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37. 인생 10회 차의 유익한 여름방학 (1)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아카데미의 기말시험이 끝났다.
아카데미에 마신회라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테러 집단이 들이닥친 것이 고작 몇 달이지만,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행사를 하기 이전이어서, 마신회를 직접 경험한 학생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었고.
생각보다 여러 교단의 성기사들이 많이 도착해 있던 상황이라서, 초기에 진압된 인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쟤 맞지?”
“아, 그 바니남?”
“난 그때 동아리 때문에 못 봤는데.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애가 그런 의상을 입었었다고?”
“엄청나게 잘 어울리던데?”
그보다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빨리 가문으로 돌아가죠!”
아카데미의 많은 학생의 식사를 책임지는 식당 안.
하인스는 주변에서 들리는 소곤거림에 얼굴을 붉히며 작지만 강한 어조로 어필했다.
“아직 방학도 시작 안 했는데, 뭘 돌아가자야?”
“…….”
누가 때문에 이러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냐.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제발 다음 생에는 도련님이 내 시종이었으면.’
이번 생은 글러 먹은 것 같으니, 다음 생이라도 기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누구는 아카데미 인생이 반쯤 망했는데, 저 태도를 봐라!
“덕분에 귀찮게 달라붙는 여자들도 없어졌잖아.”
“…….”
맞는 말이긴 했다.
그날의 사건 이후, 아는 지인들이 모두 한 걸음 멀어졌으니까.
다행히도 더럽거나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은 아니었다.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해 주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동아리실에 몇 개 없는 개인실을 유망주도 아닌 주제에 독점할 수 있었지만.
‘이런 배려, 전혀 필요 없는데!’
그 따뜻한 시선이 오히려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갈 때마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떻게 잊겠는가!
‘전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막상 소곤거리는 내용이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 많았으나, 찔리는 것이 있으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뿐인가? 10번 중 2번 정도는 진짜로 그 바니남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피해망상이 패시브로 장착이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놀려야 할 예리엘조차 위로의 덕담을 던질 정도.
그러나 그녀의 위로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왜, 왜 그렇게 바라보는데?”
“그냥.”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게는 세 명의 전속이 존재한다.
데이지, 하인스.
‘그리고 예리엘.’
데이지는 작년에 당했고, 자신은 올해 당했으니.
순서대로면 2학기나 내년쯤이면 예리엘도 무슨 일을 당할 것이다.
‘안 그러면 억울하지.’
자고로 아카데미에서 절친한 친구의 낙제 소식에 눈물이 나오고, 절친한 친구의 1등 소식에 피눈물이 나오는 법이라고 했다.
절친한 친구를 넘어 가족과 같은 사이인 예리엘이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을 보낸다면 하인스는 억울해서 밤에 잠도 오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대규모 맞선. 최소한 바니남보다 강한 거.’
예리엘의 바니걸은 잘 어울릴 수도 있으니, 전혀 다른 게 필요하다.
물론 굳이 자신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르윈 디 드라이르프.
자신들의 주인.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을 보여 주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
“표정들이 왜 그래?”
의뢰를 완벽하게 성공시킨 르윈이었지만, 마녀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그건 두 마녀의 요청 때문이었다.
“…피곤해서요.”
“요즘 맨날 불려 가긴 했지.”
마녀의 최신 기술에 제국이 막대한 관심을 보였고.
그 관심 덕분에 두 마녀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에 고통받았다.
“너는 찾아오는 사람만 상대하면 되었지. 난 시험까지 준비했다고.”
적당히 찾아오든가. 아니면 시험을 일반 시험으로 돌리든가.
둘 다 하지 않고 떠넘기는 아카데미의 횡포에 타니야만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이번 시험은 조금 괜찮게 만들었던데.”
“…조금 깨달은 게 있다고 할까.”
그저 그런 칭찬이었지만, 그 대상이 르윈이었기에 기분이 좋아지는 타니야였다.
‘이, 이건 당연한 건데.’
마녀 사회에서도 이단아니, 마녀 같지 않다니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기술력 하나만큼은 인정을 받았다.
이 아카데미에 온 이후에는 늘 극찬만 받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르윈은 어떠한가?
늘 반푼이, 불량품 취급을 했다.
본래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을 무시했겠지만, 더 뛰어난 기술력과 활용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하면 하는 마녀라고!’
크흠!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세가 등등해진 타니야를 베렐스가 뭐 잘못 먹었냐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크흠! 아무튼 원하는 건 엊그제 도착했어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은 타니야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사기는 아니지?”
“마녀가 사기를 치는 거 봤어요? 어찌 되었든 플라나 님의 연애 의욕을 꺾어 준 건 맞으니까.”
“안타까운 피해자가 발생한 건 좀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지.”
“…그게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던가요?”
수치심에 그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을 보여 주었던 하인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타니야였으나.
“만약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어 봐. 참가자가 막타 날려서 그대로 패배했을걸?”
그게 플라나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두 선배가 강력하다고 하나, 거리가 벌어진 상황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플라나가 더 유리했다.
“…뭐지?”
“설득력이 있어!”
묘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림에 두 마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꼭 바니 복장일 필요는 있었어?”
“그건 우연이긴 했지.”
베렐스의 말에 르윈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우연히 눈에 띄는 게 그거였거든.”
“…아카데미에 바니걸 복장이 있는 이유가 뭔데.”
하여튼 이상한 아카데미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장로회에 요청한 물건을 꺼내었다.
“이게 그거야?”
“네.”
마녀의 최첨단 시스템이 들어간 물건 세 번째.
“분신 골렘!”
말 그대로, 자신의 분신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골렘이었다.
“골렘의 정수리 부분에 자신의 피와 마력을 각인시키면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골렘이지.”
“호오!”
“일단 각인만 시켜 두면 장거리에서도 조종이 가능! 진짜 자신처럼 행동할 수 있으니 지인이라고 하더라도 들킬 위험이 적죠.”
“단점은 연비가 안 좋지. 마석을 녹여 먹는 수준이거든.”
“흠.”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마력석이라면 틈틈이 도서관 사서들과 던전을 돌며 주워 두었고.
또 여차하면 엘리에게 빌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안 빌려주려고 할 테지만.’
“여기에 피랑 마력만 흘려 넣으면 되는 거지?”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일단 써먹기 좋은 물건이 도착했는데 안 써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바로 자신에게 귀속을 시킨 뒤, 그대로 시험 운행까지 진행하는 르윈이었다.
***
분명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쌀쌀한 날씨였고, 새벽에 일어나도 어두컴컴했었는데.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면 일출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날씨도 무더워지고 있었다.
“…돌아갈까?”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고, 곧 여름방학이 찾아오는 시기가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많은 이들은 방학에 관한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 학생이 잊었다고 하더라도, 마신회의 테러를 아직 잊지 못한 이들 또한 존재했다.
마를렌 렐 아렐리드.
7번째 용사의 추모식,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그의 옛 동료였던 이들이 선조들이라는 이유로 참석하게 된 소녀였고.
그로 인하여 마신회의 테러를 두 눈으로 목격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하아.”
가문에서 마를렌을 가르치던 선생은 말하였다.
귀족이란 누군가의 위에 서는 사람들이라고.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내뱉은 선생은 물론이요, 수많은 사용인이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를렌은 선생이 그 이후에 했던 말들도 떠올렸다.
‘아렐리드에 걸맞게…….’
선생은 물론 수많은 사용인이 마를렌을 모시는 이유.
그건 그녀가 마를렌이라서가 아니라, 아렐리드였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마를렌이라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건 아주 소수.
대다수는 아렐리드라는 가문에 고용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귀속된 상태이기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주 소수는 아리타 왕국에서도 최고의 명예를 가지고 있는 아렐리드라는 이름 그 자체를 숭상하기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를렌이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귀족이었으니까.
아렐리드 가문의 일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책임도 다하라… 였는데.”
불의에 굴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용사의 동료였던 자들의 후손으로서, 아렐리드라는 가문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일이라고 배웠다.
마신이라는 절대악으로부터 힘을 받은 마신의 사도 마왕을, 위대하신 선조께서는 용사님과 함께 쓰러트렸으니까.
그로 인하여 마를렌이라는 인물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절대 못해.”
그렇게 배웠기에 마를렌도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서 본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웠고.
그 죽음을 만들어 낸 마신회가 나오는 악몽을 아직도 꿀 정도였다.
“돌아가서, 전학 갈까?”
남들은 평범하게 걷는 거리가 마를렌에게는 공포스러웠다.
간혹가다 대강당과 비슷하게 지어진 건물을 보면 흠칫흠칫 놀랐고.
수업 중 누군가가 복도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이럴 거면 아리타 왕국으로 아예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왕국의 아카데미는 베르샤 아카데미와 많이 다를 테니, 이 증상도 조금은 완화되지 않을까.
“…….”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들기에, 마를렌은 사람이 없는 장소에 혼자 앉아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끼익.
무언가 기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 느낌이었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매우 눈에 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르윈 선배님?”
“안. 녕.”
르윈 디 드라이르프.
제국에서도 황실을 제외하고는 최고라고 부를 수 있는 두 공작가 중 한 곳의 직계 자손이었다.
아리타 왕국에서는 왕족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곳이 아렐리드였으나,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은 그런 아렐리드조차 고개를 숙이는 것이 합리적인 곳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가문 이전에도, 아카데미에서 선배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를렌은 걱정을 잠시 저 멀리에 날려 보내고, 산뜻한 신입생의 모습을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오. 랜. 만이. 네.”
“네, 네.”
르윈과는 의외로 접점이 여러 번 있었기에, 마를렌은 르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도 지난번의 일에 충격을 많이 받으신 건가?’
말투가 이전과 달리 조금 많이 딱딱한 느낌이었다.
아니, 이전에도 유난히 자신을 대할 때만 딱딱한 듯했으나.
이제는 아예 골렘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말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기절한 나와 달리 선배님은 마지막까지 다 보셨을 테니까.’
검붉은 피가 자신에게 파바박! 하고 튀는 그 장면이 떠올라 마를렌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의 기억은 검붉은 피에 젖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상태였다.
핏자국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 안에서 누군가가 검을 휘둘렀던 것 같았는데.
‘누구냐. 누가 갈리에타 님을…….’
‘나.’
“윽!”
무언가 떠오르는 장면에 마를렌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고.
“마를렌!”
그 모습을 우연히 본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와 마를렌을 부축했다.
그리고.
“…누. 구?”
제법 풋풋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을 보며, 르윈 1호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