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36. 인생 10회 차는 팝콘을 씹는다 (8)
소형 골렘 크기라고 하나, 사람보다 몇 배는 커다란 기갑 갑주는 충분히 위압감을 줄 수 있었다.
“…….”
“…….”
“…….”
머리 위에 달린 두 개의 철 덩어리가 그 위압감을 반 이상 줄여 주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 음.”
가장 선두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에 마력을 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철컥.
“응?”
발목에 걸려 있던, 무게추가 덕지덕지 끼워져 있던 구속구가 풀렸다.
“최종 보스가 나왔기에 구속구가 해제되었습니다!”
“토끼가 비밀 무기를 가지고 나왔으니, 거북이도 무거운 등껍질을 벗어 던지고 최고의 상태로 싸워야죠!”
“마지막까지 이런 식이구나.”
어떤 거북이가 등껍질을 집어 던지고 싸우겠냐마는, 이런 멋진 물건까지 가지고 왔으니 그에 걸맞게 상대를 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안에 있는 건 하인스지?”
말이 들릴까 싶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아마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대화는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직 어리다고 하더라도, 하인스 또한 1년 이상을 기사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이.
검사끼리 대화를 하는데, 굳이 말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인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검을 꺼내 들었고.
끼기긱!
“그거, 검이었어?”
하인스, 아니 블랙 토끼군 1호는 자신의 귀 하나를 뽑아 들며 자세를 잡았다.
“…너무 큰데.”
막상 자세를 잡고 보니 상대가 너무 거대하다.
어디를 공격해야 유효타를 날릴 수 있을 것인가.
‘다리를 계속 타격하다 보면 부러트릴 수 있으려나?’
잠시 고민이 되었으나, 상대가 먼저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아하니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부딪쳐 봐야지.”
아무리 그래도 자신과 하인스의 실력 차이는 크다.
아무리 저런 골렘의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이 차이는…….
“어, 어?”
그렇게 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시야에 거대한 골렘의 머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박치기로 시작이냐?”
아무리 평소에 돌머리 소리를 듣고 있더라도, 저런 것과 부딪치면 저승행 입장권은 확정이었다.
그렇기에 빠르게 검에 집중하던 마력을 발로 옮겨 최고 속도로 골렘이 쓰러지는 것을 피했으나.
쿵!
“…….”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땅에 꽂힌 토끼 귀가 만들어 낸 참상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아윽!”
넘어지면서 받은 충격에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정신이었다.
‘쪽팔려.’
기껏 폼을 잡았는데, 바로 조작 미숙으로 넘어지다니.
아마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은 배를 잡고 웃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응?”
…라고 생각했으나, 밖의 상황은 하인스의 예상과 조금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이겨!”
“무슨 소리지?”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저 르윈이 시키는 대로 마력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기갑 갑주를 조종했을 뿐이었다.
딱히 특별한 일을 한 것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하인스는 선배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응?”
자신이 만들어 낸 거대한 크레이터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뭐야?”
기갑 갑주의 회로 곳곳에 있는 마력석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똑같이 싸우면 된다.
검을 직접 들지 않았기에 조금 어색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될 것이다.
자신의 기억력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게 전부였다.
“도련님? 도련님! 도련니이이임!”
야, 르윈 디 드라이르프!
솔직히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으나,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을 수 있었다.
『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르윈 또한 제법 당황한 목소리랄까.
『너무 잘 만들었는데?』
“이거 맞아요, 도련님? 잘못 때리면 바로 살인자 되겠는데요?”
『그렇기는 한데. 그럼 내려와서 싸울래?』
“…….”
내려가는 순간 패배는 확정이다.
세 명 모두 첫 번째 관문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를 당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그것을 뒤로하더라도, 자신의 복장을 남들에게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남은 아카데미 생활을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좀…….”
『그럼 어쩔 수 없지.』
알아서 해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르윈하고도 한판 붙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떠올랐으나.
‘도련님이라면 이것보다 더 강한 걸 들고 올 것 같아.’
테스트용이라고 했으니까, 정식으로 만든 걸 들고 오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으며, 하인스는 기갑 갑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선배?”
분명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검사의 수치이자 기사의 수치라고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등을 보인 채 빠르게 달려 나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하인스는 어설픈 조종 실력으로 그녀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저리 가아아아!”
가장 선두에서 울상을 지으며 달리는 수인족이 보인다.
“아니, 그쪽이 잡혀야 끝난다니까요!”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최종 보스 나왔잖아요! 저거 잡으세요, 저거!”
“저걸 어떻게 잡아요?”
“대신 잡아 주든가!”
그 뒤를 헉헉거리며 쫓는 동아리 선배들이 보인다.
끼익, 끼익.
그리고 그 뒤를 위험한 소리와 함께 느릿하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주며 따라붙는 거대한 골렘이 보인다.
“…또 타니야는 아니지?”
이것마저 타니야의 짓이라면 평생을 원망할 자신이 있다.
플라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멀리서 그들을 관찰했다.
‘어떻게 하지?’
저 골렘, 기갑 갑주에 대해서는 플라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저 기갑 갑주 또한 드림 월드와 마찬가지로 옛 용사의 유산이었고.
그렇기에 마녀나 드워프가 부활시키려고 노력을 했던 물건이다.
“완벽하게 재현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기록에 따르면, 기갑 갑주의 움직임은 일반 기사가 전력으로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나 저 기갑 갑주는 출력은 강해 보이나 기동에 제한이 많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뭔가 조금 어설프다.
그에 자연스럽게 타니야와 베렐스의 얼굴이 떠오른 플라나는 이번 행사가 끝나면 차기 위치 로드의 자리를 걸고 두 사람을 추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도 저기에 껴야 하나?”
자신을 압도한 선배조차 기가 죽어 도망치는 기갑 갑주였다.
기동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하나, 출력 자체는 정상인 것 같으니 물리력으로도, 마법적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방어력을 갖추고 있을 터.
“아카데미 공식 행사도 아니고, 비공식 행사에 저런 게 튀어나와도 괜찮은 건가?”
그녀의 예상대로 제국 공무원들에게 조사를 받고 기분 전환 겸 관객석에서 구경하던 이사장은 입을 쩍 벌리며 기갑 갑주를 바라보았고.
이사장에게 더 이상의 혐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 기회에 골칫거리인 황금 공의 기세를 확실하게 누르기 위해 아카데미에 상주 중이던 감찰부 인원들 또한 경악하며 경기를 보고 있었다.
이사장과 감찰부의 차이라면, 감찰부는 열심히 영상 마법을 기록하여 상부에 보고 중이라는 것뿐.
“…이거 진짜로 공개해도 되는 거 맞지?”
“그래서 보낸 거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타니야와 베렐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사장이 우리 쳐다본다.”
“눈 마주치지 마.”
“그러기에는 시선이 너무 강렬한데?”
“무시해. 그나저나 로드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원래 이런 건 꽁꽁 숨겨 뒀다가 꺼내는 것이 정석이 아닌가.
“솔직히 이게 다 네 탓이지. 네가 그 골렘 하나만 인간한테 넘겨줘도 되냐고 물어봐서 저것도 보내온 거잖아.”
“아니, 그게 왜 내 탓이야! 너도 공주님이 인간이랑 연애하는 건 막아야 한다고 했잖아!”
“아니, 그냥 다른 걸 미끼로 걸었어도 되었잖아.”
“다른 건 다 있을 것 같은데, 어떡해! 그리고 괜찮다고 했잖아!”
“아니, 이럴 줄은 몰랐지!”
대부분의 관객들은 평범한 학생이었기에, 그저 놀라운 것을 보았다 정도의 모습이나.
눈치가 빠른 몇몇 학생들과 아카데미의 높으신 분들, 그리고 제국의 고위 공무원들은 이만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마녀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냥 이사장 팔아넘길까?”
“나쁘지 않을지도.”
그러한 시선을 느꼈기에, 기말시험으로 협박하여 이사장에게 귀찮은 일을 다 떠넘기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너희였구나.”
그 모든 대화를 플라나가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으득!”
구경하는 사람들은 당사자들도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외부의 소리를 도청했다가 의도치 않게 모든 일의 원흉이 누구인지 알게 된 플라나가 이를 갈았으나.
결국 이 상태를 해결할 만한 뚜렷한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못 이겨.”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저건 참가자 셋, 아니 이 맞선이 시작했을 때 모인 모든 학생들이 모여도 이기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도망치는 수인을 잡으려고 해도, 무게추에서 해방된 선배들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오히려 뒤처지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서.
“애정.”
강대한 로봇이라고 하나, 결국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선배다.
그러니 그 선배의 마음만 자신에게 이끌 수 있다면.
선배가 갑주에서 내려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그래, 이건 맞… 선이잖아.”
아무리 인간 세상에 무지하다고 하더라도, 인간들의 맞선이 이런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맞선이지 않은가.
남녀가 서로를 알아 가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모두에게 우리의 사이를 증명받으면 되는 자리일 뿐이다.
“그저 거대한 골렘이 날뛰고, 다른 라이벌들이 있을 뿐이야.”
인류 역사상, 그런 맞선이 있을 리는 없을 테지만.
플라나는 각오를 다지고 계속해서 경기장을 뺑뺑이 도는 이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선배!”
끼이이익!
하인스 또한 갑작스럽게 난입한 플라나에 당황했는지 기갑 갑주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멈추려고 하였으나.
“어?”
기동에 문제가 있는 탓일까. 아니면 조작이 미숙한 탓일까.
아니면 너무 과도한 출력 탓일까.
기갑 갑주는 플라나를 피하였으나, 그대로 멈추지 못하고 더 나아가다 다리 부분이 접질려지며 바닥에 미끄러졌다.
쿵!
“어? 어?”
그렇게 나사 빠진 갑주의 틈새 사이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누가 봐도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선배?”
그래도 미리 안정 장치를 해 둔 것일까. 보통 골렘의 핵이 있는 부분에서 무언가가 사출되더니, 그곳에서 하인스로 추정되는 형상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찰나의 시간처럼 느껴졌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
“…….”
“…….”
“…….”
그 시간 동안 경기장 안에 기묘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 장면을 보는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시끄럽게 떠들던 중계석도,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던 관객석도 모두 침묵하자 아카데미 전체가 적막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모두 받은 하인스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려고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차선, 아니 차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자신의 얼굴을 감싸 시야를 차단하고,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경기장 밖으로 도망치는 하인스의 모습을 모두가 말없이 지켜만 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