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37. 인생 10회 차의 유익한 여름방학 (9)
아카데미를 탈주한 지 열흘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아?”
“그렇긴 하지.”
아그작.
과거에 준비해 두었던 영약 하나를 씹어 먹으며 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 아카데미에서 실종 신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기는 했다.
“밥도 그립긴 하고.”
“매일 비싼 것만 처먹었으면서.”
“맛이 없잖아, 맛이.”
그간 르윈이 식사 대신 먹은 영약 및 마력을 증가시키는 물품들은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옛적에 마력 폭주를 경험했거나, 몸이 마력을 받아 주지 못하여 터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마력량.
그러나 숨 쉬기 운동을 통하여 준비된 몸과 인생 9회 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윈은 마력을 전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맛있는데.”
“많이 드세요.”
“네. 많이 먹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부스러기만으로도 엘리도 배부를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털 곳이 많으니까. 보험 정도는 들어야지.”
첫 번째 창고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나, 르윈의 창고 털이 시간은 점차 단축되고 있었다.
하나의 창고를 털 때마다 르윈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0회 차를 넘어 11회 차, 12회 차 등 더 먼 미래까지 준비해 둔 창고는 많았고.
그렇기에 그 모든 창고를 털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주머니 용량이 돼?”
“아슬아슬하게? 어차피 몇 개 더 숨겨 뒀으니까, 그거 찾으면 괜찮아.”
거기에 늘어나는 마력만큼 주머니 무게 역시 늘어났다.
본래라면 두 번째 창고는커녕 첫 번째 창고에 있는 물건도 다 챙겨 오지 못했겠지만.
전생에 공간 압축 마법이 깃든 주머니를 몇 개 배치해 놨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작은 것에 다 들어간다는 게 신기하기는 한데.”
“이론만 알면 쉬워. 이건 요즘 기술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야.”
“그런 것치고는 가장 많이 사용할 만한 상인들이 사용을 안 하잖아.”
“만들기는 쉬운데 비용이 많이 들거든. 대충 텔레포트용 게이트 하나 만드는 비용이랄까?”
사람이라는 좋은 대체 수단이 있기에, 굳이 그런 과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마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단주들이 비자금용으로나 들고 다니고 있을 터.
“다시 말해, 그 주머니만 팔아도 돈이 된다?”
“그래서 많이 만들어 둔 거지.”
“…….”
그것 역시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군자금을 횡령해서 만든 것이리라.
“횡령 용사…….”
“횡령이 아니라 투자.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우리는 그걸 횡령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 사람아!”
거대 상단조차 돈 아까워서 만들지 않는 물건을 허리춤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르윈을 보며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거 안 먹을 거야?”
“…사실 횡령을 저지른 용사는 과거에 죽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
그러나 그걸 지적하기에는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너무 많았기에 엘리는 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
거대한 굉음을 내며 쓰러지는 골렘을 보며 엘리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걸 이기네?”
“어차피 골렘이니까. 골렘이 전쟁 초창기에만 쓰이고 후반부에는 기갑 갑주만 쓰인 이유가 있다고.”
골렘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매우 강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고순도의 마력석만 존재하면 출력을 쉽게 상향시킬 수 있고.
또 제작할 때 들어가는 광석에 따라 마력석의 위력을 몇 배는 더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골렘이 좋기만 했다면 지금 전쟁 양상은 누가 더 많은 골렘을 보유하였는가가 되었을 것이고, 골렘 제작자들은 국가의 핵심 전력으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원 패턴이니까.”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패턴을 유지하는 적은 의외로 쉽게 상대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마녀가 만든 골렘은 조종할 수 있었다며.”
“그건 마녀의 기술력이 들어간 최신 제품이니까. 거기에 소형 골렘이기도 하고.”
그 단점을 해결하고자 수많은 골렘 제작자들이 달라붙었으나, 그리 큰 성과는 없었다.
마녀의 최신 기술로도 약간의 딜레이가 존재했고, 심지어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이 감각을 한계까지 사용하는 르윈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큰 결점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은 내부에서 조종하는 게 최선이야.”
어깨에 들쳐 멘 무기에 마력을 주입하였다.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마력이 압축된 검기.
흔히 소드마스터라고 불리는, 검의 정점에 선 자들의 상징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곡괭이에서.
“…진짜 적응 안 되네.”
“원래 골렘에는 칼질하는 거 아니다.”
괜히 멋 살린다고 칼로 때려잡다가는 멀쩡한 칼이 망가질 수 있다.
마력으로 보호했으니 괜찮다?
작업의 효율이 괜찮지 않았다.
“불쌍한 골렘. 집 지키고 있는데 집주인이 때려잡지 않나. 죽어서도 안식을 못 가지기까지 하다니.”
“나도 미안하긴 한데. 미스릴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마력이 응집된 곡괭이가 연신 골렘의 몸통을 찍어 내고 있었다.
캉! 캉! 캉!
연신 두들기는 소리와 떨어져 나가는 골렘의 일부.
그것을 보며 엘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도련님.”
“…응.”
“정말 어디 아프신 거 아니시죠?”
“…아닌데?”
르윈 디 드라이르프가 돌아왔다.
그 사실에 다급히 뛰어온 데이지는 발견된 장소가 본인의 기숙사 방 침대 위라는 사실에 헛웃음을 지었으나.
그건 그거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는 르윈을 찾는 동안 담아 두고 있던 것을 시원하게 쏟아부었고.
그에 찔리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르윈 역시 그 말을 조용히 다 들어 주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너무 조용해.’
르윈이 복귀하고 벌써 5일.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사고를 치고 왔으니 5일 정도 자숙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지만.
데이지 안의 르윈은 3일이면 강제로 자숙을 시켜도 자발적으로 자숙을 해제할 사람이었다.
‘감옥에 가두면 탈옥해서 돌아다닐 사람이지.’
그런 르윈이 조용하다.
방 안에서 조용히 책만 읽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도련님.”
“응.”
“혹시 그 책, 금서 같은 건 아니죠?”
“…너는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에 고저가 없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온다.
보통의 주종 관계라면, 아니 주종을 떠나서 평범한 인간관계라면 여기서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제가 한번 봐도 되나요?”
“…그러든가.”
이미 평범한 관계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이었기에, 데이지는 르윈의 책을 빼앗아 확인까지 한 후에 돌려주었다.
“…진짜네요.”
“…그렇다니까.”
혹시 첫 장만 정상적인 내용일까.
빠르게 첫 장부터 끝까지 훑어본 데이지였으나, 평범한 역사책이 맞았다.
진짜로 르윈이 조용히 아카데미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왜?’
그것에 의문이 드는 자신이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또 탈주를 하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병인데.’
점점 의심병 말기 환자가 되어 가는 기분에 데이지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르윈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책만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계적으로 책이 넘어가는 소리를 한참 동안 듣던 데이지는 먼저 입을 열었다.
“예리엘과 하인스에게 훈련을 부탁하셨던 빌이라는 아이가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리고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이번 방학 안에 종교 체계를 대충 잡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리고 세계수의 씨앗 연구회에서 추가로 영양제를 공급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르윈이 사라진 사이 자신에게 문의가 왔던 내용을 말하는 데이지였으나, 르윈의 대답은 계속 비슷했다.
‘…수상해.’
평소라면 신이 나서 뭔가를 저지를 생각이 가득할 텐데.
지금은 조용히,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길 뿐이었다.
‘뭐지?’
사라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책의 내용에 집중하고 있어서 한 귀로 흘릴 뿐인가.
“그리고…….”
무언가 단서를 찾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르윈 1호에게 연신 대화를 거는 데이지였으나, 그녀가 얻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계적인 대답일 수밖에 없었다.
***
“자고로, 신이란 존재는 인간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 하십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목회를 진행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신께서는 모든 것을 지켜보시지만, 여러분의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성공도, 실패도. 좋은 선택도, 나쁜 선택도. 모든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의 선택이 낳은 것이니.”
신은 그저 지켜만 본다.
수많은 신도를 앞에 두었음에도, 교단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황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누리는 것도 인류이며, 그것에 책임을 지는 것도 인류입니다. 신께서는 그저, 간혹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때만 그것을 되돌릴 기적을 행하여 주시니.”
곳곳에서 아멘이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신의 기적을 목격한 이들은 거의 없었으나, 그 기적이 적힌 내용이 자신들의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형태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 있으니. 바로 여신님의 의지요, 힘이니.”
잠시 말을 멈추고 물로 목을 축인 교황은 경건한 마음으로 여신의 대리자를 입에 담았다.
“그분이 바로 용사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9번 등장하여, 이 세상을 9번 구하시니.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사악한 악신을 섬기는 마족들에게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교황의 발언을 의심하는 신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이들이 창조의 교단의 신도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창조의 교단의 신도가 아닌 자들도 그 사실만은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며, 또한 모든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창조의 교단이 인류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는 초거대 종교라고 하나, 때때로 여러 단체와 마찰이 존재했었다.
그동안 여러 사건이 있었던 이종족, 종교 편향주의적 시각에 반발하는 수많은 학자.
늘 새로운 것을 밝혀내기 위해 기존의 질서와 싸우는 마법 연구가들과 마탑 등등.
그러나 그들조차 용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실존했고, 자신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겼기에.
“첫 번째 용사, 빌께서는 검으로 하늘을 가르셨습니다. 두 번째 용사 데인께서는 천 명의 흑마법사를 쓰러트리시고, 수십만의 언데드 군단을 무력화시키셨습니다.”
그 이전에도 성문을 통째로 베어 내었다, 산을 갈랐다, 지형지물을 바꾸었다고 하는 검사들은 존재했으나.
초대 용사가 하늘을 베어 낸 이후, 당대 최고 검사의 기준은 하늘을 벨 줄 아냐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세 번째 용사 파르텐께서는 이종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 인류의 성장을 한 단계 발전시켰으며, 네 번째 용사 이그네스께서는 손짓 한 번으로 천재지변을 일으키셨습니다.”
모든 용사가 남긴 뚜렷한 족적을 말하며, 교황은 두 눈을 감았다.
‘여신이시여.’
용사의 이야기는 목회 시간의 단골로 사용되는 소재였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그렇게 아홉 번째 용사, 데르덴께서는 마신의 사악한 종을 쓰러트리시고 인류를 구해 내셨습니다.”
인류는 총 9번의 위기가 있었고, 그것을 막아 낸 용사는 9명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열 번째 용사가 너의 앞에 설 테니. 너희는 그때를 준비해라.’
오늘 아침, 그에게 온 신탁의 내용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
“창조의 교단을 대표하는 교황이자, 창조의 여신 라헬의 종으로서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인류의 열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이제는 열 번째 용사님을 위해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성전의 선포.
그리고 동시에 르윈이 마지막 창고를 다 털어먹을 때의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