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2)
22화 5.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 생활을 한다 (4)
베르샤 아카데미 고등부 1학년.
동시에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을 맡은 레피스 원드는 세상 억울한 모습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온갖 욕설이 떠올랐지만, 가장 어울리는 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왜지?”
왜, 왜, 왜일까.
“진짜 왜지?”
하얀 긴 생머리를 붙잡으며 그녀는 그대로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시작은 오늘 아침.
베르샤 아카데미 개학 첫날부터 시작이 되었다.
일단 아침부터 기분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방학이 막 끝났다는 상실감.
그렇기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 적응을 못한 것도 있었다.
그뿐인가?
어제저녁 늦게 아카데미에 도착했기에, 짐을 정리하고 보니 그녀가 수면을 취한 시간도 매우 늦었다.
한마디로 수면 부족.
물론 그녀가 특이한 경우였다.
보통 재학생이라고 하더라도 개학 전날에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일은 흔치 않기는 했다.
“그러다 폐부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에도 그녀는 웃을 뿐이었다.
“그럼 다른 동아리 들어가면 되지.”
대부분의 학생이 동아리 활동에 열성적인 편이었다.
동아리는 하나의 사교의 장이기도 했고, 동아리로 쌓을 수 있는 실적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재학생들은 신입생들을 사냥하기 위해, 아니 동아리 부원으로 만들기 위해 개학 며칠 전에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랑은 상관없지만.’
하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인맥을 쌓는 것도, 제국의 공무원이 될 생각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당했다.
“야, 그래도 네가 동아리 회장이잖아. 그러다가 진짜 폐부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맞아. 너희 동아리에 루테스 전하도 계시잖아.”
“아, 그 말 하지 마라.”
하지만 그 말은 그냥 넘기기 힘든 말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그 사건은 그녀에게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제국의 황자가 입부 신청하는 경험해 봤어? 해 봤냐고!”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친구들이 순간 움찔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녀가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라는 곳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시골 촌 동네 남작가의 장녀로서 그다지 사교 활동에 신경 쓸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숙사에서 잠이나 자는 게 이득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동아리에 들어갔고, 현재 남아 있는 동아리의 부원들 역시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황족인 루테스의 입부는 지옥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각 학생회에서 찾아오고, 총학생회장까지 찾아오고, 교직원들은 물론 아카데미 이사장님까지 오고!”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이 찾아오고.
막 동아리 회장이 된 그녀는 그 사람들을 모두 대면해야 했다.
“거기에 집에도 알려져서 혼나기까지 하고!”
“그건 왜?”
“쟤 부모님이 창조의 교단의 열렬한 신도시잖아.”
“어. 안 그래도 없는 영지 세금을 아끼고 아껴서 교단에 헌금으로 내는 사람들인데, 딸내미가 다른 신도 아니고 이름 없는 신을 찾고 다닌다고 아주 그냥.”
호적에서 파 버린다는 협박 아닌 협박에 그냥 부 활동하기 싫어서 들어갔다고 얼마나 설득했던가?
“내가 열정적으로 신입생 끌어들인다? 그럼 진짜 나 호적에서 파인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가는 모습에 그녀의 친구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누가 그런 경험을 해 보겠냐.”
“황실 아카데미에서도 그런 일 있으면 피곤하겠다.”
“뭐, 레피스 성격이면 전하께서 안 들어오셨어도 신입생은 모집 안 했을걸?”
“그걸 왜 해?”
레피스 또한 부정하진 않았다.
인맥을 형성하는 것은 반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비슷한 계급인 자작이나 남작가의 자제들이었지만, 오히려 이게 더 편했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게 최고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있는 동아리에 황자가 이름만 올렸다고 개판이 되는 것을 경험했는데, 스스로 재앙을 불러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은퇴할 거다.”
전형적인 소시민, 아니 소귀족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발언에 친구들은 웃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게 너랑 어울리기는 하지.”
“나 같아도 안 하기는 하겠다.”
“그게 마음대로 되냐? 누가 알아. 요번 신입생 중에 공작가 사람들이 들어온다는데, 너희 동아리에…….”
“넌 뒤졌다.”
어디서 그런 무서운 말을!
빠르게 몸을 날린 레피스는 저주를 내뱉던 친구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서 그대로 분노의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녀는 친구를 때린 것을 후회했다.
‘그때 그 새끼를 진짜로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죽어 버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레피스 후배는 참 능력이 좋은 것 같아요.”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또 사고 쳤니?’
자동으로 번역되는 듯한 총학생회장의 말에 레피스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걸요?”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되는 건데요?’
애초에 그녀 또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총학생회장에게 듣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억울했지만.
“에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모두가 노리고 있던 르윈 후배가 동아리에 들어갔겠어?”
‘그냥 아무것도 안 했는데 황족에 이어 공작가까지 들어가는 게 말이 되는 거냐.’
아무래도 총학생회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는 어제저녁이 다 돼서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개억울함!’
그 억울함이 전달된 것일까?
“…….”
“…….”
레피스의 말을 들은 총학생회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 또한 그녀가 어제 밤늦게 아카데미에 돌아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수상한데.’
바벨리안, 드라이르프.
제국은 물론 대륙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그저 ‘우연’이라는 결과로 하나의 동아리에 모일 수 있을까.
그것도 이름 없는 신을 주제로 하는, 마이너한 동아리로!
‘차라리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어마어마한 흑막이라는 게 더 그럴듯한 이유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원드 남작가는 그 세력이 너무 약했다.
‘그걸 오히려 이용했다거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온갖 음모론을 꺼내면 끝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진짜지?”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해석이 필요 없는, 순수한 마음을 담아 말했고.
“가짜죠?”
그녀 역시 순수한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
“미안.”
가짜죠.
짧은 한마디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복잡한 심경을 총학생회장은 느낄 수 있었다.
“왜…….”
도대체 이 활동도 안 하는 동아리에 뭐가 있다고 황자나 공작가의 자제가 들어오는 것일까.
레피스는 세상이 자신을 억까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왜 그런 것일까.
두 사람은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회, 회장님?”
레피스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이렇게 통보만 하고 가면 자신은 어떻게 하느냐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라인하르트 가문이 노동 동아리에 입부 신청서를 냈거든.”
그 역시, 골치 아픈 일이 존재했다.
“무슨 동아리 이름이…….”
“학생회만 가입하는 동아리거든. 아카데미 학생은 1인 1동아리가 원칙이잖아?”
설명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작년까지는 몰랐지만, 루테스가 동아리에 입부한 이후 그녀는 학생회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그런 학생회 소속 동아리에 공작가의 영애가 입부 신청서를 냈단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거절하겠지만, 상대가 라인하르트였다.
원하기만 한다면 내년부터 학생회의 임원이 되는 것이 확정된 인물.
그런 인물이 자발적으로 들어온다는데 막는 것 또한 이상했다.
“고생하세요.”
아마 저기도 개판이겠지.
그렇기에 그녀는 총학생회장을 놓아주기로 했다.
“너도.”
총학생회장 또한 레피스의 심정을 잘 알았기에 짧은 한마디를 내뱉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하아.”
그리고 현재.
그녀는 총학생회장을 만난 장소에 아직도 있었다.
“동아리실로 가라고 했는데. 거기 가면 최소 공작가인데.”
쿵. 쿵. 쿵.
책상에 머리를 박을 때마다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이 거칠게 요동쳤다.
“아, 스트레스. 내가 흰머리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새치 엄청 생겼을 텐데.”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었지만.
“괜찮을 거야. 루테스 전하께서도 입부하시고 만난 적이 거의 없잖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자신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뭐 무슨 일 있겠어?”
짝!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세게 친 그녀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동아리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동아리 부원 중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동아리 회장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가 어떤 동아리인가?
총인원이 열 명도 안 되는 작은 동아리였다.
동아리 활동도 없고, 실적도 없고.
총학생회에서 폐부 심사를 하면 언제든지 폐부가 될 수 있는 부.
그런 부에 귀한 집 자식이 들어올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랑 똑같은 이유겠지.’
신입생이면 보통은 열 살이다.
재수를 몇 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베르샤 아카데미가 재수해서까지 올 아카데미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 나랑은 다르지만, 공작가 정도 되면 굳이 인맥을 쌓을 필요는 없겠지.”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에 모일 것이니까.
그러니까 굳이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저 운이 안 좋아서, 혹은 루테스 전하가 들어가 있으니까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겠다고 한 것이리라!
“지금처럼만 하면 돼. 입부 신청서를 받고, 부원이 되면 거기서 끝!”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는 지금처럼 활동이 없을 것이고, 그녀는 그렇게 1년을 더 활동하다가 은퇴할 것이다.
“그래, 그럼 돼. 2학년까지만 버티다가, 3학년이라 바쁘다고 회장 자리를 떠넘기면 돼.”
그럼 되는 것이다.
동아리방의 문손잡이를 붙잡고 몇 번이고 되새긴 그녀는 의지를 다잡고 전혀 익숙하지 않은 동아리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 동아리의 회장을 맡은 레피스 원드입니다!”
좋아, 나쁘지 않다.
짧은 한마디지만, 이것을 위해 머릿속으로 몇 번을 연습한 그녀는 자신의 소개에 만족하며 신입생들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고 합니다.”
“데이지라고 합니다.”
“아, 안녕?”
아카데미는 모두 평등하다.
아카데미는 모두 평등하다.
아카데미는 모두 평등하다!
아무도 믿지 않는, 그냥 이름뿐인 교칙을 되새기며 그녀는 자신을 진정시켰다.
‘고작 통성명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의지가 꺾일 수는 없지!’
“두 사람 다 우리 동아리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있을 리가 없다.
귀한 집 아들내미가 이름 없는 신 같은 마이너한 신을 믿을 리가 없다.
‘그렇지?’
레피스는 간절한 마음으로 창조신 라헬에게 기도했다.
평소에 믿음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부모님은 믿음이 충만하셨으니까.
그들의 딸인 자신의 기도를, 이번만큼은 들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당연히 이름 없는 신을 연구하기 위해서죠.”
“그, 그렇지?”
말은 저렇게 하지만 진심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대귀족인데, 아카데미에서 부 활동하기 귀찮아서 이름만 남기려고 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
그럴 거다. 분명 그럴 것이다.
‘눈이 진심인 것 같지만, 과하게 기대하는 것 같지만!’
다 기분 탓이다.
그래야만 했다.
“조, 좋은 자세네요.”
레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입부를 허락했다.
솔직히 거절할 수는 없었다.
가문도, 마음가짐도 소귀족 그 자체인 그녀에게 공작가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은 이제 우리 동아리 부원입니다. 그럼 이제…….”
기숙사로 가자.
그렇게 말하려던 레피스의 말을 르윈은 빠르게 가로챘다.
“동아리 활동 시작이죠!”
“어……?”
우리 그런 거 안 하는데.
“루테스 선배님도 불렀으니까…….”
“어, 어?”
안 불러도 되는데.
“아카데미 첫날부터 이렇게 열성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다니!”
“…….”
할 생각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용히 자리에 앉는 레피스였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의자에 앉는 작은 행동이, 훗날 창조의 교단을 밀어내고 인류는 물론 마족까지 통합할 새로운 신흥 종교 탄생의 시발점이자.
그리고 그 신흥 종교의 수장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이때의 그녀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