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38. 쾌락 없는 책임 (3)
“올해는 마가 끼었나.”
아카데미의 이사장, 황금 공 아이웬 골드워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초, 후작가의 자제들이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베르샤 아카데미의 창립 이후 최고의 전성기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마신교에서 테러를 일으키지 않나.
갑자기 나타난 수인족이 날뛰지 않나, 이번에는 엘프가 와서 깽판을 치기까지 했다.
소속, 종족을 가리지 않고 베르샤 아카데미에서 깽판을 치니, 아무리 철면피로 소문이 난 황금 공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님.”
“감찰부장님, 괜찮으십니까?”
“못 볼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가장 먼저 엘프와 전투하였고, 그로 인해 처참하게 패배한 감찰부장이었다.
안색이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공무원 인생이 불쌍해 보이다가도.
또 테러 사건 때 자신을 쥐 잡듯이 잡던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은 통쾌한 기분도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황금 공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엘프에게서 무언가 단서가 나온 것이 있습니까?”
“아뇨.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는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엘프는 심문도 안 되는데.”
아무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이종족에게 손을 대면 매우 곤란해질 수 있었다.
“심문보다는 차라리 깔끔하게 처형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니까요.”
“진탕에 구르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좋은 건데.”
짧게 혀를 차면서도, 그게 다 옛 선조들이 쌓은 업보라는 것을 알기에 감찰부장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일단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엘프 대사관 쪽에 연락을 넣어 주시겠습니까?”
“사건을 보고받고 바로 연락을 넣었습니다.”
“빠른 대처,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더 황량한 황금 공의 머리숱을 잠시 바라보며, 감찰부장은 자신을 쓰러트린 엘프가 있는 임시 심문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고가 많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부하 직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남긴 감찰부장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엘프와 눈을 마주쳤다.
‘평범한 엘프는 아니었어.’
제국은 단순히 땅덩어리만 넓다고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었다.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인종과 문화를 품에 안고.
그것을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 내며 소화시켜 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낼 힘 또한 필요했다.
바벨리안은 그것을 해냈기에 제국이라 불렸고, 그렇게 세계의 중심이라고까지 불릴 수 있게 되었다.
드넓은 땅, 다양한 인종.
그로 인하여 모여드는 사람들.
그중에는 다른 종족에 비해 인간 세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엘프들 또한 다수 존재했고, 헤직스 또한 제국의 감찰부장으로서 여러 엘프를 만나 보았다.
그렇기에 헤직스는 엘프에 대한 지식이 제법 있었다.
꿈과 환상이 가득한 옛 동화 속 이야기의 엘프도 아니었고, 고리타분한 역사에 기록된 엘프들 또한 아니었다.
길거리를 걷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인간 세상을 여행 온 평범한 엘프들.
누군가는 다 똑같은 엘프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헤직스는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실력과 비교하면 젊어.’
아직 마흔도 되지 못한 자신이 엘프를 젊다고 말하는 것이 우습지만, 눈앞의 엘프는 확실하게 젊은 엘프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
“저도 나름 천재 소리 들으면서 살았는데. 이렇게 무참하게 깨지는 게 얼마 만인지.”
거짓은 아니었다.
군부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기사단이 먼저 침 발라 놓았다고 싸울 정도로 헤직스는 아카데미 시절부터 검에 재능을 보여 왔다.
그 결과 현 상사의 눈에 띄어 감찰부에 들어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는 뛰어난 검사였고, 패배를 거의 모르며 살아왔다.
“그저 사람들이 엘프 하면 활쟁이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기사’들도 존재하는데.”
“…….”
활쟁이. 엘프 앞에서 이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뒤지기 딱 좋은 발언이다.
과거 세계수의 보호를 받으며 뒤에서 활이나 쏘는 놈들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발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이 있다.
아니, 오히려 그 발언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눈앞의 엘프가 그러했다.
‘최소한 기사 지망생은 맞고.’
엘프 기사.
엘프 하면 생각나는 전통적인 이미지 활, 정령, 마법이라는 주류를 따르지 않고, 검을 집어 든 자들.
엘프들 또한 하나하나가 뛰어난 검사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검이란 위의 세 가지를 사용하기 어려울 때 호신용으로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엘프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검을 집은 이들이 있다.
엘프의 기사, 혹은 그것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존재들.
엘프들 사이에서는 별종으로 취급되나, 은근히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기도 한 것이 작년 건국제의 우승자였던 엘프가 바로 기사 지망생이었다.
“…흠.”
아닌 척 헛기침을 하면서도, 귀가 파닥거리는 모습이 제법 기쁜 듯하다.
“그나저나.”
문제는 눈앞의 엘프가 지망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나다는 것.
검사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검을 휘둘러도 이백 년쯤 되면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지 않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종족이 엘프라고 하더라도.
헤직스 또한 소드마스터였고, 그런 자신을 손쉽게 제압한 이가 엘프 기사 지망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사일 수도 있으니, 조금만 더 캐내 보자.’
지망생과 기사는 차원이 다르다.
말이 지망생이지, 인간 세상으로 따지면 사춘기 학생이 공부하기 싫다고 가출을 한 것이 바로 엘프 지망생이었다.
그에 비해 기사는 단순한 인간의 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최소 왕실 근위대 수준이고, 높게 본다면 제국 황실 근위대보다 몇 줄 위에 올려 두어야 하는 존재가 엘프들의 기사였다.
그만큼 엄청난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은 존재이자, 엘프 왕국의 핵심 전력이며.
‘그만큼 책임질 것이 많지.’
타국의 인물이 남의 나라 아카데미에 쳐들어와서 깽판을 치는 것과 황실 근위대가 남의 나라 아카데미에 쳐들어와 깽판을 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말을 잘 이끌어 내서 그가 엘프 왕국의 기사라는 사실을 실토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 일을 빌미로 엘프 왕국에서 많은 것들을 얻어 낼 수 있을 터!
‘잘하면 일주일 정도 포상 휴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그렇게 된다면 3일은 술에 진탕 빠져 살고, 남은 4일은 낚시를 하며 세월을 낚는 사치를 부릴 것이다.
통신구 꺼 놓고, 아무도 날 찾지 말라는 안내 메시지는 덤.
휴가가 끝나고 부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재무부장과 정보부장의 모습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짜릿해지는 기분이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며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던 헤직스는 갑작스럽게 표정이 변하는 엘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나?’
무언가 트리거가 될 만한 발언을 했나 떠올렸으나, 문맥상 그럴 만한 단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다.”
그렇게 감찰부장이 자신의 말을 곱씹고 있을 때, 여태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던 엘프의 입이 열렸고.
“네?”
“…아카데미에 취직하러 왔다.”
“…….”
“…….”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취직 의사를 밝히는 엘프를 보며 감찰부장은 확신했다.
‘기사일 리가 없네.’
엘프의 주요 전력인 기사가 한가롭게 타국의 아카데미에 취직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
감찰부장은 자신의 휴가 계획이 박살 났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엘프 기사가 아카데미에 취직 의사를 밝히기 조금 전.
“들키면 큰일 난다?”
-걱정 말거라.
인생 10회 차와 태초부터 뿌리를 내렸다는 전설이 있는 위대한 나무의 추하고도 추한 싸움은.
결국 새싹이 자라난 세계수의 씨앗을 확인하는 것으로 잠시 멈추게 되었다.
“막 통신구에서 빔 쏴서 애 죽이고 그러는 건 아니지?”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일단 네 주둥이에 날렸을 것이다.
‘이게 맞나.’
도저히 인간에게 있어서 성역 취급을 받는 용사와 엘프들에게 신 취급을 받는 세계수의 대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여긴데.”
아직 방학이었고, 또한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일어난 폭발에 사람들이 대피한 상태여서 세계수의 씨앗 연구 동아리의 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부실 구석, 오직 소수의 인원만이 출입이 허가된 세계수의 씨앗 보존실까지 손쉽게 침입한 르윈은 통신구 너머로 씨앗을 보여 주었다.
“봐. 잘 자라고 있지? 걱정하지 마.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자식은 우리가 잘 키울게.”
-…아니길 바랐는데.
감각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직접 보게 되자 세계수는 큰 충격에 빠진 모양이었다.
“진짜네…….”
세계수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력이 가득 느껴지는 초록색 액체에 둥둥 떠다니는 세계수의 씨앗을 바라보며, 엘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새싹 흔들리는 거 봐. 엄마 왔다고 알아보는 것 같은데?”
“엄마 아니야!”
“하긴… 기본적으로 여성체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맨드레이크라고 다 여성이 아닐 수 있지. 그럼 네가 아빠 할래?”
“캬아아악!”
그 소리가 아니잖아!
거칠게 울부짖으며 항의하는 엘리의 귓가에 또다시 엄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아니라니까!”
-엄마…….
“자꾸 엄마 엄마 그럴래?”
“내가 안 했는데?”
계속되는 엄마 소리에 엘리가 르윈의 멱살을 붙잡고 탈탈 털었고, 그 과정에서 르윈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네가 아니면 누군데? 씨앗이 엄마 찾기라도 했어? 진짜 입만 벌리면 구라를…….”
엘리는 코웃음을 치며 르윈의 말을 무시했으나.
-엄마!
“…입을 안 벌리고 있는데?”
-엄마!
“…나 엄마 아닌데?”
르윈이 입을 다물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엄마 소리에 두 눈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엄마!
“…….”
“…….”
-…….
연신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한 사람과 두 식물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딸이 엄마 찾는다.”
그나마 사건과 가장 연관이 없는 르윈의 말에 엘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딸로 확정인데.”
“목소리가 딱 봐도 딸이잖아.”
중년과 늙은이 사이의 세계수와 달리, 씨앗은 밝고 활기찬 듯한 어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지금 들어 보니 엄마랑 목소리도 비슷하네.”
“…진짜라서 더 아프거든?”
-엄마!
아직 엄마라고 외치는 것밖에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지만, 세계수의 씨앗의 목소리는 확실히 엘리의 목소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벌써 자아가 생긴 건가?
새싹이라서 잘 티가 안 났을 뿐, 지금 보니 씨앗에서 살짝 튀어나온 새싹이 나름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이 엄마를 직접 봐서 기쁘다는 듯한 모습인 듯하여, 엘리는 입을 다물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 엄마! 엄마!
-…이미 자아까지 생겨 버렸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연신 엄마를 부르는 세계수의 씨앗의 모습을 보며, 세계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엘리에게 말하였다.
-딸을 잘 부탁하오, 애 엄마.
“…….”
세계 최초, 세계수의 반려가 된 맨드레이크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오