 본다면 아마 내가 저런 표정이기 때문이겠지.
남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계산을 마친 데이지가 그의 옆을 지나쳐 나갔다.
“조금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래…….”
알고 있었구나.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신입생 같은데, 아는 사이였습니까?”
“아, 음.”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숙소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3매점에만 이용을 했었는데.
마치 알고 있는 사이라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거는 남자를 보며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아는 사이까지는 아니고.”
별것 아닌 일이기도 했고.
위장약의 효과가 소문처럼 뛰어나다면 앞으로도 이곳을 자주 이용하게 될 것이기에.
“앞으로 알아 갈 사이이기는 하지.”
그는 앞서 손님들이 사 간 위장약 3병과 담배 한 갑을 주문하며.
“내가 담임이거든.”
올해, 최악의 폭탄을 떠맡게 된 남자는 쓸쓸한 어조로 진실을 말하였다.
***
“두근거리지?”
이른 아침, 등굣길.
기숙사에서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르윈은 신이 난 표정으로 말하였다.
“네, 두근거립니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두근거렸죠.”
“안 그러기 힘들죠.”
그런 르윈의 말을 그의 시종들은 긍정해 주었다.
“가문에서처럼 도련님이 침대 안에서 안 나오는 건 아닐까.”
“혹시 첫날부터 등교 거부를 선언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시종들을 보며 르윈은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게 더 무섭습니다.”
데이지의 말에 예리엘과 하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데이지가 건네는 위장약을 덤덤히 받아 든 것이 아니었다.
“도련님이라면 가능하니까요.”
“가능을 넘어섰지.”
확고한 신념마저 느껴지는 대답에 르윈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앞으로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이게 아닌데.
세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실수로 이상한 자존심을 건드려 버린 것은 아닐까?’
한다면 진짜 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서 더 무섭다.
저게 장난인지, 진심인지 구별되지 않는 사람이라 더욱더.
“…….”
그렇기에 세 사람은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깨질 환상이라고 하지만, 아카데미 입학 초반부터 공작가에 대한 학생들의 환상을 부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어?”
그 잠깐의 침묵을 깨트린 이는 라일라였다.
“왔냐.”
“응, 왔어.”
공작가의 영애로서 혼자서 이동하는 것이 어색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는 것은 평소에 단련된 탓일까.
르윈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다 알고 있는 것 같네.’
라일라가 합류하는 것으로 시선이 더 몰리는 것이 느껴진다.
공작가의 자제가 둘.
이 정도 조합이라면 황실 아카데미에서도 눈에 띌 조합이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은 작년에 루테스가 입학했기 때문일 터.
‘역시 선배님이야.’
본래라면 이보다 더 많은 이목이 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망나니 선배님께서 사람을 귀찮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1년간 잘 보여 주었던 탓일까?
시선이 모일 뿐, 르윈 일행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 나면 선배님한테 감사 인사라도 하러 가야겠다.”
개학 2일 차.
심지어 첫날은 단순한 입학식이었던 탓에 르윈이 아는 아카데미 인원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그중 르윈이 친근하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
“루테스 전하께서는 도련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하시던데요.”
르윈을 볼 때마다 기겁하는 황족을 떠올리며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선배님이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그럴 뿐이야.”
“그럴 리가요.”
아카데미 명물 취급을 받는 망나니가 부끄러움이 많다니.
“귀여운 후배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귀여운 후배라니.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르윈의 행동에 네 사람은 침묵으로 시위했다.
“왜들 그래?”
“데이지, 르윈이 평소에도 뻔뻔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나서 더욱 중증이 된 것 같습니다.”
“큰일이네.”
그렇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짧지 않은 등굣길이 끝이 났다.
“와.”
베르샤 아카데미, 기초 교육관.
앞으로 4년 동안 생활하게 된 건물을 보며 라일라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반은 기억하고 있지?”
“당연하지. 어제 알려 줬잖아?”
입학식만으로 괜히 하루를 날린 것이 아니었다.
베리엘이 르윈에게 아카데미에 대해 알려 줬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카데미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알려 줄 만한 것들은 어제 다 알려 주었다.
“우리 모두 3반이잖아?”
신입생들의 반 배정 역시 마찬가지.
반 배정은 물론 건물과 반의 위치까지 어제 다 안내를 받았기에 첫 등굣길에도 학생들은 헤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3반이구나.”
하지만 모든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르윈의 말에 예리엘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걸 잊어버렸어요?”
“그럴 리가.”
그래도 우리 도련님의 기억력이 물고기 수준은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예리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그냥 어제 안내받을 때 말한 걸 다 안 들었을 뿐이라고.”
“그게 더 안 좋은데요?”
돌아오는 대답은 더욱 최악이었다.
입학 첫날, 자신의 반조차 안 듣고 있다니!
“언니, 도련님, 수업은 제대로 들으실까?”
불안한 징조에 예리엘이 데이지에게 시선을 주자, 데이지는 온화한 웃음을 지어 주었다.
‘언니는 다 방법이 있구나!’
데이지의 웃음에 예리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리엘, 도련님께서 수업을 제대로 들으실 리가 없잖니.”
“아.”
그것은 온화한 웃음이 아니라 해탈한 성직자의 웃음이었다.
옆에 있던 하인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련님에게 기대하다니.”
네가 아직 덜 당했구나.
그렇게 말하는 하인스의 표정 역시 데이지와 다르지 않았다.
“얘들 반응, 진짜 너무하지 않냐?”
“그래서, 제대로 수업 들을 거야?”
“그럴 리가.”
“진짜 너무한 사람이 누굴까?”
라일라의 차게 식은 눈빛에도 르윈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3반 담임을 맡게 된 바르바 델릭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담임의 모습을 보며, 그는 확신했다.
‘이건 운명이야!’
담임의 모습은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가 데이지처럼 자신의 담임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옛날에 내가 저랬지.’
인생 7회 차에서 용사로 선택받았을 때의 표정이었다.
이제는 좀 그만하면 안 될까.
세상 귀찮은데.
왜 나한테만 이런 귀찮은 일들을 시키는 걸까.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런 생각 하던 시절의 표정.
‘그럴 만하지.’
르윈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반의 인원수는 스무 명 전후.
그런데 르윈의 일행이 전부 같은 반이었다.
‘반의 4분의 1이 공작가 관계자.’
이것만으로도 위에 구멍이 뚫릴 만한 일인데, 나머지 학생들 또한 쉬운 학생들이 없었다.
그저 드라이르프와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에 밀릴 뿐.
다른 반에 있었더라면 반의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할 아이들이 반에 가득했다.
한마디로.
‘폭탄이네.’
퍼트려도 폭탄이고, 모아도 폭탄이라면.
차라리 한 명이 다 끌어안고 혼자 죽는 게 이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반 배정이었다.
고위 귀족이 가득한 황실 아카데미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으나, 백작 이상의 귀족이 거의 입학하지 않는 베르샤 아카데미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겠지.
어찌 되었든.
‘나랑 상관은 없지.’
학생들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는 바르바였지만, 르윈은 떳떳했다.
정당한 방법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특별히 압력을 넣어 라일라나 데이지를 같은 반으로 만든 것 또한 아니었다.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이 압력이라면 압력이겠지만, 지조와 절개가 있는 아카데미였다면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놀아야지.’
딱 시키는 것만 하자.
나라의 공무원들이 자주 하는 얼굴의 담임을 보며 르윈은 아카데미 생활이 더욱 기대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